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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기독교 시간관 - 말세의식과 천년왕국설 중심 - 이만열 교수

첨부 1


기독교의 시간관

- 말세의식과 천년왕국설을 중심으로 -

 

이만열 교수

 

1. 머리말

 

1992년 10월 28일, 한국에서는 예수의 재림에 앞서서 이 날 신자들이 휴거(携去)될 것이라고 하여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TV를 비롯하여 언론기관들이 여기에 비상한 관심을 집중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한 '광신적인' 선교단체가 오래동안 주장해온 바와 같이, 예수가 2천여년전에 자신이 다시 재림(再臨)할 것이라고 한 약속에 따라, 이 날 다시 공중재림하는데 그를 충실히 따른 자들은 공중으로 휴거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 전에 이미 그들은 500여년 전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에드가 케이시의 예언 및 어린 소년 진군이의 예언 그리고 종말의 징조들 성경의 계시, 이루어져 가는 역사적 사건들을 감안할 때에 1992년-93년 경에 예수의 재림에 따른 휴거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번 예언한 바가 있었다.

 

예수가 재림(再臨)할 것이라는 기록은 성경 여러 곳에 보인다. 마태복음 24장에는 '그리스도의 임(臨)함과 세상 끝날에 있을 징조(徵兆)'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마가복음 13장에서도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올' 것이라고 했으며, 누가복음 21장에서 역시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기록한 바 있다. 사도행전 1장에는 부활 후에 예수가 승천하게 되었는데,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0-11)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 밖에 바울서신 등에서도 예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언급이 종종 보인다.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장래에 되어질 일들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많은 주목을 받아 왔고, 예수의 재림을 빙자하여 많은 미혹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신자들을 유혹하고 자신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체웠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요한계시록' 다음 기록은 예수재림과 함께 그동안 그를 따르며 핍박받던 신자들이 천년동안 '왕노릇'하게 된다는 소위 '천년왕국'론을 입론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無底坑)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그 위에 인봉(印封)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도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물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성경의 이같은 증언에 따라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그들의 중요한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여러 신앙고백서들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재림의 정확한 날자와 장소를 명시한 적이 없다. 예수는 지상에서 사역하는 동안 후세인들이 그의 재림사건을 오용할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재림의 시기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는 예수의 재림을 예언하거나 이미 재림했다고 하는 거짓된 증거들을 사실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건으로 여러 이단 종파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관한 문제는 그것만으로도 좋은 연구과제가 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회사상사의 한 특수한 분야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의 끝이 도래했다는 말세의식과 예수가 재림하여 이 세상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문제는 한국 기독교사에도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고 종교사회학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에 일제가 다스리는 이 세상이 끝나고 예수의 재림에 의해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신앙은 식민자하의 고통받는 백성들에게는 희망 그것이었다. 때문에 한국 교회의 초석을 닦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예수의 재림과 관련된 종말사상과 천년왕국 사상은 한국 기독교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중심어(key word)가 될 수 있다. 그만큼 한국 기독교사에서 예수의 재림사상과 천년왕국사상은 한국 교회에 깊이 침투하였고 지금까지도 한국 기독신자의 신앙과 삶을 지배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의 재림신앙과 관련된 말세의식은 기독교만의 사상일까. 현존하는 이 세상에 종말이 오고 새 세상이 도래한다는 사상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신앙과 사상에서도 보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와 삼세사상이나 민간신앙에서 보였던 후천개벽(後天開闢)사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여기에서 말세의식 내지는 종말의식이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한반도라는 삶의 현장에서 과거 전통적인 종교와 기독교를 통하여 서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리의 편의상, 세계 기독교사에 보이는 말세의식과 거기에 따른 천년왕국설을 먼저 살펴보고 그것이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을 검토하겠다. 이러한 작업은 곧 말세사상을 이론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말세사상이 한국에 수용되는 데에는 그것을 수용할 만한 한국적인 바탕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와 민간신앙에서 간단히 살필 것이다. 그 후에 천년왕국사상을 포함한 재림 말세사상의 한국에서의 동태화현상을 살피게 될 것이다. 그 동태화현상은 한국 교회에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크게 나타났던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말세의식이, 사상적으로 당연하게 새 사회를 희구하는 운동으로 발전되어 갔다는 점에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동학 등에서도 보이고 있었던 만큼 한국사에서 비교사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역량이 미치면 거기까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자 한다.

 

2. 基督敎의 '千年王國論'

 

2-1. 기독교의 시간관과 역사관

 

2-1-1. 기독교의 시간관: 기독교의 시간관을 이해하는 핵심어에는 크로노스(xronos), 카이로스(kairos), 파루시아(parousia) 그리고 에스카토스(eschatos) 등이 있다.

 

크로노스는 희랍의 시간개념으로 측정가능한 물리적인 시간을 표현하는 말이며, 보통 자연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마 25;19, 계 20;3, 눅 23; 8, 딤후 1; 9, 행 17; 3, 벧전 1; 17, 계 10; 6 등이 언급된 시간들이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설정된 시간을 표현하는 것으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 15)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어떤 결정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는 의미의 기독교적인 시간개념이다. 말하자면, 자연적 물리적인 시간과는 달리 특별히 실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역사의 위기점들이나 전환점들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다.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의 도래는 바로 그 유일한 실례에 해당될 것이다.(히 11; 15, 고전 7; 5, 행 17; 26, 눅 12;42, 마 11; 25 등)

 

파루시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날에 지상에 다시 온다는 것을 말하며, 신약성경에만 300회 이상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예수재림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다시 이 세상의 종말과 천년왕국의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다.

 

에스카토스는 마지막을 뜻하며, 개인의 운명(삶 죽음 영원불멸 중간적 상태 부활)과 역사의 운명(주의 날 세상의 종말 심판 하나님의 나라 등)이 그 끝이 있다는 것으로, 앞에 언급한 파루시아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용어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시간개념들이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파루시아와 에스카토스와 관련된 시간관을 중심개념으로하여 논지가 전개될 것이다.

 

2-1-2 기독교적 역사관: 기독교가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관점은, 사간관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창조와 더물어 역사가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세상의 종말이 오며 역사도 끝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을 기초로하여 형성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함께 창조와 최후 심판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사건을 삽입함으로써 역사는 '크로노스'적인 역사에서 '카이로스'적인 역사로 전회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기본적인 역사관에 입각하여, 기독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역사와 그 종말에 대해, 현 역사는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이며, 현 역사는 그 자체 안에 궁극적이고 항구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모든 역사는 천년왕국의 시작과 함께 끝나며 따라서 현 역사는 천년왕국에 동참할 신자들의 신앙도장과 같은 것이며, 천년왕국의 도래가 현 역사의 최종목표와 최종단계라고 한다.

 

이같은 기독교의 일반적인 역사관이 한국에 최초로 수용된 것은 咸錫憲에 의해서다. 그는 그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1965년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개제함)에서, 역사의 근본을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하였다는 것, 元始가 있는 이상 終末이 있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는 중간시기에는 神의 통치,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주일 뿐만아니라 統治主라는 것, 성경은 인간을 역사에 대한 도덕적 책임자로 본다는 것 등을 기독교적 역사관과 관련하여 설명하였다.

 

2-2. 末世意識과 再臨信仰:

 

2-2-1 초대교회 교부들의 천년왕국신앙: 순교자 유스티누스, 파피아스, 이레네우스, 멜리토, 힙폴리투스, 터툴리아누스, 락탄티우스/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재림하리라 믿음/ 재림하면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주님 앞에서 대심판을 받아, 박해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에서 천년동안 왕노릇하리라고 믿음/ 그 왕국이 지금 현재 지상에 있거나 또는 현역사의 시간선상에 나타날 것이 아니라 세상 마지막날에 나타날 것이며, 그것이 나타나면 현역사에는 종말이 온다고 믿음

 

2-2-2 再臨 信仰과 千年王國 運動: 기독교 초기의 몬타너스 운동에서 종교개혁기의 제반운동 및 미국 교회에서 천년왕국운동이 확산되었다. 17, 18세기 '대각성운동' 등의 강렬한 신앙운동이 일어날 때, 요나단 에드워즈의 '후천년왕국설'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교회의 전통적 천년왕국 신앙에서 이탈한 모르몬교(스미스와 영)와 여호와의 증인 운동(러셀, 1874) 및 안식교 운동(밀러, 1831→1838)이 재림신앙에 기반한 일종의 천년왕국 운동으로 등장하였다.

