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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9> 목소리 회복 안돼 ‘끝났어’ 절망… 성대복원수술에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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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다. 만약 그게 잘 이뤄지지 않으면 나는 힘들어했다. 그게 잘못이냐고 되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할 바를 열심히 하고,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뭐가 나쁜가. 당신은 그래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것 아닌가.”

목소리를 잃고 침묵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노래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다. 그렇게 살아온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이런 달란트, 지혜, 환경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걸 망각했다는 거다. 내가 열심히 해서 그런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재능이나 환경을 내 뜻대로만 사용한다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자르브뤼켄 극장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회복에만 집중하도록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극장 측의 무한한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연습을 해야 했다. 무대에 오를 날을 꿈꾸며 조금씩 소리를 내봤다. ‘학교종이 땡땡땡’에 도전했다. 첫 음절을 못 불렀다. 다시 불러봤다. 음계조차 안 나왔다.

한번은 극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솔리스트 스테파니아가 찾아왔다. 집에만 있는 내게 함께 운동을 가자고 제안했다. 몸이 건강해야 소리도 좋아진다는 그의 말에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다. 수영을 잘하지는 못해도 남들 하는 만큼은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에 들어갔다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죽을 뻔했다.

수술 이후 횡경막에 마비가 왔기에 숨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숨을 참으려고 해도 바람 빠지듯 그대로 ‘훅∼’ 빠져나가 버렸다. 스테파니아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상태가 이 정도까진 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걸어 다니는 데는 전혀 문제없었지만 뛰는 것도 안 되는 상태였다. 성대뿐 아니라 횡경막까지 문제가 생긴 거다. 노래할 수 있는 몸, 즉 악기가 엉망이 된 거다. 바이올린으로 치자면 줄이 아니라 몸체가 절반으로 부러진 것과 같았다.

그땐 ‘이제 끝났어’란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내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음성 및 이비인후과 재활치료를 받던 중 무너진 성대를 세울 수 있는 성대복원수술이 있다는 거다. 물론 수술 성공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수술법을 개발한 이가 일본인 이시키 박사였다. 일본에 있는 와지마 도타로가 생각났다. 공연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지만 와지마라면 나를 도와줄 것 같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천천히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몇 마디 인사를 건넸다. 내 목소리를 들은 와지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재철, 기다려. 내가 지금 갈게”라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독일에서 와지마를 만났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에게 이시키 박사의 성대복원수술에 대한 얘기를 했다. 와지마는 일본에서 박사를 찾아보겠다고 했고, 만약 이시키 박사에게 수술을 받게 된다면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는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키 박사를 만났다. 내가 노래하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며 수술을 부탁했다고 한다. 며칠 뒤 와지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수술 날짜를 잡았어. 나는 신앙은 없지만 네가 믿는 하나님이 너를 끝까지 책임지실 거라 믿어. 곧 만나자 친구.”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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