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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첨부 1


발행자명 大韓예수敎 長老會 光州改革神學硏究院

학술지명 光神論壇

권 7 호 1 출판일 1995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고광필 學校法人 光神學園 長老會光州神學校 조직신학교수

 

2-637-9501-06 pp. 201-254

 

<목차>

 

Ⅰ.칼빈 이전의 성경 해석 논리

1.유대인의 성경 해석(Jewish Approach to Biblical Interpretation)

 

Ⅱ.사도들의 해석 논리

 

Ⅲ.성 어거스틴의 성경 해석 논리

 

Ⅳ.알렉산드리아 학파(The Alexandrian School)의 성경 해석 논리

 

Ⅴ.안디옥학파(The Antiochene School)의 성경 해석 논리

 

Ⅵ.중세 성경 해석 논리

 

Ⅶ.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1.성경의 필요성

2.칼빈의 성경관(Calvin's View of Scripture)

3.인문주의 사상과 성경 해석

4.칼빈의 성경 해석 원리

5.성경 해석과 성령의 조명

6.성경 해석과 해석 자의 자질

7.성경 해석 방법

 

Ⅷ,성경 해석 원리의 적용

 

Ⅸ.결 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All which are given by inspiration of God, to be the rule of faith and life)이다. 1) 성경은 하나님 의 감동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요, 신앙과 삶 의 유일한 규범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된 것은 성경은 신앙과 삶 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성경 외에 다른 방법으로 사는 것은 신 자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 다

 

Karlfried Froehlich에 의하면 교회사는 성경 해석사로 이해할 수 있다. 2) 환언하면 성경 해석은 교회의 신앙과 삶을 형성하는데 영향 을 주며 교회의 신앙과 삶은 성경 해석에 영향을 준다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교파 형성의 주된 요인은 사회적 경제적 정 치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경 해석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각 교파의 성경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그 교파에 속한 신자의 신앙과 삶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사를 보면 여러 가지 이단들이 있다. 그중에 아리우스는 예수 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탄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 되지 않으며 예수님을 우주의 조성자인 회람의 데미어즈나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슈퍼맨 정도로 이해했다.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으로 규정했다. "나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에게서 나셨으며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요, 빛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셨으나지으심을 받지 않으셨으며,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와 한 본체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는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셨고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몸을 입으 시고 사람이 되시어서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 에 달리셨다" . 3) 요한 복음 1:1은 예수님의 신성을 명확히 증거하고 있 는데도 불구하고 아리우스는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 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논리를 성경의 신적 기원보다도 더 우위에 놓으려는 데서 잘못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 해석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인 사 고를 성경의 신적 권위보다 앞세우려 하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온 것이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때 성경을 올바로 해석한다는 것 은 불가능하다.

 

세상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도 인간의 행동은 해석된 것이라고 한 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은 인식하던 인식하지 않던 간에 어떤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가령 요즈음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신당 창당이나 구당 모임이나 민주당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옳고 그름의 차원을 떠나서 그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신앙과 살의 규범은 성경 해석에 기인한다. 문제는 어떻게 성경을 올바로 해석해서 성경이 기록하구 말씀대로 올바른 신앙을 갖고 그대로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처럼 문화적으로 다원화되고 사회 적으로 혼탁하고 도덕적으로 부패되고 사상과 신앙으로 살기보다는 감정과 느낌으로 살려고 하는 풍조가 강한 시대에서 올바른 신앙과 삶은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신자로서 정체성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이것은 이들을 지도하고 교육해야 할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정체성이란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앙과 삼을 사느냐에 따라서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에 따라서 살면 개혁주의 신자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고 자유주의 신앙에 따라서 살면 자유주의 정체성을 갖는 신자가 되는 것이다. 올바 른 성경 해석과 그에 입각한 삶을 살도록 교육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이런 위기적 인 상황에서 장로 교의 창시자요 성경 해석 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해석자로 알려진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칼빈 학자들의 대다수는 칼빈을 성경 신학자로 특성 지우고 있다. 예를 들면 벤자민 워필드는 칼빈은 독자적인 성경 연구자로 봤다. 4) John H. Leith는 칼빈을 성경 신학자(Theologian of the Bible) 로, Paul Traugott Fuhrmann은 성경 해석자(the expositor of Scripture)로. T.H.L. Parker는 성경 해석자(the Biblical Exposition)로 특성 지운다. 5) 칼빈 신학은 그의 성경 해석에 기초하 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6) Leith에 의하면 칼빈은 성경 신학자라고 했다. 그의 신학은 성경의 주석에서 왔다고 했다. 7)

 

칼빈은 제네바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자(Reader in Holy Scriptul'e)로서 그의 일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네바교인들이 믿어 야 할 고백(Confession of Faith which all the citizens and inhabitants of Geneva and the subjects of the country must promise to keep and hold 1536)에서 성경만이 믿음과 종 교의 규범 (Scripture alone as rule of faith and religion)이라 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죽기 전 고별사에서 칼빈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라고 고백했으며 자신은 평생 동안 성경을 의도적으로 왜 곡되게 해석한 적이 없었다고 했으며 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성경의 단순성을 드러내는데 전념했다고 했다. 종교개혁에서 중요시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라고 살도레도 추기경에게 말했다. 칼빈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교회의 개혁의 필요성(Necessity of Reforming the Church)은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 다. 8) Richard 4. Muller는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서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고 했다. 9) 참으로 칼빈은 성경 해석을 통해 서 장로교회 신학을 확립한 위대한 신학자이며 목회자이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신학자는 위대한 영향을 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그 시대를 타락케 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성경 해석은 신앙과 살의 룰을 규정하는 기초가정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는 세상 학문에서 해석 방법을 도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경 관에 기초해 있으며 성경 해석 원리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문제는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어떻게 찾아내는 가 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성경의 진정한 의미가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라고 한다면 그 말은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해석자는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명료하게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이 글은 칼빈의 성경 해석학을 조직적으로 전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칼빈 이전의 해석학의 전통(고대)을 살피면서 칼빈 성경 해석학의 독특성을 부각시키며 칼빈의 해석학의 논리인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natural and obvious meaning of Scripture)를 명료화하는데 이 글의 초점을 두며 이 성경의 의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는 가운데 목회자 갱신의 방향을 간접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Ⅰ.칼빈 이전의 성경 해석 논리

 

1.유대인의 성경 해석(Jewish Approach to Biblical Interpretation)

 

유대인들의 성경 해석 논리를 다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유대인 의 랍비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반은 문서이다. 토라(모세 오경)는 인간 구원을 위한 성경의 핵심이다. 성경은 여러 가지 차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해석 목적은 인간 실존에 적용하여 의미 있는 삼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10) 예를 들면 토라는 성문 화된 49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 의하면 성경은 단순 한 문자적인 의미, 미드라쉬(Midrash), 폐샤, 알레고리칼, 모형론적 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a) 문자 적인 의미

 

유대인들의 랍비의 문자적인 해석은 과도한 문자주의나(highper- literalism) 자꾸주의 (letterism)에 속한다. Shammai학파의 신명 기 6:7주석에서 그 방법대로 시행하기를 강조했다(Impress them (the commandments) on your childen. Talk about them when you sit at home and when walk along the road when you lie down and when you get up). 11)

 

b) 미드라쉬(midrash)

 

"미드라쉬"는 히브리말로 해석 (interpretation) 혹은 사본 연구 (textual study)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드라쉬는 바리새인들과 유대인 랍비들의 해석이다. Rene Block에 의하면 미드라쉬는 랍비 들의 성경 해석 방법으로서 네 가지의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i) 해석 의 기초는 성경이다. ii) 설교적 이다 iii)성경의 텍스트의 의미를 명료 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한다. iv)성경의 텍스트를 현상황에 적용시키 려고 노력한다. v) 율법적인 것에서는 성경에서 다루지 아니하는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서 율법과 율례에 숨어 있는 원리를 발견하고자 노력 한다. 12)

 

c) 폐샤(Posher)

 

20세기 중반에 쿰란의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써 알려진 유대인들의 성경 해석 방법으로서 유대인들이 인위적인 구성 방법으로만 계시될 수 있는 선지서는 숨어 있는 비밀의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폐샤는 언제나 꿈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라 오는 꿈 이야기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비밀스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 믿었다.

 

d) 알레고리

 

1세기에 유대인으로서 알레고리를 성경 해석에 사용한 가장 탁월한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이 5796;. 그에 의하면 성경에는 두가 지 차원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째, 문자적인 의미와 둘째, 문자 뒤 에 숨어 있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자 뒤에 숨어 있는 의미는 텍스트와 는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다른 것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 다. 13)

 

e) 모형론적인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모형론적인 해석 방법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과 사람 사이에 있는 상관관계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모형론적인 상관관계는 언제 나 기록된 말씀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모 형론적인 해석 방법은 예언과 알레고리칼 방법과 구별되는데 예언에서 말하는 텍스트는 주로 예견하다(predict)는 점에서 알레고리칼 방법 은 상관관계를 숨겨진 텍스트에서 찾지만 그것을 표시하는 역사 속에 서 발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형론적인 해석 방법은 텍스트의 역사적 인 의미를 무시하지 않으며 역사적인 의미에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 스라엘의 역사에서 어떤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때가 차매 일어 날 패의 미래의 사건을 미리서 예표(prefigure)한다는 것이다. 14)

 

 

Ⅱ.사도들의 해석 논리

 

david S. Rockery에 의하면 사도들의 성경 해석학은 대체적으 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Christocentric Perspective)이라고 한 다. 15)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이야기식 (narrative form)으로 다루지만, 사도 바울은 복음서와는 달리 예 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교회의 특수사정에 따라서 복음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재해석한다. 예를 들면 고전 15장 은 부활이 없다고 말한 사람들의 잘못된 견해에 대해서 부활의 역사성 과 의미를 편지의 형식으로 기술하면서 변증하고 또한 험증하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일상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예 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음식을 잡수시고 성경을 가르치셨다는 사 실을 묘사함으로서 부활의 역사성을 말하고 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는 것도 헛되며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자라고 했다. '만약 없다면"이라는 가정 부정법을 써서 부활 의미의 중요성을 변증하고 험증했다.

