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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도하기를 멈추고, 기도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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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기를 멈추고, 기도를 배우자

- Sergei (러시아 선교사)


세월이 하 수상하여 요즘은 기도할 일이 더욱 더 많아진다. 북한 문제나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사태,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기도하는 팀들이 생겨나고 있고, 무슨 일이 터지면 기도하자는 운동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뉴스를 통하여 보게 된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할 것이 있다

1. 우리의 기도가 너무나 이기적이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욕심으로 가득한 것을 본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는 그 자체를 말한다.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 전에 선행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기도에 대하여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26:39)였다. 이 기도가 주님 자신의 최후를 준비하는 기도였다. 내 소원 기도는 고난의 쓴잔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주님은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고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한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인 것이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종교와 무속인들의 기도와 다른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좀 성격이 다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 아닌가?

요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나 기도하는 내용 속에서, 지나치게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로 일관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기의 계획과 문제점을 낱낱이 고하고 ‘그것을 속히 들어주십시오’ 우리의 계획을 승인 받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의 기도내용이다.


2. 우리의 기도는 ‘만능키’라는 요술 개념이 한국교회를 붙잡고 있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열정을 다하고 노력하여야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좀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의 사욕을 채우고 해결하기 위한 만능키 개념의 기도를 가르친 곳은 없다. 또한 그러한 기도를 들어준다는 내용도 없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기도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문제를 안고서라도 감사함의 기도는 있지, 고함치고 떼쓰는 기도를 가르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지 않는가! 모두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닌가? 이러한 만능키 기도 개념이 오늘날 수많은 기도원을 양산하는 기초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3. 한국인들의 따발총 기도는 매우 시끄러운 기도에 속한다. 조용하게 하면 하나님이 듣지 못하실까 염려가 되어서 그런지 따발총 기도를 좋아한다.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좋다. 무조건 큰 소리로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막힘이 없이 기도하면 잘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 후에 마음이 좀 시원하면 은혜를 많이 받은 것이다. 바알신께 기도하는 선지자들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몸을 상하게 하면서 기도하는 모습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이래서 기독교인들은 청산유수 말쟁이로 변해가고, 행동이나 실천이 부족한 이기주의자들이 되어가니,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얼마나 가증스럽게 보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의 실상이고, 사회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아닌가? 그래서 주님은 일찍이 우리들에게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시고, 은밀한 골방기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기도회를 빙자하여

교회생활에 능숙한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나쁜 신앙 습관이 있다. 기도회로 모여서 기도를 열심히 한다. 통성으로 뜨겁게 간절함으로 기도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회를 마친 후, 친교와 다과를 나누면서부터가 문제이다.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하고 나누는 가운데 주된 내용은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개인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가지고 수군대는 것이다. 소문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나누면서 즐기는 태도인데, 기독교인들의 관습적인 악한 태도이다.

그래서 결국 기도제목을 내놓았던 것이 끝없이 퍼져나가고,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나서 남을 비난하고 수군대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도하고 수많은 정치적 도모를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참으로 위험한 기도모임이 아닌가? 무엇을 위한 기도인가? 기도는 하나의 형식과 습관일 뿐인가?

그렇게 모여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회의석상에서 어떤 문제로 논의를 할 때면 큰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의 생각과 틀리면 나쁜 인간이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차라리 기도를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형태의 기도모임이 한국교회에 팽배해 있지는 않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거룩한 기도회인가? 아니면 기도라는 이름만 빌려서 자기들의 스트레스를 풀고 정보를 얻어 이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도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인가? 아니면 어떤 목적 달성인가? 할 일이 없어서 그저 친교를 도모하기 위한 모임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는데, 수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상대방을 모욕하고 비난한다.

우리는 신앙을 너무나 잘못 배워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유교의 전통과 불교의 배경 속에서, 한국전쟁을 지나는 힘든 세대를 지나오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삶의 필요와 행복을 위하여 존재하는 인간이 만든 신으로 둔갑을 한 것이다.


다시 기도를 배우자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생각과 소원을 아시는 주님을 믿으라. 여기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기도를 잠시 멈추고 말씀 읽기 운동을 벌여라. 말씀 속에서 기도의 제목을 찾고 말씀에 의지한 기도를 하라. 이러한 훈련이 한국교회에는 너무나 필요하다.

또한 기도하기를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 듣는 훈련부터 하라. 말씀 속에서 오늘 나에게 주시는 가르침과 가치관의 변혁을 이루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배워가라.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배우는 것이 기도보다 앞서야 한다.

끝으로 기도를 통하여 내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법부터 배워라. 나의 삶의 어려운 부분과 해결하여야 하는 일상의 문제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보다는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기다리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모두 알고 계시지 않는가? 그러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변화도 가치관의 변화도 부흥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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