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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교회의 ‘創’- 디테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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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創’- 디테일의 힘 

- 김병삼  목사 (만나교회)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 편집장인 이지훈씨는 그의 책 ‘혼·창·통’을 통해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혼’을 움직일 수 없는 기업은 이제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혼’은 그것이 기업이든 교회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정신(spirit)을 의미한다. 이 정신(혼)은 ‘씨’를 뿌리는 것이고 ‘창(創)’은 밭을 갈고 물을 주어 가꾸는 것이다. ‘창’은 날마다 새로워지려는 노력이다.

끊임없이 변화되는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 한국교회가 안은 숙제는 ‘복음의 탁월성’이 아니라 이 탁월함을 어떻게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 시대의 역사를 보면 교회든 기업이든 탁월함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그 이유는 과거의 성공에 길들여져 더는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라는 물음 없이 복음이 전파돼야 하는 현장에서 교회는 너무나 무력할 수밖에 없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다. 미국의 육상선수였던 딕 포스베리가 높이뛰기에서 우승한 것이다. 8만 관중이 모인 경기장에서 사람들은 포스베리가 뛰어넘을 때마다 입을 딱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뛰어넘는 가위뛰기 방식을 사용했을 때, 그는 가로대로 달려가선 몸을 비틀어 머리부터 뛰어 넘었고, 이때 등은 공중에서 바닥을 향했다. 지금 모든 높이뛰기 선수는 포스베리 방식으로 뛴다.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이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옛날 한국교회의 영광을 꿈꾼다. 서울 여의도광장의 빌리 그레이엄 집회와 부활절 새벽에 모였던 한국교회의 힘을 동일한 방식으로 찾아보려 하지만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때 만났던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을 이제 여의도광장이 아닌, TV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창조적’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창조적인 물음이 완전히 다른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교회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 대한 물음이고,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한 물음이다.

중국의 경영 컨설턴트인 왕중추가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100-1=0’이다. 100가지를 다 잘했어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허사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1%의 디테일의 힘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복음의 탁월성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변화 말이다.

아주 작은, 그렇지만 아주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 왜 많은 교회 중에 우리 교회를 여기에 있게 하였는지? 왜 이 시대에 이 민족 가운데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지?

‘시대정신’을 묻는 1%의 디테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뻐하고 환호하는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의 기쁨과 동일한지 물었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누군가 하지 못했던 일, 그러나 하나님의 가슴을 뛰게 하는 1%의 힘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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