 

 

Ⅲ.성 어거스틴의 성경 해석 논리

 

성 어거스틴의 성경 해석은 알레고리칼 해석과 문자적인 해석을 병 행했다. 어거스틴은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3장까지 주석했다. Van der Meersm는 어거스틴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을으로 믿는 학생이었 으며 그는 글자 그대로 성경 안에서 산 사람( the believing Bible student... He literally lived in Holy Scripture)이라고 했다. 16) 그는 창세기 주석에서 창세기는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문자적인 의미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라고 고백했다. 참으로 성경 해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명저 『기독교 교리』 (De Christina Doctrina) 는 이방인을 신자가 되게끔 하는 성경 교육 방법과 성경을 가르치는 방 법(제 삼권)을 제시하고 있다. 17) Philip Schaff는 성 어스틴의 De Christina Doctrina (On Christian Doctrine〔knowledge〕) 는 최초의 성경 해석학이au 고대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 며 그 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18) 이 책은 4부로 된 것인데 처음 3부는 주후 397년 그리고 마지막 4부는 주후 426년에 완성했다. 그는 그의 『재고록』에서 자신의 책을 성경을 해석하는 데 도 움을 주기 위해서 저술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어거 스틴은 그의 저술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룰(논리)을 제시했다. 이레니 우스가 성경 해석 논리로 진리의 척도 (the cannon of the truth) 를 제시하고 터툴리안이 믿음의 규칙 (the rule of faith)이라 했다면 어거스틴은 사랑의 규칙 (the rule of charity)을 말했다 예를 들면 이레니우스는 이 교회는 비록 전세계에 걸쳐 있지만.. 사도들과 그 제 자들로부터 이 신앙을 전한다로 사도 신경의 전신의 내용을 시작한다. "한 하나님, 전능하신 성부를 믿는다. 그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다 그리고 한 분 그리스도 예 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그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섭리와 강림 ,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수난과 죽은자로부터의 부활 과 승천과, 만물을 총괄(에베소 1: 10)하고 인류전체의 모든 육체를 새 롭게 일으키시기 위해 영광 중에 하늘에서 장차 나타나실 것을 선포하 셨다.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 즉 우리 주요 하나님이시요 구세주이시요 왕되신 분께 하늘과... 그 발에 만물 이 모두 무릎을 꿇게(빌2: 10-11)하시고 모든 혀가 그를 고백하기 위함 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을 하시는데 악한 영 (엡6: 12)과 하락으로 인해 불경건하고 불의하고 사악하고 속된자들과 함께 반역의 상태로 떨어진 천사들을 영원한 불에 던지실 것이다. 그러 나 의롭고 거룩한자들과,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 다른 이들은 회개함으 로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사랑 안에서 견인한 자들에게는 은혜로써 불멸을 주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그들을 두르실 것이다 " 19) 터틀리안은 "이제 신앙의 규칙에 대하여... 너희는 다음과 같이 믿음을 규정한 것 을 알아야 한다"로 시작한다. 신앙의 규칙과 진리의 척도는 성경에서 도출되며 그래서 이 규칙이 올바른 성경 해석을 컨트롤하는 원리로 사 용되었으며 이들은 정통 신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해석하는 룰은 아주 중하다고 했으며 그 이유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여서 가르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에 기초한 삶을 형성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점에서 성경 해석자는 책임 성 있는 해석과 그 해석에 의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호소력이 있고 권 위를 가지고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성경으로 부터 오지만 세상적인 학문이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성 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경을 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조명 (divine illumination)을 통 해서 도우심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간절하 게 기도하며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1부에서는 성경의 해석하는 데는 두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성경의 저자가 의도하는 의미를 찾는 방법(mode)이요, 다른 하나는 찾은 의미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고 했다. 첫째 방법을 제1- 3부까지 다루고 제4부에서는 둘째 방법을 다룬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모든 가르침은 사물(things)에 대해서 가르치 거나 언어(signs)에 대해서 가르친다고 봤다. 사물과 언어는 상관관계 가 있다. 첫째, 언어는 무엇을 표시 혹은 제시 (signify)하는 사물이 다 (signs are things which are used to signify something) . 20) 둘째. 언어는 우리 감각을 초월해서 무엇을 생각토록 하는 사물이다 (A sign is a thing which causes us to think of something beyond the impression the thing itself makes upon the senses). 21) 이 사실로부터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물을 언어를 통해서 배우며 언어는 사물을 우리에게 제시한 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사물을 이해하며 언어를 통해서 세계와 관 계를 가진다. 여기서 언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현대 언어철학에서 본다면 어거스틴은 언어철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제 2부에서 어거스틴은 언어에는 자연적인 언어(natural sign/ signa naturalia)와 일상적인 언어(conventional sign/ signa data)가 있다고 했다. 자연적인 언어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지만 무엇에 대한 지식을 전달한다. 예를 들면, 연기라는 언 어는 불을 연상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연기라는 언어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불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연기는 불 이 있는 곳에서 나타나는 직접적으로 경험되어지는 천상 흑은 증상이 다. 그러나 일상적인 언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 즉 사상, 감 정,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 가령 성경에 나오는 언어는 성경 저자의 의 도, 사상,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분명한 성경 언어의 의미는 원문을 보거나 문맥을 통해서, 또한 여러 번역 본을 비교함으로써 밝 혀질 수 있는 것이다.

 

제 3부에서는 하석하기 어려운 언어에 대해서 다룬다. 이것은 은유 적인 언어 (figurative language)인데 혼동을 일으키는 것은 문자 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을 은유적으로 해석한다든지 은유적으로 해석해 야 할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온다. 성경에 경건한 생활 (purity life)과 을바른 교리 (soundness of doctrine)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은 은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22) 여기서 경건한 생활이란 하나 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계가 있으며, 올바른 교리 흑은 가르침은 하 나님과 이웃에 대한 지식과 관계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해하기 어려 운 성경 구절은 분명한 것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23)

 

어거스틴에 의하면 사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 데 즐겨야 할 사 물(thing to be enjoyed)이 있으며, 사용될 사물(thing to be used)이 있으며 , 즐겨야 하고 사용될 사물(things which use and enjoy)이 있다 우리가 영원토록 즐거워해야 할 대상은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한다. 그러나 사용의 대상은 우리를 만족과 행 복케 하는 것을 돕는 수단이 된다. 우리를 만족케 하고 행복하게 하는 대상(object)은 인간이 아니요 세상도 아니요 지고의 선이시요 참 인 간의 행복이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만약 우리가 사용해야 할 수단을 만족케 하는 대상으로 삼으면 그 인생은 방황하게 되고 타락하 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만족을 얻고자 하 지만 그것을 얻고 나면 허무하게 되고 또 다시 영원한 행복을 주는 것 을 찾아야만 하며 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 용의 대상이다. 그러나 세상 것을 사랑하게 되면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 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신다.

 

성경은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 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 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어거스틴에 의하 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성경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 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신자가 행해야 할 삶의 규범이다. 하나님은 우 리가 즐겨야 할 영원한 대상이요 이웃은 하나님 사랑을 통해서 서로 교 제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올바른 성경 해석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는데 있으며 그렇게 하는 성경 해석은 설령 저자의 의도 를 잘못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틀린 성경 해석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 하면 잘못된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 다 보면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기 때&# 47928;이다. 24)

 

어거스틴에 의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인정 한 것을 희망함으로써 살아가려 희망한 것을 사랑으로 소유하게 된다. 25) 성경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야 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 는 자기가 해석한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권위를 가지고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성경해석 논리는 하나님 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에 기초한 사랑의 논리(the rule of Charity)이다.

 

 

Ⅳ.알렉산드리아 학파(The Alexandrian School)의 성경 해석 논리

 

풍유적인 해석학(allegorical Hermeneutics)은 주후 2-3세기 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생겨난 학파로서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한 방법 이다. 이 학파의 대표적인 사람은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 (Origin)이다. 클레멘트와 오리겐이 살았을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당 대의 석학들이 사는 중심지였으며 당시의 최고의 도서관(70만 장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도시는 플로틴누스와 암모니우스사게우스 에 의해서 창시된 신 플라톤주의 , 바실데스의 영지주의 , 필로의 사상을 따른 헬라적 유대주의와, 클레멘트와 오리전의 플라톤주의가 한데 엉 켜 끓고 있는 도시였다고 한다. 26)

 

풍유적인 성경 해석학의 선구자는 헬라적 유대인 필로(Philio)로서 그는 희랍 철학을 이용하여 성경을 해석하고자 했다.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자적인 의미는 성경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없고 알레고리칼 해석을 통해서만 성경의 깊은 의미를 파악 할 수 있다고 믿었다. 27)

 

알레고리칼 성경 해석학의 대표자는 클레멘트와 오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성경을 믿음의 규칙에 의해서 해석하는 것을 중요시했 지만 당시 영지주의 자들이나 헬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규칙 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이해되었 다고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학을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가 미한 알레고리칼 성경해석 방법을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이런 접에서 본다면 그들의 성경 해석학은 변증적인 측면에서 발전시킨 것으로 생 각할 수 있다.

