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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의 향기-신창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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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진짜 있는 줄 알았다. 친구들이 다 놀렸다. “임마,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 엄마 아빠가 주는 거야!”

나는 아니라고 완강하게 우겼다. 밤을 새고 엄마 아빠가 선물을 몰래 머리맡에 두는지 살펴봐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 착한 일 많이 하라고 적힌 크리스마스카드…. 머릿속에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산타클로스의 신화로 가득 찼다.

아빠 엄마가 심하게 부부싸움을 했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선물이 놓여 있었다. 전쟁 뒤 침묵이 흐르는 전선(戰線)같던 집안에서 나는 갑자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 하나님 있어?” “크리스천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문화야.” 아버지 대답을 이해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중에 ‘작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 케이크를 사기 위해 빵집으로 가는 엄마와 여덟살 아들의 이야기다. 빵집 앞 횡단보도에서 잠시 손을 놓친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며칠 뒤 아들은 죽는다. 밤마다 우는 엄마의 집으로 빵집 주인이 전화를 건다. 자동응답기에는 “왜 케이크를 안 찾아가느냐”는 주인아저씨의 퉁명스런 음성이 계속 들린다. 어느 날 새벽, 또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엄마는 빵집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왜 자꾸 성가시게 구는 거죠? 제가 무슨 일을 당한 줄 아세요.”

고함을 지르는 엄마 앞에서 빵집 주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빵들은 오븐에서 착착 구워져 나왔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엄마는 울면서도 빵 냄새가 좋다고 생각한다. 주인은 그녀를 테이블에 앉히고, 빵 한 덩이와 버터, 나이프를 가져다준다. 그리곤 눈물범벅 속에 빵을 먹는 엄마를 말없이 바라본다.

2008년의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교회 수요예배에서 한편의 영화를 봤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3일(The Last Three Days Of Jesus Christ).’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메고 채찍과 몽둥이, 철사 가시에 얻어맞으며 걸어가던 얼굴,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 그 속에서도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영화였다. 1초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올해부터 아이들 산타클로스 선물 없애자.” 아내가 말했다. “왜?” 내가 물었다. “선물보다 예수 그리스도 얘기를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래도 추억을 빼앗는 게 아닐까?” 다음날까지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아내에게 “그렇게 하자”고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 역시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관계없이 곳곳에선 세상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곳에선 전쟁이, 어떤 곳에선 갈등과 대립으로 사람들이 서로 나뉘어 혈투를 벌인다. 사람이 사람의 일, 그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지사로 여겨진다. 자기 자신의 편의와 안온함과 행복과 쾌락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게 옳은 일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

어떤 곳에선 ‘신의 이름으로’ 분노와 증오, 차별과 폭력이 행해진다. 똑같은 유일신인데 다른 이름으로 그 신을 부르거나 믿는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을 살육한다. 그런 일마저 ‘신이 허락하신 일’이라 부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절멸의 순간에도 자기 생존을 생각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던 사람,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위로했던 ‘유일한 사람’이 세상에 온 날이다. 서로 건네는 선물 속에도,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 속에서도 언제나 인간 삶의 고통을 위로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날이다. 크리스천의 문화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길 바라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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