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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무교회주의 - 김정환,장도원,송두용,류석동,김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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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3) - [김정환, 장도원, 송두용, 류석동, 김성실]

 

Ⅰ. 글머리

이제 우리는 조선 무교회주의 선구자들이 기독교 신학과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으며, 그들의 사상 가운데 문제되는 점을 분석과 검증으로 고찰해 보도록 하자. 이러한 문제는 이른바 조선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김교신(金敎臣)을 비롯하여 함석헌(咸錫憲), 송두용(宋斗用), 류석동(柳錫東), 장도원(張道 源), 김성실(金成實) 등의 무교회주의 사상을 분석-평가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미 김교신과 함석헌의 무교회주의 사상은 앞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가급적 이들의 사상을 상술하지 않으면서, 그외 다른 조선 무교회주의자들의 글을 통해 이들의 무교회주의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무교회주의란 아무리 무교회주의자들이 변호론적 논증을 통해 그들의 이론을 역설해도 엄밀히 보면 교회주의(敎會主義)에 도전하고,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반교회주의적 기독교의 한 종파(sect)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들은 성서 연구를 중심 과제로 강조하고 있음에도 그 자체가 이미 일종의 조선 성서주의 교파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 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무교회주의는 성서주의적 교회주의(聖書主義的 敎會主義)와 다름없는 또 다른 형태의 교회주의이다. 이런 역설적 진술은 만일 무교회주의자들이 교회는 부정하면서 예배를 경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인하는 한 그들의 주장은 더욱 표리 부동한 언어의 유희일따름이다.

 

Ⅱ. 김정환의 무교회주의 이해

김정환 교수의 김교신(한국신학연구소 발행) 전기는 비교적 훌륭한 평전에 속하는 바 그 내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발견하면서 무교회주의의 참된 본질을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김정환은 무교회주 의의 예배와 교회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교회 모임은 성경공부를 하기 위한 것이며, 예배.찬송은 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예배. 찬송이 주가 되며, 그 과정에 목사의 설교가 짜여져 있는 교회 모임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무교회 모임의 사람들은 모두 신이 위탁하신 각자의 가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이 신에 대한 가장 귀중한 예배라고 여기고 있으며, 또 그러기에 하루 24시간 전부가 예배의 연속이라고 보는 것이다. 안식일에 예배당에 가는 것을 기독교 신자의 도리로 여기는 관념으로 본다면 이런 생각은 통속적인 교회관과 크게 어긋난 것이다. 이들에 있어 교회당은 바로 생활의 장(場)이자 또 둘이모여 기도를 올리는 장소인 것이다. 안식일에 가족들이 모여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성경을 해석하는 모임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이들에게는 가장 모범적인 주일예배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남과 더불어 좀 더 철저히 하고자 할때에는 가족 아닌 신앙동지들이 모두 같은 입장에서 모여 공동연구를 하기도 하고, 또한 한 지도자 밑에 정기적으로 모여 성경 강의를 듣기도 한다.1

 

김정환의 무교회주 의에 대한 진술은 매우 핵심적인 분석을 한 것이다. 그는 무교회모임을 비형식적인 예배 모임으로 서술하였고, 그 반면에 교회모임을 형식적인 예배 모임, 즉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절차에 지나지 않는 예배 모임으로 구분하였다.

그렇다면 성경 공부를 하기 위하여 모이는 무교회 모임의 신앙 형태는 어떤 종류로 나뉠 수 있는가 즉, 무교회 주의의 성경 공부 양태는 어떻게 분류되고, 규정될 수 있는가 김정환은 무교회주의의 신앙 형태를 7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선 7가지 무교회주의 신앙 형태를 그의 진술에 따라 개관해 보자.2

1) 정통파: 무교회주의에 찬동하고, 그 성서연구회(聖書硏究會)에 매주일 참석하는 사람들

2) 진보파: 주일 예배를 각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성서연구로 지내는 사람들로서, 가정 예배의 형식을 띠고 있는 점에서 사실상 가정교회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

3) 전원파: 농사를 지으며 소를 몰며 풀을 베다가 우편 배달부로부터 성서연구를받아 그 자리에서 거의 다 읽고난 다음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그러기에 가족과의 성서연구는 별로 하지 못하는 밀레와 같은 사람들

4) 동조파: 교회의 장로 또는 집사로서의 직분을 오전 중에 성실히 한 다음, 오후에는 무교회 모임의 성서연구회에 또 참석해서 우의를 다지는 사람들

5) 교단파: 맡은 바 일과 직장을 통해서 믿음을 무의도적으로 학생들에게 전하는 사람들. 한 예를 들면 물리시간에 만유인력을 다룰 때 우주의 아름다운 법칙의 근원인 그 무엇을 강조한다든가, 또는 생물시간에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든가 하는 사람들

6) 단독파: 무교회 모임에는 거의 안 나가고 모임도 거의 안 가지며, 전혀 신자인 체 하지 않으면서도 김교신과 그의 신앙 후계자들의 글은 정성으로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외톨이 신자들

7) 비판파: 이러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신앙양식에 회의를 품고 점검하려드는 사람들 김정환 자신은 무교회 코이노니아의 아름다운 전통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이 각 파가 서로 존중하고 일체 서로 간섭 비평하지 않고 이해 수용하는 것임을 결론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상 7가지 유형의 신앙형태 가운데 단독파를 가장 귀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의 무교회주의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3

김정환이 단독파를 가장 귀한 것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단독파는 철저히 김교신주의자 (金敎臣主義者)들이기 때문이다. 단독파의 경우 이들이 기독교인이냐 단순히 김교신교도들이냐의 평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정환의 표현에서는 이들을 기독교인으로 보기는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

김정환은 신념과 신앙을 혼돈하고 있으며, 어떤 사상을 선호하거나 추종하는 것이 곧종교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무교회주의의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교신 및 그 후계자들의 글을 정성으로 읽으면서4 무교회주의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이런 행위를 참된 기독교 신앙생활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생활을 통해 기독교적인 의미의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어야 할 것 인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신앙을 부정하면서 김교신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확신하는 김교신교도들일 뿐이다.