 

클레멘트에 의하면 성경에는 한 가지 의미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 미가 있으며 성경의 영적인 의미는 단순히 우리의 관찰이나 경험에 의 해서 발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레고리칼 해석에 의해서 발견되어진 다고 봤다. 성경의 문자적 인 의 미는 성경의 주된 의미가 아니라 이차적 인 의미라고 했다. 클레멘트는 플라톤의 철학과 알레고리킬 방법을 조 화하여 영지주의자의 잘못된 지식(false gnosis)에 반대하여 성경의 진정한 지식 (true gnosis)을 얻고자 했다.

 

오리겐은 최초의 조직 신학자이며 성경 신학자인 그는 신플라톤주 의의 영향을 받았다. 클레멘트와 같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의 깊은 의미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며 영적인 의미라고 봤다. 그는 인간의 구 성 요소를 인식론의 기초로 하여 인간이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된 것같 이 성경의 의미도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 세 가지는 문자적 인 의미(literal or physical), 도덕적인 의미(moral or psychical sense), 영적인 의미(allegorical or intellectual sense)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깊은 의미는 영적인 의미라고 했다. 28) 세 가지 차원의 성경의 의미는 성경에서 한가지 차원의 의미(문자적인 의미)를 주장한 안디옥 학파와 다르다. 문자적인 의미란 성경에 여러 차원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 차원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 성경의 각 언어에는 하나의 의미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 에서 오리겐의 알레고리칼 성경 해석은 그의 성경관과 신플라톤 철학 에 의거한 것이다. 29)

 

알레고리는 희랍에서 기원이 되어지며 신의 메시지에는 신비스러 운 의미가 있기 때문에 문자적인 의미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고 봤다. 알레고리칼 해석(영적 형이상학적)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영적으로 해 석할 수 없는 것은 신적인 기원이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신적인 것은 영원하고 비역사적이며 초월적인 진리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것은 찬 게성이 있고 현상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오리천도 이러한 사상에 영향 을 받았다. 30) Paul K. Jewett에 의하면 알레고리칼 성경 해석과 알 레고리의 해석은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했다. 31) 발레고리는 고정되고 인정을 받는 문학의 한 형식이다(an allegory is a fixed and recognized form of literature). 성경에도 알레고리가 있다. 은 유적인 표현이 그 중의 하나이다. 발레고리를 해석하는 것은 은유적인 해석(metaphorical interpretation)이다. 그러나 알레고리칼 해 석은 알레고리의 해석이 아니다. 알레고리의 해석은 은유적인 해석이 다. 그렇지만 은유의 문자적인 의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점이 발레고리의 해석과 알레고리칼 해석의 차이다. 하바드 대학 희랍 문 학과 철학교수인 H.A. Wolfson은 그의 명저 『파일로』라는 책에서 알레고리칼 해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알레고리칼 해석은 텍스트 에 있는 무엇을 리스트와 관계없이 해석하는 방법이다(The allegorical method essentially meant the interpretation of a text in terms of something else, irrespective of what that something else is). 32)

 

알레고리칼 성경 해석의 가장 좋은 예는 어거스틴의 사마리아 사람 비유(눅 10:29-37)에서 볼 수 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여리고로 여 행하던 사람은 아담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하늘 도성이다. 아담은 그 축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여리고는 달을 의미하면서 인간의 도 덕성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달은 만삭되었다가 반달이 되고 결국에는 이울고 마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담을 공격한도 적들은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다. 저들이 아담을 때리고 옷을 벗긴 것은 그의 도덕성 을 갈취하고 죄를 짓게 만든 것이다 그들은 그를 거의 죽은 상태로 내 어버리고 떠났다. 그를 도와皐逞? 아니하고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 인은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는 구약의 제사장과 사역 자들이다. 사마리 아인이란 말은 보호자란 뜻이 있다. 따라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 자신 을 일컫는 것이다. 상처를 싸매는 것은 죄를 덮음을 의미하고, 기름은 소망의 위로를 의미한다. 그리고 포도주는 열심히 일할 것에 대한 권 고이다. 인간을 태운 짐승은 인간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을 믿 음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옮겨진 주막은 하늘 도성으로 돌아가는 순 례자들의 발걸음을 잠시 쉬게 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그리고 선한 사 마리아인이 여관주인에게 준 동전 두 개는 이 생과 장차 오는 생에 대 한 약속이거나 교회 에 준 두 성례를 의미한다. 여관 주인은 사도 바울 이다" . 33)

 

오리겐에 의하면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문자 적인 의미를 초월한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봤다. 세상에 있는 것은 하 늘에 있는 것의 그림자로 본 것이다. 환언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적 인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알레고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자적인 의미는 성경의 깊은 의미가 될 수 없으며 감 추어진 신령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리겐은 주로 성경 에서 문자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찾고자 했다. 예를 들면 창세기에 서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해석하면서 인 간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이 아니며 인간의 내면만 하 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했다. 34) 여기서도 오리겐은 문자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으며 영적인 의미야말로 진정한 의미 라고 찬다. 그렇지만 오리겐은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의 중요성도 말했 다.

 

오리겐은 기독교를 반박한 『셀수스에 반대』 (Against Celsus)에서 문자적인 의미의 중요성을 세 가지로 말했다. 첫째, 성경은사실적이고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있다. 둘째, 단순한 문자적인 의미는 평 신도의 신앙을 북돋운다. 셋째. 문자적인 의미는 변증적인 면이 있으며 성경을 공부하도록 돕는다. 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겐에 의하면 성경 은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성경의 텍스트에 숨겨있는 깊은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서 신자로 하여금 하 나님과 연합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알레고리칼 성경 해 석은 성경의 역사성을 무시하며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영해함으로써 성경의 본뜻을 곡해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Ⅴ.안디옥학파(The Antiochene School)의 성경 해석 논리

 

안디옥학파는 역사적 그리고 모형론적 해석학(Literal- historical and typological hermeneutics)으로 특성 지워진다. 안디옥학파는 안디옥에서 기인된다. 안디옥은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최초로 이방인 신자를 크리스천이라고 불였던 곳이며 동방 제국의 수 도였다. 안디옥학파에 의하면 성경의 주된 의미는 역사적인 의미 즉 문 자적인 의미라고 믿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가성경의 깊은 의미를 알 레고리칼 방법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안디옥학파는 성 경의 깊은 의미는 역사적 문법적인 방법 (theoria/θεωρια)에 의해서 얻 어진다고 봤다. 36)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theoria을 통해서 모형을 찾는 것이다. 성경은 구속사이다. 구속사이기 때문에 예언과 성취가 있고 그 가운데 모형이 있다.

 

안디옥학파의 선구자인 Diodore of Tarsus는 성경 해석에 있어 서 성경은 theoria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알레 고리와 테오리아의 차이』 (On the Difference between Theoria and Allegory/τιs διαφορορα και αλληyοpιαs))라는 책 을 썼지만 아리안 주의자들에 의해 불타서 없어졌다. 참으로 애석한 일 이다 그는 우리는 영적인 해석이나 theoria을 금하지 않는다. 왜냐하 면 역사적인 이야기는 theoria를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theoria는 탁월한 통찰력의 기초요 하부 구조이다. 그러나 theoria를 역사적인 제초가 업이 사용한다면 결국은 그것은 theoria가 아니라 allegory 가 되어 버린다(We do not forbid the higher interpretation and theoria. for the historical narrative does not exclude it, but is on the contrary the basis and substructure of loftier insights... We must , however, be on our guard against letting the theoria do away with the historical basic, for the result would then be. not theoria, but allegory)고 말했다. 37)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성경에 서 문자적인 의미를 무시하게 하는 것은 결국 알레고리칼 해석이 된다 는 것이며, theoria라는 말은 영적인 통찰력 혹은 관찰을 의미한다. 38) 디오도레의 의해서 배운 두 사람이 Theodore of Mopsuestia와 John Chrysostom이다. Mopsuestia는 성경의 문법적인 구조를 중요시했으며 성경을 역사적 상황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성경 의 역사성과 문자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theoria를 사용하는 것은 알레 고리칼 해석의 결과를 가져온다. 안디옥학파는 성경에서 문자적인 의 미가 불가능할 때 모형론적으로 해석했다.

 

모형(type)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τυποs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닳음(resemblance). 유사성(likeness), 비슷함(similarity)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모형론적인 해석은 구약을 해석하는데 사용된 해석으로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신약은 예언의 성취라는 상관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은 구속사로서 구약의 사건은 다소 불분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데 기초하고있다.

 

안디옥학파의 대표자는 John Chrysostom이다. 그는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문법적 의미를 중요시했으며 성경은 하나님이 저자이시며 동시에 인간의 언어로 쓰여 있음을 중요시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그림자의 형이상학적 세계 이해에 중점을 둔다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궁극적인 실제는 세상의 사실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

 

