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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적당한 고난이 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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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고난이 주는 행복  

- 안성우 목사(서대신교회)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했다. 첫 방문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 심사를 위해 줄을 섰다. 맨 안쪽에 선 줄이 좀 짧아 보여 빨리 통과하고 싶은 마음에 줄을 갈아탔다. 그런데 오히려 필자가 섰던 줄이 가장 오래 걸렸다. 불평이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마음을 다스렸다. 그 줄은 필자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와 차를 타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입국심사, 추위, 읽을 수 없는 도로 표지판 등 러시아는 필자를 긴장시켰다. 지금까지 방문해본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어 도로 표지판 밑에 작게 영어로 표기를 해 놓았다. 그러나 폐쇄성 때문인지, 러시아에서는 영어 표기를 찾을 수 없었다. 

토인비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소멸했다. 많은 국가들이 물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비행기들이 자국 공항을 경유하게 하려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국제공항을 세웠거나 세우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행복 연구가 에드 디너는 행복을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고 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묘한 신비감을 내포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83%의 행복감과 17%의 슬픔이 조화롭게 담겨 있다고 한다. 100% 행복함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행복이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적당한 슬픔이 있기에 83%의 미소가 행복해 보이는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 속에 100% 행복함이 있다면 그는 한 여인의 평범한 초상화 속 주인공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도전이 없다면 응전도 없다. 응전이 없다면 삶의 긴장감이 떨어짐으로써 행복은 행복이 아닌 행복이 된다. 적당한 슬픔은 그래서 필요하다. 

수십 차례 인천공항을 드나들었지만 러시아에서 돌아오는 길의 인천공항은 예전의 느낌이 아니었다. 인천공항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공항을 보는 필자의 마음의 눈이 달라졌다. 짐을 찾기 위해 잠시 서 있는 시간은 행복했다. 2주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인천공항이 주는 행복함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이 준 행복이었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부족한 17%, 우리의 삶에서 그 불편함이 없기를 바라는 긍정의 힘은 잘못된 것이다. 긍정의 힘의 전도사가 아닌 적당한 고난과 슬픔을 감사하는 ‘감사의 힘’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고난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적당한 고난이 있기에 그 고난으로 인하여 겸손해지고 감사를 배움으로써 선을 이루는 것이다. 

고난이 있기에 83%의 행복이 있는 것이다. 적당한 고난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원함으로써 17% 슬픔을 채우고 싶다. 지혜로운 자는 자발적 고난에 동참한다. 그것은 물질을 비우는 것이고, 관계의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행복함을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가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깨닫고 싶다. 지금 여기의 적당한 고난이 행복이다. 그것을 아는 지혜가 삶을 행복하게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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