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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조동진 <29> “모든 민족교회들이 만민을 위해 기를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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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중심의 선교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조직되면서부터였다. ‘선교사 철수론’이 채택된 WCC 암스테르담 회의는 사실상 서구 선교의 종식을 선언한 회의였다. 이후 1961년 개최된 뉴델리 회의는 서구 선교구조의 틀을 무너뜨려 버린 회의였다.

하나님은 세계 선교의 옛 틀이 무너지는 도상에서 나 같은 미천한 사람을 불러 교회 밖으로 나가게 하시고 새로운 세계질서와 재편성되는 국제 구조에 발맞춰 새로운 선교운동의 등장에 대비하도록 하셨다.

나는 미국 윌리엄캐리대 고려연구소장으로 봉사하는 한편,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웨스턴신학교의 선교학 교수, 그리고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의 방문교수로도 일했다. 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로잔복음화운동 전체회의에서는 ‘선교 구조의 쇄신’을 강의했다.

같은 해 소집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총회에서는 선교위원회 조직위원 3인의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 일은 75년 8월 서울에서 창립된 WEF선교위원회 소집을 주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88∼89년 나는 제3세계 선교 발전을 위한 지도자회의를 소집해 95년까지 회장으로 봉사했다. 90년대는 미국 휘튼대 대학원을 시작으로 무디성경학교와 트리니티선교대학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댈러스신학교 리폼드신학교 등 여러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했다.

나는 그때마다 ‘돌을 제하라’ ‘서구 선교의 무너진 대로를 수축하라’ ‘모든 민족교회들이 만민을 위해 기를 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소리가 내 귀에 울렸고 나는 사람들에게 이를 전했다.

나는 한국의 안팎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선교갱신운동 동반자들과 새로운 시대의 선교 역군들이 내가 이루지 못한 21세기 선교 구조의 완성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것을 한없이 기뻐하고 감사한다.

내가 아시아에서 뿌렸던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육성한 선교운동이 새 시대의 국제적 선교지도력을 가지고 역사 앞에 우뚝 서게 된 것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옛것은 무너져 가고 새것은 싹이 나고 자라서 이제는 열매가 풍성한 큰 나무가 되고 있다.

나는 1999년 바울의 집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GMS)에 이양하고 만 75세 나이로 모든 선교 조직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21세기 세계선교 지도력 개발을 위한 노력은 계속 추진했다.

2000년 12월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김바울 선교사와 함께 러시아선교지도력개발원을 세우고 러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 재교육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여기서 수료한 30여명의 목사를 중심으로 러시아기독교 모스크바 시노드(Synod·회의)를 조직하고 러시아 정부에 공식으로 등록했다.

2004년 이후 나의 사역은 주로 세계선교 역사에 대한 저술과 강의 초청을 받아 선교 후학을 격려하는 일이었다. 2010년은 놀라운 한 해였다. 내가 조직한 제3세계선교협의회가 주최한 에든버러선교대회 100주년 기념 도쿄대회에서 나는 ‘사도 바울 선교대상’을 받고 대회의 주강사로 추대됐다. 아시아선교협의회는 제10차 대회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새로 지어진 마와르 샤론 대성전에서 개최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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