크리소스톰에 의하면, 성경에서 인간의 연약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을 크릿소스톰은 synkatabasis (God's gracious acceptance of human limitations/astheneia)라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의 한계성을 고려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쓰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 언어의 정확성과 단순성을 말한다. 39) 그는 알레고리칼 성경 해석은 올바르지 아니하며 신자를 잘못되게 이끈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실례는 잠언 5:17-19, 이샤야 8:7-8, 그리고 에스겔17장으로 든다. 이들은 알레고리이지만 크리소스톰은 은유적으로 해석한다. 갈라디아서 4:22-24에서 사도 바울의 알레고리를 은유적으로 해석한다. "바울은 언어를 잘못 사용하여 예형(豫型)을 비유라고 하였다. 바울의 진의는 이것이다. 즉 역사 자체는 명백한 의미를 소유할 뿐 아니라 다른 것도 일러준다. 그래서 비유라고 불린다. 그러나 무엇을 일러주는가? 현존하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By a misue of language he{Paul} called the type allegory. What he means is this: the history itself not only has the apparent meaning but also proclaims other matters: therefore, it is called allegory But what did it proclaim? Nothing other than everything that now is). 40) 그는 안디옥학파의 theoria를 예술과 비교해서 성경의 두 가지 의미 (역사적, 모형론적 의미)의 관계를 보여준다. "진리가 실현되기까지는 예형(豫型)에 진리라는 명칭을 준다 그러나 진리가 성취되면 그 명칭 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緖畵(회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다. 예술가가 왕을 스케치하지만 그 위에 도색 되기 전에는 그 그림은 왕이 아니다. 그리고 그 위에 도색이 될 때 진리 때문에 그 型(형)이 감 추어지며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며 그 때 비로소 우리들은 '이 왕을 보 라'하게 된다' (The type is given the name of the truth until the truth is about to come, but when the truth has come, the name is no longer used. . Similarly in the painting: AN artists sketches a king, but until the colars are apllied he is not called a king; and when they are put on the type is hidden by the truth and is not visible; and then we Bay, 'Behold the King'). 41) 모형론적 의미는 윤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상의 최종적인 문자적인 의미는 모형론적인 의미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는 성경은 분명하게 쓰여졌다고 봤다. 따라 서 성경의 명료성을 강조했으며 성경의 콘택스에 의한 문자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Ⅵ.중세 성경 해석 논리

 

중세에 있어서 성경 해석은 알레고리칼 해석을 네 가지 계층의 의미로 구분했다. Wayne G. McCown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문자 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주며, 발 레고리는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가를 보여주며, 도덕적인 의미는 우리의 믿음이 생활의 규칙을 주며. 신비적인 의미는 어디에서 우리의 영적인 투쟁이 끝나는가를 보여준다(The letter shows us what God and our fathers did. The allegory shows us where our faith is hidden. the moral meaning gives us rules of daily life. The anagogy shows us where we end our strife). 그러나 Mark S. Burrows에 의하면 중세 후기에는 성 경과 전통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경향으로 갔다고 했다. 42) 전통과 성경의 동시적인 상관관계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한다 현대적으로 말 하면 두 지평의 융합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텍스트와 해석자의 관계가 동시적이라는 사실이다. 칼빈의 입장에서 보면 텍스 트와 해석자의 관계는 동시적이 아니라 텍스트와 성령님에 의존적이 다. 중세 성경 해석은 텍스트보다는 해석자의 관점을 더 중요시함으로 서 하나님 말씀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Ⅶ.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

 

Paul L. Lehmann에 의하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칼빈은 루터보 다더 명료하고 단순하며. 성경 해석사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43) Kemper Fullerton은 할인은 기독교 역사 에 있어서 최초로 성경을 학문적으로 해석한 사람이(the first scientific interpreter in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라 했다. 44) Fullerton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칼빈과 루터는 모두 문법적 역사적 의미를 성경 해석의 원리(exegetical principle of the grammatic-historical sense)로 삼았다. 루터는 모든 성경 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왜서 역사적 콘택스트를 무시하고 모든 성경의 텍스트에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무리한 기 독론 중심의 해석은 반대했다. 45) 칼빈의 성경 해석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빈의 성경의 필요성, 성경관, 인문주의 영향. 말씀과 성령 의 관계, 해석자의 자질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성경 해석 의 논리는 성경에서 도출했기 때문이다.

 

1.성경의 필요성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양심과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 때문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그나 름대로의 종교성을 갖고 있다. 부적, 섬 지방에 있는 많은 미신, 고사 지내는 행위 등은 왜곡된 종교성의 표출이다. 사실 무 신론이라는 언어 자체가 모순된 말이다. 이미 그 말 속에는 신의 존재 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준다(롬1 : 19).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은 고의적인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위엄은 인간의 이해력을 능가함으로 하나 님을 탐구하기보다는 예배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조 역 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생각하도록 하셨다. 성경은 창조의 세계를 보이지 않은 것들의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표상이 아니면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세계를 우리에게 표상하기 때문이다(롬 1:20, 히 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나 종교의 씨앗을 통해서 는 참다운 하나님의 지식을 알 수 없다. 우리가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타락을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게 할 뿐이다. 구속주이시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서 성령님이 선지자 와 사도를 감동시키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은 안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46) 이 말은 메타포(은유)이며 우리 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눈이 아프거나 시력이 약하면 실제로 잘 볼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은 타락으로 인해서 참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이 해할 수 없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한 다. 성경이 안경이라는 은유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 이성을 보 충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케 하여 교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이성은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우리에게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고 가르쳐 준다.

 

2.칼빈의 성경관(Calvin's View of Scripture)

 

i) 성경의 저자

 

칼빈은 『강요』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지식 (1. 6-9), 성령과 구 원에 관계 (3.2) , 성경의 권위와 영감(4.8)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을 다 포함한다 성경 66권은 표면 상으로 보면 다 그 저자가 있다. 오경은 모세가 저자이다. 이사야 선지 서는 이사아가 저자이다. 사도 바울 서신은 사도 바울이 저자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자기의 말이라고 하지 않았다. 선지자들 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도 성경을 자기의 말이라고 하지 안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반증해 주지 않은가? 만약 하나님이 저자가 아니라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겠는가? 그렇다. 성경의 저자 는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어떤 부분은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문체 (a rude and unrefined style)도 있다. 47)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은가?

 

성경에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아니한 문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순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이 모순을 조정 이론 (accommod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정과 능력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케 하시 고 어머니가 어린애를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게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쉬운 말로 알기 쉽게 기록된 것이다. 이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이다. Lewis Battles에 의하면 조정 이론(God's Accommodation to human capacity/caput)은 칼빈이 창안해 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교회사를 볼 때 Origen, Augustine, Chrysostom, Hilary of Poitiers사 용했다. 그러나 칼빈의 경우는 이들과 달리 이 원리를 일관성 있게 성 경을 해석하는 원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 꿀 수 없는 갭을 매꾸는데 적용했다고 말했다. 48)

 

칼빈에 의하면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사 도들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케 하신 것이다.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지 말 성경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책이 아니 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 씀이다. 49)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절대 무오하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숨결이시며 하나 님 자신이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다(딤후3: 16).

 

성경은 우리 에게 진정한 하나님을 보여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 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주며 율법과 선지서, 복음을 통하 여 우리에게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준다. 칼빈은 신정통주의 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님과 증거로써 하나님의 말씀 (Neo-orthodox conundrums in driving a wedge between Christ as the Word and Scripture as Word in the sense of witness)을 구분하지 않는다. 성경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한다. 성경 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 마음에 성경의 권위와 진리를 증 거하며 동일한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성경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시며 , 하나님의 지혜요 말씀으로 증거하며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말씀인 그리스도 의 복음을 발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배우며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다. 50)

 

ii) 성경의 진위

 

성경의 권위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다. 칼빈이 성경의 권위를 들고 나온 이유는 성경이 신적인 권위가 없 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에서는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의 권위가 아니라 믿음과 진리의 은행으로서 교회가 성경 권위를 인정하 고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이 교회의 수장이요 성경 해석의 최후 재판관이 된다고 믿었다. Paul Lehmann에 의하면 우리 장로교에서는 성경은 믿음과 앙안의 궁극적인 규범이 성경이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의 권위는 교회예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구원 의 확실성도 성경 자체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부여한 것 처럼 보여지므로 성경의 신적 권위를 약화시킨다.

 

성경이 절대 무오한 진리가 되는 것을 교회가 결정하게 된다면 절 대적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 위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성경의 기초 아래 세워진다고 칼빈은 말했다. 51)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성령님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서 확신 되어진다. 성령님은 성경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이 우리의 지성에 계시하시고 마음에 인을 치 셔서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증거하며 확신케 한다. 이보 다 더 완벽한 증거는 없는 것이다. 52)

 

성령님의 증거나 조명을 통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한 사람에게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서 이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경의 자 증에 기인하는 것이다. 53) 성경의 자증성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가장 완 벽하게 말해 준다 성경이 스스로 그 권위와 진실성을 말한다 자증성 이란 성경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성경 해석이나 설교는 말씀 자체가 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 로 말씀하시는 설교나 해석은 자연스럽고 분명한 것이다.

 

iii) 성경의 내용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 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τα δυναμενα οε σοφιαι ει οωτεριαν δια πιστεω τη εν Χ ριω Ι ηου, 딤후3:15). 칼빈은 분들 주석에서 "구원에 충족한 지 혜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대한 아주 귀한 찬 사로 다음 구절은 그 의미를 더욱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우리를 성경의 핵심이요, 알맹이가 되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 로 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54)

 

칼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핵심이요 설계다. 또한 성 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 를가르치는 책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성경의 설계요 핵심이라 는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구약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악의 핵심 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악의 통일성을 이루는 설계요 신구약 통일성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신구악의 통일 성을 이루는 핵심이 없이는 신약과 구약을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신구약을 하나로 묶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성경의 모형론적 해석 이나 구속사적인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Von Rad는 신구약을 두개의 찬양대로 비유하면서 두 개의 찬양대가 하나의 핵심인 예수를 지칭하면서 부르는 두 개의 찬양대라고 했다. 55)

 

iv) 성경의 명료성과 단순성

 

성경은 왜 단순하고 명료한가? 두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배려 혹은 조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제약 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따 라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 쓰여졌을 경우, 우리가성 경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보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에 맞게 언어를 선택하시고 쉬운 말로 기록토록 하셨다. 환언하면, 하 나님의 말씀은 명료하고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어린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인 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없다 이것이 칼빈의 조정 이론이며 바로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배려로 말미암아 단순하고 명료하게 쓰여져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단 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해석 방법이 라고 할 수 있다. 56) 둘째는, 성경은 인간의 사상이나 논리로 쓰여진 것 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어느 곳을 읽 어도 성령님의 감동이 안된 것이 없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통일성이 있고 각성경의 개체성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배려와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단순 하고 명료한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는 칼빈의 성경관에 기초해 있고 성경으로부터 도출해 낸 것이다. 57)

