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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여행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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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유럽 배낭여행을 간다는 학생들이 내게 소매치기 예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옷 수선하는 집에 점퍼를 맡겨서 안주머니를 만들어달라고 해. 뭐든 지퍼 달린 안주머니가 가장 안심이야. 요즘엔 주머니가 달린 팬티도 있는 것 같던데. 지폐를 접어서 넣을 수 있는 허리띠도 애용하지. 이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에 착용하길 권해. 아, 그리고 휴대폰이든 종이든 지도는 커닝하듯 살짝 보는 거야. 도심에서 대놓고 지도나 가이드북을 보면 표적이 되기 딱 좋으니까.” 그리고 나는 알고 있는 사례들을 나열했다. 캐리어를 통째로 도둑맞은 친구부터 사진 찍어준다는 이에게 휴대폰을 맡겼다가 못 받은 친구까지. “중요한 건 방심하지 않는 거야.”

학생 하나가 당장 안주머니를 달고 허리띠를 주문하겠다며 말했다. “수상한 사람은 딱 보면 감이 올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숙련된 안목이 있다고 믿었던 나는 길을 물어볼 때도 그 안목을 적용하곤 했다. 한눈에 스마트해 보이는 남자를 알아본 나는 그에게 길을 물었고, 그는 “스위스로 가는 기차요? 저기서 타면 됩니다.” 하고 빠른 속도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 1유로만 줄 수 있나요?” 술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는데, 그가 알려준 방향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철로도, 당연히 기차도. 거기엔 그냥 공사판뿐이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의심과 경계가 필요해”라고 말했는데, 이제 첫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 건네기엔 이 말이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도 덧붙여 보았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어봐. 그 사람도 소매치기를 당했지.” 학생들은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고, 나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를 권했다. 빌 브라이슨을 읽는 사람들은 알게 되니까. 여행의 묘미란, 어떤 기대와 환상이 철저히 무너지는 순간에 있다는 걸 말이다. 여행 후에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있는 건 주로 실수와 실패의 기록들이라는 것도.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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