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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출애굽기에 나타난 고난신학 - 김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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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에 나타난 "고난신학"

The Theology of Suffering in the Book of Exodus

김이곤 / 한신대 신학대학원장

Ⅰ. 서론

 

"출애굽기"도 육경의 다른 책과 같이 여러 가지 전승자료들이 모여져서 하나의 큰 설화덩어리가 된 역사설화문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언서와는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성서 비평학은 출애굽기와 같은 책을 산산조각으로 가위질할 수 있었고, 그 가위질한 문학단위들을 가능한 범위까지 그들 고유의 삶의 자리에 따라 추적하여 그들 고유의 생활환경을 지적해 낼 수가 있었다. 물론, 이런 작업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성서 주석가의 과제가 여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성서 주석가 내지는 성서 해석가의 과제가 여기에만 제한된 것인 양 믿고, 마치 폰 라트가 아이히로트를 비판했듯이, 구습타파주의적(iconoclastic)인 자세로 서구 비평학에서부터 조금이라도 이탈한 듯한 방법이면 그것을 무조건 맹목적으로 "비학문적"이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더욱 곤란하다. 과연 서구 비평학의 안내에 의존하지 않는 성서해석이란 무조건 비학문적이고 또 서구 비평학에 의존한 성서해석만이 가장 모범적인 성서해석의 "포아라게"(vorlage)라고 과연 누가 말하였던가? 19세기의 역사주의적 문학비평학이 양식비평학에 의하여 낡고 진부한 것으로 평가 된지는 벌써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갔으며 성서주석학의 만능적 도구로 인정받아 온 양식비평학조차도 지나친 세분화(atomization)에 의한 본문의 비생산적 파괴 때문에 이제는 쓰레기통에나 던져져야 할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도 또한 인지할 만한 단계에 온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러 저러한 비평학적 도구를 통하여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성서본문이 지니고 있는 그 문학적 현실을 바르게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과, 가위와 풀 통에 의존한 만화경적인 문학비평학과 양식비평학적 분해는 반드시 소화,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성서본문의 최종형태로서의 성서 전체를 다(!)문제삼아야 한다는 것, 특히 최종 편집자의 "편집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현대 성서 해석가의 필수적 과제라고 생각된다. 물론, 본문의 최종형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에 발생될 오류, 즉 비평학 이전의(pre-critical) 근본주의적이고도 문자주의적인 성서해석에로 돌아갈 위험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없이 옳다.

 

그러나 본문의 최종형태를 강조한 차일즈(B. S. Childs)의 경우, 비록 거기에 바아(J. Barr)의 적절한 비판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차일즈의 경우에 있어서는 비평학적 과정이 오히려 더 철저히(!) 전제되고 있었다. 더욱이 구약성서가 그 고유의 독특한 문학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 자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신약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자기 고유의 구원사를 증언해왔던 이래, 성서해석은 가능한 한 주석역사 전부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차일즈의 출애굽기 주석은 성서해석의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인식하였던 책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신약을 구약의 빛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을 신약의 빛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겠다(!!).

 

