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갑자기 죽기

첨부 1


갑자기 죽기 

- 이태형 부장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얼마 전 외가쪽 어르신이 별세하셨다. 아버님과 세분 외삼촌을 모시고 문상을 갔다. 모두 8순을 넘기신 분들이다. 네 분은 1시간 남짓 차 안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우리가 설악산 단풍 여행을 갔을 때가 한 20년 됐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가 우리의 전성기였어. 당시에도 우리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잘 죽는 일만 남았지 뭐.” “자식들 걱정 끼치지 않고 조용히 떠나기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장례식장에서 외가 친척들이 아버님과 외숙들에게 인사를 했다. 문상 온 사람들 가운데 제일 어르신들이었다. 큰 외삼촌은 “이제 우리 집안의 제일 어르신이 되셨습니다”라는 인사에 “아이고, 그런말 말게. 이제 내 (죽음)번호 탔네”라고 답했다. 

막내 외삼촌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바둑을 가르쳐 주셨다. 처음에는 바둑판에 검정알이 그득할 정도로 ‘깔고’ 두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검정알 수는 줄어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드디어 외삼촌과 접바둑(사전에 깔지 않고 두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이후 오히려 외숙이 검정알을 깔고 두어야 했다. 바둑 하나로 보면 내 인생은 외삼촌과의 반상 대결에서 검정알 수를 줄이는 과정이었다. 그 외삼촌이 팔순을 넘기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외숙이 외손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점에 들렀다는 외손녀는 큰 외숙에게 읽고 싶은 책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응. 갑자기 고통 없이 죽는 법을 적어 놓은 책”이라고 외숙은 대답했다. 아련한 문상길이었다.

최근 일본노인들 가운데 ‘갑자기 죽게 해주세요’라는 기원을 담아 전국 유명 사찰을 돌며 불공을 드리는 여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가장 유명한 곳이 나가노현 사쿠시에 있는 나리타산야쿠시지라는 절 입구에 있는 ‘핀코로 지장보살’ 석상이란다.

이 석상은 지역 상점가 진흥 조합이 2003년 상가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세웠다. 상점가진흥조합에 의하면 처음에는 연간 2만명에 불과했던 참배객이 최근 수년간 연간 5만명 규모로 늘어났다. 도쿄 주변 여행사들이 이곳을 들르는 관광 상품을 만들면서 많을 때에는 10개사의 관광버스가 한꺼번에 몰릴 정도라는 것.

나라현에 있는 기치덴지(吉田寺)도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면 ‘덜컥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절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절의 야마나카 신에쓰(山中眞悅.56) 주지는 많을 때에는 한꺼번에 100명이 넘는 단체 관광객이 본당에 올라가 기도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핀코로’는 건강해서 원기가 넘치는 모양을 가리키는 일본어인 ‘핀핀’과 별안간 죽는다는 뜻의 ‘코로리’가 합쳐진 단어. ‘건강하게 장수하다가 숨질 때는 별안간 죽는다’는 의미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픈 뒤에 죽는다는 뜻을 담은 ‘9988234’와 비슷한 내용이다. 일본에 이색 기원 여행 상품이 인기를 끄는 배경에 오랜 병치레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 노인들의 심정이 반영돼 있다.

평균 수명이 높아졌지만 오랜 병치레 끝에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자식들 걱정 끼치지 않게 ‘조용하게 별안간’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염원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 노인들의 공통된 소망인 듯하다. 

죽음만을 생각하며 노년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참 아쉽다. 얼마 전 한국철학회가 개최한 ‘늙어감에 대한 성찰’이란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대부분 “노년은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월8일 서울 수서동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관 법륭사에서 열린 ‘종교별로 본 웰다잉’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기독교계 강사로 나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양성평등위원회 조헌정 목사의 말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며 죽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삶을 완성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 자신을 비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결코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닙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입니다.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거룩한 소망이자 아름다움이고 놀이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웰다잉의 목적입니다.”

허지만 어떤 말로 수식하더라도 죽음을 생각하면 이 땅의 모든 것이 결국은 허무할 수 밖에 없다. 삶에서 죽음을 보는 것은 두렵다. 그래서 종교학자인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나이가 들 수록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보지 말고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보라”고 권한다.

아무튼 노년은 그저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 기다리는 시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기독교는 영생과 부활을 생명으로 여기는 종교다. 조헌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참다운 신앙은 죽음을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나옵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부활과 영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나는 간혹 아들들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곤 한다. 막내는 바둑판 그득 검정돌을 깔고 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검정돌의 수가 줄어드리라.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검정돌을 한 두개 깔고 둘 시기가 올 것이다. 아들과 바둑을 두면서 오래전 내게 바둑을 가르쳐 주셨던 젊은 날의 외삼촌을 기억한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