 

2-3. 終末論:

 

2-3-1 철저적 종말론: 슈바이처와 바이쓰의 종말론; 인간이 실현시켜야 할 윤리적 가치의 왕국으로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던 리츨의 신학에 반대하여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재적인 천국이 아니고 인간이 실현시켜야 될 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압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피안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은사라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가 직결되어 있어서 이 사상을 일명 미래 종말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2-3-2 현실적 종말론: 제2차대전 후 인류의 모든 문화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의 위기 아래 직면해 있다고 하면서, 종말은 현재에 이미 돌입했다는 긴박한 종말론을 주장한다.

 

① 도드: 역사적 예수의 선교시작부터 종말은 실현되었다는 것/ 예수께서는 결코 먼 장래 일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완성된 종말을 선언했으며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다이나믹하게 전개되며 하나님의 통치권이 실현되어 가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예수의 수난, 부활, 오순절 이후의 교회 발생 등의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나라의 진행이라고 하는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한다.

 

② 불트만: 그에게서는 미래 요소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음/ 그의 미래는 다만 인간 실존의 가능성으로 밖에는 생각지 않음/ 그의 영원은 현재의 나의 실존이 하나님 앞에서 영생과 영사의 결단을 내리는 일이라고 함/ 이에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개인의 심판, 우주의 재창조를 말하는 묵시적 사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음/ 심판은 말씀 선포의 매순간에 온다.

 

2-3-3 소망의 종말론: 몰트만,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소망 때문에 살고 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것을 미래에서 찾아보자는 것. 그의 종말은 예수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예수와 함께 시작된 종말은 미래에 완성될 종말의 계시이며 이 계시는 약속을 뜻한다.

 

2-4 '千年王國論'

 

'천년왕국'이란 용어는, 마치 삼위일체란 용어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부러지게 찾아볼 수 있는 술어는 아니다. 그 용어는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요한계시록> 20장 4절 이하에 보이는 "예수의 증거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도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물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명명된 것이 불과하다.

 

성경에서 예수의 재림과 밀접히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는 '천년왕국'이 과연 문자적으로 실현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상징적 의미만을 갖는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될 뿐만 아니라, 문자적으로 실현된다고 할 때, 그 '천년왕국'이 에수의 재림 전에 이루어지는가 혹은 재림 후에 이루어질 것인가에 따라서도 논란이 일게 되었다. 이러한 논란에 따라 대체로 전천년(왕국)설과 후천년(왕국)설, 그리고 그 두 주장에 대응하는 무천년(왕국)설이 있게 되었고, 전천년설에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역사적 전천년설'과 거기에 비해 특수한 주장이라 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구분되고 있다.

 

2-4-1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이는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이라고 하며 千年期前說, 千年世界以前再臨說 혹은 千年前派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이 이루어지지 전에 있게 된다는 주장이지만, 같은 전천년설이라고 하더라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구별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재림에 대비하여 복음이 만방에 전파되도록 노력해야 하나, 재림 이전에 대배교사건, 전쟁과 기근, 지진, 적 그리스도의 출현, 대환란 등이 재림의 징조로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그의 왕국은 갑자기 불가항력적인 능력으로 실현될 것이며 이 때 유대인들은 회개할 것이며 매우 중요한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천년왕국 기간 동안 악의 세력은 그리스도에 의해 감금되었다가 말기에 가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예수의 재림과 더불어 죽었던 신자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하고 살아있는 신자들은 변화하여(고전 15:52, 살전 4:16-17)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를 영접하고 내려와서 그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년왕국 이후에는 불신자들이 부활하여 심판당할 것이며, 그 후에 영원한 나라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역사의 마지막에 천년왕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내용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4-2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 후천년설 혹은 천년기후설, 천년후파라고도 하는데 이는 천년왕국이 이뤄진 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천년왕국 후에 있게 된다는 말이다. 천년기후설에서는 예수의 재림 전에 천년동안 기독교의 황금시대가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예수의 재림 전에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온 인류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며 세상은 변화될 것이라고 한다. 후천년설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복음의 전파와 성령의 구원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세계에 확장되고 있으며 세계는 마침내 기독교화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가 완성될 것이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가 현실화될 것으로 주장한다. 그래서 정의와 평화가 하수같이 흐르며 악과 불의는 소멸될 것이며, 따라서 예수의 재림은 보통 천년왕국이라 일컫는 의와 평화의 오랜 기간의 마지막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어서 대부활, 대심판, 지옥과 천국이 갑자기 올 것이나, 그리스도의 통치는 점차 혁명적 과정을 밟아 평화의 시대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후천년설은 19세기에 들어서서 과학 기술의 발달과 인간을 신뢰하는 사회적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광범하게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따라서 교회가 영혼을 구하는 일에만 관여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에 관심갖는, 그리하여 삶의 총체적인 영역을 복음으로 변혁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와 같은 교회의 역할로 사악한 세상은 점차 개선되고 결국에는 천년기 동안의 황금시대가 교회의 역할을 통해 이 세상에 구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천년설이 성도들로 하여금 주의 재림에 대비하여 미리 일깨워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도록 하려는 데에 비하여, 후천년설은 이 시대를 재림전에 임해야 할 천년왕국이 되게 하기 위한 사회적 공동체적인 노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가게하여 개인 신앙보다는 사회적 변혁운동에 더욱 관심갖게 했던 것이다. 이같은 낙관주의적 경향이 19세기 성행했던 세계적인 선교운동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후쳔년설은 재림 전에 大背敎가 일어날 것과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식어져 내개 올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교훈과는 정면적으로 상충되는 등 몇가지 난점을 갖고 있음도 지적되고 있다.

 

