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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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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감사 

- 강준민 목사 (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 목사)
 

봄은 아름답다. 찬란하다. 추운 겨울동안 봄을 기다리던 나목(裸木)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았다. 잠깐 멈추어 음미하니 정말 아름답다. 조금 늦게 찾아온 봄이라 더욱 감격스럽다.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솜씨의 탁월함이다. 아름다움은 탁월함에 있다. 우리는 탁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감탄한다. 아름다움은 기쁨을 준다. 기쁨은 아름다움 속에 담긴 탁월함을 감지할 때 경험한다. 에피쿠로스는 “탁월함은 본성적으로 기쁜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기쁜 삶은 탁월함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쁨은 깊음에 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살면 깊은 기쁨을 경험할 수 없다. 참된 기쁨은 깊은 우물에서 체험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솜씨다. 자연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솜씨는 으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솜씨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를 만끽할 수 있다. 잠시 멈추어 아름답게 핀 꽃을 살펴보라. 어느 꽃인들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꽃 속에 깃든 색깔, 꽃 사이로 솟아나는 새 싹의 섬세함, 그 오묘함, 그 신비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아름다움은 빛에 있다. 빛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빛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고, 빛에 따라 아름다운 모습이 달라진다. 빛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볼 수 없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이 아름다움을 주고, 빛이 모든 것을 살린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주고, 모름을 밝혀준다. 빛은 깨달음이다. 아름다움은 앎에서 시작되고, 깨달음에서 깊어진다. 깨닫지 못하면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없다. 신영복 교수는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모름다움’이라고 했다. 아름다움의 깊이는 앎의 깊이에 달렸다. 

앎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랑에서 온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사랑하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사랑하면 감추어둔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된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도 아이를 잉태한 여인을 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 까닭은 거룩한 생명이 그 안에 자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아이가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를 잉태한 여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다. 

사랑하면 아름다워진다.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다. 가슴앓이를 해보지 않고 사랑의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랑하면 아프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상처를 받으셨다. 사랑 때문에 그리하신 것이다. 사랑은 그토록 아픈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에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상처 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 어머니가 자녀를 낳을 때 상처를 터뜨리면서 낳는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다. 

십자가는 아프다. 험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십자가는 험한 십자가였다. 추한 십자가였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이제 흠모의 십자가가 되었다. 사랑 때문이다. 험한 십자가가 아름다운 십자가가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게 사랑을 받은 바울은 십자가를 사랑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알기로 작정했다.

아름다움은 고운 마음씨에서 우러나온다. 아름다운 마음에서 아름다운 눈이 열린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아름다움에 감격할 수 있다면 복된 마음이다. 부요한 마음이다. 진정한 부요는 내면에 있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마음에 있다. 

아름다움은 너무 속도를 내는 사람은 느낄 수가 없다. 아름다움은 멈춤에 있고, 어느 정도 느림을 즐길 줄 아는 데 있다. 그런 까닭에 어느 날 찾아온 시련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또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경험을 했을 때 아름다움은 성큼 찾아온다. 그 때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련이 축복이 된다. 

영성 생활은 느림과 멈춤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 생활은 은총이다. 오늘 잠시 멈추어 꽃을 바라보라. 솟아나는 새 싹을 바라보라. 어린 아이의 손을 잡아보라. 해 맑게 웃는 어린 아이와 함께 웃으라.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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