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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재훈 <15> “당신 무당 아닙니까? 기도로 낫게 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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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에는 마을마다 그 마을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당’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이들은 마을의 가장 지혜로운 어른으로 칭송받으며 개인의 고민이나 집안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주곤 한다. 그 중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무당처럼 쌀이나 돌을 땅에 뿌려 사람의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또 질병을 신의 저주라 여기며 병든 이에게 약을 만들어 처방해주기도 하는데 아직도 인구의 90%가 치료 효과를 굳게 믿고 있다.

이런 문화가 마을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당황스러운 일들도 많이 겪었다. 하루는 환자 한 명이 거의 실신 상태로 나를 찾아왔다. 진료를 해보니 장이 막혀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였다.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받기를 원했지만 무당이 문제였다. 환자가 사는 마을의 무당이 “수술을 받지 말라”고 한 것이다. 결국 그 환자는 감히 무당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수술을 받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루 전날 집으로 돌아간 환자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후에도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우리를 외국에서 온 무당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병을 치료하는 사람은 무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 남서부에 망국키라는 큰 강이 있다. 강 근처 베루루하라는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의사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나를 외국에서 온 무당이라 생각했다. 졸지에 현지 무당들과 우리 의료팀이 경쟁하는 관계가 돼버렸다. 갑자기 동네에 으스스한 소문이 났다. 우리가 환자의 간과 눈을 빼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 우리를 독살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사역은 마치고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를 보호해주겠다는 서류를 만들어 지역의 헌병대장과 경찰서장, 도지사, 시장, 마을 이장 등을 만나 도장을 받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호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여러 마을과 사무실을 다니며 도장을 받고 캠프 장소로 돌아왔을 때였다. 어린아이와 그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찾아왔다. 아이는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온몸에 고름이 차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포도상구균 피부병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간단한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 도장을 받기 위해 나선 길이었기에 수중에 가진 약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이를 치료해달라 부탁하며 울먹였다.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약이 없어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남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기도로 치료를 하지 않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해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기도로 환자가 나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런 능력이 내게 있지도 않을뿐더러 기도만으로 환자를 고치는 기적 같은 일을 현실에서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도해달라는 말에 ‘이 사람도 크리스천인가’ 싶어 그 남자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교회 근처도 안 가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나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거요?”

“당신이 무당인데 기도로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치료하겠습니까.”

정리=최기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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