그리고 신자인 체는 일체 하지 않으면서5 신자로 생각하는 것 역시 올바른 신앙태도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이기를 꺼리는 잠재의식이 단독파들에게는 강하게 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스스로도 무교회주의에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신자가 자신의 종교적 태도를 숨기려 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는 정직하게 신앙을 표출할 수 없는 어떤 교리적 모순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며, 종교적 사회적으 로 떳떳하지 못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Ⅲ. 장도원의 무교회사상

무교회주의운동 초창기에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 가운데 비록 김교신만큼 강력한 영향력이나 지지를 받지는 못했 지만, 무교회주의 신앙을 신학적으로 비교적 잘 제시해 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장도원(張道源) 목사이다.

장도원은 기독교 교회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김교신의 사상을 폭넓게 도용하면서, 교회는 조직만 힘써 잇고 신앙은 교리로만 되어 잇으며 교역자는 교단(敎壇)에서 문화의 혜택을 설명하며 사회개량사업을 고취(鼓吹)하면서 잇 는 까닭이다. 그런고로 심령의 궁핍을 가지고 온 영(靈)들에게는 하등의 만족을 주지몬하는 것이다6 라고 피력했다.

그의 조선 교회 비판에 김교신의 기성 교회배척론이 사용된 것이다. 장도원은 지금의 조선교회는 성신이 떠난 교회가 되며 하나님께 바리움을 받은 교회로서 악마의 소굴이 되고만 것이다7고 단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시 의 조선교회 현상을 그 나름대로 분석하였다.

 

현금(現今) 조선기독교회(朝鮮基督敎會)는 쇠약(衰弱)하여 간다. 양(量)으로든지 질(質)로든지 다 쇠약하여 간다. 이 사실은 교회마다가 다 실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교역자나 평신도의 별(別)이 업시 다 실감하는 사실이다. 지 금 교회의 형편은 똑똑하고 유위유망(有爲有望)한 청년들은 다 교회에서 멀니 물러가고 보잘 것 없고 변변치 못한 반불량자(半不良者)의 쯔스레기 청년만 나머잇섯어 뎨 뜻대로, 뎨 생각대로 뎨가 된대로 날뛰면서 썩은 내암새를 피우는 현상이다.8

 

장도원의 조선 기독교의 현상과 실체에 대한 비판은 매우 날카롭고, 직설적인 표현을통해서 강도 높게 던져졌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과격한 비판과 조선 교회의 현상분석은 매우 미흡하며, 시대상황적인 이해가 빠져있다. 교회비 판의 내용을 담은 그의 글 현금교회(現今敎會)가 성서조선(1931. 9)에 발표될 당시의 조선 기독교와 사회 상황은 일제치하에서 수탈과 탄압이 극도로 심화되어 가던 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문화말 살과 일분문화이식에 혈안이 되어 날뛰던 시기였다.

조선 교회의 양적 성장은 3.1운동이 별로 현실적 효과를 얻지 못하고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자 민족운동의 총본산으로서 기독교를 생각하며, 교회 배후에는 미국이 버티고 있어 교회가 조선 독립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신앙적 동기보다는 민족 해방의 수단으로서 기독교를 이용하려던, 그래서 교회에 찾아들던 많은 지성인들이 차츰 교회의 사회변혁의 힘이 약함을 깨달으면서 교회로부터 그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 것은 사실이다.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은 조선 독립의 실현을 위한 힘이 오직 사회주의적 공산주의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장도원이 현재의 조선 기독교회가 쇠약해 간다고 지적한 것은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장도원은 지금 교회의 형편은 똑똑하고 유위유망한 청년들은 다 교회에서 멀리 물러가고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 이들은 대체로 신실한 기독 청년들이었다기 보다는 강한 민족주의 정신을 갖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이거나 공산주의 운동가들이었다. 그러므로 장도원의 지적은 공산주의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마치 똑똑하고 유위유망한 청년이 교 회가 제도적 교회이기 때문에 떠나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데 문제도 있다. 그렇다면 똑똑하고 유위유망한 청년 들이 무교회주의로 전향하기라도 했는가

장도원의 비판의 비현실적, 비과학적 논증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는 예수를 믿고,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기독 청년들을 사회주의 이론으로 사상적 무장을 하고, 실천을 내세우며, 활동하는 청년들(즉 사회주의자들, 공산주의자 들)과 비교하면서 보잘것 없고 변변치 못한 반불량자의 쯔스레기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예수를 믿는 기독청년은 보잘것 없고, 변변치 못하고, 반불량자들이고, 쯔스레기같은 사람으로 평한 것은 그 스스로도 이런 부류의 기독교인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청년은 똑똑하고, 기독청년은 변변치 못하다는 매우 모순적인 주장이 그로 하여금 당시의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을 전혀 알지 못한 기성교회에 대한 맹목적이고, 이론이 결여된, 감정적 투사로 활동하게 했던 것이다.

