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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1> 소외 이웃에 29년째 식사 제공… 1000만 그릇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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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라는 이름으로 소외된 형제자매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한 지 만 29년째. 굶주린 이들의 허기를 채워준 식사는 지난 5월로 1000만 그릇을 넘어섰다.

1988년 11월 11일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 쓰러져 있던 노숙인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났고 그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한 것이 이 사역의 출발점이다. 당시 난 독일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무엇이 내 삶에 작용했을까.

유학의 꿈을 접고 청량리역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시작했다. 이후 봉사활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꾸준히 전개해 나가기 위해 ‘다일공동체 나눔의 집’을 세웠다.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쳐 나가면서도 밥을 퍼주는 일만은 꾸준히 이어갔다.

다일공동체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시절 거리로 밀려나온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줬다. ‘쓰러진 이들을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준 곳’이라며 사람들은 ‘다일’의 뜻을 재창조했다. 후원회원이 3300여명이 되던 1998년 12월 후원금 전액을 출자해 다일복지재단을 설립, 한국의 기독교 최초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세웠다.

북한은 물론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섬김의 폭을 넓혔다. 다일공동체는 국제NGO로서 현재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탄자니아 등 10개국 17개 분원에서 밥퍼(급식 지원), 꿈퍼(교육사업), 헬퍼(의료사업)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7년간 노숙생활을 하다 다일공동체의 나눔정신을 이어받아 12년째 봉사활동을 하는 형제도 있다. 도움 받던 이들이 자원봉사자로 바뀌는 모습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이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빈민선교를 한답시고 청량리에 들어오게 된 것은 나의 계획이 전혀 아니었다. 내 뜻과 하나님 계획은 많이 달랐다. 지금도 그분의 뜻과 섭리는 모르지만 세월을 돌아보니 오늘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좋고, 상처받은 이웃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청량리에 들어온 지 30년이 되는 시점에도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은 한결같다. “주님,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왜 제게 그들을 만나게 하셨으며 그 깊은 상처들을 보여주셨습니까.”

가끔 도시민 빈민선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말을 듣는다. 혹자는 ‘청량리의 성자’라고까지 한다. 진실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번에 역경의 열매를 쓰기로 한 것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기독교가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전과 용기를 주고자 함이다.

다일공동체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그대로 밝혀야 어울리지 않는 칭찬으로부터 벗어날 것이기에, 나의 실수와 실패까지도 다 털어놓기로 했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신학생과 수녀와의 만남.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교리 때문에 함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별문제 없이 서로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의 보물 1호인 어머님의 기도와 아버지의 교육.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사랑받은 두 분의 삶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약력=△1957년 서울 출생 △장로회신학대 신학과(1982∼1986), 신학대학원(1986∼1988) 졸업 △다일공동체 대표(1988∼현재) △다일복지재단 이사장(1998∼현재) △다일천사병원 병원장(200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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