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찰리 스터드 선교사의 헌신의 열매

첨부 1


찰리 스터드 선교사의 헌신의 열매


혹시 중국선교와 아프리카 선교에 자신의 일생을 드렸던 ‘찰리 스터드’ 선교사를 알고 계십니까? 
‘찰리 스터드’는 훌륭한 신앙인인 ‘에드워드 스터드’ 밑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합니다. 
그는 그 당시 유명한 ‘D.L.무디’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결단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크리켓 선수 중 한 명으로 지칭되는 찰리 스터드, 
그는 캠브리지 대학팀 최고의 만능선수이자 주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선교사로서의 헌신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와 함께 헌신한 6명의 뛰어난 재능의 캠브리지 대학생들, 
이른바 ‘캠브리지 7인’은 모두 중국 내지 선교회, 오늘날 OMF의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당시 한 신문기사는 그들의 이런 헌신을 가리켜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선교의 역사상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7명의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선교사로 헌신된 예는 
 아직 역사에 없었을 것이다.”

‘찰리 스터드’ 선교사는 중국에서 10년 동안 선교하는 도중 
큰 유산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감내해 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선교사들처럼 참으로 그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 문에 새겨진 한 글귀를 읽게 되는데 그것이 그의 마음에 충격이 되었습니다. 

“식인종은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식인종들도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문구였습니다. 

중앙아프리카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복음을 증거해 줄 선교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충격을 받고 중국선교를 정리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미 그의 나이는 50이 훨씬 넘었고, 신체적인 질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그의 동역자이자 사위였던 ‘노만 그럽’ 선교사는 ‘찰리 스터드’ 선교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휴식하는 일이 없었으며 한눈파는 일도, 휴일도, 취미생활도 없었습니다. 또 유럽식의 풍요로운 생활을 피하고 아프리카인들과 똑같이 살도록 사역자들에게 강요하였기에 종종 동역자들과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찰리 스터드’ 선교사는 처음에 아프리카의 심장 선교회, '더 하트 오브 아프리카 미션(The Heart of Africa Mission)'이라는 선교단체를 결성했지만 후에는 WEC 국제선교회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자신의 가족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던 ‘찰리 스터드’라는 한 사람의 비전과 헌신으로 WEC 국제선교회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50여 개국이 참여하고 2천여 명의 선교사가 80여국에서 선교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헌신이 오늘 이러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찰리 스터드’ 그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던 사람입니다. 
아니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철저히 내려놓고 
자신을 깨뜨렸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