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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23> 베다일 설립, 아픈 영혼에 밥과 복음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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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30일, 알리안츠 생명으로부터 올해를 빛낸 한국인으로 선정돼 상금 5000만원을 받았다. 베트남 다일공동체(베다일)를 세우기 위해 전액 헌금했다. 그러자 뜻있는 분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주셨다

베다일은 우리의 두 번째 해외분원이다.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시작했다. 사회주의 정부의 통제와 공무원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는 다일의 정신에 따라 호찌민의 시립원호병원인 야딘병원과 암병원에서 무상급식사업부터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의료비가 무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병원의 시설은 열악했다. 환자들에게 약은 주지만 밥은 제공하질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도시락을 나누는 것으로 주민들과 친밀해졌고, 그것은 베다일이 시작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신지체, 시각, 청각장애인 등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아픈 영혼들에게 따뜻한 밥과 함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첫 번째 사역이었다.

2007년부터 빈흥화 지역에서 적십자와 함께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대상으로 공식적인 밥퍼 사역을 시작했다. 2011년 3월 1일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베다일이 국제 NGO로 허락받은 날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베다일 밥퍼센터가 공식적으로 개원한 그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2013년 4월 12일에는 오재학 호찌민 총영사님과 교민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대·청·밥(대한민국 청소년 밥퍼)’ 발대식을 가졌다. 교민2세인 우리 청소년들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빈흥화 지역은 베트남 적십자 회원들과 주민들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더 열악한 도시빈민촌인 ‘떤흥마을’로 이전했다. 그곳에 세워진 다일비전센터 주변에는 온통 쓰레기 더미가 가득 차 있다. 주민 중 무상급식이 절박한 독거노인, 고아, 시각장애인, 고엽제 환자부터 섬겼다.

거리가 너무 멀어 찾아오기 어려운 주민에겐 도시락을 배달해 주고, 집이 없는 이웃에겐 집을 지어드리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학비를 지원해 주는 등 그들의 갈급함을 조금이라도 채워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는 이애리 원장이 섬기고 있으며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다 은퇴하신 이형식 선교사님 내외분이 협동원장으로 도와주고 계신다.

중국 다일 어린이집에서 자란 믿음의 아들 리일은 한국의 선린대학에 유학을 와서 제빵학과를 졸업하고 훌륭한 제빵사가 된 후 현재 베트남에서 ‘빵퍼사역’을 돕고있다.

베트남 법상 외국인이 자국민에게 먹을 것을 전달해 주는 것은 철저히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적십자사와 협력해야만 사역을 진행할 수 있다. 까다로운 절차와 통제로 갈등도 있지만 밥퍼와 함께 빵퍼 사역을 진행하면서 장거리에 거주하는 빈민층과 열악한 학교에 간식을 지원하고 있다. 또 미혼모를 대상으로 빵을 만드는 기술을 알려줘 취업알선을 연계할 계획이다. 이 또한 먹을 것이다보니 정부기관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사업이다.

사업이 진행되는 중에는 정부 관계자가 반드시 함께 현장에 있어야 한다. 당장은 빵공장에 대한 승인은 보류된 상태다. 현재 빵퍼 사역이 가능한 지역을 알아보는 것과 함께 우기에 말썽인 낡은 집들을 선정해 보수하거나 새로 짓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기에 그렇다.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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