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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유시장체제는 복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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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체제는 복음이 아니다       
 
- 리처드 마우(풀러신학교 총장)
 

중국은 시장제도를 도입하고 기적을 경험했다. 과거의 중국은 칙칙하고 암울했지만 지금은 생기가 넘치고 화려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활동의 자유와 아울러 종교의 자유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신학교육자들의 모임에서 잘 알려진 자유주의신학교의 한 학자가 자본주의의 해악에 대해 강력히 성토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글로벌 시장이 신학교육을 속박하고 있다. 우린 그 속박을 파기해야 한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네들이 시장제도의 유익을 거부한다면 당신의 신학교는 재정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대안을 찾아 모금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 다른 사람이 질문했다. “어디서 모금할 것인가?” 국제사면위원회 같은 조직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농담이 아니다. 국제사면위원회 역시 자유시장체제로부터 돈을 번 사람들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빙 크리스톨은 ‘자본주의를 향한 두 개의 환호성’(1978)이라는 매력적인 책에서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그것이 많은 사람의 삶을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가 개인적 자유를 상당히 많이 함양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바로 그런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난 건 자본주의를 도입하고서였다. 

크리스톨이 시장제도를 비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시장제도가 사람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준다고 보았다. 인간의 근본적 욕구가 소비주의 문화로 충족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적 질병을 돈으로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영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크리스톨은 자본주의에 더 이상 환호성을 보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나는 크리스톨이 옳다고 믿는다. 문제는 시장제도 그 자체가 아니다. 시장제도가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요소들을 생각해 볼 때 시장제도를 환영할 만한 이유는 많다. 

중국 대학가에서 직접 들은 얘긴데 요즘 중국 학자들이 즐겨 읽는 책들 가운데 하나가 막스 베버의 고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한다. 이 선구자적 작품에서 베버는 자본주의가 정직, 절약, 근면, 소명의식, 자선정신, 공익추구 등과 같은 인격적 특성들의 뒷받침을 받을 때 최선의 기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격적 특성이 죄다 ‘개신교적’ 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런 인격적 특성들이 건전한 자유시장체제 유지에 필요한 도덕적, 문화적 하부구조라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글로벌 시장을 구세주처럼 떠받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로벌 시장체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여러 가지 인간의 덕목과 어떤 세계관이 필요하다. 인간의 모든 요망사항을 시장제도 하나로 풀고자 하면 실패한다. 시장제도가 자기 능력 이상으로 우리에게 뭔가를 약속한다면 그건 거짓 복음이므로 단호히 그 유혹을 배격해야 한다. 또한 시장제도가 가난한 자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면 그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정의 추구를 비롯해 참된 복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욕구와 희망을 자유시장제도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이 점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번역 : 김춘섭 예수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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