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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예배 365-5월 15일] 하나님 안에 감싸여 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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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425장(통 21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욥기 3장 20∼26절

말씀 : 이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욥의 탄원입니다. 모태에서 생겨나지 않았기를, 태어나자마자 죽기를 바라던 일이 실현되지 않았으니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죽지 않는 것을 탄식합니다.

그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고난당하는 자(직역: 힘겹게 일하는 자) 마음이 아픈 자(영혼이 쓴 자)인 욥은 지금 빛(생명연장) 아래 있습니다.(20절) 육체·정신적으로 번뇌하면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보며 숟갈을 들기 전에 신음소리부터 냅니다. 마치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듯 그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납니다.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26절)

21∼22절에 무덤과 보배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어서 죽을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그의 심정이 무덤이란 말과 연결돼 도굴꾼이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에 비유됐습니다. 둘째로 무덤에 숨겨진 보배를 찾아내려 아무리 애써도 도굴꾼 마음대로 되지 않듯 죽기를 바라는 그의 탄식도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꿈에도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자기 능력으로는 현재의 고통을 견뎌내기가 죽음보다 더 힘들다는 고백입니다. 고통을 해결하는 길은 죽음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는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차라리 죽고 싶은 심경을 토로한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모세(민 11:15) 엘리야(왕상 19:4) 예레미야(20장) 등 모두가 기라성 같은 인물입니다. 욥도 그런 심정을 몇 차례 보여줬습니다.(욥 6:8∼13, 7:15∼16 등 여러 곳)

죽기를 바라는 것은 욥에게 살고 싶은 욕망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욥의 인생은 잘나가다 중간에 허물어졌습니다. 그런 현실 앞에서 이대로 인생을 끝낼 수 없다는 의지를 그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길이 감추어진 남자에게 어이하여 하나님은 그 주위를 감싸고 계신가.”(23절 직역) 하나님은 ‘그의 주위에, 그의 집 주위에,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의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치셨습니다.(1:10) ‘가죽의 둘레에 가죽으로’ 두르셨습니다.(2:4) 진실로 하나님은 욥과 그 인생에 울타리를 해 놓으셨습니다. 이를 잘 아는 욥은 하나님께서 이대로 죽지 않게 보호하시리라 믿으며 마치 죽기를 바라는 듯이 푸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 환란을 피해 있을 곳이요, 고난과 역경에서 한숨을 돌리는 자리일 뿐입니다. 욥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목숨을 하나님 손에 맡기는 그의 모습은 반항인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끊을 수 없는 신뢰를 나타냅니다. 비록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욥은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욥은 죽음의 문턱을 오가면서도 이 믿음과 신뢰를 끝까지 자기 생명줄로 알고 붙들었습니다.

하나님, 힘겹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매일 저희 인생과 목숨을 둘러싸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현진 목사(서울 수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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