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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스크시각-송세영] 무서운 자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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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학이 일제히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올린 교수가 있는지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교육부가 지난 10일 각 대학에 관련 공문을 보낸 데 따른 조치다. 이 조사가 다음 달 5일 마무리되면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 관행이 일부 교수의 일탈인지, 학계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인지 드러날 것이다. 국민일보가 이 문제를 최초로 단독 보도한 것은 지난달 20일이다. 당시 ‘고1 아들을 논문 공저자로… 서울대 교수 끔찍한 자식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는 큰 파장과 함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부와 권력의 변칙적 대물림이 ‘스펙’에까지 확대됐다는 지탄이 많았다. 후속 취재는 이 같은 관행이 해당 교수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닐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학술지에 발표된 주요 논문들을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망망대해와 같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였지만 논문의 공저자들도 모두 소속 학교나 기관을 명기한다는 게 실마리였다. 한국의 주요 고등학교 이름을 넣고 검색했을 때 의심스런 논문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은 공저자 명단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추려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부모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고교생 자녀 10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지난 4일부터 후속 단독보도를 내보냈다. 추가로 적발된 교수 중 자녀가 논문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소명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고교생 딸이 방학 때 연구실에 와서 실험도구를 세척해줬다고 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려준 교수도 있었다. 이어 8건이 더 확인됐다. 친구의 자녀 이름을 올려준 경우도 처음 나왔다.

부모 덕에 주요 논문에 이름을 올린 자녀들은 대부분 국내외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정시가 아닌 수시전형으로 입학한 경우라면 논문 실적이 당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육부는 이 부분도 내년 상반기 중으로 조사를 해 부정입시로 밝혀질 경우 합격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엄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해주길 기대한다.

논문 공저자를 둘러싼 스캔들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됐다 자진사퇴한 박기영 순천대 교수의 발목을 잡은 논란 중의 하나도 이 문제였다. 박 교수는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04년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도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황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만큼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 박사의 논문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 박 교수의 책임론과 함께 이 문제 또한 쟁점이 됐다.

아쉬운 대목은 정부가 그 때 논문 공저자 등재의 기준을 확립했다면 이번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도 학계도 수수방관하는 사이 논문 공저자 등재의 기준과 윤리는 바닥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을 기준과 가이드라인의 부재에만 돌려서는 안 된다. 가이드라인이 있든 없든, 자녀든 아니든 기여도가 미미한 이를 논문의 공저자로 올려준 것은 연구윤리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교수들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논문 공저자는 학술지에 한번 실리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는다. 공저자가 부모와 자녀 관계라는 게 영원한 비밀일 수는 없는 셈이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교수들마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녀 이름을 논문에 올려준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시 내 자녀만 잘 살 수 있으면 사회의 정의와 질서와 규칙은 무시돼도 좋다는 생각, 내 자녀에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할 수만 있다면 이 땅은 ‘헬조선’으로 전락해도 무방하다는 발상이라면 끔찍하다 못해 무섭다.

송세영 사회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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