2-4-3 무천년설(Amillennialism) : 위에서 언급한 여러 견해들이 천년왕국의 실현시기가 예수의 재림과 시기적으로 어떤 관게가 있는가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데에 비하여 이 주장은 말 그대로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따로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최홍석의 설명에 따르면, 무천년설자들은 계시록 20장의 '첫째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사단의 결박'을 그리스도의 전 구속사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함(마 12:29)으로써 문자적인 천년왕국을 영적인 차원으로 置換시켜 천년기를 교회시대로 해석해버린다. 그래서 천년간의 통치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상에서 이루어지며,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 곧 천년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 중 어떤이는 '무천년설'이란 용어가 자신들의 견해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고하여, 보다 적합한 표현으로서 '실현된 천년기론(realized millennialism)'이란 용어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천년설이 후천년설과의 차이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세속질서를 변혁시켜 그것으로 하여금 神國이 되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2-4-4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적 전천년설 : 세대주의는 다아비(J.N.Darby 1800-1882)와 그의 학설을 이은 스코필드(C.I.Scofield)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비는 지상의 교회가 참된 교회일 수 없으며 참된 교회는 지상적 부패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교회는 율법과 은혜가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여기서 새로운 성경해석의 원리를 제시하게 되었다. 다아비로부터 영향을 받은 스코필드는 하나님의 백성을 둘로 구분하여 이스라엘은 자연적이고 교회는 영적이라고 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이 관계된 것은 모두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예언이 결코 靈解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천년왕국을 역사적인 다윗왕국의 부활로 보는 것이나, 그 왕국에는 충성되고 중생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핵심이 된다는 것이나, 천년왕국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며 거기서 세계를 통치한다고 본 것은 바로 이러한 성경해석 원리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역사관에도 반영되어,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스코필드는 그의 관주성경을 통해 세대주의와 그들의 전천년설을 유포시켰는데,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의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이 각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 입각하여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인류의 역사를, 무죄시대 양심시대 인간통치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 왕국시대 등 일곱시대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특수한 원리로 통치하신다고 주장한다. 제1기 무죄시대를 에덴동산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보고 있다. 제2기 양심시대는 타락후에서 노아의 홍수시기까지로 보고 있다. 제3기 인간통치시대는 노아 홍수시대부터 아브라함 때까지로 인간통치의 시기라고도 한다. 제4기 약속시대는 아브라함에서부터 모세까지이며, 제5기 율법시대는 모세에서 예수의 초림때까지, 제6기 은혜시대는 예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이며, 제7기 왕국시대는 천년왕국의 시기로서 신국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기를 성경에 의해 구분하였다고 하나 성경적으로 정확하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양심시대와 약속시대를 구분하는 표준이 무엇인가, 아담이 범죄한 후 나무사이에 숨은 것이 벌써 양심의 작용이라면(창 3:8),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창 3:15)도 주지 않으셨는가 하는 질문이 가능한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은, 천년왕국 이전에 그리스도는 7년을 사이에 두고 먼저 성도들을 먼저 비밀휴거하고 나중에 지상재림한다는 것이다. 첫째부활 때에 죽은 성도는 공중재림 때에 들림을 받으며 살아있던 성도들은 육체적으로 공중에 들려 올라가 주님을 만난다. 환란 후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환란 때에 순교한 성도들은 무덤에서 나와 육체를 갖게 되며 영과 혼이 합해진다. 그 후 모든 시대를 통해서 죽은 불신자들의 육체와 영혼을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 모이게 하는데 이것이 둘째부활이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역사적 전천년설, 특히 개혁주의자의 그것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종말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다니엘서 9: 24-27절과 신약의 '하나님 나라'의 성취에 대한 해석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았더면 왕국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을번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므로 왕국성취는 신약시대 이후로 연기되고, 세계의 종말기에 유대인 와국예언이 문자대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 예언된 왕국(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후에 可見的이고 물리적인 유대인의 왕국이 천년 동안 지상에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문자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때에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공중에 들리우는 사건(Rapture, 휴거)이 있게 되어 '7년 동안의 공중연회'에 참석하게 되며 따라서 그들은 대환란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대환란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하는 한편 '천년'을 문자적으로 간주하며 천년왕국은 이스라엘 민족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함으로 이방 민족들은 종속적 지위를 가지고 들어간다고 하며 또 천년왕국에도 문자적으로 성전이 있고 희생(생축)을 드리는 제사제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개혁주의자들의 성경 이해와는 많은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대부분 초기의 세대주의적 경향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많이 수정된 세대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이 수용된 장로교회도 세대주의적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전통을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일제하에서는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많은 전도자들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경회 부흥회 등을 통해 그들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신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었던 것이다.

 

3. 彌勒思想과 開闢思想-'千年王國' 사상의 한국적 배경

 

3-1. 末世意識과 彌勒思想

 

3-1-1. 신라 하대 미륵신앙의 등장: 한국사에서 말세의식과 거기에 따라 새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구상은 이미 신라 하대에 나타났다. 신라 下代란, 上代를 국초부터 통일전쟁을 치루기 전인 眞德女王 때까지로 보는 것과 中代를 통일전쟁에 나서는 太宗武烈王 때로부터 惠恭王 때까지의 전제적인 완권이 확립되던 시대를 이르는 데 비하여, 宣德王 때로부터 시작되어 敬順王 때까지의 150여년간을 말한다. 이 때는, 聖骨系가 왕이 되던 上代나 眞骨系 太宗武烈王이래 전제적인 왕권이 확립되고 사회적인 안정이 보장되던 중대와는 달리, 奈勿王系의 김씨와 박씨계가 왕통으로 들어섰고 150여년 동안에 20인의 왕이 立廢를 거듭하였고, 중앙정치무대가 왕위를 다투면서 그 안정이 깨어지자 지방에서는 豪族들이 할거하는 현상을 빚게 되었다. 9세기 말 後百濟 後高句麗의 등장은 하대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 기존의 신라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불교 사상계의 변화였다.

 

(1) 신라 하대 사회변동의 주역들 육두품과 호족 그리고 禪宗佛敎

 

(2) 신라 하대 불교 사상계의 변동 阿彌陀佛歸依 사상(元曉가 아미타신앙을 보급한 의도는 민중의 교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 "지배자의 타력신앙인 미타신앙은 지배자들에게는 현세적 극락이 물질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실현되므로 극락이 현세에 수현되는 신라의 불교에 부합되지만, 민중의 현실은, 극락은 죽은 뒤에나 간다는 환상에 길들이게 된 것이다." 彌勒信仰과 民衆佛敎(表一草)(한종만 편, 韓國近代佛敎의 理念과 展開, 한길사 간, 1980, 354쪽)과 선종불교의 도입

 

(3) 선죵불승의 말세의식 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新羅 四山碑銘》崔致遠 저, 李佑成 校譯, 亞細亞文化社, 1995) 중 <季世爲桑門>(74) 譯-'末法의 세상에 중[桑門]이 되었는데'(344쪽)/ 이 비문은 中和(?) 을사년(885)에 최치원이 獻康王의 명을 받아 지은 것이다. 이 때에 말법의식이 있었고, 그 얼마 지나지 않아 弓裔와 甄萱이 미륵불을 자처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4) 末世意識과 彌勒佛의 등장 궁예와 견훤은 신라 하대의 말법(말세)의식을 그들의 새 사회건설운동으로 연결시켰는데 이것이 그들 스스로 미륵불을 자처하고 나서게 된 배경이었다고 본다. "사실상 미륵불은 석가가 교화 구제하다 남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지만, 석가의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겨우 왕이나 여왕 또는 진골 계층만을 행복하게 했을 뿐 대다수 민중에게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는 사실이 거기에 포함된 것이다. 말하자면 새 세상이 와야 한다. 새 부처가 와야 한다는 것이 곧 미륵신앙이며 그런 세상이 올 테면 어서 와라! 라는 민중의 혈흔으로 이루어진 것이 미륵신앙의 희망이었다. "

 

"이런 때에 백제의 오랜 정치적 복수심이 깔려 있는 불교가 그들의 율종적(律宗的)인 자기 질서를 폭발시켜서 신라 체제에 대한 저항세력을 계승, 민중신앙으로서의 혁명을 이끌기 시작한다. 그들의 미륵신앙은 곧 현실적으로 신라를 타도하는 운동으로 표현화된 것이다. 이것이 후백제의 혁명기점이다. 후백제를 일으킨 권훤은 미륵의 화신이라 자칭하여 금산사 미륵 존불의 현신으로서 미륵 신앙의 민중 앞에 출현한 혁명가였다. 또한 신라의 왕족 출신인 궁예 역시 <멸도!>(滅都)를 외치면서 금관을 쓰고 가사를 입고 그의 아들을 보살이라고 림이며 <석가는 도적의 마음을 가졌다! 이제 나(미륵)의 때라!>하고 미륵왕자를 자칭하여 신라 타도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후백제의 견훤 역시 그의 민중 혁명의 봉기를 미륵 신앙에 의존하(이상 表, 355쪽)면서 그 자신 오랫동안의 열렬한 미륵 신앙자였다. 고려의 사가들이 구 신라 출신이었으므로 패배한 혁명에 불명예를 씌우기 십상이어서 견훤 궁예가 철저히 악한으로 묘사되었으나, 그들의 미륵 혁명은 고대사의 완료와 함께 새료운 중세사 전개의 기폭제였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견훤은 그 자신 미륵 화신이라고 한 것은 민중의 혁명적 동원에 대한 뛰어난 정술이었던 것 같다. 이 점은 여러 민중 반란에서 흔히 보이는 반란지도자의 신격화에서 나타나는 영웅상과도 일치도니다. 고려 왕건 역시 고려 건국 직전까지는 철저한 주술주의자로서의 미륵신앙을 민중의 참여 대열에 강조한 것이다".(表, 356쪽)

