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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얼굴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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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마담 
  
- 예용범 목사 (제일교회)  
   
 
수십년 전에, 다방이니 다실이니 하며 
모닝커피를 팔던 그 시절에
어느 다방에는 디스키자키가 있었지만
어디에는 ‘얼굴마담’이 있었습니다
후카시 넣은 머리에, 사계절 갑사 한복에 
하이힐을 감추고 김사장님, 이사장님하면서 차 마시며 
단골손님 유치하여 매상 올리던 중년여성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서 없어진,
그래서 뇌리나 추억에 있는 직종입니다.  
이 얼굴마담이, 유감되게 교계에는 아직 있는듯 합니다.

정체성이나 뿌리가 확실치 못한 교단이나 
변변치 못한 신학원의 대표직에
그리고 그러한 이들의 모임이나 행사에 종종 등장합니다.
이름뿐 아니라  사진도 떠억하니 박힙니다.
왕년의 훌륭했던 명사들을 들러리 세우거나(?), 앞세워
정체성이나 부실한 뿌리를 가리우고자 합니다만
이는 역효과가 납니다
작은 키 높이고자. 바지밑단 끌리는 경우요
머리, 무스발라 올백으로 넘긴 모양과 같습니다. 

최근, 어느 장로교단의 목사안수식을 보니
노회가 아닌 총회의 안수식도 우습지만
장로교외에 성결교, 감리교의 원로목사들을 
안수위원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소위 얼굴마담으로 행차 시킨 겁니다. 
정녕 아름답지도 , 거룩하지도 않았습니다.
원로들 역시 아닌 것은 바로 잡아줘야 되고
형편이야 어떻든 삼가하거나 거절해야 했었는데

좋은 일 같다고 해서 참석하고
대접 잘 한다고 해서 격려하고 축하하며
쓴 소리하기 싫다고하여 가만 있으니
이 탓에 새로운 전례가 생기고 
그 전례는 역사가 됩니다. 
좋은 역사면 얼마나 좋을까요?
변질의 역사 , 혼탁의 전례가 되니 문제입니다.  

원로는, 여하한 원로입니다
교계나 교파나 교단이나 교회의 산증인이요 
역사요 교훈이요 빛입니다.
이름이 명예요, 얼굴이 책임이요 
참석유무가 사실의 진위를 판가름 합니다.

이젠 원로들을 끌어 들여 진위를 오도케 하는 
못된 상술(?)도 그쳐야 되지만
스스로를 얼굴마담처럼, 소홀히 여긴 원로들도 
책임은 있습니다. 
평생에 만든 훌륭한 신앙이미지와 업적을 
그리 쉽게 내 줘서야 되겠습니까? 
개인이 아닌 교계 전체의 먹칠과 망가짐이 되지요
아이들도 소 갈데. 말 갈데를 시시 콜콜하게 따진 답니다.

"그런즉 너의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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