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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룰라 대통령의 희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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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대통령의 희망이야기  
 
- 최요한 목사 (남서울비전교회) 
 

2010년 12월31일 퇴임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해 2010년 세계 최고의 대통령으로 선정되었다. 룰라는 대통령 재직 시 세계언론으로부터 전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평가를 받았는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정도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퇴임 시 87%나 되는 절대적 지지를 받은 룰라 대통령은 8년 동안 브라질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2002년에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돼 2006년 재임되었는데, 당선된 후 브라질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현재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되게 하였고,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유치를 하여 브라질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이렇게 룰라가 대통령이 되고, 빈곤과 부패가 만연하던 브라질에 경제발전과 사회적 안정을 가져오게 한데는 룰라의 절망을 딛고 희망을 바라보며 달려온 그의 인생여정을 빼놓을 수가 없다. 룰라의 삶 자체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45년 브라질의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을은 5살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악명 높은 극빈지역이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물 한모금 마시는 것도 힘들어 길거리의 고인 흙탕물의 흙을 가라앉혀 물을 마셨고, 누군가가 씹다 버린 껌도 허기를 때우기 위해 먹었다. 

이렇게 집안이 어렵다보니 룰라는 10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가정 형편 때문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경제학자가 꿈이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을 받은 그의 학력은 고작 초등학교 4학년 공부가 전부이다. 

학교를 자퇴한 그는 생계를 위해 상파울루로 나가 행상과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게 되는데, 14살 되던 해 금속공장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러다 18세 때 직장에서 사고로 왼쪽 새끼 손가락을 잃고, 26세 때 임신 8개월인 아내를 잃는다. 만삭이 된 그의 아내는 돈이 없어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룰라는 싸늘하게 식은 아내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절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절망적인 환경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또, 더 나은 브라질을 꿈꾸며 노동운동에 나섰다. 1975년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에 당선되고, 1986년에 연방 하원의원이 된 후, 1989년, 1994년, 1998년 대선에 출마를 한다. 연거푸 3번씩 낙선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2002년, 자신의 57번째 생일날인 10월 27일에 드디어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 가난하고 못 배운 구두닦이 소년이 1억9천명의 남미 대국 브라질을 통치하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할 수 있다는 희망적 생각이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이다. 그의 당선 소감은 “희망은 두려움을 이긴다”’다. 퇴임사 역시 “내 꿈과 희망은 서민의 영혼과 가난, 그리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였다. 

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희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희망이 없던 브라질에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좌절과 고통뿐이며 도움만을 받기 원했던 1억9천만명의 국민들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였다. 학력, 재력, 신분 등 모든 것에서 내세울 것 없던 그가 2억 가까운 브라질 국민들의 패배의식을 희망의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2011년 새 해가 밝았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떠오를 태양을 바라보며 희망찬 한 해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출처 : 남서울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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