분명 구약성서는, 그리고 특히 출애굽기는, 비록 우리가 "구원사"(Heilsgeschichte)라는 특수한 신학적 용어와 그것을 결부시킨다고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 보도는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출애굽기가 역사의 대한 위증을 하고 있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폰 라트가 오래 전에 구약 구원사의 모범적 모델을 육경에서부터 찾고 그리고 그 육경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명기 26장 5b-9절(여호24,2-13)을 가리켜서 "역사신조"(historical Credo)라고 이름 불렀듯이, 출애굽기도 또한 역사를 어디까지나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보았던 책이고 그리고 여러 민담자료들을 역사신앙의 차원에서 - 분명 구원사적인 차원에서 - 수집하고 편집해 놓은 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은 ⑴민담자료들의 설화문학적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와 ⑵그 설화문학을 다루는 편집자의 신앙고백적이고도 신학적인 의도에 대한 바른 이해가 모두 출애굽기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육경의 다른 어느 책보다 더(?)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출애굽기의 본문에 대한 문자주의적 이해나 출애굽기 설화의 배경에 깔려있는 역사성의 객관적 재건에 대한 지나친 연연은 반드시 극복, 지양(止揚)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예컨대, 가시떨기(스네)에 붙은 불이 그 떨기를 태우거나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든가 에집트에 내린 재앙들에 관한 이야기, 또는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땅을 건너듯 건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스라엘 해방을 위한 전쟁들이 이스라엘의 전투, 전략에 전혀 의존함이 없이 오직 신의 기적적 도움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 등등은 결코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들 배후에 분명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 깊이 기초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은 성서문학의 문학적 특질과 그 신앙고백적 특성에 의해서 철저히(!) 감추어져 있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성서문학의 역사적 현실은 그 역사성이 결코 무시되거나 부정되어서도 안 되지만 또한 그 성서문학의 신앙고백적 과장법을 문자적으로 고집해서도 또한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출애굽기는 단순한 역사서도 아니지만 또한 단순히 하나의 종교문학만도 아니라 하겠다. 성서를 해석하는 자나 성서를 읽는 자 그리고 성서해석서나 성서관계 논문을 읽는 자 모두는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해 온 출애굽기 본문에 대한 제 해석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Ⅱ. 본론

 

출애굽기에 관한 지금까지의 관찰을 통해서 본다면, 출애굽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민담자료들을 육경 편집자가 그의 역사신학의 틀(framework)에 맞추어 편집해 놓은 역사신앙고백의 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출애굽기를 통하여 홍해(LXX;그러나 HB에서는 "갈대바다")를 건너는 사건의 역사성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재건하려고 하거나, 출애굽기 15장의 "바다의 노래"로부터 모세와 미리암 시대의 역사적 환경을 재건해 내려고 하거나, 또는 에집트에 내린 재앙사건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 하거나 하는 것은 일종의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그 무엇보다도 성서설화문학 자체나 이 설화자료들을 모으고 편집한 편집자 자체가 모두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을 보도하려는 의도보다는 그 전승자료를 토대로 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행위(magnalia Dei)를 신앙고백에 의거하여 증언하려는 의도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이 출애굽기를 엮어 가는 그 "중심 되는 신학적 주제"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출애굽기를 구성하고 있는 그 중심 되는 신학적 주제들은 물론 쉽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출애굽기 구성자료들이 성장해온 단층면을 잘라보는 일이나 또는 각 자료를 취급하는 편집자의 신학적 의도를 분명하게 판단하는 일이 모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출애굽기를 지배하고 있는 중심적인 신학적 관심을 요약하는 일로서 어느 정도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자세한 신학적 의도 규명은 각 본문에 대한 주석적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출애굽기에 나타나고 있는 중심적인 신학적 관심은, 출애굽의 하나님은 누구냐 하는 것과 출애굽 해방의 방법은 어떤 신학적 동기에 의하여 채택되었으며 그리고 출애굽 해방의 목적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무엇이냐 하는 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⑴출애굽의 하나님은 "야훼"라고 이름하는 신이었다. 이 "야훼"라는 이름의 의미는 출애굽 해방의 사건이 열려지기 시작하는 것과 더불어 처음으로 비로소 모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출애 3,14;6,3).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야비스트는 이 이름이 인류역사의 초기부터("에노스"때로부터/창세 4,26)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하였으나 그 문맥상의 의미는 창세기 4장과 그리고 출애굽기 3장 또는 6장 사이에는 매우 차이가 나므로 그 둘을 동일범주에 넣을 수가 없다. 즉 전자(창세 4,26)의 경우는 하나님과 인류 전체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야훼종교라는 어떤 한 종교가 인류역사초기부터 시작된 것을 강조해 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로 "야훼"라는 이름의 신(神)은 출애굽이라는 이스라엘 해방사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기의 증언에 의하며, 이 "야훼"는 출애굽의 해방사건을 일으키시려는 명백한 동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을 처음으로 계시한 분이었다. 즉 야훼는 자신을 계시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반복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i>내가 에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들이 억압자 때문에 부르짖는 것을 듣고 그 고난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에집트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부터 인도하여 아름답고 넓은 땅…으로 이르려 하노라(출애굽기 3,7-8).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고 에집트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어 너로 하여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 3,9-10).

