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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의 향기-박재찬] 종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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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장면들이 있다. 이른 아침, 동네 근린공원 옆을 지날 때면 명상을 하거나 여러 동작을 취하며 ‘수련’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그들 옆엔 한문으로 ‘파룬궁은 좋습니다’는 뜻을 담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공원을 지나 지하철역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는 소책자들이 담긴 함이 간혹 눈에 띈다. 책자 표지엔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습니까?’ 같은 제목이 달려 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초대합니다 자기 돌아보기 명상 세미나’ 문구와 함께 무료로 ‘마음 수련’을 할 수 있다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다들 정통 기독교에서 주의를 당부하는 단체들의 출판물이다.

퇴근 때면 이 지하철역 앞 광장에선 또 다른 장면을 마주한다. 정장을 입은 신사나 여성이 태블릿PC를 든 채 두 명씩 짝지어 서 있다. 행인들에게 태블릿PC 모니터를 보여주며 뭔가 진지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가 포교하는 장면이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1㎞ 남짓한 거리에서 쉽게 접하는 ‘종교의 풍경’이다. 혹자는 일부 이단·사이비 단체 등을 종교로 볼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들 입장을 고려한다면 ‘종교성 짙은 풍경’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단·사이비 의 발흥과 세력 확산은 시대·상황적 요인과 무관치 않다.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단체의 포교나 홍보 문구를 살펴보면 불안과 공포, 걱정 등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대중의 마음을 타깃으로 한 사례가 눈에 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생존하려면’이라는 소책자 문구가 대표적이다. 지진이나 물난리, 북핵 사태에 따른 전쟁 공포 등을 겨냥한 듯하다. 스트레스와 불면증, 우울증 같은 현대인이 달고 다니는 고질병을 예방·치료해 준다며 ‘힐링 명상’을 권유하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통계 수치로 보면 이들 단체의 활동이 활발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인구센서스(2015년 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56%가 ‘무교(종교 없음)’로 나타났다. 10년 전인 2005년(47.1%)보다 약 9% 포인트나 늘면서 무교인이 종교인보다 더 많은 나라로 바뀐 것이다. 어장 속에 물고기가 태반인데, 낚시꾼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이단·사이비 단체 또는 신흥 종교들의 세 확산과 더불어 한쪽에서는 무신론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창조론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심하는 시대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복음이 위협받고 공격받는 시대다. 이런 상황을 두고 “지금은 변증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짚은 양재온누리교회 이상준 목사의 진단이 와닿는다. 그는 최근 국민일보 창간 29주년 인터뷰에서 “현대인은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아니라 진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론자”라며 이같이 말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일단 믿어야 복 받아요” 같은 구호와 외침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 대신 ‘왜 성경이 진리인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나아가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변증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한국 교회는 갖고 있는가. 여전히 윽박지르기 식 전도가 대세인 양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설득력은 충분히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신론자나 타 종교인이 복음에 대해 불쑥 말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논쟁과 설득보다는 긍휼과 사랑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 목사의 해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목요일마다 늦은 퇴근길에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노숙인들의 예배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예배를 주최하는 교회는 1987년부터 영등포 쪽방촌과 노숙인들을 보듬고 있는 광야교회(임명희 목사)다. 3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긍휼과 사랑을, 묵묵히 쉼 없이 실천하고 있다. 교회 성도가 건네는 주보를 받아들었다. 광야교회 성도들의 실천사항 5가지가 있었다. ‘주다가 망하자’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사랑은 미워도 다시 한번’ ‘버티기를 잘하자’ ‘멈추지 마라’. 살아있는 복음 변증가들의 활동 지침 같았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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