한국의 교회사가 이영헌(李永獻) 교수는 그의 명저 한국기독교회사에서 1930년대당시 조선 교회는 한편으로 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민족의 독립을 그 목표로 내건데서 당시 사회 각층에 공명자들을 다수 불러 일으킨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교회도 그 여파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교회는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9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편 19세기에 위대한 발전을 한 과학문명의 물결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을 휩쓸었다. 교회는 이 거센 과학 물결 앞에 마치 파도에 부딪힌 조그마한 배와도같았다. 교회는 이 위기에 무척 당황했다. 특히 청소년들의 마음 속을 파고 들어가는 반기독교적 사상과 문명에서 헤어나갈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29년부터 시작한 제2차 진흥운동, 제3차 진흥운동을 장로교회에서는 기독교 문화운동의 해로 정하고 교회마다 교인을 위한 문고 설치, 교역자를 위한 이동도서관 설치, 현대사상과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한 저서를 내어 문고판으로 보급할 것, 현대 사상 및 기독교사상 연구회를 조직하여 연구 발표할 것 등을 정했다. 이렇게 해서 출판된 팜플렛 중에 김 인영(金仁榮)저 하나님의 존재(1933), 채필근 저 과학과 종교(1933), 이상문(李相文) 저 종교와 사회문제(1933), 김춘배 역 마르크스와 예수(1929), 도인명(都寅明) 저 인류학(1933) 등이 있다10고 했다.

재일본 목사 장도원은 바로 당시 조선 교회의 이러한 문화운동의 동기와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현금 일반 대중에게는 기독교란 것은 문화운동이나 사회개량을 위하야 잇는 종교와 갓치 이해되고 있다11 고 비판하였다. 기성 교회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의 침투와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막기 위하여 계몽적인 차원에서 문화운동을 펼쳤던 것이며, 그 결과는 오히려 건전한 기독교 사상과 이해를 증진시켰을 뿐이다. 성서조선이 펼치는 문서사업도 문화운동의 일환인 점을 장도원이이해하지 못하고 비판을 하기위한 비판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종교가 문화의 실체며 뿌리인 한, 우리도 왜곡된 문화를 개선한다거나 문화의 방향을 올바르게 정립하려고 노력하는 종교를 비종교적이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본래성이 인간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의 공동 광장인 문화에서 그 진실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장도원은 이런 폭넓은 시야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가 기성교회를 향해 던진 충고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기고 있다. 현금 조선 교회들아 모든 조직을 바리고 복음으로 도라오라.12장도원의 무교회주의적 주장은 기독교가 모든 조직을 버리고, 모든 문화운동과 사회 개량운동을 버리고 오직 복음으로만 돌아오기를 충고하고 있으나, 조직에 속하지 않고 복음에 돌아올 수 있을까 즉, 어느 개인이 기독교에 입교하지 않고, 기독교 조직에 들어서지 않고 이미 복음을 듣고, 구원의 체험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무교회주의자 김정환이 말했던 무교회 코이노니아의 아름다움 전통 역시 조직으로부터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몸의 각 지체가 조직을 이루지 않고 몸에 의식과 생명이 함께 할 수 있을까 몸의 조직을 버리고도 몸이 존재할 수 있을까 교회가 조직을 버리고 복음만 받는다는 것은 신체의 조직은 버리고 오직 영혼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과 같은 상식적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그도 목사라는 점에서 조직을 필요로 할텐데, 그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없는 글의 연결일 뿐이다.

장도원은 조선 교회에 대하여 조직을 버리라고 충고조의 강변을 피력하면서 신앙창조설(信仰創造說)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완전성에 있다. 그러므로 재창조설은 어떤 경우에도 이단설일 수밖에 없다. 절대자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하지 않다면, 이미 하나님은 절대자일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기독교는 참된 종교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의 신앙이란 것은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 납득하거나 신조를 승인하는 일은 안이다. 기독교의 신앙이란 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수납하야 들이는 일이다. 즉, 하나님이 그리스도로써 인간의 안에 새로 창조한 새 생명이다. 고로 신앙은 하나님의 일이오 하나님의 것이다. 신앙은 사람에게서 생기는 종교심(宗敎心)으로의 운동이 안이오 우으로 부터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 생명이다. 사람의 종교심에서 기(起)하는 절대자에게 대한 신뢰가 안이오 인간의에게서는 절대로 생길 수 없는 새 창조의 새로운 인간사실이다. 신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공동작업의 결합이 안이오 전 연(全然) 하나님 편에서만 행하야 사람에게 잇게되는 새 창조의 새 사실이다.13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신앙론이 매우 위험스럽다는 것과, 그의 신앙창조설에 따르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도 필요없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신앙창조행위에 따른 새로운 창조 사역이라는 점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은 신학적으로 이단적일 수 밖에 없다.

장도원의 신학이 이처럼 기성 조선 교회를 비판.부정하기 위하여 논술해 가는 동안 그의 신학노선이 기독교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마시는 것을 강조하는 점에서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변질적 형태로 주 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제도적 교회를 부정한다. 그가 조직을 버리라고 하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즉, 그는 철저히 개인주의적 신앙을 강조했으며, 그가 말하는 복음이란 곧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인간 삶의 현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그의 기독관을 분명히 피력하였다.

기독교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곧 그리스도교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일일히 실행하는 일에 중요점을 두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자신을 먹고 마시는 일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하야 크리스챤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역행(力行)하야 그리스도와 윤리적 관계를 가지는 자가 안이오 그리스도 자신을 가지는 자며 그리스 도자신을 소유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양식(糧食)으로 하야 먹고 마시면서 날마다 날마다 당면하는 인생 사변(人生事變)에서 부절(不絶)히 생장발육(生長發育)의 생활을 하는 자다.14 우리가 그를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돌연변이로 해석하는 이유는 그의 종교경험에 대한 진술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글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그리스도 자신을 경험하는 데에는 성신으로써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되는 것도 안이오 선배의 신앙 경험의 서적을 닐음으로써 되는 것도 안이오 교회에 열심으로 출석하야 교회의 의식과 예문(禮文)을 경건한 마음으로 지키며 은혜있는 선생의 설교를 들음으로써 되는 것도 안이오 다만 성신의 역사(役事)로서 개인의 심령 안에 그리스도를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15 그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로 신앙은 각각 개인이 그리스도와의 직접 산 경험에 있는 것이오 사람의 전통에 있는 것이 안이며 제도에 있는 것이 안이다.16

그가 조직을 버리라고 했던 것과 문화운동, 개량사업, 교회부흥운동 등 일체의 교회적 실천을 부정한 것도 오직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Ⅳ. 송두용의 제2창조설

무교회주의 신앙형태에 관한 또 하나의 유사한 관점은 송두용에 의해서 표명되었다. 장도원의 신앙창조설과 같은 사상적 맥락에서 주창된 신학을 우리는 송두용의 제2창조설(弟二創造說)과 영적창조설(靈的創造說)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송두용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또 창조를 깁버하신다는 뜻이다.17 그는 하나님의 실체를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란 존재양태(存存樣態; Seinsmode)로부터 깁버하신다란 유락양태(愉樂 樣態; Stimmungsmode)로 과감한 해석을 했다.

