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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이블시론-채수일]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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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올 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마지막 시, ‘쉽게 쓰여진 시’입니다. 이 시를 쓰고 한 달 뒤,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옥사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시인의 부끄러움은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현실인식과 시인의 작품 세계 사이의 괴리에서 온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변화시킬 수 없는 무거운 현실과 시대처럼 올 아침을 다만 기다리는 무력감에 사로잡힌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어찌 시인만이겠습니까! 그저 그 생각만 떠올라도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뛰면서, 한 없이 후회되는 그런 부끄러운 기억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요. 흥미로운 것은 부끄러움의 한자, ‘수치(羞恥)’가 바칠 수(羞), 부끄러워할 치(恥)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끄러워할 치(恥)자가 마음 심(心)과 귀 이(耳)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부끄러움은 ‘마음에 달린 귀’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는 ‘나의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하나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오는데, 그 목소리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지시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것이 ‘마음에 달린 귀’ ‘양심’이라는 것이지요. 어쨌든 마음에서 들리는 선한 목소리를 따르지 않고, 악한 생각을 하거나 나쁜 행위를 할 때,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성서는 부끄러움을 공개적으로 모독을 당하거나 치욕을 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시 44:15), 부끄러움은 ‘뉘우침’으로 인도하든지(겔 39:26), 아니면 ‘뻔뻔함’으로 인도한다고 봅니다(렘 3:3, 6:15). 부끄러움이 뻔뻔함이 아니라 뉘우침으로 인도하여, 마침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도’(롬 1:16)가 된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거리낌으로 알았던 유대인, 지혜를 찾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복음은 어리석은 부끄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고전 1:22∼23).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과 왕권의 회복을 메시아에게 기대한 유대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스캔들(거리낌)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최고의 지혜는 ‘자신을 아는 것’이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기에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나무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저주받은 자의 죽음이요,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자의 죽음이기에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정치범으로서 십자가형을 당한 그리스도는 왕조창건의 근거를 강화하기 위해 수호신을 섬기고 마침내 황제를 신격화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낯설고 어리석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자기를 낮추신 주님, 인간이 되신 하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롬 1:16).

한국교회에 쏟아지는 사회적 지탄이 그리스도인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움이 진정한 ‘회개’로 인도할지, 아니면 낯 두꺼운 ‘뻔뻔함’으로 인도할지 알 수 없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교회가 복음을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회만이 권력과 세상의 뻔뻔함을 심판할 수 있는데, 교회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교회 스스로 복음을 부끄럽게 만들면 과연 누가 교회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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