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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슐라이에르마허 - 안명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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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leiermacher)

 

 

서론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슐라이에르마허는 칼빈이후 가장 두드러진 신학자였다. 그가 개혁주의 전통에서 자랐지만, 그는 기존의 정통적인 신학연구 방법을 떠나 신학이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으로 보지않고, 인간이 신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인간론적 학문으로 말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의 첫장을 열렸다.

 

현대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의 대부인 슐라이에르마허의 혁명적인 방법에 그 뿌리를 어느 정도 내리고 있다. 예를들면 내재 신학을 주장한 슐라이에르마허를 비판했던 칼 바르트는 누구든지 그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The Theology of Schleiermacher, T. & T.Clark, Edinburgh, 1982)이란 책을 서술함으로써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신학의 중심사상: 종교란 무한자에 대한 절대의존 감정이다.

(das schlechthinnige Abhangigkeitsgefuhl) (sense of absolute dependence)

 

데까르트가 정신을, 칸트가 실천이성을, 헤겔이 절대정신을 강조한 것처럼, 그는 감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종교적 배경-

 

*개혁 교회 전통- 친가와 외가가 개혁교회이다. 개혁교회에서 안수받고, 목사활동, 개혁파 출신을 주장함.

 

*경건주의의 전통- 아버지 고트리프(Gottlieb)은 프러시아 군대의 군목이었고, 모라비 안 경건주의에 영향받고, 자녀에게 경건주의 신앙을 갖도록함, 슐라이에르마허는 14세 회심을 체험, 그는 모라비안 교단 학교에서 경건 훈련을 받고 종교적으로 감화됨. 노년에 자신이 모라비안 교도임을 고백함.

 

낭만주의 영향- 그가 종교의 정서적인 면을 강조하여 종교를 감정으로 간주, 종교와 철학을 구별,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을 주장.

 

*루터주의- 루터 신학자들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교재로 사용

 

철학적 배경-

 

*칸트- 에베하르트(August Eberhard) 교수로 부터 칸트의 철학 체계 전반에 대해 배움. 슐라이에르마허는 1791년 쾨닉스버그에서 만났다.

 

칸트의 영향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발견. 사변적인 지식의 한 계성에 대한 칸트의 비판 철학의 결론을 수용. 그러나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의 존재와 영혼 불멸에 대한 칸트의 도덕론적 논증을 거절, 그는 칸트가 하나님에 대한 합리적이며 철학적인 지식을 타파한 것을 받아들인 반면, 칸트가 실천 이성 및 도덕의 영역에서 종교적인 신앙의 자리를 발견한 것을 거절. 칸트가 이성을 순수 이성과 실천 이성으로 이원론적으로 구분한 것을 거절. 칸트는 순수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나 영혼 불멸 및 자유와 같은 종교적인 주제를 알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단순히 생각되어 질 수 있을 뿐이지 알려질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의 대상 이 아니라 신앙의 항목이다. 슐라이마허는 이것을 반대함. 종교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것의 토대요 통일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 플라톤을 독일로 번역하면서 사상적으로 해석학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슐라이에르마허의 독창적인 사상 형성에 영향 미침, 기계론적인 윤리관을 거부하고 결정론적 윤리관을 인간의 의지 및 행위는 어떤 외적인 힘(원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와 개인주위적 주관주의를 극복한다. 이 번역 과정을 통하여 그는 해석은 단지 본문의 단어나 문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저자와 저자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사상적 배경-

 

낭만주의- 낭만주의의 주제는 "무한자가 유한자 안에 있다는 개념 - 자연과 인간역사는 함께 볼때 무한한 생명의 형태 혹은 현현으로 생각되었다(te idea of the infinite in the finite. . . in which nature and human history alike are conceived synopticaly as forms or manifestations of one infinite Life."

 

Keith Clements, ed., Friedrich Schleiermacher: Pioneer of Morden Theology (Minneaplis Fortress Press, 1991), pp. 12-3.

 

슐라이에마허는 낭만주의의 이 주제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그의 신학이 내재적으로 흘렀고, 범신론주의자로 몰리게 되었다. 그의 하나님의 내재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하나님의 초월성과 초월한 하나님의 인격서에 강조를 하지 못하여 이런 오해를 받았다.