제1창조를 맛치신 하나님은 제2창조를 시작하섯다. 하나님의 제1창조는 아담의 창조로 시작하섯고 제2창조는 그리 스도 수육(受肉)으로 비롯하섯다. 제1창조는 육(肉)의 창조요 제2창조는 영(靈)의 창조이다. 그래서 제2창조는 제1 창조의 완성인 것이다. 즉 제1창조는 제2창조를 위하야 잇섯든 것이다. 따라서 제1창조를 깁버하신 하나님은 제1창 조의 완성인 제2창조를 더욱 깁버하심은 물론이다.18 송두용의 사상은 하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성육신 자체를 제2창조로 해석한 점이다. 하나님의 제1창조는 아담의 창조며, 이것은 육의 창조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제2창 조는 그리스도 수육, 즉 성육신으로서, 영의 창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1창조의 미완성 때문에 제2창조 가 있었다고 하여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의 사상의 이단성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제2창조설을 주장한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절대적이며 완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제2의 창조란 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므로 기독교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두용의 무교 회주의에는 영지주의(Gnostizismus)의 이원론사상(Dualismus)같은 요소가 들어있다. 즉, 제1창조의 신은 낮은 신이 거나 악의 신과 같은 것이고, 제2창조의 신은 그리스도 수육을 가능케한 신으로 높은 신,즉 선신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2) 하나님의 실체를 기뻐하신다란 유락양태(愉樂樣態)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존재양태(存在樣態)를 부정하는 오류는 이단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3) 참신이며 참 인간이신 신인동형설을 부정하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간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 즉 제2창조라는 사상은 많은 문제가 있다. 그리스도가 창조되어졌다고 하는 설은 이미 AD 318년 알 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Arius, 280~336)가 주장했고, 아리우스주의(Arianismus)는 이단으로 정죄된 바 있다.

4) 하나님의 제1창조를 육(肉)의 창조로, 제2창조를 영(靈)의 창조로 주장함으로써 송두용은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부분적인 것이었다는 점과, 제2창조가 제1창조를 완성한 것이란 주장은 창조주 하나님을 단지 조물주(Demiurge) 로 보면서, 구약의 하나님을 낮은 단계의 신으로 보고, 그리스도 수육으로 제2창조를 시작한 하나님을 지고의 신으로 나누는 영지주의의 신관과 매우 유사하며, 동시에 이단적이다.

송두용의 무교회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필요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의 관심은 오직 제2창조에 힘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마디로 개인적 신비주의의 극치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쾌락주의, 그의 표현에 따르면 유락(愉樂)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하신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도 창조하신다. 하나님의 유락은 조화(造化)이다. 주 예수의 유락도 또한 창조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 예수 신자 엇지 창조하지 안을 수 잇느냐 그럿타 우리는 창조하여야 하며 또 우리의 유락도 또한 창조이지 안이치 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창조함에 노력하라 우리는 하나님과갓치 또 예수 와갓치 창조하자 우리의 유락이 창조에 잇서 우리는 진리에 거한 자인 것이다. 지금은 제2창조기니 우리는 맛당히 영적창조에 힘써야할 것이다. 형제여 힘쓰라 영적창조에 아 영적창조다 영적창조다19 여기에서 송두용은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을 모두 창조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그 능력의 동일시를 표명하였다.

기독교 신학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인 구세주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죄인인 인간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면서 교리의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송두용은 예수도 창조하신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스스로 있는 자인 하나님만이 무(無)에서 유(有) 의 창조(creatio ex nihilo)가 아니고, 예수가 창조자가 되는 이단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주장의 모순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제1창조는 아담의 창조로 시작하셨고 제2창조는 그리스도 수육으로 비롯하셨다20 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육이 하나님의 창조로 되어진 현상이라고 역설했으나,

2) 곧이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도 창조하신다21고 주장함으로써, 여기에서는 피조된 그리스도가 아니고 창조하는 그리스도로 또 다른 묘사를 하고 있다.

3) 한마디로 그의 기독론은 피조된 그리스도와 창조자 그리스도를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첫째, 피조된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며, 동시에 아리안주의와 매우 유사한 이론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창조자 그리스도론은 기독교의 유일신관을 부정하는 사상으로 사물현상의 역동성을 창조적 현상으 로 인식하려는 일종의 역동설(Dynamismus)과 같은 비기독교적 사상이다.

4) 송두용은 인간도 창조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면 하나의 자녀인 예수 신자 엇지 창조하지 않을 수 있느냐 으로 강하게 인간의 창조적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그리스도 예수도 하나님이 독생자요, 인간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에서 이셋을 동격화하려 한다. 적어도 창조한다는 능력에 있어서 그는 이 셋의 실체를 동 일시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공식화해보면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인간(G=JX=M)이라는 등식적 구조로 나타난다.

이 등식에 하나님은 창조자라는 명제를 대입하면, 곧 창조자 하나님=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 창조자 인간이라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런 단순 논리적 삼단논법식 신학 이해는 철저한 이단설이며, 무교회주의자들의 사이비 신학에서 유래된 것이다.