 

3-1-2. 고려 말기의 미륵불: "고려 말기의 정치적 난맥을 통해서 그 동안 잠재적으로 민간 신앙에 깔려 있던 미륵 신앙이 신돈의 미륵 화신 자칭으로 단기간의 폭력을 쓰다가 다시 지하로 숨어버렸다. 이처럼 사회가 올바른 안정을 잃을 때의 불안 실의 절망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는 시대에는 반드시 미륵 신앙이 등장한다. 이것은 미륵의 미래적 이상이 현실의 모순과 혼란을 극복하고 현재의 고통을 해방시키는 오랜 희망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불은 현실의 모습을 타파하는 운동으로서만 현재불이 된다는 경험적 기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表, 357쪽)

 

3-1-3. 조선후기의 미륵신앙: "조선 후기 숙종 연대의 <彌勒匪賊>, <劇賊> 장길산이 미륵설화의 전총을 이어받아 미륵 혁명을 부르짖고 나서 의적 유격전을 시도한 사실이 최근의 왕실 親鞫文書에서 밝혀진 것이다.(357쪽) 말하자면 장길산의 미륵신앙은 유교체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목적으로하여 그것이 여러 민란을 통한 민중의지로 형성된다. 미륵 신앙 자체도 장기간의 억압 밑에서 상당한 변질을 면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전투적 미륵신앙의 민중들은 남조선 사상, 정감록에 침윤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말세사관 종말론의 민중문화적 맥락과도 상통하고 있다. "

 

"민중이 신분 사회의 항구적 희생물이 되었을 때는 그 민중은 민중의식의 지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신앙에 듸해서 그 희생으로부터의 전투적 승리를 꾀하는 각성이 생겨난다. 이것이 식자쭷의 조선 후기 실학적 양심과 함께 민란으로 나타나 동학혁명에까지 자극한다. 동학 농민의 일부가 姜甑山의 증산교도였다는 사실, 증산교는 주역과 미륵신앙의 혼합이라는 사실들은 퍽 시사적이다. 또한 金一夫들의 남학교도가 동학혁명의 후천개벽의 미륵 세계를 실현하기 위하여 봉기한 것도 그렇다".(表, 358쪽)

 

"이와같이 미륵 불교는 전통적으로 우리 역사 운동에 있어서 혁명적 실천 신앙에 이바지해온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용화 세계의 주체적 실현이라는 점에서 키타 신앙과는 달리 자력 신앙이 된다. 미륵상을 도끼로 돌을 찍어 만들 듯이 미륵의 세계 역시 그들 자신의 혁명적 봉기에 의해서 이룬다는 민중의 의지가 거기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 신앙은 민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혁명신앙이며 해방 신앙임을 역사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表, 355쪽)

 

3-2. 民間信仰의 後天開闢 思想

 

3-2-1 鄭鑑錄 思想:

 

 

3-2-2 東學의 후천개벽 사상

 

동학사상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종말사상으로서 후천개벽설과 함께 출현했다. 동학적 종말론으로서 후천개벽사상은 19세기 후반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와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위기상황과 직결되었다. 동학은 19세기 한국이 당면한 역사적 종말의식을 그 전환기적 시대의 위기의식과 고뇌를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박종홍)

 

동학의 후천개벽적 종말사상은 時運觀이 작용하는데, 그 특징은:

 

① 易에 기초한 천지운세의 전환이 역사현실변혁과 직결된다는 시운론적 종말사상이다.

 

② 후천개벽은 뒤틀린 자연질서, 도덕질서, 사회질서 회복을 통해 지상낙원을 회복하는 현실적, 현재적 지상천국을 실현한다는 종말사상이다

 

③ 후천개벽은 인간만의 인본주의적 유토피아 실현을 통해서도 아닌 하늘, 땅, 사람의 협동을 통한 신 국실현을 강조한다.

 

이러한 동학적 종말사상은 단순히 식물 주기적, 구형적 우주상 아래에서의 자연순환 반복이론도 아니고 서구 발전사관이 갖는 직선적 신의 시대경륜 과정도 아닌 나선형의 순환적 상향운동이면서 항상 '지금 여기'라는 현재적 삶의 자리를 운동기점으로 삼고 우주로 사면팔방 확산해가는 질적 확산의 진화적 생명관이며 역사관이다.

 

(1) 易에 기초한 時運 종말의식:《동경대전》과《용담유사》 속에는 동양적 우주론으로서 자연의 사계절과 천지운행의 질서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易의 논리와 운동인데 그 변화는 자연법칙적 성경이면서 동시에 천지의 주재자인 천주 하느님의 조화의 자취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만물은 성쇠의 흐름의 리듬을 갖는데 우주적 주기적 운세가 동학 창도 해인 1860년을 전후로 해서 우주적 운세가 상원갑, 하원갑 각각 5만년의 주기로 전환하며 지난 하원갑 5만년의 운세가 쇠진하여 지상사회는 재난과 괴질이 돌고 사람들은 하늘의 도리와 명을 어기는 난세혼란이 나타나고 새로운 상원갑 5만년의 우주적 운세가 시작하는 운세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수운의 후천개벽적 역사 종말의식은 천지만물, 우주의 易 운세의 순화주기가 우주쇠퇴기의 절정에 도달하였고 이제 우주는 새로운 상원갑 5만년의 새로운 우주 주기가 시작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시대의식이다. 하원갑 우주시대에 인류 心田을 개발했던 유교, 불교의 인간 감화적 도덕 종교의 운세도 운이 역시 다해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새로운 宇宙曆의 우주적 리듬의 시작에 즈음하여 새로운 종교, 새로운 도덕, 새로운 세상펴기의 시대적 사명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수운 자신과 동학도들에게 사명으로 주어졌다고 믿었다. 새 시대의 창조적 운세를 타고 상승적 운세를 공유하며 하늘의 도를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서학(천주교, 기독교)과 동학(천도교)은 같은 운세를 타고 있지만 이치는 다르다고 보았다(運則一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2) 현재, 여기의 삶을 기점으로 삼고 우주로 뻗어가는 질적 확산의 현실적 후천개벽사상: 동학의 후천개벽의 종말시대는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도 아니요 죽어 도솔천에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적 왕생사상도 아니며, 우주 대자연이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새로운 우주창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우주파국적 종말론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 후천이 개벽한다는 것은 이 땅 위의 하늘, 땅, 사람의 질서와 협동이 질적으로 새로워지고 그 건강을 회복하여 영성적 생명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 동학적 새하늘이다. 하늘을 몸에 모시고(侍天主) 보국안민 광제창생하고 誠, 敬, 信을 잘 지켜나가 하늘, 땅, 인간이 건강한 생명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후천개벽의 이상이다.

 

우주생명은 우주적 생명력인 至氣의 창조적 조화이며 만물은 서로 공경하고 성실한 자세로서 생명을 대해야 한다고 수운은 강조. 세상 사람들과 만물이 同歸一體하는 全一的 생명공동체가 실현되는 것이 지상천국이라고 수운은 주장. 이기적 자기구원만이 아니라 廣濟蒼生 보국안민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의 실현이 개벽할 후천의 모습인 것이다.

 

3-2-3 甑山敎의 후천개벽설

 

증산교는 동학을 물려받았으나 자기 나름대로 한국적 종말사상과 후천개벽설을 주장하고 있다. 증산교는 초대 기독교 발생 시절의 영지주의처럼 교리신학과 종교의식은 천도교보다 언뜻 보기엔 심원한 듯하고 체계화된 듯하고 그 내용이 풍요로운 듯해도 결국은 모자이크식의 종교혼합사상에 불과하며 과학과 신화와 미신과 종교가 혼합되어 있는 그럴싸한 한국판 영지주의 형태에 불과하다.

