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201801240000_23110923888562_1.jpg
로웰대학교의 유일한 한국 사람은 옥인걸 교수였다. 옥 교수에게 성악을 배웠다. 지휘교수는 보스턴에서 명성을 날리던 헨델앤하이든 소사이어티 지휘자였던 에드워드 길데이였다. 공부는 즐거웠다. 여러 합창단에서 지휘하며 몸으로 익혔던 지휘법에 이론이 더해지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옥 교수는 항상 “성악은 배우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 독창회를 해야 한다. 준비하라”고 하셨다. 독창회를 열기엔 실력이 부족했지만 노래는 열심히 외웠다. 늘 노래하며 다니다 보니 학교에선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보스턴엔 교회가 많았다. 미국엔 교회가 많지만 유독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이 적지 않았다.

매 주일 교회를 순회하며 미국의 교회음악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선명회합창단에 보낼 악보도 구하러 다녔다. 13박스에 달하는 악보를 수집한 뒤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차가 없어 우체국까지 박스 한 개씩 옮겨가며 13개를 다 보냈는데 이게 웬일인가. 모두 반송된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쓰는 위치가 한국과 달랐다. 내 방에 있던 악보를 나한테 보낸 것이었다. 우체국을 열세 번이나 오가면서. 마흔 넘어 시작한 유학생활은 좌충우돌이 일상이었다.

선명회합창단 아이들이 그리웠다. 연을 끊지 않으면 그리움이 커질 것 같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합창단 지휘자를 사임하겠다는 결심을 안고 귀국했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빛을 보자 몸이 녹아버렸다. 그만두겠다는 말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던 중 한국음악협회가 주최한 송년회에 갔다가 중앙대 음대 장영 교수가 “중앙대 학생들에게 합창 좀 가르쳐 주시죠”라고 제안해 왔다. 혼란스러웠다. 공부도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남으면 선명회합창단을 계속 지도할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중앙대 출강을 결정했다.

대학 강단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떨렸다. 하지만 학생들을 만나니 패배주의가 역력했다. 자신감도 없었다. 당시 중앙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는 서라벌예대 음악교육과와 합병된 직후였다. 비주류라는 인식이 강했다. 아무리 칭찬하고 설득해도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한창 도전과 패기로 가득 차야 할 젊은 날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학생들을 보니 안타까웠다.

“내가 잘하는 걸 하자.” 그건 바로 합창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음대생으로만 합창단을 꾸릴 수 없어 이공대와 약대생 가운데 찬양대 활동을 하는 학생들까지 모아 ‘마스터코랄’을 만들었다. 합창단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소신대로 ‘대학합창제’ 출전을 결정했다.

당시 대학합창제는 연세대 ‘콘서트콰이어’와 이화여대 ‘글리클럽’의 독무대였다. 신생팀인 마스터코랄이 겨루기 위해선 맹연습뿐이었다. 무대는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이었다. 첫 연주회는 떨리기 마련이다. 서로를 격려해 가며 무대에 올라 연습한 대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환호와 박수소리에 귀가 찢어질 정도였다. 열등감을 내던지게 된 연주회였다.

이뿐 아니었다. 중앙대 마스터코랄의 실력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순회연주며 해외연주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일정이 잡혔다. 학생들과 구슬땀을 흘리던 1983년의 어느 날, 음악대학 학과장이던 채리숙 교수가 전화기가 터질 정도로 흥분해 소리치셨다. “윤 선생님, 우리 대학 교수로 발령 났습니다.” 내가 음대 교수가 됐다니….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짧은주소 : https://goo.gl/cStgyr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글쓴이
107354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12> ‘합창계의 올림픽’서 기립박수… 뿌듯함으로 벅차 2018.01.30 10 운영자
107353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11> 인천시립합창단 첫 연주회 제목 ‘예배’로 정해 2018.01.29 29 운영자
107352 설교 [가정예배 365-1월 29일] 부패한 영적 지도자들과 그들을 위한 기도 2018.01.29 20 운영자
107351 설교 위정자에 대한 선의의 복종 2018.01.28 27 강종수
107350 설교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_한 가지 일 (2018-01-28, 이상웅 목사) 2018.01.28 86 분당우리교회
107349 설교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018.01.28 59 궁극이
107348 설교 거짓과 아첨하는 입술 2018.01.27 55 빛의 사자
107347 설교 나는 청지기입니다 2018.01.27 63 강승호목사
107346 설교 [가정예배 365-1월 28일]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2018.01.27 48 운영자
107345 설교 [가정예배 365-1월 27일]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2018.01.27 54 운영자
107344 설교 권위 있는 새 교훈 2018.01.26 45 강승호목사
107343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10> 대우합창단 단원들과 갈등… 해체의 아픔 겪기도 2018.01.26 16 운영자
107342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10> 대우합창단 단원들과 갈등… 해체의 아픔 겪기도 2018.01.26 14 운영자
107341 설교 [가정예배 365-1월 26일] 주 하나님을 즐거워함이여 2018.01.26 31 운영자
107340 예화 사랑과 용서 2018.01.25 61 한태완
107339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9> 내 인생의 악보는 성경… 잠들기 전 아내와 번갈아 낭송 2018.01.25 31 운영자
107338 설교 [가정예배 365-1월 25일] 다윗의 집에서 나오는 義의 가지 2018.01.25 28 운영자
107337 설교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_은혜로 서고, 행위로 넘어지다 (2018-01-21, 이찬수 목사) 2018.01.24 117 분당우리교회
» 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8> “윤 선생님, 음대 교수로 발령 났습니다” 2018.01.24 24 운영자
107335 설교 [가정예배 365-1월 24일] 지은 죄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때 2018.01.24 16 운영자
Board Pagination Prev 1 ...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5452 Next
/ 5452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