5) 송두용의 이단설 가운데 영적창조설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1창조는 육의 창조요 제2창조는 영적 창조이다. 지금은 제2창조기니 우리는 맛땅히 영적창조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제 2창조는 제1창조의 완성인 것이다. 형제여 힘쓰라 영적창조에 22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육의 창조자로 본질규정함으로써, 하나님을 그리스 고대철학에서 조물주로 인식되던 데미우룩(Demiurge)과 같은 존재로 보았다. 또한 인간을 불완전한 창조를 완성시킬 수 있는 존재로 서술함으 로써 인간의 능력을 영적창조자로 평가한 것이다.

인간의 영적창조를 통해서 창조의 완성을 이루어야한다고 역설함으로써 인간을 하나님의 능력처럼 높은 본질로 서술하였다. 인간이 곧 영적창조자요, 모든 창조의 완성자라는 사상이다.

이 점은 아마도 그들의 기독교 신앙이 진정 기독교적인가 혹은 인간숭배주의 인가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송두용을 비롯한 무교회주의자들이 교회부정, 교회무용론, 성직제도 및 성례부정, 교리 및 전승된 신앙고백 부정, 그리스 도창조설, 신앙창조설, 영적창조설, 인간창조주설, 하나님의 불완전한 창조설, 제2창조설, 인간의 창조완성설 등과 만인성서해석권의 오용 및 남용, 공산주의적 종교발생론의 도식으로 기독교를 해석하려는 유물론적 종교론 등은 이들을 기독교도라고 볼 수 없도록 한다.

송두용을 김정환의 무교회주의 신앙형태 중 어디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져 본다면, 아마도 그는 분명히 정통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조선 무교회주의 설립 6인동 지의 한 사람이었으며 성서조선의 창간 동지였다는 점에서 그를 정통파로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서연구에 매주일 참석했는가 하는 점은 거의 규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그가 성서조선과 관계를 끊었던 시기도 있는 점으로 보면 그는 정통파의 골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의 무교회주의 사상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그가 정통파(orthodox)무교회주의자라기 보다는 급진적 무교회주의자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를 급진파(radical)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정환의 일곱 가지 신앙형태 이외의 분파이므로 제8의 무교회주의의 신앙형태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Ⅴ. 류석동과 그리스도의 옷 신비주의

송두용과 마찬가지로 류석동은 조선 무교회주의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보급하던 무교회주의자이다. 성서조선에 발표된 20편 가까운 그의 글들은 조선 무교회주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에 매우 우호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자신은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을 비롯한 기타 여러 무교회주의 동지들과 같이 무교회주의에 충성스럽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송두용식의 급진적인 무교회주의를 지양하고, 매우 온건한 신앙주의를 표방하였으며, 몇군데의 무교 회주의적 표현을 제외하면 그를 교회주의자(敎會主義者)라고 불러도 별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신앙적 이었고, 성서적이었다. 그것은 그만이 무교회주의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영생의 체험을 한 것이다. 그는 확실히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체험한 신앙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교회나,성서나, 성례 등을함부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할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적인 떨림(nouminose)을 늘 갖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신앙체험을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다.

5월 20일은 나에게 특별한 생각과 느낌을 준다. 이 날은 내가 육에서 죽고 영에 들어온날이다. 과거 몇십년 동안의 자아의 생활에서 버서나 하나님의 생활로 들어오게 된 날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게 된 날이다. 물론 나는 이 날에 세례를 받은 것이 안이고 또 벗들 앞에서 이상한 힘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홀로 방에 앉아 자기의 죄악에 이때까지 없는 고민을 깨달아 어찌할 줄을 몰라 보통 때와 같이 기도를 하다가 성서를 닐고 성서를 닐다가는 기도를 하고 있을 때 과연 꿈에도 생각지 아니한 일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고린도전서 제1장 30절 후반의 한말 예수는 하나님께서 세우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속죄함이 되셨으니가 번개같이 마음 속에 지내가며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뚜렷이 뵈였다. 나의 가슴은 터지 는듯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쏘다지며 말할 수없는 깃븜이 한없이 생기었다. 이 깃븜이 생긴 다음 순간에는 이 몸, 이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히자는 각오가 무럭무럭 일어나며 나를 당신 마음대로 써줍소서 하는 기도가 솟아나왔다. 이때 나의 분열된 의지, 이지(理知), 감정은 통일되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이 한 뭉치가 되여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였다.23

류석동은 전투적 언어로 교회주의를 공격하는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등과 너무 대조적인 무교회주의자이다. 그는 김교신처럼 유일의 선생을 가진 자가 아니므로 선생으로부터 배움을 받은 자가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사람이다.그래서 그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는 살았고 지금 또한 살고있다. 나는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비로소 자유스럽게 되고 충족함을 얻었다24고 고백한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성서를 읽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외쳤다. 성서만이 생명의 양식이다. 우리는 성서를 닐지 아니하면 살 수가 없다. 성서를 경건한마음으로 닐어라.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이 책 밖에 생명을 전하여 주는 것이 없느니라25고.

그의 중심 개념은 무교회가 아니고 신앙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편리하게 신앙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신앙주의의 출발점은 신앙의 유형이나 현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고, 삶에서 역동하는 신앙 자체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기를 원했다. 이러한 소원(所願)이 그를 더욱 신앙주의로 이끌어 갔으며, 그가 신앙주의에 더욱 깊이 몰입하면 할수록 그는 공리주의(功利主義)에 빠져 든 신앙절대주의를 부정하면서 그리스도 신비주의에 접근해가고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 그의 의(義)와 성(聖)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가겠나이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달(達)하였나이다.26 그의 예수 그리스도의 옷 사상은 신앙의 극치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천상천하에 이 옷밖에 우리가 입고서 하나님 앞으로 나갈 옷이 업나니라.27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와 하나됨의 표현으로서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히 본 류석동의 그리스도의 옷이란 곧 그리스도와 합일(合一)의 경지 에서 가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이신득구의 신학사상이 그 이면에 깊이깔려 있다. 그것은 신앙이며, 영생에의 길이었다. 그는 다음의 말을 통해서 신앙을 규정하고 있다.

