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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상팔복(2) 애통하는 자의 복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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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팔복(2) 애통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4절)


< 애통함이 복이 되는 이유 >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언뜻 보면 웃는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없을 것 같다. 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가?

1. 심령이 가난해지기 때문

 애통은 심령이 가난한 표식임과 동시에 심령을 가난하게 만든다. 왜 사람들이 애통해하는가?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축복받는다. 큰 헌신을 해도 ‘자신의 공로에 대한 인식’보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 애통이 나올 정도로 겸손해질 때 축복도 찾아온다.

 위대한 사람은 대개 겸손하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스스로 죄인처럼 되신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자기가 제일 옳다고 믿지 말라는 암시도 있다. 자기만 옳다고 하면 그로부터 향내보다 악취가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기 전에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라.

2. 자신을 알게 만들기 때문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삶은 자신을 아는 삶이고 가장 복된 삶은 자신을 볼 줄 아는 삶이다. 자신을 보게 하는 렌즈가 있다. 바로 ‘눈물의 렌즈’이다. 멀리 보게 하는 것은 ‘망원경(telescope)’이고 작은 것을 보게 하는 것은 ‘현미경(microscope)’이다. 둘러보게 하는 것은 ‘잠망경 혹은 회전전망경(periscope)’이고 내면을 보게 하는 것은 ‘내시경(endoscope)’이다. 그런 단어형성 원리를 따라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은 ‘자아경(selfscope)’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고의 자아경은 ‘애통의 눈물’이다.

 사람은 누구나 착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흉악범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또한 갑자기 진실해지고 싶을 때도 있다. 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를 소원하면 그때 꼭 생기는 것이 작은 죄에도 애통하는 삶이다. 진실하게 살고 싶은데 그 소원을 거역하며 사는 자기의 부족이 속속들이 보이면 저절로 애통함이 나온다. 그 애통이 자신을 알게 하고 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3. 기도하게 만들기 때문

 애통은 기도하게 만든다. 애통이 기도로 변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힘들고 억울하고 고통스런 일을 당하면 그 에너지를 기도로 승화시키라. 절망의 밤을 기도의 밤으로 바꾸라. 누구에게나 새벽이 찾아오지만 사람마다 맞이하는 새벽은 다르다. 숙면을 취한 사람과 뜬눈으로 밤을 새운 사람이 맞이하는 새벽은 전혀 다르다. 기도 없이 맞이하는 새벽과 기도로 씨름한 후 맞이하는 새벽은 같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리고 예고 없이 절망의 밤을 만난다. 왜 절망의 밤이 찾아오는가? 모든 절망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라는 표식이다. 아침햇살이 비치면 자욱한 안개가 걷히듯이 기도의 무릎이 세워지면 절망의 기운은 사라진다. 결국 가장 큰 절망은 절망 중에도 애통하며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절대 절망은 없다. 하나님은 기도하도록 잠시 절망을 허용하신 것이다. 기도와 절망은 양립할 수 없다. 기도가 없으면 절망이 찾아오고 기도가 있으면 절망이 사라진다.

4. 진정한 친구를 얻기 때문

 애통한 순간에 누구는 내 곁을 떠나지만 친구는 내 곁을 지켜준다. 결국 애통은 진짜 친구를 얻게 하는 시금석이다. 교회가 애통한 순간을 만나면 그때 진짜 목자와 진짜 교인을 얻는다. 그처럼 애통한 순간에 내 곁에 함께 있어주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진짜 친구를 얻는다면 애통한 순간을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다. 힘들 때 누군가 “요즘 많이 힘들지요?”라고 하며 그 힘든 것을 알아주면 덜 힘들다. 아파도 누군가 같이 울어주면 덜 아프고 배고파도 누군가 함께 해주면 때로는 배부를 때보다 더 행복하다.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 힘들어도 더불어 힘들면 괜찮고 죽어도 더불어 죽으면 괜찮다. 태산 같은 문제가 있어도 더불어 산을 넘으면 태산길이 흥미진진해지고 한겨울 칼바람에도 누군가 함께 있으면 한여름처럼 따뜻해진다. 사람은 사소한 것으로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을 잃기도 한다. 어떤 때는 어른도 유치원생처럼 유치하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하다가도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무너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고 하나님을 버선발로 달려오시게 할 애통이 필요한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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