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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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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29: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게 하겠다

보좌는 왕들이 앉는 자리요,

보좌는 임금이 앉는 자리요,

보좌는 통치자가 앉는 자리요,

보좌는 주권자가 앉는 자리요,

보좌는 권세자가 앉는 자리요,

보좌는 능력자가 앉는 자리요,

사무적으로 잠깐 앉았다가 내려오는 자기가 아닙니다. 한 번 앉으면 영원히 내 자리입니다.

 

그 고차원적 인격,

그 고차원적 신분,

그 고차원적 영광,

그 고차원적 위치에서 삽니다.

 

주님은 나를 이렇게 위해 줍니다. 어느 부모 형제가 나를 이렇게 위해 주겠습니까? 도리어 몰라서 나를 보좌에서 어떻게 잘 끌어내리는지! 아무리 부모 형제 처와 자식 남편이라도 자기가 알았던, 몰랐던 끌어내리는 그 자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는 그 자리, 그 고차원적인 인격과 능력과 판단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이냐? 그것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님을 바로 믿고, 예수님을 바로 배우고, 예수님을 바로 깨닫고, 바로 순종하면서 사는데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예수 믿기 전의 그 소원 목적성, 그 취미성, 그 간구성, 그 세상성은 다 빠져나가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인격성이, 도덕성이 의와 거룩한 성품으로 주님처럼 잘 닮아지고 입혀진 것입니다. 무식하고 저질적인 어부에서 제자로, 제자에서 사도로, 천국의 전권대사로 영광의 자리, 심판할 자리로 이렇게 사람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사람으로 되길 욕심을 낼까?

원리 원칙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한 지혜 지식성자로, 도덕성자로, 능력성자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한즉 너희도 온전하라. 그리스도의 진리지식에까지 자라가라

 

수십 년을 믿었어도 자기의 인격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이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가르치는 목사를 만났다거 나,

세상을 가르치는 교회로 들어갔다거 나,

자기가 세상소원을 가지고 믿는다거 나,

반드시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적이다하는 것은 소원성 목적성 간구성 취미성 추구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육신을 감싸고 육신을 위한다는 것.

우리 인간은 영과 육의 결합체입니다. 영은 영원에 속하고, 육은 임시성에 속하는 것인데 우리의 육신은 시간이 지나면 다 쭈그러집니다. 영이 주격으로 살아야 인간이 바로 사는 것인데 육이 주격이 되어 살면 결과는 눈물이요 고통이요 근심이요 허탈감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인간이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를 잘 다스려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스트레스 받는 것을 안 받게 하려고 방편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참 불가능입니다. 인간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를 위해주면서 살겠습니까? 이중 삼중으로 파도처럼 몰려오는 세상풍파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일반 세상적으로 나가는 이것은 세상적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을 위한 이치가 들어 있고, 구원도리가 들어 있는 계시의 말씀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활동만 부분적으로 똑 따다가 사회적인 활동에다 붙이면 세상적입니다.

사회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를 감쌀 수는 있겠지만 지혜 지식적 능력의 사람이 안 되면 세상에서 부딪히는 사건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가 있겠는가? 사람이 인격적으로 바로 못 서면 살기 좋은 에덴동산을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비주의, 은둔생활 이것도 세상입 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비한 일들은 마귀로 통해서 오는 세상적인 요소들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깨닫고 고치라는 우리의 구원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 귀신들린 요소는 고치지 않고 성경에 있는 것처럼 무엇을 보았네, 들었네, 응답을 받았네하는 것은 성경을 깨달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성경에 있는 것을 똑 같이 보았다는 것이니, 말하자면 자기가 본 것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우리의 온전을 위한 영적 계시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버리고 자기가 이상한 체험을 한 것을 말하는 것은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거짓 영들입니다.

성경 문자 액면적으로 성경구절을 돌림하여 붙이는 것도 역시 세상입 니다.

이렇게 되면 앞뒤의 하나님 말씀의 의사성이 완전히 무시되어 버립니다.

성경의 연대를 따지고 세상정세를 따져서 말세 운운하는 것도 역시 세상입니다.

자기 안 만들어지고 주님의 재림을 알아 맞춘다고 해서 주님이 봐줄 것 같은가?

자기의 본 음성이 아닌 가음성, 거 짓된 음성으로 사람의 감정으로, 흥 분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것도 역시 세상입니다.