신앙이란 비애의 골짝에서 모순의 그물 속에서 일어나는 조화(調和)의 음악이다. 투쟁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노래 이다. 불완전한 우주에서 들려오는 해조(偕調)의 음률이고 불비(不備)한 인간의 말 속에서 삼겨나는 성서의 통일이 고약한 인간의 육(肉)속에서 일어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류석동의 신앙은 무엇에 대한 신앙인가를 그의 진술을 통해서 직접 찾아 보자. 그는 십자가는 나의 신앙의 처음이고 끝이다29고 분명히 진술했다.

그의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인 십자가는 자기 실존의 전부였다. 그의 십자가 신앙은 그리스도의 옷 사상이나 성서주의와 더불어 그의 신앙주의를 새롭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는 인간의 실존이 십자가의 2중성, 즉 알파포인트(alphapoint)와 오메가포인트 (omegapoint) 사이에서 존재하는 양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십자가의 알파점은 인간의 실존의 원초성이며, 십자가의 오메가점은 인간의 실존의 초극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류석동에게서 신앙의 처음과 끝인 십자가는 신앙하는 인간 실존의 전체성이며, 통일, 실존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류석동은 교회무용론을 역설하는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무교회주의는 신앙의 형식화나 공리주의적 신앙 절대주의를 부정하고, 철저히 성서주의적이며, 그리스도와 합일의 체험에서 표출된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한 양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의 신앙의 전체였으며, 그리스도와의 접합, 즉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경지를 항상 최상의 희열로 흠모했다. 그는 기성 교회나 제도를 적대시하며 비판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교리나 신조의 예민한 문제들을 일정한 표준없이 난도질하거나 비판하는 만용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무교회주의자라기 보다는 십자가 신앙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마땅할 것같다.

그가 조선 무교회주의 동지들과의 사상교류나 성서조선지에 논단 발표를 1934년 3월 이후로 거의 단절해 버렸던 점은 그의 기독교 이해와 신앙이 이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한 때 단테에 심취했었고, 한 때는 밀턴에 마음을 빼앗긴 때가 있었고 또 한 때는 사옹(沙翁:셰익스피어를 한자음 표기로 줄여서 일컫는 말-필자 주)에 몰두할 때가있었고 또 한 때는 희랍철학에도 경도(傾倒)한 때가 있었 다.30 그러나 그의 신앙의 오메가 포인트는 성서였다. 그는 성서를 생명의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을 길 러주는 살과 피라고 확신했다.11 그래서 그는 문학과 철학에서 성서로 전향한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신앙은 성서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붙여질 성서주의(聖書主義)란 미국의 보수주의적 근본주의의 성서 주의(biblicalism)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Ⅵ. 김성실의 기도생활중심 사상

우리가 또 한 사람의 무교회주의자로서 사상을 검토해 보아야 할 사람은 화육론(化肉論)32과 조선 교회와 교권자제위33 의 필자 김성실이다. 김성실은 자기 사상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종교는 신앙경험을 근본으로 삼는다. 결코 의식이나 교리나 조직이나 제도나 사업이나 무슨 당파적 단결로써 중심을 삼는 것은 안이다.34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예수 믿는 유일의 길은 기도이다. 원래 종교생활의 근본은 기도생활인 것이다. 기도가 없이는 기독을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기도는 우리 영의 호흡이다. 양식이다.35 기도생활을 강조하는 그는 조선기독교의 실체를 기도하는 모양은 있으나 실(實)은 없는 교회라고 비판하면서, 기도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36 그러나 그는 철저히 교회개량 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기성 교회의 비교회성을 비판하였다. 이 점에서 그를 무교회주의자로 낙인찍기 보다는 교회개량주의자, 혹은 교회갱신주의 자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의 분명한 문자적 표명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글을 인용 해 보자.

나의 신앙전(信仰戰)의 목표는 교회내 조직이나 제도나 혹은 교리나 신조에 있지 않다.

다만 형(形)을 버리고 실(實)에서 살게하고저 하는데 있다. 그런 고로 현대교회나 교역자들을 파괴하라고 하지 안는다.37

김성실은 교회의 현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다. 그러나 조선 무교회주의의 효시인 김교신이나 종교파괴론자인 함석헌과 같이 철저한 무교회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교회파괴론자가 아니다. 또한 김교신주의자도 아니며, 함석 헌과도 별로 동질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그의 입장은 논문 두 편 말고는 밝혀진 것이 없으므로 이를 기 초로 해서 평가할 때 그는 이용도가 부흥집회 때마다 조선의 기독교는 죽었다고 비판하면서 신앙에 불을 붙이고, 폭포같이 쏟아지는 눈물과 기도를 보여주었던 것과 거의 유사한 점이 있다. 그는 조선 기독교가 실(實)을 얻어 생 명종교(生命宗敎)가 되어야 한다는점을 강조하였다.

목회의 표준을 교회주의나 집합중심주의(集合中心主義)에 두지 말고 각 교인의 심령 안에 있을 영의 생명 유무 (有無)에 둘 것이다38라는 충정어린 호소는 영성(靈聖)을 강조하는 일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의 내면 세계가 문명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여 변화하지 못하 는데서 오는 문화적 괴리현상과 가치 혼란의 상황은 인간에게 더욱 진지하게 자신의 영적 삶을 직시하고 성찰하도 록 하고 있다. 영성개발이라든가 영성훈련, 그리고 명상훈련 등을 통한 자아발견과 개발은 이런 점에서 현실에 대 한 내적 삶의 표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김성실은 바로 영의 생명(靈의 生命)을 발견하여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부정하지는 않았던 점에서 아마도 우리는 그를 교회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Ⅶ. 요약 및 평가

지금까지 우리는 조선 무교회주의를 인물중심으로 서술해 보았다. 이 사상은 한국신학사상의 흐름을 개관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비중이 큰 사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작품들을 직접 분석-해석-평가하면서 탐구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단순히 작품상의 문제점을 나열한 것만은 아니었고, 매우 과학적으로 작업했다고 자부한다.