 

계몽주의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 1796년 부터 1802년 까지 베를린의 차리테 병원에 목사로 있는 동안 낭만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배웠다. 이때 그는 인간의 감정과 직관(Gefuhl und Anschauung), 상상 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이점에 있어서 자신의 해석학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대표적인 저서:

 

Reden uber die Religion, 종교론, 1799 - 종교가 무엇이냐? 종교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하고자 함.

 

In the very act, you must undestand the production of light and heat in a soul surrendered to the Universe. Otherwise you learn nothing of religion, and it goes with you learn nothing of religion. . . . I ask, therefore, that you turn from everything usually reckoned relgion, and fix your regard on the inward emotions and dispositions. On Religion: Speeches to its Cultured Despisers, p. 18.)

 

종교는 형이상학이나 도덕이나, 양자의 혼합도 아니다. 종교는 교의도 아니다. 종교의 본질은 사유와 행위가 아니라 직관과 감정이다.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는것이다, 종교란 절대의존 감정이다. 참된 종교란 무한자에 대한 감각이며 맛이다 (True religion is sense and taste for the Infinite. Ibid., p. 39)

 

Der christliche Glaube nach den Grudsatzen der evangelischen Kirche in Susammenhang dargestellt, 1821, The Christian Faith, Edinburgh: T. & T. Clark, 1989, 신앙론,- 기독교가 무엇인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필적, 현대 신학의 기초가 된 걸작품. 칸트의 지상명령에 반기를 들다. 그 이유는 인간의 존귀성을 저하시킨다는 점이다. 그는 자유인은 도덕법아래 있지 않다고 한다. 도덕은 선한 의지에서 출발하지않고 심리적 힘으로서의 실제 인간 의지에서 출발한다. 즉 무한자와 접촉을 통하여, 절대의존 감정에 의해 해결된다고 한다. 이책은 현대의

 

정황에서 신학의 가능성과 토대에 관한 연구이다. 현대 신학자들의 필수적인 텍스트가 되었다.

 

신학 방법론

 

인간의 경험(감정)을 토대로 쳬계화 했다. 직관을 통하여 신학의 접근 방법을 만들 었다. 중요한 사상은 유한과 무한의 차이가 아닌 융합시키는 것이었다.(the immediate consciousness of the universal being of all finite things in and through the infinite, 종교의 참된 본질이 무한자 안에서 그를 통하여 유한한 모든 우주의 존재를 직접적 으로 의식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인간의 능력의 3기능-생각(thought, 철학적 혹은 교리적에 연관), 의지(will, 윤리와 관련), 느낌(feeling, 감정에 관련)

 

종교는 감정의 장소에서 발견된다.

 

그는 종교론에서 종교를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정 의하고, 신앙론에서는 느끼는 것 또는 직접적인 자기 의식의 수식(modification), 신 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으로(Gefuhl der schlechthinnige Abhangigkeit) 정의. 여기 서 감정은(Gefuhl) 객관적 이해의 양식, 정서적 감식의 연쇄, 영적인 것의 각성이라 고 볼 수있다. 감정은 단순한 인간 정서가 아니라 초주관적 실재에 대한 파악이다.

 

신을 이 세계밖에, 이 세계 넘어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족존재로 생각하 는 통속적인 개념은 종교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개념은 종교를 애기하는 표현방식중의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전적으로 들어맞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항상 부적절할 뿐이다. . . . 종교의 참 본질은 이러한 개념이나 그 밖의 다른 개념들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계 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 속에서 신을 발견하면서 그 신성을 직접적으로 의식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Reden uber die Religion, Sammtliche Werke, Berlin, 1843, i. 264)

 

종교 연구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 종교 연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인 자신, 즉 그 의 종교적인 감정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 것. 신조나 교의 또는 성경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 혹은 인간의 자기 의식이 신학 토대가 되었다.

 

This exposition is based entirely on the inner experience of the believer; its only purpose is to describe and elucidate that experience. (The Christian Faith, p. 428).

 

그는 현대의 상황에서 신학의 발전을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관을 수용 하고, 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재진술한 최초의 신학자. 인간의 경험을 신학 의 주된 자료로 사용. 인간 감정에 나타난 자기 의식과 하나님 의식을 표현하는 것 을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 그의 종교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개념을 연상케 한다.

 

Piety is the essence of religion (form), but it always takes shape in some specific religious tradition (matter).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20th Century Theology, p. 45.

 

경건(종교적 감정)은 종교의 본질(형상)이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종교적 전통(질료)으로 모양을 갖는다.