 

이렇게 하여 "야훼" 신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의 신이라는 명백한 "한정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한정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듯이 그렇게 "민족신"이라는 의미에 한정된다는 뜻은 물로 결코 아니다. 이 한정적 의미는 "야훼" 신이 지니고 있는 속성과 기능의 특성을 가리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야훼" 신은, 위의 계시(啓示)가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절대초월자라는 의미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고, 그 대신 "상대적이며 효력을 발생시키는 존재"(relative and efficacious Being)로서 자기 규정을 하고 있다. 사실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what he is)하는 것보다는 그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 보일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던 분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에집트인에 의하여 억압받고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비로소 역사 속에 간섭해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야훼는 억압자(에집트)로부터 억압받는 자(이스라엘)를 해방시켜주는 "해방의 신"이라는 한정적 성격을 지닌 분이었다. 그러므로 "타지 않는 불꽃떨기" 속에 자신의 신현현의 자리를 만든 것은, 그 상징적 의미가 부단하게 부정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편집자에 의하여 야훼의 본질에 관한 가장 분명한 한 상징적 표상으로 수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즉 "그 타지 않는 불꽃떨기"(hass neh)는 출애굽기 3장 1절로부터 4장 17절까지(특히, 출애 3,12)의 문맥에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해방의 사도(Messenger)로서 보낸 신의 파송의 "그 증거"(the sign/h th)로서 기술(記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떨기가 "그" 증거였다. 즉 그 떨기는 인위적인 인화(引火)작용이 없이도, 즉 태양열에 의해서 스스로 발화 소멸될 만큼 건조하고 연약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대한 불길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놀랍고도"(출애 3,3) "기이한"(출애 3,3) 한 현상 때문에 문제의 초점이 된 것이다. 떨기나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떨기(h ss neh)가 일상성을 깨뜨리고 그토록 거대한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고, 바로 그것이 모세를 에집트로 보내는 사역의 증거가 되었다는 데 문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의미가 편집자나 설화자의 눈에는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은(G. von Rad에게는 실례지만) 상징적 해석을 적대시하는 비평학적 교조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U. Cassuto의 생각도 이런 의미에서는 G. von Rad의 생각과는 달랐다고 본다). 만일 타서 소멸되어야 할 연약한 떨기가 거대한 불꽃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는 그것이 하나의 "놀라움"이었고 모세를 깨우치는 결정적 요소였으며 모세를 민족해방의 사역자로 삼는 "증거"였다면, 그리고 그 떨기가 그 무엇보다도 야훼가 현존한 바로 그 자리였다면, 그 타지 않는 불꽃떨기는 "출애굽의 하나님은 누구냐?"라는 물음에 대한 한 대답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탈수밖에 없는 떨기가 불꽃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는 것과 그곳이 야훼 현존의 자리라는 것은 이 사건을 싸고 있는 그 문학적 틀이 증거하는 반복적인 설명구(출애 3,7-8과 3,9-10)의 의미와 평행되지 않는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타지 않는 연약한 가시떨기 현상과 이 현상을 싸고 있는 문학적 틀의 반복적 설명구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 고난받는 민족의 고통을 보고 또 그 울부짖음(쩨/체아카)을 듣고 그러므로 소멸해 가는 민족을 그 고난의 자리에서부터 건져내는 "긍휼과 은혜의 신"(엘 라훔 웨하눈; 출애 34,6;33,19)이 "야훼"라고 하는 신학적 증언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타나는 익살스러운 말놀이 같은(paronomastic) 진술인 "나는 곧 나다"(에흐예 아웰 에흐예)라는 진술의 의미도 "존재론적인 의미" 속에서보다는 사역적(使役的) 의미로 해석하는(causativetheory) "하웊트-올브라이트의 이론"(Haupt-Albright thoery)에서 더 잘 파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출애굽기 3장 14절의 의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나다" 또는 "나는 나일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존재하게 하는 자다" 또는 "나는 창조하는 자다"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폰 라트는 여기서 이러한 신명(神名)계시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신학적으로 근본적이고 규범적인 야훼 이름의 해석을 제공하려고 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여기 호렙산 신현현 사건(출애 3)과 시나이산 신현현 사건(출애 19장) 사이에 만일 전승사적(traditio-historical) 또는 유형론적 관련(typological relation)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또 불꽃떨기의 징표를 이스라엘의 경험의 한 예표(prefigurement)로 볼 수 있다면, 여기 호렙산 불꽃떨기에 나타난 야훼 현현과 자기 이름의 소개는, 편집자의 신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을 위하여 신학적으로 근본적이고도 규범적인 "야훼"의 의미를 계시해 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G. von Rad에는 실례지만).