여기에서 결론은 무교회주의에 대하여 한국의 몇몇 교회사가들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음에도 솔직히, 더욱 정직하게 말해서 무교회주의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대체로 기성 교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추적해 본 무교회주의자들 가운데 몇명은 이단적인 발상도 갖고 있었다.

특히 김교신이나 함석헌 같은 이들은 기성 교회에 대하여 가히전투적이라고 할 정도로 도전적이었으며, 증오심이 넘치는 과격한 표현을 통해서 공격일변도의 주장만을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송두용은 너무도 황당무계한 신학이론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혹하게 하기도 했다. 장도원, 류석동, 김성실과 같은 이들은 대체적으로 성서, 십자가, 그리스도, 기도, 신앙 등과 같은 용어를 동원 하여 그들의 주장을 정립해 나갔다. 그래서 장도원이 약간 과격하게 나가기는 했으나 이 세 사람은 온건한 무교회 주의자들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김정환 교수도 무교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문젯거리가 될 수 있으나, 그 스스로 단독파로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도 무교회주의자의 범위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는 무교회주의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김교신을 흠모하고 있는 김교신주의자라고 불러야 할 인물인 듯하다.

무교회주의 사상이 조선을 성서화하려는 선교적 사명과 의욕에서 헌신적 노력을 계속했던 것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성서와 조선, 성서를 조선에, 그리고 조선을 성서위에39 세우고자 했던 조선 무교회주 의의 정열은 조선의 복음화를최대의 목표로 전진해 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성서조선지를 통한 문서활동은 당시의 정치.경제적, 사회. 문화적 여건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물리적 노력에 비하여 그들의 정신적 주장에 기독교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요소들을 담고 있는 점이다. 그 문제점들이란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이다.

1) 이들은 신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므로 기독교 이해에 많은 오류를 갖고 있다. 신학서적이나 주석서 및 기독교 백과사전을 대충 간추려 가면서 독학으로 신학을 접한 사람들이므로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주로 교회론과 성례론을 부정하고, 그들의 신앙 태도를 비판하는 교역자들을 증오하여 매도하거나 공격하는 열혈당적 분파주의 색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신학이나 기독교의 본질에 관해서 지식과 정보를 흡수할 수 있었던 신학자료들이 문제있는 것들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지식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교회주의 운동에 쏟는 열정으로라면 신학의 대하를 탐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기독교 신학의 세계적 추세와 당대의 신학자들의 이름이나 저서, 논문 한편도 158호를 종간호로 성서조선이 폐간될 때까지 비판적으로든지 수용적으로든지 한번도 거명하거나 논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이들이 사용하는 신학 및 기독교에 관한 자료는 매우 제한 적이었으며 고정관념에 편향된 문제있는 것들이었음을 입증한다. 그들이 사용 도서의 출처를 고의적으로 은폐하는 것은 왜 그럴까

2)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부터 형성된 종교이다. 그런데 교회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교회는 단순히 오합지졸로 모여든 군중의 모임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소적 의미만을 갖고 있는 공간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세운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교회의 설립기사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고 예수는 그의 교회설립의지를 말씀하면서, 그가 교 회의 정초자임을 확실히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는 교회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교회)를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 가운데는 이미 교회 조직, 목적, 기능 등이 명시되어 있다.

계속하여 성경에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고전1:2)이 모인 곳을 교회라고 지칭하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엡5:22~23),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딤전3:15), 하나님의 도성(히12:22),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엡 2:22), 하나님의 집(고전3:9), 하나님의 나라(히12:28), 신령한 집(벧전 2:5), 하나님의 전(고전3:16)이다. 이렇듯 성경은 교회의 유래, 본질, 조직, 기능 등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무교회주의자들이 성경의 이러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면서 교회 부정만을 강조한 것은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겠다는 그들의 의도와 모순적이다. 무교회주의가 성서를 연구하는데 중심을 둔다고 하면서 성서의 교회관에 관해서는 왜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가 교회를 부정하고 구원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종교신학적 발상과 동일한 것이다.

3) 무교회주의의 존재 목적은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교회주의와 전투하기 위하여 뭉쳐진 결사단체인지, 그들의 표현대로 조선을 성서화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들의 행적과 실천을 통해서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 조선을 성서화하려고 한다면 무엇보다성서를 올바로 가르쳐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성서의 핵심인 복음의 메시지를 정확 히이해하고 제시해 주어야 했었다. 그러나 성서조선은 종간호(158호)에 이르기까지 왜곡된 성서해석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부정, 성직부정, 제도부정, 성례부정, 신조부정, 교리부정, 전통부정 등 철저한 부정주의(否定主義)에 빠져 있다. 그들 스스로도 무교회주의는 부정(否定)주의라고 분명하게 표명하였다.

기독교 세계관은 염세주의나 비관주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부정주의도 아니다. 율법을 부정(否定)하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성(完成)하려고 오신 예수의 오심은 기독교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비롯한 범사에 감사와 긍정(肯定)을 드러내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부정주의는 일종의 염세주의다. 무교회주의자들의 부정주의는 일차적 증상으로 교회파괴증으로 나타났으며, 그리고 개인적 신비주의로의 지향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성서조선의 폐간 (1942년 3월, 제158호를 끝으로)으로 이론무장이 중단되고, 김교신의 죽음(1945년 4월 25일)으로 지도자를 잃은 조선 무교회주의는 그 자리에서 그 현상 그대로를 유지하며 더이상의 변신을 멈추었다. 하지만 만일 김교신의 활동이 오늘날까지 왕성히 생동해 왔다면, 조선 무교회주의는 분명히 개인주의적 신비주의 혹은 염세주의적 분파주의(sect)로 그 양상을 가꾸어 나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조명해 본 조선 무교회주 의자들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해보면서 무교회주의의 연구를 마친다.

