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4> 대학서 만난 아내… 신앙·성실함 믿고 청혼 받아줘


201801180001_23110923885385_1.jpg
꿈에도 그리던 음대에 진학했다. 또 당대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 한 명이던 나운영 교수의 제자가 됐다. 하지만 작곡보다 지휘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모아지는 화음의 세계에 매료된 것이었다. 노래가 좋아 음악의 길에 들어섰고 작곡으로 음대에 진학했지만 1학년 때부터 지휘할 수 있는 곳이면 나는 어디라도 달려갔다.

교회 찬양대 지휘자로 봉사하다 본격적인 합창 지휘를 한 것은 대학 3학년 때 연세대 기독학생합창단 지휘자로 서면서부터다.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하자고 결심하고 명동의 서울YWCA홀에서 발표회를 갖기로 했다. 음악 발표회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이 기획부터 지휘까지 모든 과정을 맡아 준비하는 건 더 흔치 않았다.

음대 박태준 교수와 곽상수 교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교수님들은 “학원아, 음대 지하실에 정리하지 못한 악보가 많으니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된다”고 하셨다. 행복했다. 수많은 악보를 펼칠 때마다 내 귀엔 합창이 들렸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합창은 늘 감동을 선사했다.

나는 바흐의 칸타타 106번을 연주하기로 했다. 이 곡은 ‘하나님의 세상이 최상의 세상이로다’는 부제를 가진 곡으로 바흐의 신앙고백이 녹아있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난 내가 지휘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합창을 통해 화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신비로웠다. 목소리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지휘자 역할에 푹 빠져버렸다.

작곡과 학생이 지휘봉을 끼고 사니 당장 작곡과 교수님들이 노발대발하셨다. 나운영 교수님은 실망하셨다. 학점이 잘 나올 리 없었다. 전공과목 학점이 C였다. 하지만 이미 지휘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 내게 학점이 대수가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독학으로 지휘를 공부한 모습이 기특했는지 나 교수님도 졸업할 즈음엔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전공 공부도 열심히 해 졸업할 때는 A학점을 받았다.

기독교연합학생회는 내게 본격적인 성인 지휘를 경험하게 해 준 고마운 모임이었다. 게다가 지휘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곳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곳에서 나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기독교연합학생회에서 서기를 맡고 있던 성악과 후배가 있었다. 한 살 어렸던 후배는 58학번이었다. 발표회가 열리기 얼마 전, 팸플릿에 들어갈 단원 명단을 급히 찾던 날이었다. “어머나, 제가 명단을 집에 두고 왔어요….” 서기였던 그 학생이 말했다. 난 내일 가져와도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다녀오겠다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교통편이 많지만 당시 신촌에서 정릉에 있는 집에 다녀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후배는 웃는 얼굴로 명단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 자꾸 눈길이 갔다. 쾌활하고 신앙심까지 좋았던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캠퍼스 커플이 됐다. 음악을 사랑하고 신앙생활도 함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그사이 난 군에 입대했고 그는 졸업 발표회로 분주했다. 청혼은 그의 졸업식 날 했다. 내 인생 최고의 조력자인 이명원 권사와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이렇다.

결혼은 1963년 4월 22일에 했다. 신혼집은 내가 자랐고 부모님과 동생들이 살고 있던 인천에 잡았다. 나의 신앙과 성실함만을 보고 결혼해 준 아내에게 지면을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리=장창일 기자 [email protected]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