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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시평-이은형] 신세계의 실험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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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대기업 신세계의 ‘주 35시간 근무제’ 시행은 우리 사회를 공고하게 떠받치고 있던 ‘장시간 근로의 신화’에 유의미한 일격을 가했다. 재계 순위 10위의 대기업이 법정 근로시간 40시간보다 더 짧은 근로시간을 시행하겠다는 것도 놀랍지만 임금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신세계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시간별 매출 추이 등을 분석하여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 및 프로세스 효율화 등을 통해 근무시간 단축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16개 계열사, 5만여 명의 직원이 당장 이 제도의 혜택을 볼 것이라 하니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가 될 것인가 희망도 갖게 된다.

근무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에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연간 347시간 길고, 멕시코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길다. ‘연장근로사회’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게 만들고, 여성의 경력 추구를 특히 어렵게 만들어 경력단절을 초래하며, 나아가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연장근무수당을 받아야 현재의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근로자와 부족한 인력으로 버텨보려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연장근로는 필요악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줄여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사업체의 노동생산성이 2.1% 높다고 한다. 2016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 의뢰로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펴낸 직장문화 보고서 역시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적 활동시간의 비중이 낮아진다는 결과를 보였다.

신세계의 실험은 정시 퇴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근로시간 단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그동안의 부분적 정시 퇴근 시행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과로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과감하게 내디뎌야 할 때다. 정시 퇴근의 성공 여부는 바로 8시간 근무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직원들의 마인드가 변화해야 하고, 업무 집약도를 높여야 하고, 무엇보다 업무 프로세스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이 인근 카페에 모여서 일을 한다거나 모텔에서 밤을 새우며 일한다거나 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 끝에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 변화 없이 근로시간 단축 도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먼저 기업의 인식 변화 및 준비가 필요하다. 머지않은 장래에 정시 퇴근은 좋은 직장의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므로 최고경영자(CEO)들은 빨리 인식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욕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둘째, 산업별·기업별 차별화된 목표 수립 및 달성 방법이 필요하다. 생산성본부나 능률협회 등의 기관이 특별팀을 꾸려 컨설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조직 구성원들의 직무분석, 프로세스 혁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정시 퇴근 도입을 시행해야 한다. 셋째, 임금체계의 변화 및 대기업·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정착이 필요하다. 연장근무 수당이 통상임금처럼 지급되는 현재의 체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양극화 등을 개선하지 않고는 근로시간 단축은커녕 정시 퇴근도 불가능하다. 일부 대기업 정규직,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들도 정시 퇴근이라는 열매를 따려면 생산성 높은 근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기업은 시간 기준의 임금체계를 수정하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해 공정한 심판자가 돼야 한다. 신세계가 일으킨 작은 균열이 커다란 지각변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은형(국민대 교수·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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