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예수 부활과 하나님의 선교

첨부 1


예수 부활과 하나님의 선교 

- 엄상현 목사 (포천감리교회)
 

마틴 하이데커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다섯 가지 명제를 들고 있다. 첫째, 인간은 죽는다. 둘째, 혼자 죽는다. 셋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 넷째, 안 죽을 사람은 없다. 다섯째, 죽음 그것은 나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없다. 오히려 성서는 그 이유를 ‘죄의 삯’(롬 6:22)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예수 부활! 이는 성경의 증언대로 죽음의 권세를 깨치심이요, 진리의 개가이며 왜곡된 역사의 바른 이정표이다. 주님은 과연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모든 여인에게, 길에서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날 밤 열 제자에게, 다음 주일 열한 제자에게, 갈릴리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갈릴리에서 500문도에게, 야고보에게, 승천하신 뒤 바울에게, 스데반에게,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다. 

예수 부활은 모든 믿는 자의 다시 사는 삶이요(롬 11:26), 처음 열매(고전 15:20)이다. 또한 예수 부활은 십자가의 치욕스러운 죽음을 웃음거리로 만든다(고전 15:55∼57). 몰트만은 “부활은 약속이며 성취이지만 저항이며 혁명으로서 현재적 현실을 철저하게 변혁하는 원동력으로 사명을 완수케 하는 소망의 힘”이라고 했다. 그는 ‘피상적인 유신론’과 ‘소박한 무신론’의 논쟁을 넘어서서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 받는 하나님’이란 입장을 재기하며 아들의 고통스런 죽음을 감내하면서라도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성부 수난설’을 새롭게 강조했다. 

부활절을 맞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의 복음전도를 선교로 이해하는 구체적 표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함이요(시 118:17), 참 사랑(요 3:16)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뜻(요 1:14)에 따라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으셨다(빌 2:7).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 사랑, 화해 그리고 새로운 삶이 전제된 하나님이 구원과 심판의 선포를 뜻한다(출 3:7∼8). 결국 하나님의 선교는 각자의 작은 예수를 사회 속에 전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교를 지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초점이 개인의 영혼구원뿐 아니라 인간생활의 사건, 구조, 관계성,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전체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교회를 하나님의 목적인 선교를 위해 하나의 도구와 선택된 그릇으로 부르셨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교회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왕국 건설을 넘어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세상을 향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어떻게 하면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세상에 대해 책임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동안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힘써왔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염려하고 세상법정에서 교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심히 부끄럽고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이다.

교회는 인간 역사 깊숙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간직하기 위해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실질적인 봉사를 제중하는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한다. 그리고 로렌스 하우스먼처럼 고백해야 한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는 무엇을 져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나는 무엇을 써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나를 돌보셨습니다. 나는 누구를 돌봐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내가 감히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