 

3.인문주의 사상과 성경 해석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프랑스 인문주의자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스타일을 자쿠에스 레페브레의 서클(the circle of Jacques Lefevre)로부터 배웠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 교부들의 경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 은 사변적인 논리나 전문적인 변증법에 의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단순성과 명료성을 중요시하는 자세였다. 58) E.David Willis에 의하면 칼빈의 사상은 dialectical diastasis라기보다는 수사학적 상관관계(rhetorical correlation)라고 했다. 칼빈은 두 가지 수사학 전통에 영향을 입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변호나 토론하는 자가 토 론이나 변호하는 것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기술로서 수사학이며 다른 하나 는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듣는 자가 이해토록 설득하는 수사학이다. 후자의 수사학적인 전통이 칼빈의 사상 형성에 더욱 영향을 주었다. 더군 다나 칼빈이 법률가로서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수사학에 능통한가를 시사해 준다. 칼빈의 사상에 후자의 수사학은 믿음을 설득으로 지식을 효과적인 진리로 계시를 하나님의 능력을 낮추어서 인간의 능력에 조정한 것을 통해서 보여 진다고 월리스는 말했다. 59)

 

칼빈은 당대의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인문주의 학문을 배웠다. 수 사학적 방법이란 고전 문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성 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적인 수사학(rethorique frivole)은 무가치한(worthless rethoric) 것이다. 그러나 세례 받은 수사적인 방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된다 세상적인 지식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직접적으로는 도움이 안되지만 성령 세례를 받은 좋은 방 법은 간접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칼빈에 의하면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향에 목표를 두고 공부 해 야 한다고 본다.

 

Heinrich Bullinger는 "올바른 성경해석의 의미"(Of the sense and Right Exposition of Scripture)라는 설교에서 다섯 가지 성경 해석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성경 해석은 우리의 믿음에 동 의해야 한다. 둘째, 성경 해석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해야 한 다. 셋째, 성경 해석은 콘택스트를 고려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성경 에 의해서 해석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 해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 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60)

 

칼빈은 인문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칼빈의 사 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 사회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했다는 말은 아니다. 인문 사회학을 통해서 인문 사회학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성경에서 도출되는 성경 해석 방법과 다 르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칼빈의 성경 해석 원리

 

i) 성경 해석 목표(the goal of Biblical Interpretation)

 

칼빈은 1539년에 강요 2판을 발행한 후에 로마서 주석을 출판했 다. 이 주석의 서문에서 주석자의 가장 좋은 목표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 성경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성경의 단순성과 명료성에 기 초해야 한다(lucid brevity). 둘째 해석자는 성경 저자가 의도하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61) 그리고 칼빈은 갈라디아서(4:22) 주석에 서 성경의 진정한 의미는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verum Sensum scripurae, qui germanus esc et simplex)라고 말하고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경 해석자의 목표는 성경에서 저자가 말하는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 혹은 자연스럽 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to show) 것이 중요함을 말해 준다.

 

칼빈은 로마서 주석에서 당대의 석학들의 성경 해석 방법을 비판하 면서 맡하기를 멘랑톤의 로마서 주석은 성경의 주된 개념을 중심으로 성경을 주석을 함으로써 로마서 전체를 보기가 힘들며 부커의 주석은 너무 현학적으로 흘러서 평신도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자신의 성경 해석은 성경에서 단순하고 명료한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그 의미 에 기초하여 살기를 원했다.

 

Imbaart de la Tour도 말하기를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을 해석하 는 것은 단순하게 그러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62) Hans-Joachim Kraus도 칼빈의 성경 해석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 씀의 통일성 가운데 나타난 성경의 살아 있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고 하면서 여덟가지 성경 해셔 방법을 제시했다. 63)

 

칼빈은 성경 속에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찾았고 성경 스스로 말하도 록 했다.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는 누구나 다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반은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다.

 

5.성경 해석과 성령의 조명

 

성령과 성경 해석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칼빈에 의하면 성령의 조 명이 없이는 올바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칼빈은 문자 자체의 말씀 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아무런 효과도 유익도 줄 수 없다(the bare word has no effect or profit without the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 64) 성령에 의한 영감은 종교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모든것 위에 있다. 루터도 성경과 신자 관계를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 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 40; 의하면 말씀과 성령이다. 이 맡 을 칼빈은 더 명료하게 설명했다. "성령 없이는 말씀은 죽은 문자이다. 말씀이 없이는 성령을 환상처럼 떠다닌다"(Without Spirit, the word is a dead letter: without the Word, the Spirit flutters as an illusion). 65)

 

성령은 성경의 기자를 감동시켜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동일한 성령님은 오늘 날에도 우리를 조명하사 하나님의 말씀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확신케 한다. 66) 성령의 검으로서 말씀(ρακαιραν του πνευματο Ο εστιν ρεpα θεου )은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검 곧 하 나님의 말씀을 가지라(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엡 6:17)에서 논리적으로 되면 말씀은 검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씀이 검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말씀은 검은 검이로되 쓸모가 없 는 검이 피는 것이다. 말씀의 칼을 날쌔게 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성령 의 역사이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바로 이 때 문에 세상의 해석학이 아무리 좋고 길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 는 데는 무용지물이 된다. 다만 세상 학들이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밖 는다면 성령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칼빈은 에베소서 6:17주석 에서 성령과 말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배 소서 6:17말씀은 그것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만 이 라고 주장하면 신비주의에 흐르며 말씀만 이라고 하면 이성주의 빠지 며 말씀과 설령을 통해서 라야 진정으로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은 히브리서 4장 10절 주석에서도 성령님의 역사를 중요시했 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토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 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칼빈은 본문을 주석 하면서 하나님의 말 씀의 능력은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선포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67)

 

6.성경 해석과 해석 자의 자질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두 지평이 있다. 성경과 해석자이다. 성경 해 석은 이 두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성경과 성경을 해석하는 자이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이 두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이 두 관계를 Anthony C. Thiselton은 두 지평이라고 했다. 68) 여기서 지평이라는 말은 은유로 해석 자의 한계성을 의미한다. 두 지평은 동일하지는 않지 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상관관계에 의해서 서고의 지평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했다. 69) 그러나 칼빈의 입장 에서 보면 성경과 해석자의 관계는 상관관계라기보다는 성경과 성령에 의존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해석자는 늘 성경에 의존하려 항상 성 령의 조명을 받아서 해석자의 관점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새로워 져야 한다.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지만 해석자의 관점은 항 상 바꾸어져야 한다. 해석 자가 살고 있는 시대 상황은 변하기 때문이 다 해석자는 항상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 시대에 주시는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야 하긴 때 문이다.

 

칼빈은 1451년 그의 강요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태양과 같아서 모 든 것에 비추지만 소경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은 타 락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이해하는 데 소경이며, 그래서 우리 내적인 선생님이신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the Word of God cannot enter into our spirit unless the Spirit of God, who is the inner master, give us access to it by his illumination). 70) 중요한 것은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 씀은 인간의 하락성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는 한 본질상 항상 명료하다 ( Still it remains a fixed principle, that the word of God is not obscure, except so far as the world darkens it by its own blindness). 71) 이 말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아주 중요한 변 할 수 없는 원리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스럽고 분명한 성경의 의미는 성경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없다. 이 말은 칼빈의 성경 해석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명료하고 분명하다. 그래서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타락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성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 경을 해석하는 인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 에 의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거듭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른 경 건한 생활을 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철학적인 이론이나 논리에 의해서 추론해 낸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언어가 본문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은 아 무나 갖는 것은 아니다. 눈이 나뿐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만이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면 해석자의 관점이 늘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가?

 

i) 성경의 제자(a disciple of Scripture)가 되어야 한다. 72)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어떤 자세 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가령 우 리가 어떤 유명한 사람의 제자라고 할 때 제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 는가? 그 선생이 누구인가를 속속들이 알며 선생의 삶의 스타일을 배우 며 또 그렇게 가르치고 사는 사람을 말하여 제자라고 할 것이다. 제자 의 특성은 선생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제자가 된다는 것 은 무엇일까? 칼빈은 자기를 소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라고 소개 했다. 때문에 그는 일생 동안 말씀을 주석하고 가르치고 선포하며 일생 을 살았다. 이와같은 삶이 성경의 제자로써 사는 삶이다

 

성경에는 두 가지 하나님의 지식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 식이요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지식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성경을 이해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 의 지식을 알 수 있는가?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말하 면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칼빈도 하나님의 올바른 지식은 순종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73) 다른 말로 말하면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ii) 성령의 학교(School of Holy Spirit)에서 배워야 한다.

 

칼빈은 성경은 성령의 학교라 했다. 74) 성경은 학교이다. 그러나 이 학교는 성령님이 운영하시고 주관하시는 학교이다. 학생은 성경을 배우는 자이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충만하게 배우도록 도와 주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선생이다. 학교를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학교의 발전과 학생들의 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해한 그것에 의해서 신자의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시도록 해야 한다.

 

성경이 성령의 학교라는 말은 인문 교육이나 신학 교육이 필요 없 다는 말은 아니다. 선지자와 사도를 감동시켜 성경을 기록케 하신 분 이 성령님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지 않은 성경 해석 설교, 가르침은 생명력을 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문자적인 의미는 성령의 학교에서 배운 사람에 의해서 선포되어지고 가르쳐 지고 해석되어진다 고 할수 있다.