 

이러한 문맥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출애굽의 하나님인 야훼는 호렙산(출애 3장)과 시나이산(출애 19.33.34장) 계시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자기천명(自己闡明)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야훼는 "눌림 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그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창조해주시는 신"으로서(출애굽기를 통하여) 증언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출애굽기 3장의 호렙산 불꽃떨기 속에서 "야훼"는 고난받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자신을 "나는 창조하는 자다"라고 계시하였고 또 출애굽기 33장 19절과 34장 6절의 시나이산 계시사건에서 "야훼"는 자신을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긍휼의 신(엘 라훔)이다"라고 계시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훼"는 긍휼의 창조자였다. 그러나 "긍휼의 창조자"라는 의미는 가나안의 풍요제의(fertility cult)와 이스라엘의 광야신앙(호렙 또는 시나이)의 신학적 종합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사실은 "긍휼"(라훔)의 히브리적 의미가 "여인의 자궁"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주장과 그리고 "야훼"와 동일시된(출애 6,3)조상의 신 "사따이"가 "여인의 젖가슴"을 의미했다는 주장에서도 입증된다고 하겠으며 "야훼"라는 이름을 "창조자"로서 이해하려는 입장(Haupt-Albright)과도 또한 평행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풍요제의의 이러한 관념이 이스라엘의 역사신앙(출애굽 신앙)과 긴밀히 결부되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즉 "자궁의 진통"을 통하여 "긍휼"을 창조하고 "젖가슴의 전능성"을 통하여 긍휼을 보존하는 창조자 야훼는 이제 출애굽과 광야유랑의 진통을 통하여 가나안을 창조하는 구원역사의 주 야훼로서 인식되었을 수 있다. 눌림 받는 자의 "고통의 부르짖음"(자궁의 진통)에 대하여 민족해방의 구원으로 응답하시는 신이 야훼였다.

 

