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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브루나이, 행복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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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낯선 브루나이 왕국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 처음 가본 건 2009년이었다. 오래 전 황금색 지붕이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는 동화 같은 풍경을 얼핏 여행 책자에서 본 이후, 실제로 그곳은 내가 가본 가장 신기한 나라 중의 하나다. 교육과 의료와 외국 유학마저 전부 나라에서 공짜로 책임져주는 그런 나라를 상상해 본 적 있는가? 해마다 설날이면 국왕이 모든 국민들에게 세뱃돈을 준다고도 했다. 브루나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하나이며, 동시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곳의 첫 인상은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아마도 더워서 해가 져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숨어버린 장난감 나라에 온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온 도시에 술이 한 방울도 없는 곳이 그 이름도 신기한 반다르스리브가완이다. 그 거대한 7성급 엠파이어 호텔마저 술 한 방울이 없는 대신, 웨이터들이 쟁반에 얹어 나르는 갖가지 모양의 디저트들과 아름다운 색깔의 비알코올 음료들이 바라만보아도 마음을 들뜨게 했다. 브루나이는 술이 금지되어있을 뿐 아니라 내가 갔던 2009년에도 남자 여자 어린이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것조차 금지되어있던 엄격한 절대 왕권체제의 이슬람왕국이다. 더 신기한 건 국민들 중 아무도 정부 체제를 비판하거나 왕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 중 아무도 빚이 없는 나라, 아무도 굶주리거나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 우리는 얼마나 그런 나라를 오래도록 꿈꿔왔는가?

브루나이는 해가 진 뒤에도 연인들끼리 가까이 몸을 붙이고 벤치에 앉아있는 것도 금지돼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거리 어디에도 러브호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으며, 자유를 달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정말 그곳에는 부자의 권태와 빈자의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자유를 향한 외침이 속으로 쌓이고 있는 건 아닌지 불쑥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대학시절 금지곡이었던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중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마침 내가 도착한 다음 날은 독립기념일이었다. 젊은 남녀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거리에 앉아 코카콜라와 감자 칩을 먹고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나이트클럽도 없고 디스코텍도 술집도 없는 나라, 브루나이의 젊은이들은 밤에 무엇을 하며 즐기는지 현지인에게 물으니 놀이 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들을 타며 즐긴다 했다. 불꽃놀이가 유명하다 하여 밤에 공원에 나갔다가 아주 개인적인 불꽃놀이의 추억을 지니고 돌아왔다. 하늘에 화려한 불꽃들이 팍팍 터지고 어디선가 귀에 낯익은 오래된 팝송이 들려오는데 사람의 기척조차 없었다.

거대한 기둥이 온통 금으로 된 7성급 엠파이어 호텔, 황금색 지붕이 저녁노을에 환상적으로 빛나는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브루나이 강이 굽어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1788개의 방과 256개의 화장실, 564개의 샹들리에와 18개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궁전인 ‘이스따나 누를이만’, 브루나이 강을 따라 16세기부터 집단 마을이 형성된 수상가옥 촌, 그 풍경들이 브루나이의 가볼 곳들이다. 브루나이는 막상 그 곳에 머무를 때는 별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돌아와서 눈을 감으면 문득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신비한 느낌의 나라다.

천국을 닮은 그곳에서 며칠 머무르면 조금씩 흥청대는 지옥의 사람냄새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며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술렁이는 자유의 냄새에 숨통이 확 트이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싸워서 얻은 자유의 냄새는 어쩌면 홀로 서야 하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착잡한 감정인지도 몰랐다.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브루나이 강의 낡은 전통 수상 가옥에서 사는 사람들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강변에 고급 외제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이 부를 뽐내는 척도는 한 집에 몇 대씩 지닌 자동차인가 보다. 대학을 공짜로 보내줘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심지어 유학을 공짜로 보내주는데도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그곳과 기러기 아빠가 되면서까지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의 차이는 무얼까?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부자인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신기한 나라 브루나이를 떠나며, 너무도 다른 세상 사람들의 마음 풍경을 몰래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들여다볼수록 더욱 알지 못할 것이 틀림없는….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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