교인들끼리 싸우고 꼴보기 싫다고 예수 안 믿는 사람, 잘못된 교회로 유인하는 사람, 교회는 다 똑 같다고 우기는 사람, 감투 씌우고 등 토닥거려 주니 이게 하나님의 사랑인가?’ 하고 거기에 빠지는 사람, 본질적인 진리도 모르면서 남 따라 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 다 세상입니다.

세상이 교회에서 왕노릇하도록 교회가 세상과 합쳐져 버렸습니다. 앞으로 이방종교와 합쳐진 기독교회가 얼마든지 나올 것입니다.

돈보고 교회에 나갔던,

사람을 보고 교회에 나갔던,

건물을 보고 교회에 나갔던,

의식을 보고 교회에 나갔던,

행동을 보고 교회에 나갔던,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갔던 그 날에는 다 밝혀질 것이지만 지금 기독교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 건물이 문제가 아니라, 덩어리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사람이 악하게도 되고, 선하게도 되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시록의 아시아 일곱교회 속에서 어떤 신앙사상이, 어떤 영들이 활동을 했는지 이미 다 밝혀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 당신을 따르라고 해 놓고는 만고에 멍청이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서 열 두 보좌에 앉을 수 있도록 그만한 실력자 능력자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목이 터져라 부르짖고 공만 드리고 정성만 드리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 지식자, 하나님의 도덕성자, 하나님의 능력성자로 만들어지는 이게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예수님 당시 때에는 예수님께서 성육신 인간으로 오셔서 직접 부르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기가 혹 쉬웠을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을 했기 때문에 어디로 가서, 어느 교회에 가서 어느 목자를 만나야 진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냐?

한 군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집 건너 교회가 있고, 한 건물 위 아래 층층이로 교회가 있는 것은 분명히 교회들이 똑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건물의 위 아래 층에 교회가 들어온 것일 텐데 그럼에도 그 각각의 교회들이 모두 같은 성경을 들고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하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러니 문제는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교인으로서는 어느 교회가 진짜 교회인지 참말로 골치 아프게 생겼어! 바르고 옳은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시더라하는 이 본질적으로 나가는 교회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의 소원이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달아 주님처럼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해 달라는 그런 소원이라도 가졌으면 성령님의 인도가 있겠지만 그게 아닌 예수 덕으로 부자로 살아보자고 오고 있으니 어떻게 주 성령님의 인도가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얼마나 이용을 당하겠으며, 거짓 교역자들이 얼마나 판을 치겠느냐?

 

이 심판이라는 심판의 용어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치리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신조척도를 가지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판결하고 분별하고 구별하고 나누고 정죄하고 벌하고 하는 의미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선악과 따먹은 죄악세상은 속에는 살인성 거짓성이 들어 있으면서도 법책을 들고 심판권을 행사하겠지만 그러나 천국 심판권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서 사상화 자체화 인격화 실상화로 되지 못하면 행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었으면 자기가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심판을 받을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도 진리로 자기 자체화된 것만큼은 세상을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목사라도 일반성도보다 못 만들어졌으면 내려앉아야지!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세상에 나오고 오래 살았더라도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깨달은 것이 많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났으면 훨씬 성장이 빠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은 팔방미인으로 남보다 많이 했지만 인격성장 면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을 하라고 그 자리에 앉혀 놓으면 그 자리가 고통이 될까, 기쁨이 될까? 고통이 되어 못 견딥니다. 서민층으로 내려앉으면 오히려 더 기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불공평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28절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지는 그 날에는 자기 영능의 실력이 만들어진 것만큼 자기의 자리에 앉아질 것입니다. 남의 자리에는 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한다고 하느냐? 이방을 심판치 않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하나님의 법을 받은 자들이요, 하나님의 법을 배운 자들이요, 거룩하게 살아야 할 선민들이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방 세상적인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저차원적으로 사니까 하나님의 법으로 심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방 불신세상이야 다 한 곳으로 가니까 논할 가치가 없지만 이스라엘이면서 하나님도 필요없고, 진리도 필요없고, 예수님도 필요없고, 구원도 필요없고, 천국도 필요없고 돈만 있으면 최고다하는 사고방식으로 살았다면 심판을 받아야지 뭐 별 수 있나?

오늘날 교인들을 가만 보면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면서 타락적인 주관성을 가지고 일반 타락된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야말로 맹종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웃기고 울리고 했으면 은혜 받았단다! 얼마나 저차원적인지 일반 세상 타락된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을만한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마귀의 졸자가 된 줄 모르고 자기는 자칭 영웅이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리이치를 신앙양심으로 어기고, 일반이치를 양심으로 어기고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사는 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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