(2) 그렇다면, 출애굽 해방의 창조자인 "야훼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눌림 받는 민족 이스라엘에게 해방을 창조해 갔는가? 이 물음에 대한 출애굽기의 기본적 증언은 "거룩한 전쟁을 통해서(!)"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출애 14장에 기술된 "홍해를 건너는 이야기"와 출애 7장 8-13장 16절에 기술된 에집트에 내린 재앙과 유월절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충분히 대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전쟁 설화"를 통하여 성서기자가 증언하려 한 그 신학적 의도가 문제다(!) 출애굽기 7-14장에 걸쳐 일어난 일련의 해방사건들은 설화문학 속에 담긴 신학적 의지를 통해서 볼 때 그것은 분명 지배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정복한 사건들로서 증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가려내어 비판할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또한 마르시온적 시각을 갖고서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는 "거룩한 전쟁"이념이 지니고 있는 미혹성, 이른바 매우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민족적 자기이익 추구를 변호하고 정당화하려는 그런 유혹과 미혹성(delusiveness)을 부단히 경고하고 교정하는 자세를 냉혹하게 지켜가면서(!) "거룩한 전쟁 설화"를 읽고 해석해야 한다. 특히 신명기 20장에 기술된 신명기 기자의 거룩한 전쟁에 관한 법규선포를 통하여 민족적 자기이익을 변호하는 한 성서적 전거를 찾으려는 따위의 태도는 갓월드가 적절히 비판하였듯이 단호히 배척하여야 한다. 즉 신명기와 신명기적 역사적의 관점은 가나안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저한 배척과 제거 - 바알주의의 철저한 배격 - 에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명기에 나타나는 약자변호의 평등 이데올로기적 휴머니즘이 어떻게 하여 바알주의에 대한 신명기 기자의 극단적인 대결의식과 조화될 수 있는지를 결단코 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갓월드(N. K. Gottwald)의 신명기적 성전(聖戰)사상에 대한 이해도 이런 점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갓월드가 이스라엘 성전(聖戰)사상을 이스라엘 신앙의"밀"(wheat!)을 싸고 있는 겨(chaff)와 같은 것으로 보고 그리고 그것을 적절한 교정과 경고 없이 읽으면 성전(聖戰)사상은 민족주의적 폐기물(nationalistic husk)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은 옳았다. 그러나 신명기의 성전(聖戰)사상을 민족주의적 자기이익 추구의 이데올로기로만 보고 예언자 이사야의 세계주의 이념(이사 2,1-4;19-18-25)과 불타협의 대립개념으로 이해하려 한 것이나 그리스도교의 수난설화와 대립되는 이념으로 이해하려 한 것은 문제를 편파적으로 취급했다는 인상을 준다. 즉 신명기(또는 거룩한 전쟁 설화)의 한 일부에 나타나고 있는 관념에 대한 비판을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 처리하였다는 것은 그의 해박한 학문적 지식과 날카로운 사회학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적 입장의 편파성을 여실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고 하겠다.

 