 

[참고: 김경재, "한국인의 위기의식과 종말사상"/ "최수운의 시천주와 역사이해-원시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공동체의 빛에서 본 동학운동의 평가",〈한국사상〉15, 1977/ "동학사상과 한국기독교",〈기독교사상〉1976년 10월호/ 신일철, "정감록 해제",《한국의 민속종교사상》, 삼성판, 세계사상전집 41권/ 한우근, "동학사상의 배태",《한국사》15권, 국편/ 신일철,《동학사상의 이해》, 사회비평사, 1995 등]

 

3-2-4 기타: 金一夫들의 남학교도/

 

4. 한국 기독교의 말세의식 '천년왕국론'의 전개과정

 

4-1. 한말의 위기의식과 대부흥운동

 

4-1-1 기독교 수용 초기의 종말의식: 한말 1890년대에 출판된 전도문서에서는 말세의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한말 전도문서의 종류는 이만열《한국 기독교와 민족의식》(지식산업사, 1991)의 221쪽 주 39에 열거하였다. 그러한 문서를 검토한 결과, 절박한 위기의식이나 말세(종말)의식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내세사상만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그 몇가지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셰교문답(1895) 후에 또 셰샹에 오시겟다고 폁시뇨. 셰샹 끝날에 니?러 셰샹 사?을 심판폁시랴고 반?시 다시 오시겟다 폁시니라.

 

(2) 구셰론(1895) 2쪽 예수 ?럁샤? 때 니?면 무? 무덤안에 잇?쟈 쟝쏕내소?? 듯고 나와 착한쟈?다시살아영꿗을 엇고악한쟈?다시살아죄?밧으리라폁셧시니살며죽?거시사?의뎨일큰일이라 . 34쪽 사?이맛당히 밋을리치와맛당히폷평도?신약과구약 두셩경에잇꿁니사?이능히밋고폗폁면꿷젼에?럁이폗샹평안폁야무궁한락이잇고꿁후에예수가그령혼을영졉폁야텬당이올나가셰샹마즈막날에예수가그령혼과육신을합폁야다시살녀폑긔텬당에잇서쏑복을누려영원이근심과한탄과곡읍과병환과꿁망폁?모?고란이업?니라.

 

(3) 미이미교회강례(1890). 46-47 ?라건?말긔예니?러능히뭇셩도로더브러함께마라나게폁샤우리쥬예수키리스도?힘닙어기리사라나?복을누리게폁럁쇼셔대개쥬가두번믡강림폁샤반?시영화와위엄으로써이셰샹을심판폁실꿡그때륙디와다못바다가온?장꿁지낸바죽엄이졍히다니러나뵈여키리스도스로써일즉이능히만물을이긔리니

 

(4) 복음요꿁(福音要史,1895). 74쪽 그후에 그비러먹?사?이죽으매켠꿁들이그사?을텬당으로?려가지그사?이텬당에?가난치아니폁매부쟈집상에鏑?음식을기?리지아니폁고텬당에임의올나온착한사?들과?치잔쏡를먹으니 그후에부쟈가또한죽어장꿁지내엿스매그령혼이악한사?들가?곳으로가셔제죄로인폁야형벌밧을때에쳐다보다가

 

(5) 초학언문(1895), 11쪽 하?님이 로여폁신즉 텬디꿁이에 용납지 못평거시오 죽은 후에 형벌이 클지라 , 12쪽 우리가 예수의 공로? 감샤폁지 안코 예수의 뜻을 꽅죵치 아니면 후셰에 앙화가 ?우 크리라.

 

이 때에 아직 절박한 위기의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기독교가 수용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대적인 상황을 아직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고, 또한 당시의 국가적인 위기는 충군애국적인 정열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때는 기독교 신자들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독립협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국왕탄신기념행사를 주도하고 있을 정도로 '출애급적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성경번역사적인 면에서 볼 때, 아직 <요한계시록>이 완역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식자들이나 일찍이 로스역 <예수셩교젼셔>(1887)를 볼 수 있었던 신자들은 <요안鏡묵시록>에 접했겠지만 대부분은 1900년의 신약성경의 출판과 더불어 <요한계시록>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요한?시>가 국내에서 처음 간행된 것은 1900년이다.(《대한성서공회사 II》옥성득 유대영 이만열, 대한성서공회, 1994, 49쪽 참조) 따라서 그 이전에는 <요한계시록>에 따라 종말과 천년왕국을 이야기하기는 곤란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4-1-2 국권회복운동과 대부흥운동

 

190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 민족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에 대한 민족의 존망이었다. 나라가 망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 이 시점은 으레 말세의식이나 재림신앙이 확산되어질 것같은 시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기독교인들에게서 충군애국적인 행동들은 보이지만, 심각한 말세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또 대부흥운동을 통해 죄를 심각하게 회개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천년왕국에 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예상을 깨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1907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은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전개될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시대상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흥운동에서는 대부분 위기의식에 수반되고 있던 말세의식이나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의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경회 도중 감사가 와서 '이제는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고 국가의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당시 그들이 행했던 성경공부와 기도의 내용에서 그러한 절박성이나 종말의식은 발견되지 않는다.

 

부흥운동 기간 중에 개최된 査經會에서는 주로 '예수의 생애'를 비롯하여 '마가복음' '사도신경' '십계명' '小要理]問答' 등과 고린도전서 12장 27절, 요한 1서 등을 학습하였고, 순회하던 선교사들은 '십계명' '사도신경'과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르쳤다.(노대준, <1907년 개신교 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성격>, 《한국기독교사연구》제15 16호, 1987, 10쪽) 또 1905년 12월 김해에서 개최된 교회지도자 사경회에서 참석한 지도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경 10장을 뽑게 한 적이 있다. 그들은 마태 1장, 5 6 7장, 28장, 무가 2장 요한 3장, 14장 로마 12장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을 뽑았다.(Annual Report of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1906,p.251) 이 성경 장들의 내용은 예수의 탄생과 대쇽적인 죽음과 부활, 산상보훈 하나님의 사랑 등이었다. 노대준의 지적과 같이, "부흥운동 기간 동안 타민족의 억압에서 유태민족을 구출해 낼 것을 예언한 구약의 예언서가 학습되어지지 않았던 사실을 특기할 만하다"(노대준, 위의 논문, 10쪽)고 할 것이다. 물론 구약의 예언서나 사기를 통해 민족의식이나 애국심을 고취하지 못했던 것은 아직도 구약성경이 완역되지 못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이 완역, 출판된 것은 1911년이지만, 단권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1906년에 <챵셰긔> <시편>에 이어, 1907년에는 <잠언> <츌애굽긔> <삼무엘젼후> <말라기> 등이었고, 나머지는 번역이 진행 중에 있었다.《대한성서공회사 II》75-76쪽)

 

부흥운동에서 나타난 기도에는 위기의식이 회개운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국가 위난의 원인을, 그것이 선교사들의 유도에 의한 것이든 그들 스스로의 판당에 의해서건, 자신들의 죄에서 찾으려 하였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손과 머리로 방바닥을 쳤고 그들의 비명과 고함소리는 마치 군대라는 이름의 악마가 그들을 찢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흐느끼며 죄악에 찬 더러운 생활을 고백했다. "지옥의 뚜껑을 열어놓은 것같았다. 살인, 간음, 생각할 수도 없는 불결한 짓들로부터 방화, 술취함, 강도, 도둑질, 거짓말, 증오, 저주,시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혐오스러운 것들이 고백되어졌다."(Mrs.W.M.Baird, The Spirit Mong Pyeng Yang Students, K.M.F. Vol III No.5, p.65) 한국의 위기가 '죄의 결과'였다는 것을 믿게된 한국 신자들은 이제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고 이제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인을 미워했던 그러한 '죄'들이 바로 국가 위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망하게 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기는 해도 그것이 바로 말세의식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왜 한국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위기의식을 종교적인 말세(종말)의식과 관련시키지 못했을까. 몇가지 유추가 가능하다. 그들은 새로 수용된 기독교를 통해서 아직 조국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고 그들의 신앙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구약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충군애국심과 위기의식을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종교적인 종말의식과 연관시키지 못하였던 것이다. 대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선교사들이, 민족주의적이기는 하나 아직도 신앙적이 지도를 받아야 하는 이들을, 그들의 정교분리적이고 문명개화론적인 관점에서 한국 교회 신자들을 종말(말세)의식을 통한 새사회건설이라는 방향보다는 야만적인 죄의 회개를 통한 문명화의 길로 유도했던 것이 아닐까. 극단적인 문명화의 강조는 때로는 침략세력도 수용토록 하며, 반대로 말세의식의 마비는 새사회건설에 대한 희망을 포기토록 하기 때문이다.