 

ⅲ)경건한 생활

 

칼빈은 경건을 다음과같이 정의했다. "경건의 요점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기꺼이 피하고 싶은 두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으므로 이 심판 앞에서 두렵고 떠는 마음과 태도에 있다. 오히려 참 경건이란 하나님을 주님으로 존경하며 그의 의를 수 용하고 죽을 지언정 그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은, 순수하고 참된 열심 에 있다. 이러한 열심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몰염치가 원 하는 대로 하나님을 날조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하되 하나님이 자기를 저들에게 계시하고 선포하신 대로 이해한다". 75)

 

칼빈에게 있어서 경건이란 단순히 외적인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신 앙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 참 경건한 생활이란 매사에 하나님을 주님으 로 존경하며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렇게 살 도록 변증하고 험증하는 자이다. 특별히 성경 해석과 연관하여 마지막 절에 있는 말씀을 우리는 깊게 영접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안다는 것 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계 시하고, 선포 한대로 이해한다는 말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에 그대로 혹은 성경대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존경 하고 두려워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대로 이해하는 것이 다. 경건한 살은 성경 해석이요 성경 해석은 곧 경건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7.성경 해석 방법

 

i) 역사적 문법적 성경 해석(historical grammatic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

 

Kemper Fullerton은 그의 저서 예언과 권위 (Prophecy and Authorety)에서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문법적, 역사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여기서 문법적이라는 말은 성경의 문법적인 구조와 언어를 중요시하며 역사적이라는 말은 성경 콘택스트의 역사적인 상황을 중요시하며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를 말한다. 그러면서 칼빈은 신학적인 전제와 석의적인 방법의 조화가 아니라 석의적인 방법이 신학적인 전제를 컨트롤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는 전제가 성경 해석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 역사적인 성경 해석 방법이 주도한다는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루터와 다르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신학적인 전제가 성경 해석의 방법을 인도하는 원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경을 문법적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방법을 컨트롤하는 것은 신학적인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말은 인위적으로 루터처럼 모든 성경 구절에서 예수를 찾는 것은 아니다. 환언하면 칼빈은 구약을 해석할 때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루터처럼 문법적 역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해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씨는 루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칼빈은 여자의 씨()는 삼인칭 여성 단수이지만 집단 명사로써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볼 수 없다. 칼빈에 의하? 2; 집단적 단수 명사가 한 사람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때문에 직접 여자의 씨를 예수님이라고 말하지 아니했다. 교회사를 보면 본문은 Protoevangelium(원시복음0이라고 해석한 것이 통례이다. 칼빈은 이들의 해석에 동의하면서도 본문의 지정한 의미는 사탄과 인간 사이의 계속적인 갈등이 있을 것이며 결국은 인류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제시한다고 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서 오심을 말한 거이지 직접 여자의 씨를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76) 여기서 우리가 칼빈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칼빈은 얼마나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그의 문법적 역사적인 방법에 투철하였으며 동시에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라는 신학적인 전제아 조화를 일고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캄빈에 의하면 루터처럼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지나친 예수님 중심의 성경 해석은 구약의 역사적인 의미를 약화시킨다. 구약의 메시지는 구약 시대의 언약 백성에게 약속과 희망을 주며 동시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미리서 맛을 보게 하는 것이다. 77)

 

칼빈은 성경에 알레고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알레고리를 알렉산드리아 학파처럼 역사적인 콘택스트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그 알레 고리에서 문자적인 의미, 즉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 도라 했다. 칼빈은 고후 3:6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 이라"의 주석에서 발레고리의 부당성을 말한다. 풍류적으로 성경을 해 석한 자에게 의문은 성경의 문법적 문자적인 의미를 말하며 영은 알레 고리칼 의미를 말했다. 따라서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는 의문과 같으며 알레고리칼 의미는 영적인 의미로 봤다. 그러나 칼빈에 의하면 본문은 오리겐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본문의 의미가 왜곡되었다. 그들은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고 하지 만 그것은 성경의 자연스러운 의미를 불순하게 하며(germanum scripturae sensum adulterandi) 알레고리칼 해석을 성경 해석의 규범으로 만들게 했다고 말한다. 78) 그리고 주석 하기를 하나님의 말씀 을 단순히 입으로만 전하면 그것은 죽게 하는 것이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마음에 받아들이므로 전하면 생명을 준다는 말이라고 주석했 다. 79) 따라서 칼빈은 고후 3:6은 성경의 해석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를 말하며 사도 바울이 발레고리를 해석하 는 키를 제시했다고 봤다(Paul here furnishes us with a key for expounding Scripture by allegories) .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이 칼빈은 알레고리칼 해석과 알레고리를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 80)

 

칼빈은 비유(알레고리)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비유에서 예수님 이 가르치고자 하는 비유히 목표(finis, scopus)를 찾는 것이 중요하 다고 했다. 그러면 비유의 의미는 분명해진다고 했다. 크리소스톰도 마태복음 20:1절 주석에서 우리는 비유에서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 고 비유의 목표(skopon)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We should not waste labour to explain all the details in a parable but having learned the aim[or mark :Greek skopon] for which the parable was constructed, to get hold of that and not to bother oneself with anything further). 칼빈에 의하면 비유는 비교와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13:34-35 말씀을 잘 보 면 비유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 씀하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 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I will open my mouth in parables, 1 will utter things hidden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 주님은 창세 때부 터 감추어진 것을 비유로 진술한다는 말이다. 창세 때부터 감추어진 것 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 주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했 다. 비유란 이 말씀에서 보면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to show)것이 다. 이것이 비유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천국 은 이다(the kingdom of heaven is)가 아니라 이와 같다(the kingdom of heaven will like(NIV:KJV:shall be compared to(RSV))이다. 천국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유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보여준 다. 81)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메타포를 통하여 묘사하 고 있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I am the door of the sheep, 요10:7), "나는 선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 요10: 11)에서는 천국 비유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선한 목자인 경우는 보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 국은 잘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천국 비유는 이와 같다라는 말을 썼고 선한 목자의 경우는 이다인 것이다. 언어의 사용에 따라서 그 언어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언어의 사용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한다 칼빈은 은유적인 표현을 해 석하는 데 있어서 은유적 해석은 알레고리칼 해석이 아니다. 알레고리 는 믿음의 규칙을 벗어나지 아니하는 방향에서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 를 드러내야 한다.

 

칼빈은 요한 복음 1:1=5에 대한 설교에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경 의 언어가 어떻게 문장에서 사용되는가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모르면 성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For it is important to know how Holy Scripture uses words, Surely we need not stop simply at words, but we cannot understand the teaching of God unless we know what procedure, style and language he uses.). 82) 여기서 성 경 언어의 사촌은 문맥과 문법적인 구조를 살피는 것이며 언어의 스타 일이라는 말은 성경의 장르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성경의 장르와 언어 의 사용을 보는 것은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 데 있 어서 필수적이다. 현대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이러한 사항은 아주 중요 하다. 칼빈이야말로 현대 성경 해석학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ii) 모형론적 성경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Gerhard von Rad는 구약의 모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에서 모형론(typology) 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이 아니라 상관관계(correspondence)에 있으 며 이 상관관개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 했다. 여기서 일시적이라는 말은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 있어서 일시적이라는 말이 다. 환언하면 원시적인 사건은 마지막에 이루어질 사건의 모형이라는 말이다(the primal event is a type of the final event). 83) 알레고리 (한국인 성경은 비유로 나와 있음)는 예표된 것과 이루어질 사 건 사이에 인위적인 관계를 설정하지만 모형론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관계이다. Rad에 의하면 칼빈은 구약을 모형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유지했다고 했다. Rad는 모형론적인 해석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한 한 하나님이 구약의 언약 백성들 의 역사 속에 그의 발자취를 남겼다는 상관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신구약은 한 하나님의 계시로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 하신 것이다. 그래서 신구약은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따라서, 모형론 적인 해석은 그리스도와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신구약의 통일성을 이루는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이라는 두 개의 찬양대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두개(신구약)의 찬양 대는 양편에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Rad에 의하면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의 지식은 구약 없이는 불완전한 것이라고 했다. 84) 동시에 신약 없이는 구약의 이해는 의미가 없다

 

칼빈에게 있어서 모형론은 진정한 에언이다. 모형론은 구약의 예언 과 신약의 성취라는 역학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주 석하면서 칼빈은 모든 제사 제도는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The whole cultus of the law, taken literally and not as shadows and figure[umbras et figuras] corresponding to the truth, will be utterly ridiculous). 85)

 

칼빈은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맡아서 내가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렘17:22)를 해석하면서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도록 하기 위해서 명해졌으며 사도바울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 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정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 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 16-17)에서 말함과 같이 안식일이나 절기나 월삭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types) 혹은 그림자(umbras/shadow)이며 그리스도는 모형과 그림자의 본 체라고 했다. 여기서 그림자라는 말과 본체라는 말은 서로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림자란 본체(substance)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본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그림자는 본 체가 그대로 드러나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 제도나 예 식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하여 진 것이다.

 

칼빈은 로마서 5: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 의 표상이라"(επι τω ομοιωματι τη παpαβαοεω Αδαμ ο τυπο του μελλοντο)는 주석에서 알레고리칼 해석을 반대하면서 아담은 그리스도 의 모형이라고 했다. 어떤 점에서 모형인가? 유사성의 모형이 아니라 대조적 인 모형이라고 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온 세상에 들어 오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 가 회복피고, 그리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다. 86) 아담 한 사 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한 사람으로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다 이 점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는 다르지만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아담이 죄의 모형이 라거나 그리스도가 의의 모형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다. 칼빈은 복음은 율법이 모형 아래 감추어진 것을 손을 가지고 지적해 준다고 했다( the gospel points out with finger what the law foreshadowed under the types). 87) 칼빈의 모헝론적인 해석을 안 디옥학파의 Theoira라고 비교한다면 칼빈의 theoira의 의미는 성령 의 내적인 조명을 통해서 성경의 텍스트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의 진정한 의미란 성령의 내적인 조명에 의한 성경의 자연 스럽고 분명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Ⅷ,성경 해석 원리의 적용

 

칼빈은 성경의 진정한 의미는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라고 했다. 따라서 그의 성경 해석 논리는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 내는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에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조명과 가르침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성경 해석이란 복잡한 이론이나 세상 의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 를 가지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진 후 에 중요한 것은 성경 언어 사용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두 텍스트를 예 를 들어서 살펴보자.

