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역경의 열매] 이승율 <6> ‘아내의 기도’ 25년 만에 새 피조물로 거듭나


201806250001_23110923969360_1.jpg
나는 마흔셋이 돼서야 교회에 나갔다. 고1 때 만난 아내가 25년 기도한 가운데 아이들의 금식기도가 나를 인도했다.

1989년 12월 중순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세 아이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큰아들 동엽이 중3, 둘째 동헌이 중1, 막내딸 현주가 초등 3학년이던 때다. 큰아이가 말했다. “아빠, 스키장도 좋지만 올해는 기도원에 가요.”

기도원이란 단어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런데 왠지 싫지는 않았다. 당시엔 휴거(携擧·공중들림)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걱정해서 기도원에 가자고 한 것이었다. “그래 가보지 뭘. 사람 잡아먹는 데도 아닌데.”

아내와 약속했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댔겠지만 아이들과 한 약속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연말이면 아이들과 스키장에 가서 며칠씩 놀다오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다녀왔다. 이곳에선 매년 초 2박3일간 여의도순복음교회 실업인선교연합회가 주관하는 신년축복성회가 열렸다.

1990년 1월 1일 새벽 온 가족이 짐을 챙겨 기도원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다 싶었다. 당시 하루에 한 갑 반 내지 두 갑씩 담배를 피웠다. 논두렁길에 담배와 라이터를 던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첫 변화였다. 남들은 금연하려고 사투를 벌이는데 난 중3 때부터 달고 살던 담배를 한순간에 끊었다. 금단현상을 겪지 않았다. 체중도 늘지 않았다. 아멘!

금식 첫째 날은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둘째 날이 됐다. 예배 중간 쉬는 시간에 나는 어느 장로에게 물었다.

“실로암이 무슨 뜻입니까? 암자 이름도 아니고.”

우리 가족이 예배드린 곳은 실로암 성전이었다. 기도원 초입 오른쪽 낮은 지대에 허름하게 자리한 제2성전이었다. 대성전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장로는 웃으면서 성경의 요한복음 9장을 펼쳐 들고 설명해줬다.

“성경에 나오는 연못 이름이에요. 예수님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발라준 다음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대로 가서 씻었더니 눈을 뜨게 된 기적의 장소가 바로 실로암입니다.”

이 장면이 나는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그시 감고 있던 내 눈앞에 파노라마 같은 환상이 펼쳐졌다.

실로암 연못은 기드론 계곡 낮은 밑바닥에 있었다. 예수님은 시온산 언덕 위에서 소경에게 연못에 내려가서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험한 비탈길을 기어서 내려갔을 소경의 고통이 느껴졌다. 이어 눈이 떠지자 언덕 위 푸른 창공 속 예수님을 바라봤을 때 소경이 맛봤을 감격과 환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젊은 날 방황과 절망, 고뇌에 빠졌던 회한이 그대로 전해졌다.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던 내가 아닌가.

나는 그때의 내 마음을 표현한 글에 ‘저 밑바닥에서 벽공(碧空·푸른창공)으로’란 제목을 달았다. 파우스트가 목숨 걸고 진리를 탐구하려다 좌절하는 마지막 순간, 구원의 여인 그레첸(Gretchen)에게 이끌려 하늘로 올라가며 외친 구호가 바로 이 제목이다. 구원받은 파우스트가 바로 나의 모습으로 오버랩됐다.

불교적 해탈과 기독교적 부활을 동시에 깨닫는 신비한 환상적 체험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 후 나의 진로는 180도 바뀌었다.

정리=정재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