 

4-2 재림 묵시록 사상의 소개와 천년왕국론의 수용(1910년대)

 

4-2-1 재림사상과 묵시록의 소개: 예수의 재림과 그와 관련된 책자가 간행된 것은,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13년이다. 이 해에 3권의 책이 출판된다. 그것도 장로회 감리회 및 동양선교회(성결교)에서 나란히 각각 출판되었다. 출판시기 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믡림》(1913. 4, 국판 267쪽)은 原著者 W.E.Blackston의 JESUS IS COMING을 선교사 게일(J.S.Gale)이 번역한 것으로, 출판사는 朝鮮耶蘇敎書會이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되겠지만, 이 책은 세대주의적 천년왕국론을 주장하고 있는 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示錄釋義》(1913. 7, 국판 113쪽)는 서울 西部 宗橋에서 목회하고 있던 조선인 洪鍾肅 목사가 저술한 것으로, 역시 朝鮮耶蘇敎書에서 간행하였으며, 당시 監理會 長老司로 있던 全約瑟의 서문을 썼다. 저자의 <?示錄釋義例言>에는 묵시록을 저술한 시기를 주후 95,6년이라 하고 그 연대를 '我朝鮮新羅婆娑王十六年高句麗太祖王三十年百濟己婁王七年'에 해당한다고 기술한 점이 주목되며, 또한 "本錄의 主旨? 當時에 異端者와 反對黨이 蜂起폁야 敎會와 信徒를 殘害폑으로 勢甚危殆라故로 主?셔 親現폁샤 將次 世上이 屈服평 것과 末日審判에 惡黨의 當평 刑罰이며 聖徒의 受평 光榮의 如何폑을 요한으로 全敎會의게 告知폁야 安慰폁시고 諸徒의 信仰心을 堅確케 폁며 希望心을 深切케 폑이라"에서 '희망심을 심절케 함'이라고 한 대목에서, 비로소 日帝治下에서 이 묵시록을 釋義하지 않으면 안될 저자의 심정의 일단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조선에서 쓰여진 ?示錄 註釋類로서는 가장 먼저 간행되었다는 점이다.(김상준의 것이 먼저 썼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시록주셕》(1913. 10, 국판 183쪽)은 '동양셔원간'으로, 編輯兼發行者가 閔濬鎬이며, 책의 내표지에서 중국책을 번역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1913년에 갑자기 재림과 묵시록에 관한 주석서를 간행한 데 대해서는 마땅한 설명을 할 수 없다. 다만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지 3년 정도가 되면서 조선 교인들의 신앙에 새로운 사회를 고대하는 심정의 일단이 말세의식 내지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도록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첨언할 것은 바로 그 전해에 한국을 강점할 때에 일본의 王이었던 明治 부부가 명달 사이로 사망하였다는 점이다.

 

그 뒤 조선교회는 계속 예수의 재림과 묵시록에 관한 서적들을 간행하는데 약기하면 다음과 같다.

 

《?시록폡셕》(Mimi Scharffenberg 저, 史嚴泰 편집, 1914..1, 三天使之奇別社)

 

《?示錄講義》(金相濬, 1918.12, 朝鮮耶蘇敎監理會)

 

《묵시록주셕》(譯述人 郭安連, 1922, 朝鮮耶蘇敎書會)

 

《쥬믡림론》(J.H.Brooks 저, ?위량 역, 1922, 朝鮮耶蘇敎書會)

 

《來世論》(賈玉銘 원저, 鄭載冕 역, 李訥瑞 감수, 1931, 長老會神學校)

 

《확실한 재림》(놀만 해리슨, 白南奭 許大殿 역술, 1932, 朝鮮耶蘇敎書會)

 

《오는 소망》(허대전 편, 1934, 조선야소교장로회 종교교육부)

 

《계시록대요》(蘇安論, 1936, 조선예수교서회)

 

이 밖에도 당시에 간행되던 신학잡지에 말세론이나 예수의 재림에 관한 논문들이 있다. (예: 卞鴻圭, 末世論, <神學世界>, 1939.2 등이 있다.)⇒⇒⇒위의 책들과 논문들에 대한 분석을 요한다.

 

4-2-2 '千年王國論'의 내용

 

前千年王國論이 전재됨/ 이 주장은 이러한 '예수재림서' 및 묵시록주석이 나오기 전에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게일이 쓴 The Vanguard(1904, 심현녀 역, '선구자', 1993, 대한기독교서회)에 의하면, 역서 이창직 등의 학설이해를 소개)

 

4-3 말세론, 천년왕국 신앙과 그 운동(1920년대)

 

4-3-1 말세론의 발전: 길선부의 말세론을 비롯하여 박형룡, 이명직, 김응조 등의 말세론이 소개되었다.

 

4-3-2 재림운동의 전개: 3.1운동의 좌절로 이 세상에서 독립된 나라(왕국) 건국에 대한 소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을 때, 이 소망은 예수의 재림신앙으로 변화되고 그에 따라 기독교회 안에서는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대망하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예수의 가시적인 재림이 나타나지 않음에 대하여 견디다 못해 실현된 예수재림 운동으로서 황국주(예수의 화신으로 자처함 자신의 목이 잘리고 예수의 머리가 그 위에 붙었다고 하며 "머리도 예수의 머리, 피도 예수의 피, 마음도 예수의 마음 전부 예수화하였다"고 함)와 柳明花의 '降神劇事件'(1927년 柳가 원산 감리교회에 나타나 에수가 자기에게 친림했다고 하면서 예수의 흉내를 내고 다른 여성에게 강신극을 벌일 사건으로, 이러한 자칭 入神女에 도취하여 李龍道도 "주께서 유명화에게 친림하셨습니다. 주께서 주리 조선에 이렇게 친림하셨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최대의 영광입니다"고까지 하였다.) 및 문선명 등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4-3-3 천년왕국 신앙과 신사참배 반대투쟁: 재림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천년왕국을 실현한다는 시온산제국운동이 일제말기에는 전개되는 한편 확고한 재림신앙과 천년왕국 신앙을 기초로 신사참배반대투쟁이 전개되었다. 일제 말기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민족적 양심을 지킬 수 있었던 신앙적 사상적 힘은 바로 이 재림신앙과 천년왕국 신앙에 근거하고 있었다.(박용규, 藏田雅彦 등의 저서 참조)

 

<기독교의 시간관> (자료)

 

-말세의식과 천년왕국설을 중심으로-

 

∨《초기한국기독교사연구》, 이덕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말세론", 전경연, 〈기독교계〉1,2 1957년 9

 

∨ "말세론", 한에녹, 〈기독교계〉1,2, 1957년 9

 

∨ "말세론", 이명직, 〈기독교계〉1,2, 1957년 9

 

∨ "말세론", 유영순, 〈기독교계〉1,2, 1957년 9

 

∨ "말세론", 윤형중, 〈기독교계〉1,2, 1957년 9

 

∨ "말세론", 김석찬, 〈기독교계〉1,2, 1957년 9

 

∨ 정봉조, "천년왕국론", 〈파수군〉102(1960.9)

 

∨ 박윤선, 천년왕국 문제, 〈신학정론〉합1,2, 1983년 9

 

∨ 서남동, "종말과 역사", 〈기상〉3.1(1959.1)

 