 

i)요한일서 4:7-8 과 4:9-10에서 자연스럽고 분명 한 의미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 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how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본문이다. 본문에서 여러 가지 주제로 설교도 할 수 있고 강의도 할 수 있다 강의를 하든 설교를 하든 기본은 본문 이해에서 출발한다. 요일 4:7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 하고 있다. 영어로 보면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이 말 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은 희랍어로 보면 에로스가 아니 라 아가페다. 그래서 기독교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사랑의 기원은 인 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인간이 가장 알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고 한 다. 그래서 무척이나 사랑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하고 사랑 받기를 원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이 말씀 한 마디는 생명의 말씀이 요, 목마른 자에게 생수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때문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 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 진정한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사랑의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랑은 서로를 인격적으로 아 는 가장 중요한 길이 된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낳았고 하나님을 안다고 했다. 그렇다. 사랑을 실천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생아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 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 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 음이라"(This is how God showed his love among us: He sent his one and only son into the world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다에서 나타난 바라는 εφανερωθη는 ψανεpοω의 부정 과거 수동형이다. 따라서 사랑이 이렇게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수동이라는 맡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 보여졌다는 말이다. 4장 10절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있다. 하나님 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심에 의해 서 보여지게 된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졌다. 우리 죄를 사하는 사죄의 은총 가운데 보여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깊은 사랑 을 알기 위해서는 사죄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며 우리도 이 세상에선 남 을 용서하는 사랑을 할 때 참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사죄의 사랑을 덧입을 때 우리는 원수까지 도 품에 안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이토록 깊고 넓은 사랑 이다. 따라서 하늘을 두루말이로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죄의 사랑은 미움과 증오 가운데 갈등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 아니랴!

 

ii) 에배소서 4:11-13

 

사울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도로 선지자로 목사와 교사 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to prepare God's people for worfis of service, so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built up unti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는 첫째, 성도를 봉사케 하며, 둘째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목회자는 성도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성도가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도록 교육시켜야 하며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하시는 교회를 세우도록 해야 한다.

 

우리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신자가 되며 그래야 이 세상의 교훈과 풍조에 밀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신자가 된다고 했다(엡4: 14) . 이런 신자가 성숙한 신자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숙한 신자가 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ale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통일성을 이룬다고 했다. 신자가 되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지 않고 우리는 성숙한 신자도 목회자도 될 수 없다. 진정한 신자가 되려면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인간학에서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 하면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불일치가 오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인정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며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것이 신자 라 했다. 이것은 우리 신자는 죄의 세력에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연약 하여서 넘어지기 쉬우며 죄를 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는 것과 민 는 것을 하나가 되게 하려면 성령님과 동행하는 살을 살아야 한다 인간의 수양이나 요가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육신의 소욕을 죽여주셔야 우리가 믿는 것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다.

 

두 가지 예에서 살펴봤듯이 성경의 의미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따라서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란 성경 말씀 그대로 반아 들이는 것이다. 그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해석인 것이다 해석 이 없는 설교 강의는 감동력이 없는 것이다.

 

 

Ⅸ.결 론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는 그가 세상 학문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이론이 아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성경해석의 논리는 믿음의 선배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이요.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에 맞게 올바로 이해하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것을 읽을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경을 풍유적으로, 안디옥학파는 모형론적으로 해석했다. 풍유적인 해석은 성경언어 이면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으며 모형론적인 해석은 성경언어 이면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찾아 내고자 했으며 모형론적인 해석은 성경의 역사적 문법적인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는 안옥학파의 영향을 받앗다고 본다.

 

칼빈은 어느 한 사람에게만 배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버리지 않고 배웠다. 그 일례가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는 모든 학문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도록 도움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가려서 좋은 것은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성경 해석 논리는 성경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를 성령님의 감동을 통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케 하신 것이다. 이것은 연약하고 제한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이며 은혜이다.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와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 의미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따라서 성경 해석 원리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칼빈은 성경을 역사적 문법적인 방법으로 해석한다. 환언하면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성경의 언어의 사용을 보는 것이다. 칼빈은 구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모형론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모형론은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언약외 구약외 약속과 신약의 성취라는 상관관계에 기초해있다.

 

오늘처럼 혼탁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해석학이 인간 이해에 중점을 두고 성경을 해석하고자 하는 시대에 칼빈의 해석논리는 성경을 게시한대로 보게 하는 성경에서 도출한 성경 해석 방법이요 나아가서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고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살게하며, 성경은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장로교회의 대원칙을 새롭게 조명하며,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이 성경의 제자가 되고 성령의 학교에서 배워서 성경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는 삶 속에서 보여주어야 할 목회자의 갱신이요 성경 해석 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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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 주의 신앙고백집』 , 김의환 목사 편역(생명의 말씀사, 1992), 18.

 

2) Biblical Hermeneutics in Historical Perspective, Mark 5. Burrow & Paul Rorem Michigan:William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1), 15. 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the 016 Testament(Kentuc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5), ix.

 

3) 「개혁 주의 신앙고백집」, 김의환 목사 편역 , 10-11

 

4) 『 칼빈.루터 어거스틴』, 벤자멘 워필드저, 한국칼빈주의연구원/편역 (기독교 문화협회 , 1988), 39.

 

5) Paul Traught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Interpretation, Vol.6 (April, 1952). John H. Leith, John Calvin-theologian of the Bible, Interpretation, Vol. 25 (July 1971), 329-44. T.H.L. Parker, Calvin the Biblical Expositor, John Calvin, cd. G.E. Duffeld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66), 176-86. Calvin and Hermeneutics, Vol.6, ed. Rhichard C. Gambia (Michigan: Garland Publishing, INC.,1992)

 

6) Richard 4. Huller, "Foundation of Calvin's Theology:Scripture as Reveling God's Word," Duke Divinity School Review 44(1979), 14-24.

 

7) John Calvin-Theologian of the Bible, Vol.25, Interpretation (July 1971),329-344.

 

8) Calvin:Theological Treaties. Ed. J.S.K. (London:SCM Press LTD, MCMLIV), 186-87.

 

9) Calvin and Hermeneutics, Vol.6, Ed.Richard C. gamble(New York&London:Garland Publishing, INC, 1992), 398. Cited as CH.

 

10) David 5. Dockery, Biblical Interpretation(Baker Book House, 1992), 27.

 

11) Dockery, Biblical Interpretation, 28.

 

12) Rene Bloch, "Midrash, " in Approach to Ancient Judaism:Theory and Practice, ed. W.S. Green, Trans. Mary Howard Callaway, Brown Judaic Studies 1 (Missoula, Mont.:Scholars, 1978),29)

 

13) Harry 4. Wolfson, Philo 1 (Cambridge:Harvard University Press,1968), 115, 134.

 

14) David 5. Dockery, Biblical Interpretation (Michigan: Baker Book House, 1992), 33.

 

15) Dockery, Biblical Interpretation,44.

 

16) F vander Meer, Augustine the Bishop: the Life and Work of Father of Church, Trans. Brain Battershaw and G. R. Lamb (London and New York, 1961),343.

 

17) Collectanea Augustiniana, Melanges 7.J., Van Bavel, Publes Par (Leuven University Press, 1990), 1028. 기독교 교리에서 교리에 해당하는 희랍 말은 πατδεια라는 말로써 교육이라는 말이다. 회람사람들은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18) A Select Library of the Nice and Podst-Nicene Fathers of the Christian Church, ed. Philip Schaff, St. Augustine's City of God and Christian Doctrine, Vol.Ⅱ (Grna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9),xii. Cited as CD.

 

19) 프란시스 영, 『초대 기독교 신조 형성사』, 이후정. 홍삼열 역 (컨콜디아사, 1994), 26-28.

 

20) CD, Ⅰ. ii. 2, 11

 

21) CD, Ⅱ.i,1, 5-7.

 

22) CD, Ⅲ.10.14..

 

23) CD, Ⅲ.26.

 

24) CD, Ⅰ.36.40.

 

25) CD, Ⅰ.37.41,38,42.

 

26) Justo L. Conzalez,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 Vol. (Nashville: Abingdon Press, 1970), 187.

 

27) Donald 4. Hagner, "Philo," New Dictionary of Theology, 509-10. 풍유는 비유법의 하나로 본뜻은 뒤에 숨기고 비유하는 말만으로 숨겨진 뜻을 암시하는 방법, 속담 혹은 격언이라고 한다. 한자로 풍자는 빗되어 말할 課과 깨우칠 論라는의미로서 빗대어서 말함으로 깨우치는 수사학적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直輸는 수사법의 하나로서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나타내는 수사법으로서 같다 혹은 처럼이라는 표현을 쓴다. 總輸(metaphor 숨을 隱)는 수사법의 하나로서 원뜻은 숨기고 유추나 공통성의 암시를 따라 다른 사 물이나 관념으로 대치하여 나타내는 방법으로 써 예를 들면 A는 B이다에서 A는 훤 관념이고 B는 보조관념이다. 또한 은유는 일 상적인 언어를 통해서 그 이상을 초월하는 영적인 의미를 표현할 때 쓰는 표현방법 이라고 한 수 있다. 』Allegory is a narrative in which the agents and action, and sometimes the setting as well, are contrived so as to make coherent sense on the literal or primary level of signification, and also to signify a second, correlated order of agents, concepts, and events( A glossary of Literary Terms, 5th ed. M.N. Abrahams, Holt, Rinehart and Winston, INC., 4). Parable is a short narrative.

