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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자람때문에 드리는 감사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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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때문에 드리는 감사의 은혜  

- 강준민 목사(LA새생명비전교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모자람의 은혜가 있다. 감사 중에는 모자람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있다. 우리는 모자람이 없는 삶을 바라지만 역설적으로 모자람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다. 모자람이 없다는 것은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의욕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행복을 향한 의지는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강렬해 진다. 무엇인가를 바란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자람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모자람 때문에 꿈을 갖게 되고, 모자람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고, 모자람 때문에 강한 열정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풍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자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갈망한다. 소원을 성취하는 삶을 갈망한다. 꿈이 이루어지길 갈망한다. 그래서 모자람이 없는 풍족한 삶을 원한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풍부 때문에 몰락했는지 모른다. 성공 때문에 더욱 비참해 졌는지 모른다. 위대한 성취 후에 더욱 침체에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취는 공허를 주고, 성공은 유혹을 불러 온다. 승리는 교만하게 하고, 방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번영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토마스 칼라일은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이기는 사람은 한명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역경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번영이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혼인잔치의 기적은 모자람에서 시작되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고,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 슬픈 현실 때문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께 구했다. 모자람의 현실 때문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모자람이 은혜요, 모자람이 감사의 이유가 된다. 

과불유급(過拂有給)이란 말이 있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넘치면 비우게 하신다. 강해지면 약하게 하신다. 높아지면 낮추신다. 호남신학대학을 방문했다가 벼락을 맞은 큰 나무를 보았다. 미국선교사가 오래 전에 심은 나무인데 나무가 너무 커서 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차종순 총장께서 그 나무를 소개하면서 너무 높아지면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함께 주셨다. 큰 가르침이었다. 벼락을 맞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길 밖에 없다. 예수님은 높으신 분이지만 자신을 스스로 낮추셨다. 차고 넘치는 분이신데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강한 분이시지만 약한 자가 되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스스로 모자람의 길을 선택하신 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공급의 문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외부로부터 공급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없는 존재다. 스스로 자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교만이다. 인간은 공급이 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유리그릇에 초를 담아 촛불을 밝힌 적이 있다. 한참 후에 촛불을 끄고 싶어 유리그릇의 뚜껑을 닫는 순간 조용히 촛불이 꺼지는 것을 경험했다. 산소가 중단되는 순간, 촛불이 꺼진 것이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인간의 생명도 촛불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순간 산소를 공급해 주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한 순간 우리의 호흡을 멈추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늘 모자람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모자람 때문에 한탄하지 말자. 모자람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자. 나의 생애를 보면 늘 모자람을 의식하며 살아 왔다. 아니 하나님은 늘 모자라게 하셨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셨다. 하나님께 붙어살게 하셨다. 우리는 붙어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시장 언어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사는 놈이 있다.”는 말이 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붙어사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붙어살고,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 가까이에 붙어사는 것이 지혜다. 붙어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말자. 붙어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장성해서는 직장에 붙어산다. 남편과 아내에게 붙어살고, 유력자에게 붙어산다. 그렇다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굴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붙어사는 사람이다. 

가나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라기까지 예수님은 무명의 존재처럼 보이셨다. 그렇지만 포도주가 모자라는 순간,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우리가 모자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한복판에 계심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처럼 더 큰 행복은 없다. 그래서 모자람은 은혜요, 모자람은 감사의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모자람 때문에 감사를 드린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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