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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교사의 필수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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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필수과목

-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문화수업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회 문화의 이해이다. 역사의 이해, 종교 상황의 이해, 현실 풍습과 관습의 이해이다. 더 나아가 토속 음악 이해와 연극, 속담, 전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상이 다른 공산권에서는 자유주의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들이 형성되어 있다. 아프리카나 불교의 국가에서는 전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문화(그들의 상식)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나라에 살기 전에, 선교 사역행위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즉 문화 수업이다.

문화의 이해는 신체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의 신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는 효과적으로 신체를 관리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면 할수록 삶은 안정되어가고 현지인들과의 관계 역시 원만해지며, 가장 중요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어 생명이 연장된다.

외국에서 생활은 문화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학업 또는 사업 및 많은 활동하고 있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의 경우 문화 이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해될 것들이 많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표면적으로는 문화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적어도 자기의 생활과 안정된 삶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러나 생각이나 감각적으로 그 문화의 중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 인하여 마찰이 생기고, 한국인의 문화를 이양하려는 권세 아닌 허세를 부리게 된다. 현지인들이 얼마나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의기 양양하며 권세와 어떤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부리는 아집을 나타내게 된다.


러시아 교회 문화 

러시아인들은 세례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참여한다. 담임목사라고 하여도 자녀가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경우 심지어 주일예배도 빠지고 거기에 참석할 정도이다. 필자는 담임목사가 어떻게 주일을 빼먹고 딸 세례식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책망하지만, 동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러시아 기독교인들의 신앙이요, 교회생활의 문화이다. 가장 중요한 일생 일대의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일성수를 중시하는 한인 선교사와 교회, 우리는 주일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정도의 관습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교회는 주일이 중요하지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일을 생략하고, 자기들의 필요에 의하여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인 목회자들의 생각 속에 이러한 사고가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주일을 빠지고, 고향에 가서 한 달, 휴가 가서 한 달, 목회자 생활비 충당이나 교회 건축을 위하여 석 달을 타지에 가서 일도 하고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 교회의 문화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틀렸다고 지적하고 강하게 제재하면 오히려 반발을 한다. 그러면 나의 생활비를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한다.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에 사명감, 헌신도가 부족하다고 말하기에는 문화적 괴리가 너무 큰 것 같다.

각 지역마다 신앙의 색깔과 문화가 있다. 러시아 교회는 여성도들이 두건을 써야 한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교회는 두건을 사용하지 않지만 전통적인 러시아 개신교회는 거의 두건을 쓴다. 또한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는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한다. 지극히 문자적인 성경 해석에 기인하고 있다. 선교사들의 반응은 그들이 신학적인 소양이 부족하다고도 말한다. 틀린 것이라고도 말한다. 성경적인 증거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기도 한다. 변론일 뿐이다.

러시아 교회는 대부분 기도를 마칠 때에 예수님의 이름보다는 성삼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고 기도학교를 통하여 열심히 설명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선교사들이 현지 교회를 따라가든지, 변형된 방법으로 양쪽 모두를 어우르든지, 그것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현지 신학생들은 선교사들 앞에서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자기들이 섬기는 교회에 가면 삼위이름으로 기도한다. 이중적이 되어가는 것이다.

현지 복음주의 교단의 역동적인 예배가(말씀은 없고 찬양과 신유가 대부분이지만), 한국 장로교의 전통 예배를 고수하는 바람에 경직되고 죽어가는 예배가 된다면 그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진리처럼 고집하던 것이, 문화가 다른 현장에서는 전혀 반대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문화가 아닌가? 한인 선교사와 교회생활과 관련된 문화의 충돌은 예배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한국의 예배의식을 고집하고, 한국에서 배운 것만을 정의인 것인 양 주장을 하기 때문인데, 커다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성경적인 판단

문화는 문화(culture)이지 그것이 정의(justice)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판단을 중시한다. 나의 문화와 너의 문화가 대립되고,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성경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문화를 세워나가야 하는 것은 선교사들의 몫이다.

문화는 행위적 측면과 권위적 측면, 경험적 측면, 집단의 결정의 요인이다. 이러한 상황의 이해를 배제하고 문화 우월주의와, 문화도 아닌 것을 고집으로 밀어 붙인다면,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한국인의 망신살을 뻗치게 된다. 한국인들이 국제사회에서 “당신 같은 사람은 꺼져라. 당신의 나라로 가서 살아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서 얼굴이 벌개지는 것은 그릇된 문화 이해에서 오는 오만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러시아 공산주의 하에서 생겨난 문화는 너무나 다양하다. 좋은 문화가 있는가 하면, 저질스러운 문화가 있다. 생활 속에서, 대인 관계 속에서, 직장에서, 직업 속에서, 권리를 행하는 관공서에서, 오락장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선교사의 문화 이해에 대한 선행조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많은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며, 갈등 속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자존심 상해가며 배워 가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문화는 개인의 일반적인 지식과 높은 학벌과 교양과 관계가 없다. 나이와 학벌과 지식이 높으면 더욱 어렵고 힘들다.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면서 배워야 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서 많은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며, 많은 시간과 많은 재정과 소중한 젊음을, 갈등과 고민과 염려로 보내게 될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존중하며 함께 성경적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생각한다.

바른 선교를 소망하며…….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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