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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김홍일 <10> 세계교회협의회 장학생으로 유학 기회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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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협동운동의 무료 간병사업은 나눔의 집에서 만난 한 노인 부부의 어려움을 돕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폐암이 뇌까지 전이된 할아버지와 척추가 안 좋아 걷지를 못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할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할머니의 수술비를 도와 달라고 했다. 입원해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던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눔의 집에서 수술비를 지급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뜻밖의 상황을 맞이했다. 입원을 위해서는 간병인이 필요했는데 수술 후 간병인이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도 간병인이 나눔의 집에서 비용을 지급하길 기다리며 병원으로 계속 출근했던 것이다. 간병비는 수술비만큼이나 나왔다. 수술이 필요해도 간병인을 둘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눔의 집은 무료 간병사업을 시작했다. 가난한 주민들이 간병 협동공동체를 형성해 그 일을 함께했다.

외환위기 직후 국민들은 실업과 빈곤 문제에 많은 관심을 뒀다. 종교계와 노동계는 물론이고 언론과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실업자를 지원하는 일에 참여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불황에 취업 지원 활동은 쉽지 않았다. 실업자들이 산업구조조정으로 변화된 환경에서도 새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건설일용노동조합 운동을 하던 선배와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소장을 만나 실업 문제를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풀어가자고 논의했다. 이 자리가 계기가 돼 실업자를 지원하는 전국 단체들과 함께 99년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를 결성하며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나눔의 집과 함께 서울 노원구에서 모색하고 실천하던 일들을 전국의 실업단체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지방 출장과 강의, 발제를 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전국의 많은 실업단체 활동가들을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듣고 배우던 시기였다. 경기가 차츰 회복되며 시민단체들의 실업지원 사업을 하던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도 남은 국민 성금 400억원을 기본재산으로 재단법인 전환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 참여하던 분으로부터 새로 출범하는 재단의 준비와 출범, 초기 정착 활동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반상근 형태로 1년 정도 일하게 됐다.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포천 나눔의 집을 오가며 공동체 준비를 했고, 새롭게 출범한 재단에서 함께 일할 실무자들을 인선하고 조직을 정비하던 중 뜻밖의 상황이 다가왔다. 한국교회협의회 장학위원장으로 있던 박경조 신부가 매년 한 사람씩 세계교회협의회 장학금으로 해외에 나가 공부할 사람을 지원하는 일에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선배인 박 신부는 10년 넘도록 지원받은 성공회 성직자가 없어 나를 추천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20여년을 영어와 담을 쌓고 지낸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 준비 등으로 바빴기에 난감함을 교회협의회 실무자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실무자는 내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서류라도 제출하라고 당부했다. 장학금 신청서를 제출한 이들의 면면이 화려했기에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여러 신청자 중 내가 선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학금을 포기할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포기한다면 이후 혜택을 받을 사람들도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정리=김동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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