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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예순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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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 사이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수년 전부터 수십 년 전 사이에 있었던 인연의 끈이 연속해서 이어진 것이다. 기억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는 것도 잊었던 인연들이었다. 아마 제주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영영 끊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는 삼사 년 전 회의를 몇 번 같이 했던 선생님. 맑고 깊게 가라앉은 얼굴에 고요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어 어렵기만 했던 그 분은 뜻밖에 따뜻하고 활달하신 데가 있었다. 두 번째는 그 선생님이 매개가 되어 다시 닿은 선배작가와의 인연. 그 분께는 거의 삼십 년 전 젊은 혈기에 큰 결례를 저지른 적이 있는데, 내 소식을 듣고 먼저 전화를 걸어 반겨주시는 통에 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해가 가기 전에 만나 사죄의 말씀을 꼭 드려야겠다. 세 번째는 몇 달 전 썼던 이 칼럼 하나가 계기가 되어 연락이 닿은 대학선배. 광주항쟁 때 광주에서 교생실습 중이었던 나는 봉쇄가 풀린 뒤 올라와 과제제출 명분으로 허가증을 받아들고 군인들이 지키는 교문을 들어섰다. 당시 조교였던 선배는 예비군복 차림으로 학과 사무실에 있다가 나를 보고 소스라쳤는데, 나는 그 뜻밖의 (예비)군복에 소스라쳤더랬다. 소스라친 뒤 그는 격하게 안도하며 나를 맞아주었다. 근 사십 년 전 일이다.

다시 이어진 인연의 끈의 힘이 마치 다이너마이트처럼 막강하다. 기억의 댐을 폭파시키기라도 한 듯 옛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억 하나가 다른 하나를 건드리고, 그게 옆의 기억을 불러오고, 전혀 상관없는 일도 떠오르고, 그렇게 수십 년 세월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나는 때마침 내년에 육십이다. ‘인생은 60부터!’가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60까지 세월을 되짚어 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인가 보다. 그렇게 되짚어보니 가장 많이 떠오르는 느낌이 미안함과 고마움이다. 제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말.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들을 빚으로 남긴 채 60을 맞지 말라고, 다시 이어진 인연의 끈이 따끔하게 이르는 듯하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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