 

28) Origen, First Principles, 4. 1. 11-17(For as man consists of body, and soul, and spirit. so in the same way does Scripture, which has been arranged to be given by God for the salvation of man).

 

29) The Fathers of Church, A New Translation, Vol.80(Washinton, D.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1989, 12. Cited as FC.

 

30) Dan G. McCarten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Vol.48 (1986), 281-301. Citedas WTJ.

 

31) Paul K. Jewett, Concerning The Allegorical Interpretation of Scripture, WTJ.

 

32) H.4. Wolfson, Philo (Cambridge, 1947), Ⅰ., 134.

 

33) 『성 경주석학』, 헤이즈. 할러데이 공저, 김근수역(도서 출판 나단, 1993), 27-28.

 

34) FC, Vol.71, 63.

 

35) Dan G. McCartney, Litteral and Allegorical Interpretation in Orison's Contra Celsum, W TJ, Vol.48 (1986), 281-301. Against Census, 3.43., 1.17; 18;27; 7.60), 288-89.

 

36) Theoria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나 희랍어로 Theoria는 보다 관찰하다 묵상하다(contemplate) 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사고나 논리적인 추론이라기 보다는 이미 소유한 지혜나 지식을 관조하는 통찰력(insight)을 의미한다. 확 정되지 아니하고 변화하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사변이나 논리적인 추론이 필요하지만 이미 확정되고 화고 부동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그것을 있는 그리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W.K.C. Guthrie,4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6 [Cambridge: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1},396).

 

37) Cited by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4th Rev. ed(Sanfrancisco: Harper and Row, 1978), 76-78.

 

38) Frederic W. Farra, History of Interpretation, Reprinted 1961 by Baker Book House from the 1886 edition published by E. P. Dutton, 213, 각주 3번.

 

39) , Vol. 74, 17-18.

 

40) John Chrysostom,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4.24.

 

41) John Chlysostom, In Epist. ad Phil. Hom., 10.

 

42) Biblical Hermeneutics in Historical Perspective, Ed. Mark S. Burmw & Paul Rorem, 152-72

 

43) CH, Vol.6, ed. Richard C. Gamble, Garland Publishing, 1NC, New York, 1992),412.

 

44) Kemper Fullerton, Prophecy and Authority: A Study in the History of the Doctrine and Interpretation of Scripture (New York: Macmillan, 1919), 133.

 

45) 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Old Testament (Kentuc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5), 10.

 

46)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 Vol.1(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7), 1.6.1. Cited as ICR. 『기독교강요 요약』, 이형기박사 옮김(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86), 30-31

 

47) ICR, Ⅰ.Ⅷ.2.

 

48)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Ed. Donald K. Mckim (Baker Book House, 1984), 22.

 

49) ICR. Ⅰ.Ⅵ. 2.

 

50) Richard 4. Muller, The Foundation of Calvin's Theology: Scripture as Revealing Cod's Word, Duke Divinity School Review 44(1979), 14-24.

 

51) ICR, Ⅰ. Ⅶ. 2.

 

52) ICR, Ⅰ. Ⅶ. 4.

 

53) ICR, Ⅰ. Ⅶ. 5. αυτοπιοτον(self-authenticated)

 

54) Calvin's Commentary, Vol.21 (Michigan:Baker book House, 1986), 248-49. For this reason he directs us to the faith of Christ as the design, and therefore as the sum, of the Scripture for on faith depends also what immediately follows. Cited as CC. 성경에서 예수님게서 직접 성경은 자신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고 증언하셨다 Everything must be fulfilled about me in the law of Moses, the Prophets and the Psalms(Luke 24:44-47).여기서 모세의 율법은 모세 오경을 말하며 선지자는 선지서를 의미하며 시편은 성문서를 의미함으 로서 구약 전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55) Essays on Old Testament Hermeneutics, Ed. Claus Westermann Trans. James Luter Mays(Atlanta:John Knox Press, 1979), 14-24..

 

56) 「칼빈의 십계명설교」, 벤자민 팔리 편역 (성광문화사, 1991),427-29.

 

57) Donald Mck凉은 살아 있는 맡씀은, 예수 그리스도, 기록된 말씀이 가장 잘 해석되는 말씀(The living word, Jesus Christ, is the One through whom the written word of Scripture is best interpreted)라고 했다. 이 말은 성경 해석 방법이 아니라 성경 해석 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시금석이라고 볼 수 있다.

 

58) What the humanists‥‥ admired in the piety of the Fathers ‥‥ was its simplicity and clarity(which avoided) emphasizing difficulties, nodi, openly opposing authorties sic et non, probing questioners in disputuations, and finally reconciling them by a subtle dialectic.....( Eugene F. Rice., the humanist idea of Christian anitquity:Lefevre d'Etables and His circle," in Wemer L. Gundersheime, ed., French Humanism, 1400-1600(harper Torch boots; New York, Harper& Row, Publishers,1969),169.

 

59) The Context of Contemporary Theology, eds. Alexander J. McKelway and E. David Willis, John Knox Press, 1974, 43-63.

 

60) The Decades of Horny Bullinger, ed. Thoimas Harding(Cambridge university Press, 1544), 70.

 

61) CC, Vol. 19, xxiii. Richard C. Gamble은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칼빈이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밝힌 대로 성경의 명료하고 단순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성경의 스타일과 연관을 갖고 있다고 했다(Exposition and Method in Calvin, WTJ, 49(1987) 153-165, WTJ 47(1985), 1-17).

 

62) P. Imbart de la Tour, Calvin et 1'Institution Chretienne(Paria, 1935), 63.

 

63) Calvin's Exegetical Principles. Interprelation. Vol.31 (Jan., 77), 8-18

 

64) Instituion of 1541, Vol.Ⅱ, 29.

 

65) Imbark do Ta Tour, Calvin et 1'Institution Chretienne, p.61f: J.Chartrou -Charbonnel, La Reforms et les Guerres de Relgion (Paris, 1948), 85.

 

66) CC, Vo.20, 141.

 

67) CC, Vol..22, 103.

 

68) Anthony C. Thiselton, Tle Two Horizons New Testament hermeneutics and Philosophical Description(Michigan:Wi1iam B. Eermans Publishing Company,1980), xix.

 

69) Anthony Thiselton, The Two Horizons, xix.

 

70) Institution of 1451, Vol.Ⅱ, Paris, 1937, 13

 

71) CC, Vol 16, 102-03.

 

72) ICR, 1.6.1-2.

 

73) ICR. Ⅰ.Ⅶ.2.

 

74) ICR, Ⅲ.21.3.

 

75) 존 칼빈, 「기독교강요 요약 」, 이형기박사 옮김 (크리스찬다이제스트, 1990), 29.

 

76) CC, Vol. 1, 170.

 

77) CC. Vol. 이사야 45:1 주석

 

78) CC, Vol. 20,172-75.

 

79) CC, Vol. 20, 175.

 

80) James Barr는 알레고리칼 해석은 성경의 콘택스트를 무시하는 하는 해석이라고 했다. ( The literal context, the cultural background and the historical setting,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44(1989), 14.

 

81) 비유(παραβολη)이다. 나는 선한 목자에서 나는 비유이다. 여기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목축 업자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선한 목자라는 맡은 확대된 은유(extended metaphor or metaphorical saying, παροιμια)이 다. 진실된 은유는 알레고리가 아니라 실제에 기초하고 있다. .비유는 첫째, 비유를 듣는 자를 도전하며 책임감을 갖게 한다. 둘째, 비유는 자기 자신을 그 비유에 의해서 들여다보도록 한 거울과 같다. 셋째, 비유는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이다. 넷째, 비유는 적대감이 있는 사람에게 간 접적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다섯째, 비유는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많은 메타포를 써서 거룩한 순례자가 천성을 향하여 순례 길을 감에 있어서 해야 한 일과 하지 말 아야 한 것을 비유를 통해서 묘사한다. 꿈속와 이 야기지만 깨닫는 자에게는 금과 같 이 중요하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하나의 꿈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우리주님도 비유를 맡씀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했다. 들을 귀가 업을 떼 우리 주님의 말씀은 번연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비유의 중요성은 말 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깊은 진리를 보여 준다는데 있다.

 

82) John Calvin, the Deity of Christ and Other Sermons, Trans. Laory Nixon, Wm. B.Eerdmans Publishing Company, Michigan, 1950), 13.

 

83) Essay on Old Testament Hermeneutics, ed. Claus Westermann(John Knox Press, 1979), 20.

 

84) Essay on Old Testament Hermeneutics, 37-35.

 

85) ICR, Ⅱ.Ⅶ.1.

 

86) 『칼빈성경주석』, 존 칼빈성경주석출판위원회역편(성서교제간행사, 1990), 로마서. 빌립보서, 173.

 

87) ICR, 2.9.3. Bates는 칼빈의 모형론적 해석은 칼빈 신학에 중요하다고 했다( Ed. Richard Gamble, Camlvin and Hermeneutics, 146-61). 칼빈은 강요에서 강요의 목표는 성경을 올바로 일고 공부하는데 도움은 주는 안내서라고 했다. 1560불어 판에는 강요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길을 여는 키라고 했다(a key to open a way for all children of God into a good and right understanding of Holy Scripture). 강요는 성경주석에서 다루는 토픽을 좀더 자세하게 다루지만 주석은 그렇지 않는다. 이점에서 강요는 성경 주석을 이 해하는데 도움 이 된다. 그리고 칼빈에 있어서 강요 와 주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는데 있다. 칼빈은 창세기 1:16을 주석 하면서 모세는 철학자로서 혹은 과학자로서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언어로 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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