갓월드의 성전(聖戰)관념 이해는, 폰라트에 대한 그의 적절한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聖戰)설화문학 속에 나타난 다음 몇 가지의 신학적, 문학적 문맥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성전제도(聖戰制度)의 입증여부는 차치하고라도(폰 라트에 대한 그의 비판을 수용하고서라도) 거룩한 전쟁의 설화문학을 배태하고 생산한 그 삶의 자리의 제의적 성격(참조, Cross)에 대한 그의 이해부족이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성전(聖戰)설화가 지니고 있는 과장법적 성격과 그러한 과장법적 표현이 목표하려는 의도의 "여러" 시각들을 잘못 보거나 아니면 단순화하려 한 것이 분명하다. 그 문학 속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이념은 분명 야훼를 거룩한 전쟁용사(divine warrior)로서 이해하려는 신학적 사유이다. 라이트(G. E. Wright)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전쟁용사로서의 야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또는 구원자 하나님의 다른 한 이면(裏面)에 불과하다는 것, 즉 정의와 심판의 하나님과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은 두 날을 가진 하나의 칼(a two-edged sword)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라이트가 "야훼는 결코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pacifist)는 아니었다"라고 말하였던 것은 이러한 신학적 문맥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문맥 안에서 볼 때 야훼의 평화 이데올로기는 일종 "두 날을 가진 하나의 칼"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사적 목표를 달성키 위하여 인간 역사 속에서 펼친 한 구원사 섭리의 행위(agency)이며 그것은 거기에(거룩한 전쟁에) 참여한 자들을 결코 성화(聖火/sanctifying) 시킴이 없이(물론 성별〔聖別〕은 요구했으나) 행한 하나님의 특수한 구원사 섭리의 행위였다고 하겠다. 적어도 설화문학의 신학적 의도는 이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거룩한 전쟁 설화 속에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신인협력사상(synergism)의 거부이념"은 거룩한 전쟁 이데올로기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도용(盜用)되는 것을 강력히 제재(制裁)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기능의 대변자로 나선 것이 예언자들이었다면. 예언자들의 사상을 거룩한 전쟁 이념의 거부(rejection of holy war concepts)로서 볼 것이 아니라(갓월드에게는 실례지만), 거룩한 전쟁 이데올로기를 성실하고도 비판적인 자세로 해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거룩한 전쟁설화를 지배하고 있는 신인협력의 거부이념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참여를 강력히 거부하는 반전(反戰)사상(출애14:13~14; 삼상17:47; 시편 44:1~8(2-9))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갓월드는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나의 논문 "거룩한 전쟁신앙에 나타난 평화사상"에서 말하고 있는 "신인협력거부사상"에 대한 해석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자도 또한 동일한 문맥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갓월드의 더 중요한 오해점은 신명기의 "헤렘"사상에 대한 편파적 해석에서 발견된다. 여기에는 논의할 여지없이 민족주의적 노폐물이 어느 정도 끼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기원전 9세기의 모압비문에 의해서 논증된 바 있는 그런 사회정치적 원리로 교조화한 한 현상이라고만 이해해서는 신명기의 사상을 원만하게 파악하였다는 결코 볼 수 없다. 오히려 신명기 20장이 말하는 "헤렘"사상은 "어느 누구도 전쟁을 통하여 부(富)를 축적할 수 는 없다(!)"(No one could enrich himself from the war)라는 사상과 "전쟁"은 전혀 인간의 일(business)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의 일"(God's affair / 삼상 17,41)에 속한 것이므로 전쟁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모든 전리품)은 모두 하나님께 "전번제"(holocaust)로서 되돌려 버려야 한다는 사상과 그리고 가나안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종교혼합주의에 대한 신명기적 불타협 사상"이라는 컨텍스트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출애굽기를 통하여 서술된 거룩한 전쟁에 의한 이스라엘 해방 사상을 가리켜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한 제국주의 신학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즉 구약의 해방신학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려는 것은 구약성서의 문학현실과 신학현실을 "한 면에서만" 보려는 데 기인한 오류로 보인다. 그러나 출애굽의 민족해방이 이와는 달리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가 아니라 해방 이데올로기로부터 온 것이라면 하나님의 이스라엘 출애굽 해방사에 나타나는 "거룩한 전쟁"은 힘의 논리(폭력 논리)에 기초하지 않은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하겠다(그러므로 마르시오니즘은 분쇄되어야 한다!) 