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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 해 6월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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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6월을 생각하며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특별히 올해는 6·25전쟁 60년을 맞는 해이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비극적 수치요, 참혹한 상처였다. 민간인을 포함하여 500여만명이 죽었고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서 울부짖었고 남편 잃은 아낙네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우리 민족은 일제 36년이라는 기나긴 암흑기를 벗어났지만 5년 만에 다시 6·25전쟁이라는 살육의 역사를 맞은 것이다. 

왜 이런 참혹한 비극이 일어났을까?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지만 상해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3개월 만에야 고국에 들어왔다. 그 사이 나라에 바른 지도자가 없으니까 국민은 사분오열되었고 당시 정당만 해도 33개가 난립했다. 그러면서 좌우익의 대립은 더 극심하게 치달았다.

결국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을 통치하는 신탁통치안이 가결되고 김구 선생을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이 무참히 암살당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각자의 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은 공산화의 야욕을 품고 남침을 하게 된 것이다. 

목사이자 역사학자였던 김인서 목사는 6·25전쟁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벽돌 예배당에서 지은 죄를 잿더미위에서 회개하나이다”라며 통곡했다. 그러나 그 전쟁 중에도 군목제도가 설립되어 최초의 군목 32인이 죽음의 땅을 누비며 병사들을 돌보았다. 이처럼 남북의 제1차 전쟁이라 할 수 있는 6·25전쟁은 북한이 남한에 큰 상처를 주었지만 서로 무승부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2차 전쟁이라 할 수 있는 경제전쟁에서는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였다. 북한은 교회를 핍박하고 탄압하였지만 남한은 교회가 부흥하며 나라를 위해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서 남한은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이 갈등하고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간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도 치러야 할 3차 전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사상전이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것도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남한은 아직도 좌우의 사상전을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천안함 사건을 놓고도 어느 시민단체는 안보리에 우리 정부의 천안함 조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60년 전의 사상적 반목과 대결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아직도 북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왜곡되고 파괴적인 사상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럴 때 남한은 사상이 하나가 되고 언젠가 북한마저도 품을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민족통일과 진정한 평화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사상의 경계를 뛰어 사회통합과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중보자가 되어야 한다. 아니, 한국교회가 먼저 사상전을 이길 수 있는 민족의 사상적 저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6월. 60년 전 사상전쟁 때문에 이 땅은 피로 물들었다. 이제 한국교회와 함께 사상전에서 승리하고 평화의 꽃이 만발하는 한반도가 되기를 기도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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