 

* 해석학

 

Hermeneutics: The Handwritten Manuscripts (Atlanta: Scholars Press, 1997)

 

*해석 방법이 역사 비평에서 문학 비평으로 전환되었다.

 

본문의 문법적인 해석(객관적인 언어학 자료들의 사용)과 더불어, 심리학인 해석으 로, 저자의 의식을 통찰하는것이다. 본문 자체의 메시지 보다 메센저를 이해하고 공 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해된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예술이 다.(Hermeneutics deals only with the art of understanding, not the presentation of that which has been understood. The presentation of what has been understood could be only one special part of the art of speaking and writing, and that part could be done only by relying upon general principles. . . . It is commonly believed that by following general principles one can trust one's common sense. But if that is so, by following special principles, one can trust one's natural instincts. Ibid., p. 96)

 

일반적 원리를 사용한 일반 해석학은 문법과 비평주의에 관계되고, 특별한 원리를 사용한 특별한 해석학은 단지 관찰들의 집합체이며, 학문의 요청이 필요없다. 해석에 있어서 심리적이며, 예술적인 것을 강조했다. 해석자는 저자가 느낀 것을 느껴서 그 느낌을 적용한다. 결국 그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의 감정과 맛에 따라 하나의 종교로서 기독교를 서술했다.

 

이런 심리학적인 측면은 해석자가 자신 안에서 해석의 재 창조를 요구하기 때문에 전이해라고 부른다. 결국 텍스트의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해석자 자신의 이 해라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좀더 넓게 보면 해석이란 인간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게 된다. 해석학이 삶의 정황만을 포함하지 않고 우리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모습들에도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길리안 R. 에반스, 기독교 사상사, 322쪽.

 

교리 - 신론

 

이세상의 사물을 아는 것처럼 신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불가지론적이다. 그러나 절 대 의존 감정을 갖는 관계에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비인격적인 신. 감정에 의 해 이해되는 한에서 신. 범신론적인 개념. 삼위일체 거부, 신이란 절대 무한자, 인격적이 아니고, 단순히 전 능한 속성을 갖는 존재(Being).

 

계시

 

계시란 언어로 표현되기 전에 영적 실재였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종교가 계시된 진 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는 가장 최종적 계시를 대변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무흠한 종교적 의식이 우리 들에게 표출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론

 

그의 신학의 중심이 기독론적이라 한다. 그러나 정통신학적인 견해가 아니다., 역사적인 계시보다는 기독교인의 경험 또는 의식에 의존. 인간 예수을 절대적으로 완전한 하나님 의식을 소유한 자로 본다.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갖는것을 부인하고, 신성 대신 신의식으란 표현을 사용 함. 그리스도의 속성의 교환를 부인한다. 니케아 신조와 칼세돈 신조를 부인한다.

 

아래로 부터(from below) 기독론을 주장하다. 그는 예수의 영원한 출생과 신적 로고 스(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교리가 아니라 신의식의 인간 예수로 부터 기독론을 시작 한다.

 

영향: 역사적 인간 예수 연구에 공헌했다.

 

속죄론

 

전통적인 속상설과 만족설을 거부하고 하나님 의식이 자기 의식 안에 출현되는 것 이 속죄라함. 구속이란 절대의식의 회복이라고 본다.

 

죄론

 

인간의 하나님 의식에서 나타나는 반대물이나 장애물을 죄로 정의한다. 하나님 의식 의 무질서와 무력으로 정의. 죄란 인간이 절대 의존 감정을 인식하고 그대로 살아가 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과 합일이 되지 못하고 벗어나려는 욕망을 죄로 본 다.(Ibid, 271, )

 

인간론

 

아담은 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다. 점점 그때 이후에 생물학적 지적으로 발전되고 진화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아니라. 자의식을 하는 영.

 

교회론

 

하나님 의식을 하는 자의 모임

 

비판

 

신학을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종교학으로 만들었다. 바르트의 반동이 여기서 시자 된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인간을 인간되게 말하는 변증신학을 주장하게 되었다. 신학적 방법은 계시의존적인 방법을 버렸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에 의존하는 주간주 의적 신학으로 전락하였다. 그의 교리에 대한 주장들은 지나치게 감정과 신의식을 강조하여 객관적인 하나 님의 계시에 근거한 건전한 교리들에 의해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

 

[ 결론 ]

 

신학의 출발점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의식, 인간의 감정에서 출발. 인간학적인 접근법이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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