 

주(註)

1. 김정환, 김교신, p. 134.

2. Ibid., pp. 147~148.

3. Ibid., p. 148.

4. Ibid., p. 148.

5. Ibid., p. 148.

6. 장도원, 현금교회(現今 敎會), 성서조선, 제32호(1931. 9), p. 1.

7. Ibid., p. 1.

8. Ibid., p. 1.

9. 이영헌, 한국기독교사, p. 170.

10. Ibid., p. 171.

11. 장도원, 현금교회 Ibid., 제32호(1931. 9), p. 1.

12. Ibid., p. 2.

13. 장도원, 신앙은 하자(何者) 성서조선, 제45호(1932. 10), p. 1.

14. 장도원, 기독관, 성서조선, 제42호(1932. 7), p. 5.

15. Ibid., 제45호(1932. 10), p. 2.

16. Ibid., p. 2.

17. 송두용, 창조의 유락, Ibid., 제31호(1931. 8), p. 23.

18. Ibid., p. 23.

19. Ibid., p. 24.

20. Ibid., p. 23.

21. Ibid., p. 24.

22. Ibid., p. 24.

23. 류석동, 나의 걸음(3), Ibid., 제55호(1933. 8), p. 23.

24. 류석동, 신앙의 재조(再調) Ibid., 제60호(1934. 1), p. 3.

25. Ibid., 제55호(1933. 8), p. 24.

26. 류석동, 나의 걸음(1) Ibid., 제46호(1932. 11), p. 3.

27. Ibid., p. 3.

28. Ibid., p. 3.

29. Ibid., 제60호(1934. 1), p. 5.

30. 1933년 12월 30일부터 다음해 1월 5일까지 성서조선 독자를 위한 동계성서 강습회(제2회 오류동 집회) 안내문에 류석동은 예언서 연구(9시간)와 단테의 성격에 관해 강의한다는 광고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단테를 많이 공부한 것이 분명하다( 성서조선 제58호, 1933. 11. P. 13 참 조). 그는 제1회 활인동(活人洞)집회(1933. 1. 3~5)때에는 영어사(英語史)를강의했다( 성서조선 제 61호, 1934. 2. P. 8 참조).

31. Ibid., 제55호(1933. 8), p. 24.

32. 김성실, 화육론(化肉論) Ibid., 제51호(1933. 4), pp. 1012.

33. 김성실, 조선교회와 교권자제위 Ibid., 제52호(1933. 5), pp. 10~16.

34. Ibid., p. 10.

35. Ibid., p. 11.

36. Ibid., p. 12, 16.

37. Ibid., p. 16.

38. Ibid., p. 15.

39. 김교신, 성서조선의 해(解), Ibid., 제75호(1935. 4), 권두언.

 

* 무교회주의자들의 사상 비교*

[김교신]

1) 사상 : 교회외 구원론, 정통적 내촌주의

2) 중심명제 : 교회밖에 구원이 있다.

3) 주요내용 : 무교회주의란 것은 진정한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요, 무교회주의자란 것은 진정한 크리스챤을 의미하는 것이다.

4) 평가 : 교회 및 성직제도 비판에 역점, 철저히 교회무용론적임, 철저한 내촌 숭배론자

 

[함석헌]

1) 사상 : 종교파괴주의, 성직파괴론, 교회무용론

2) 중심명제 : 무교회주의는 부정주의다

3) 주요내용 : 무교회주의는 이론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주장이다.

4) 평가 : 유물론적 종교비판과 유사함 (말기에는 민중주의로 변신), 지성주의적 종교사상 강함, 혼합주의 사상가

 

[송두용]

1) 사상 : 제2창조설, 영적창조설

2) 중심명제 : 형제여 힘쓰라 영적 창조에!

3) 주요내용 : 제1창조는 육의 창조요, 제2창조는 영의 창조이다

4) 평가 : 완전한 이단주의자, 아리우스주의와 또는 영지주의와 유사함, 신론, 기독론은 완전히 이단

 

[류석동]

1) 사상 : 성서주의, 십자가 신앙주의, 그리스도 신비주의

2) 중심명제 : 성서만이 생명의 양식이다.

3) 주요내용 :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 십자가는 나의 신앙의 처음이고 끝이다

4) 평가 : 성서주의적 교회주의자, 신앙강조, 그리스도 중심주의

 

[김성실]

1) 사상 : 기도생활 중심사상

2) 중심명제 : 기도는 우리 영의 호흡이요 양식이다.

3) 주요내용 : 주예수 자체만 직접 앙견신뢰하라

4) 평가 : 기도생활중심, 기독교 개량주의자, 영의 생명강조

 

[장도원]

1) 사상 : 신앙창조설, 그리스도 신비주의

2) 중심명제 :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라

3) 주요내용 : 현대 조선교회들아 모든 조직을 버리고 믿음으로 돌아오라

4) 평가 : 신앙창조설은 문제있음,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변질태,복음중심의 기독교 설계

 

[김정환]

1) 사상 : "단독파" 무교회 주의, 김교신 주의

2) 중심명제 : 교회당은 바로 생활의 장이다.

3) 주요내용 : 각자의 가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일이 신에 대한 가장 귀중한 예배이다.

4) 평가 : 기독교적 요소없음, 종교상대주의적 요소 강함, 생활 잧체를 예배시하므로 신비주의로 발전할 가능성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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