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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집과 삶, 그리고 주거권] 옥탑방 살면서 “뭐, 괜찮아요” 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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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별이 참 많이 있고요/ 난 그 별에서 제일 가깝게 살고요.” 밴드 ‘장미여관’은 옥탑방에 산다고 노래했다. “기타를 메고 서울에 올라와/ 6년 만에 처음 얻은 집”이었다. 그래선지 서른 넘어 옥탑방에 사는 걸 한심하게 보는 이들이 있어도 “나는 나는 괜찮아”하며 뿌듯해 했다. 옥탑방의 낭만을 돈으로 치환하는 게 껄끄럽지만 장미여관은 옥탑방 사는 데 드는 비용을 가사에 적었다. “월세 천에 사십이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음음∼”

지난주 만났던 문준현(가명·29)씨도 옥탑방에 산다. 옥탑방 이용비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 40여만원(공과금 포함). 월급(약 180만원)의 22%를 주거비로 쓴다. 빠듯하게 생활해도 통장 잔액은 좀체 늘어나지 않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저는 괜찮아요. 저만 이렇게 사는 것도 아닌데요, 뭐.”

취약한 주거환경을 의미하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 살면서도 그러려니 하는 이유는 뭘까. 준현씨 사정을 들은 한 독자의 반응에서 이유를 짐작해 봤다. “더 조금 벌고 더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무슨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거냐.”

뭔가 오해하고 있다. 더 힘든 사람이 많으니 힘들어해선 안 된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1년에 석 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옥탑방 이용비로 쓰는 것, 비좁은 고시원에서 책상 아래로 다리를 구겨 넣고 눕는 것,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방에 살며 수시로 벌레와 마주치는 것을 그러려니 하라는 건 너무 서글픈 얘기다.

준현씨 고충이 특별한 게 아닌 이유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 문제는 일부 취약 계층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직면해 있다. 그 심각성을 정부도 안다. 수시로 대책을 내놓는다.

지난달에도 주거복지로드맵이라는 특단의 대책이 나왔다. 신혼희망타운 조성,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 신설, 청년주택 공급…. 이걸 바라보는 주거 약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만날 그렇게 대책이나 내놔라’ ‘부모가 물려 준 집 없으면 글렀어’ ‘개뿔’…. 정책에 대한 기대가 애당초 없다. 한 택시기사가 말했다. “나처럼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이 정부 정책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정책 결정의 토대가 된 연구용역 보고서 숫자에는 지옥고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다. 연극 ‘옥탑방고양이’는 두 청춘남녀가 옥탑방에 서로 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더운 날 더 덥고 추운 날 더 추운 옥탑방이지만 내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세상이다. “집 때문에 고생 안 한 어른 없다”던데 그렇더라도 지금의 주거 문제를 그저 그런 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이 지독한 연결고리를 끊는 건 지옥고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어디 털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그래도 나는 나는 괜찮아” 노래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용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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