∨ 전경연, "말세신앙과 한국교회",〈기상〉5,6, 1961년 6월

 

∨ 홍현설, "종말론이해를 중심으로-한국교회의 신학적 비전",〈기상〉8.5(1964.5), 66-69

 

∨ 특집 "말세의식과 종말의식"

 

최영실-예수와 하나님나라운동 / 이상호-종말사상 출현의 역사적 배경 / 왕대일-묵시문학 운동의 역사이해 / 이종성-천년왕국 신앙과 그리스도교 역사관 / 김철손-계시록에 나타난 숫자풀이문제 / 김경재-한국인의 위기의식과 종말사상 / 편집부-한국교회와 이단적 종말론의 실상 〈기상〉386(1991.2),

 

∨ 변홍규, "말세론", 〈신학세계〉24, 1, 1939년 2월

 

∨ 조형래, "오늘날 종말론의 혼돈과 종말론의바른 이해", 1992, 장신대대학원 석사논문

 

∨ 조정구, "한국 기독교인의 말세론 이해", 1982, 감리교신학대학원 석사논문

 

∨ 김기범, "길선주의 부흥운동", 한신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4

 

∨ 최종태, "계시록 해석방법 비교연구", 총신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5

 

∨ 김경재, "최수운의 시천주와 역사의 이해-원시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공동체의 빛에서 본 동 학운동의 평가",〈한국사상〉15, 1977

 

∨ 김경재, "동학사상과 한국기독교", 〈기독교사상〉1976년 10월호

 

∨ 김성건, "종말론 대두에 관한 사회학적 분서",〈신학사상〉74, 1991년 가을호

 

∨ 심포지엄, "민중사와 구원사-동학민중운동을 중심으로",〈신학사상〉86, 1994년 가을호

 

∨ 심포지엄, "종말사상의 유행과 한국교회",〈신학사상〉74, 1991년 가을호

 

김용덕, 동학에서 본 서학, 동아문화4, 1965

 

신정임, 정감록의 사상적 영향, 한국사상1.2합집, 1959

 

윤성법, 천도교와 기독교의 영향, 기독교와 한국사상, 1964

 

조용일, 동학사상과 창조의 원리, 신인간, 1950년 12월호

 

최석우, 서학에서 본 동학, 교회사연구1, 1977

 

황성규, 예수의 종말론, 신학연구16, 1975

 

∨ 이정배, 종말사상의 유행과 한국교회, 신학사상74, 1991년 가을호

 

"초기기독교 천년왕국사상과 불교의 미륵사상 비교연구", 오택한, 한신대대학원, 1990

 

"한국교회의 요한계시록 해석 경향 연구", 김형일, 목원대학교, 1990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과 한국교회의 말세신앙", 이종성, 〈敎神〉5, 1972년 8월

 

조향록, "기독교종말론의 바른 이해",〈기상〉12.9(1968.9)

 

손봉호, "한국교회의 내세관-올바른 내세관 정립의 필요성",〈신학지남〉43.3(1976.9)

 

이원설, "최근의 세속적 종말론",〈신학지남〉41.2(1974.6)

 

《한국미륵사상연구》, 동국대, 동국대출판부, 1987

 

《동학과 농민봉기》, 한우근, 일조각, 1994

 

《동학천도교사》, 김완수, 사법행정문화원, 1993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신용하, 일조각, 1993

 

《동학이론의 개요》, 김철, 동선사, 1992

 

신일철, "정감록 해제",《한국의 민속종교사상》, 삼성판, 세계사상전집 41권

 

한우근, "동학사상의 배태",《한국사》15권, 국편

 

신일철,《동학사상의 이해》, 사회비평사, 1995

 

1. 수운 최제우의 동학사상

 

2. 동학사상의 전개

 

3. 최제우의 역사의식

 

4. 최시형의 범천론적 동학사상

 

5.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6. 동학사상과 도교적 성격문제

 

7. 동학사상의 기본자료

 

8. 천도교의 민족운동

 

9. 동학혁명의 사상사적 성격

 

이덕주, "영계 길선주 목사의 말세신앙"

 

길선주의 말세신앙은 3 1운동에 연후하여 서대문 감옥 수감되었던 당시에 배태. 1920년 10월 무죄로 석방되기까지 2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계시록을 1만번 읽음.

 

감옥 체험은 자기반성으로 시작되었고 약소국가에겐 평화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그 평화가 위로부터 내려오는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백.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이 역사에 간섭하시기를 기다리며 그 결정적 순간이 빨리 도래하도록 기도할 뿐이다. 이러한 종교체험이 1920년대말 ~ 1930년대초의 사회변화 현상 속에서 말세신앙 내지는 재림신앙으로 정착.

 

길선주가 급격하게 말세를 강조하게 된 것은 1931년부터이다. 그해에 만보산사건이 터지면서 그는 "예루살렘 멸망""평양 멸망"을 외쳤고 자기 고향 평양의 멸망을 예언. 1935년 11월 20일 강서군 고창교회 사경회 인도중 졸도하여 운명하면서 "何不能言 何時能言 有口何益 不入平"이라는 글을 남김. 그가 보았던 평양은 멸망받을 도성, 타락한 예루살렘이었다.

 

그만큼 그에겐 예수의 재림이 임박하게 느껴졌던 것이고 그가 살던 시대는 '末世之末'로 여겼다.

 

□ 말세신앙의 내용

 

길선주의 말세신앙은 1919년 3 1운동 때의 옥중체험과 1920~30년대의 사회변화에 대한 현실 체험에 의해 구체화됨. 연원을 따지면 이미 그가 기독교에 입신하던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감. 이를 알 수 있는 책에는《해타론》(1904),《만사성취》(1916)《말세론》(1926, 1935)이 있음.

 

《해타론》: 《천로역정》을 본따 쓴 계몽적이 책. 소원국(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성취국(각자 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때의 세계)으로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 식으로 쓴 책.

 

《만사성취》:성취국 다음에 영생국이란 무궁안식세계를 덧붙여 성취국에서 영생국으로 가는 방법은 예 수의 구원밖에 없음.

 

이러한 소원성-->성취국-->영생국에 이르는 역사흐름이 《말세론》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재림을 중심한 말세신앙으로 보다 구체화.

 

p. 514 도표 참조.

 

그의 재림론은 전천년설(前千年說:premillennianism)이다. 즉 예수의 재림이 천년왕국 설립 이전에 이루어진다고 보는 주장.

 

*예수의 재림----1차 공중재림(부활한 성도와 지상의 참된 성도가 휴거)

 

7년 대환란(들려올라가지 못한 성도와 교회들이 받는 것)

 

전반3년 반:모세와 엘리야 같은 증인에 의해 전도받음

 

후반3년 반:환란이 더 심해져 두 증인이 순교하고 대신 천사가 공중에서 전도

 

2차 재림(7년 대환란 때 숨어서 신앙을 지킨 성도--지상재림 때 천년세계의 주인공들이 되어 지상낙원을 이룸. 갇혔던 마귀들이 일시 석방되어 세상을 뒤집어 엎음. 이 때 천 년세계에 살던 교인들이 시험을 당함.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 있음)

 

최후의 심판

 

심판 후 세 가지 세상이 됨

 

천상의 낙원(공중, 새예루살렘)

 

지상의 낙원(땅위, 새하늘과 새땅)

 

지옥

 

→길선주 말세론의 특징은 지상낙원 설정, 그는 이것을 변화무궁세계라 함.

 

"예수 밟으시던 지구는 새땅이 되어 영원히 잇슬거시오 에덴의 위치이든 지구는 소각될 거시 아니라 불꽃 검으로 수호하든 에덴은 다시 나타나서 이 지구는 무궁 안식세계의 장소가 될 거시다(《말세학 》제12장 "변화무궁세계")"

 

물론 천상의 낙원, 새 예루살렘보다야 하위개념이었지만 지상의 낙원, 변화무궁세계의 실현이 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진다고 봄으로 그의 말세신앙은 단순한 현실도피의 신앙이 아님. 그가 꿈꾼 천년세계는 바로 이 지구 위에서 이루어질 세계였지 결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아니었다. 물론 낙원이 이루어질 땅의 현실과 지금의 현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대로의 현실이 낙원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며 낙원이 되기까지는 7년 대환란→천년세계→최후의 심판이라는 시련과 환란을 겪어야 한다.

