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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상과 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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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과 평지 

- 작가 김성일
 

복음서에는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가르침이 자주 발견되는데 마태복음 5장과 누가복음 6장의 말씀도 그런 사례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 5:1) 

여기서는 산에 올라가셨으나 누가복음에서는 평지로 내려오셨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무리도 있더라”(눅 6:17) 

산에서 말씀하신 것은 산상수훈이고 평지에서 가르치신 내용은 평지복음이라 한다. 산에서 가르치신 대상은 제자들이었으나 평지에서는 제자들뿐 아니라 유대인도 있었고 이방인도 있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병자였다. 산상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평지복음은 그것과 다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눅 6:20) 

즉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니라 그냥 가난한 자를 말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상수훈에서 의에 주리로 목마른 자는 지금 주린 자로, 애통하는 자는 지금 우는 자로 나온다. 그리고 산상수훈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으나 평지복음에서는 사람들이 미워하여 멀리하고, 싫어해서 버린 자 즉 소외당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산상에 올라온 제자들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명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겸손과 의와 공평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가 요구된다. 그러나 평지에 모여든 자들은 말씀과 위로를 사모하여 나온 불쌍한 무리들이다. 이것은 마치 일하는 마르다와 말씀을 사모한 마리아를 대조한 것과 같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1∼42) 

오늘날의 사명자들은 산상과 평지의 두 가지 말씀을 모두 거꾸로 사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거룩한 택함을 받았으면서도 겸손하지 않고, 사명감도 없고, 더 많은 일과 더 높은 자리를 위해 서로 다투면서 정작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불쌍한 무리는 무시하거나 버려두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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