따라서 에집트 땅에서 일어났던 아홉 가지 재앙 사건이나 유월절 사건 그리고 바다 사건(출애 14장)은 폭력 논리에 근거되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거기에는 약자(히브리인)를 강자(에집트)로부터 해방시키는 야훼의 해방의지를 부각시키려는 성서기자의 문학적.?신학적 의도가 지배적으로 나타나 있었고 그러한 민중해방 사건에는 이스라엘의 고난이 - 고난의 떡을 먹고 희생의 피를 마시는 고난이 - 전제되어야 한다는 고난신학적 확신도 또한 전제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필자는 "모세의 폭력, 그리고 신의 섭리"라는 논문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물론, 모세는 여기서(출애 2,11-25) 이스라엘을 에집트의 폭군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의분의 폭력을 구사한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출애굽기 2장 11-15절과 2장 16-22절을 대조법적으로 대비(對比)시키는 편집자의 의도는 각 민담이 지녔던 고유한 의도(모세를 영웅시하려는 의도)는 철저히 배후로 감추고 그 대신 인간의 폭력을 거부하는 (신인협력설을 거부하는) 반전(反戰) 사상적 구원사의 성격을 전면에 부각시키려고 하는 데 있었다. 즉 모세의 폭력은 동족의 배신과 진압폭력의 보복을 초래하였지만(출애 2,11-15) 반대로 미디안에서 행한 모세의 비폭력적 의거(義擧)는 감히 이방인의 환대까지도 거두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편집자는 증언한다. 야훼의 해방역사는 인간의 전쟁참여와 폭력수단의 사용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쟁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전쟁참여와 폭력사용을 거부하는 반전 이데올로기를 추구하였다고 하겠으며 따라서 거룩한 전쟁에 관한 문학현실을 오해하거나 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거나 종교전쟁 이데올로기에 악 이용하는 것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실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해방은 전혀 배타적으로 유월절 사건 - 고난의 떡과 희생의 피의 사건 - 과 더불어 비로소 이루어졌다고 하는 출애굽기의 증언은 바로 이러한 신의 구원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3)출애굽의 해방은 그러나 해방 그 자체에 목표를 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출애굽기의 이야기가 14장의 사건과 그 해방 사건에 대한 15장의 찬양송(doxology)으로서 끝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 다음 이야기가 훨씬 더 방대하다. 광야 이야기는 출애굽기 16장부터 신명기까지 계속된다. 전승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후대의 신학적 확대 때문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실로 최종 편집자는 출애굽 해방에 성공한 이스라엘 앞을 "광야"로서 가로막도록 한다(!). "광야"는 그 지리적 의미보다는 이스라엘 훈련의 장소라는 신학적 의미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광야에서 행한 하나님의 이스라엘 훈련은 몸을 통한 훈련과 이념교육을 통한 훈련이라는 두 면을 모두 갖고 있었다. 몸을 통한 훈련은 "광야유랑기가"(출애 16-18장의 이야기는 민수기 10장 11절 이하에서 다시 반복된다)을 통하여 겪은 배고픔과 목마름, 질병과 외적의 위험, 그리고 유랑민 공동체 내부의 갈등 등등을 신의 교육의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광야의 고난은 신의 은총의 의미를 -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 속에 나타난 신의 은총의 의미를 - 깨닫게 해 주는 역할도 하였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이념교육의 한 준비과정의 역할도 하였다. 이 사실은 계명(율법)수여의 사건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념교육, 바로 그 이념교육의 대본인 율법의 "역사서론"(historical prologue)이- 윤리적 십계의 역사서론에서 뿐만 아니라 계약법전의 수사적(rhetorical) 구조 모두에서- 고난의 경험과 기적적 구원의 경험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입증된다. 출애굽 해방공동체인 이스라엘은 이제 "고난의 경험과 해방의 기쁨을 통해서, 그리고 토라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계약백성이 된 것이다. 이 점은 고난의 경험과 해방의 기쁨을 전제하지 않은 계약백성인 함무라비의 백성과 모세의 이스라엘을 구별하게 해준다.

 

Ⅲ. 결론

 

출애굽기는 억압받는 히브리 민중의 "고난"을 기폭제로 하여 이루어진 야훼의 "히브리인 구원역사"를 증언한 책이다. 즉 민족해방 또는 인간해방이라는 신의 구원사건에는 고난받는 자의 "부르짖음"(outcry)과 그리고 고난의 떡과 희생의 피를 요구하는 유월절 사건이 전제되고, 그리고 야훼의 이스라엘 해방전쟁은 그 전쟁에 참여하는 자의 성화(聖火)나 참 여자의 전쟁행위가 동반되지는 않는 - 오히려 그들의 전쟁행위가 거절되는(!)- 신의 해방전쟁으로 치러지며 마침내 출애굽의 이스라엘이 도달한 곳은 가나안이 아니고 "광야"였다는 것, 이 광야의 교육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선민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책이 출애굽기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있어서, 출애굽기의 신학이란 "고난→해방"의 신학적 도식을 복잡한 민담자료를 기초로 하여 증언하고 있는 하나의 고난신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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