 

길선주로서는 일제의 조선 지배라는 현실은 결코 만족할 수는 없었으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음. 만족할 수 있는 현실로 변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간섭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예수의 재림이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재림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1930년대 조선의 교인들이 길선주의 설교에 그토록 감동했고 재림을 고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 타개할 수 없는 현실 극복의 길을 신앙에서 찾았던 것이다.

 

 

말 세 론(기독교계, 1957년 9월호)

 

I. 全景淵

 

종말론과 말세론을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음.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는 종말론을 강조하고 있다.

 

원시기독교의 종말론은 인간의 사후엔 어떠한 상태가 기다리고 있을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異敎의 박해중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에서 승리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최후의 승리를 확증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또 그같이 믿을 수밖에 없다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신학에서의 종말론은 다르다. 재래의 신학에서는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과 교회, 신앙과 윤리를 모두 논술한 다름에 마지막장에 이르러 역사의 끝과 죽음과 심판과 최후의 완성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나 현대의 신학에서는 예수의 선교의 중심이 하나님 나라의 선포였고 원시기독교의 신앙의 태도가 그리스도의 급격한 來臨을 기대함에서 성립되었던 것과 같이 종말을 기대하는 태도를 일관하여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감.

 

1. 종말론 취급의 바른 태도

 

① 철저종말론 :끝이라는데 관심을 집중하고 언제, 어떻게 끝이 올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 유대교의 계 시문학운동, 열광주의, 성서주의 종말론이 이에 포함.

 

② 무시간적 종말론 :종말론의 본질적 형태는 시간과 영원, 소유와 대망, 존속과 來臨의 긴장에서 성립 된다는 것. 역사의 과정에서 이 대망과 소유가 끊임없이 서로 긴장을 이루어 생을 살게 한다. 그 들의 과거는 그들의 현재요 또 그 미래였다. 현재의 생이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면 그럴수 록 철저한 승리와 완전한 세계가 초조히 기다려지며 그것은 신앙에 있어서 이미 받은 것이다.

 

③ 생명완성의 종말론(구속사적 종말론) :인간생의 목적을 중시하면서도 현재의 구체적인 죄되고 불완전 한 생에서 영원의 징표를 찾고 영원에 이르는 旅宿의 의미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그 생을 사는 것을 주장하는 논의.

 

II. 이명직

 

1. 말세의 정의

 

區間적 말세

 

최후의 말세

 

2. 말세의 범위

 

말세는 예수께서 세상에 강생하시는 그때부터 벌써 말세는 시작되었다. 지금도 말세 범위 내에 포함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시는 그때에야 비로소 말세의 종결이 되는 것이다.

 

3. 말세의 징조

 

①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할 일(다니엘 12:10)

 

② 지식이 더 할 일(發電, 연료, 교통, 통신기관, 의학의 발달)

 

③ 사상이 분열될 일

 

④ 이스라엘의 동향(마24:32~33)

 

→말세는 예수의 재림이 있게 되므로 알 수 있다.

 

예수의 재림은 榮華→휴거→대환란시대→천년시대→종말의 대심판

 

III. 김석찬

 

1. 말세에 대한 성서연구

 

1) 말세에 대한 증거

 

① 末後에 지식이 더하리라 함(다 12:4)

 

② 복음이 천하에 전파됨(마24:14)

 

③ 이스라엘 나라 회복(사 26, 60)

 

④ 큰 전쟁의 준비(마24:7, 계 9:19, 요엘2:1~7)

 

2) 7년대환란

 

① 7년대환란의 유래(단 9: 24~27)

 

② 7년대환란의 이분기(단 9:27)

 

③ 미운 물건을 성지에 세움(단 11:31)

 

④ 극한 북방군대 내침(겔 38:15)

 

⑤ 7년대환란과 성도들

 

⑥ 소위 제3차전과 성서예언

 

3)천년왕국

 

① 천년왕국의 의의

 

천은 완전한 수인 10수에다가 백배한 수이다. 천이라 함은 메시야 왕국의 기간을 가리킴.

 

상징적인 숫자.

 

② 3종의 천년설

 

전천년설(예수재림전설)

 

후천년설(예수재림후설)

 

무천년설(천년 아닌 천년설)

 

③ 천년왕국과 이스라엘 회복

 

④ 신자의 부활과 공중휴거

 

IV. 윤형중

 

말세문제가 대두된 것은 18세기 말엽부터. 불란서 혁명, 나폴레온 전쟁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에 예언한 말세가 되었다고 하기 시작. 이 사상은 移民들을 따라 미국에로 건너가 더 한층 세력을 얻음.(윌리암 밀러, 스노우)

 

1845년 1월 침례교로부터 파문을 당한 밀러와 그 추종자들은 뉴욕주 올바니에서 한 교파를 세웠는데 이것이 재림교파의 祖宗이다.

 

그 다음 등장한 예언자는 럿셀. 그 후임으로 루터포드.

 

V. 한에녹

 

1. 전통적 천년전파

 

이레니우수, 벵겔, 잔, 고데 등 유럽의 학자들.

 

하나님이 엿새동안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현 역사는 6,000년이 될 것이다. 6,000년이 차갈 때 적 그리스도가 일어나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오 심지어 주의 성전에까지 서 볼 것이지만 끝에 가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나타나 그의 원수를 쳐물리치고 그 성도들만 먼저 부활. 그의 나라를 천년동안 이 땅위에 이루시리라고 하였다. 그 때에 예루살렘이 다시 설 것이요 땅의 소산은 풍성케 될 것이며 평화와 공의가 창성하리라 함(이상은 부활 승천하였다가 첫 번 오실 것)

 

천년이 찬 후에 주께서 오시어 마지막 심판을 하실 것이오(두번째 오실 것) 새하늘과 새땅으로 믿는 자를 다 옮겨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있을 것을 말함.

 

이 학설 중에 말일에 이르러 신도들이 재난을 받으리라고 하였으나 우리가 오늘날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7년 지상대재란 설과 공중 7년 잔치란 것은 없음.

 

2. 변질적 전천년파

 

19세기 말기에 生.

 

따비, 스코휠, 케밀란, 쉐훠

 

19세기에 자유주의신학이 대두하게 될 때 현세문제를 너무 치중하였고 자연주의적 진화론으로 문제를 해결에보려고 하였다. 이것을 반항하기 위햐여 대두. 이들은 반응적으로 내세를 치중하고 현세 곧 교회를 네세와 완전히 분립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식일 성수을 반대.

 

3. 전통적 천년후파

 

어거스틴

 

전통적 전파학설의 일부를 수정

 

4. 변질적 천년후파

 

19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후파설이 불행히 그 시대에 흐르고 있던 진화론과 합류하여 이 변질적후파설을 조성.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주의 재림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력으로 되는 것이라고 함.

 

5. 무천년파

 

전후파의 싸움으로 인하여서 전통적 후파를 引繼하여 내려온 것이 이 학설.

 

* 저자의 견해

 

천년왕국의 의의----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데 한 필요한 과정으로 이해

 

천년왕국초에 있을 재림

 

공중7년잔치와 지상7년 대재란설을 불성립

 

천년후에 있을 재림(이상의 내용을 표로 도식화 시킴 p. 53)

 

VI. 유영순

 

1. 말세의 개념

 

이는 사도 당시부터 있었음. 바로 구원이 임박한 시기.

 

2. 예수께서 일러주신 말세

 

1)예루살렘의 멸망. 유대인들이 민족적 국가적으로 당하는 말세

 

2)세상 끝 곧 예수의 재강림으로 말미암아 현세상이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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