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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예배 365-12월 29일] 그리스도인의 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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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겸손히 주를 섬길 때’ 212장(통 34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마태복음 6장 1∼4절

말씀 : 한국사회에서 사회복지 분야의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하지만 사회복지 부분을 감당하면서도 기독교는 오늘날 온갖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행하는 구제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면서 조금이나마 이 부분에서의 해법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은 그리스도인의 구제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구제의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구제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마태복음 5장 7절 역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보여주기 위한 구제는 잘못된 것이라 말합니다. 심지어 의를 행하는 행위인데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남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의를 의식하는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속 경계하도록 일깨우십니다. 구제는 은밀하게 더 은밀하게 이뤄져야 하며 심지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돕는데 어떤 목적도 두지 말라는 겁니다. 그저 긍휼한 마음으로 하라는 겁니다. 아무 기대도 하지 말고 결과도 염두에 두지 말라는 겁니다.

실제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구제와 기부라는 개념으로 상대를 대하면 이미 상대적 우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잠재의식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적절치 않은 표현이지만 복지 대상자들은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차별당하거나 무시당했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많은 선행과 사회적 복지를 행하고 있는데도 국민적 반감을 받는 이유는 순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서 해 주신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구제와 구휼의 이유가 심지어 이웃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의 진정성을 의심받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고도 비난을 받는 겁니다. 목적을 가진 선행은 기업이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하는 서비스와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하는 건 자기들의 목적 때문이야”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인간들에게 특별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믿는 겁니다. 하늘의 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서의 보상을 내려놓는 성도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 우리가 하는 선행이 자기의 의를 위함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어떤 목적도 없이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를 온전히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송경호 목사(경주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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