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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회와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의의

by 이창섭 posted Jun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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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회(査經會)와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의의

 

 

정일웅 교수(총신대학신학대학원 원장, 한국개혁신학회회장)

 

 

문제제기

 

오늘 본 한국개혁신학회 학술행사의 서막을 열어드린다는 차원에서 필자는 평양대부흥운동을 가능케 한 가장 주된 도구가 무엇이었던 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 도구의 적용가치를 논의해 보려고 한다.

그러면 평양대부흥운동의 주된 도구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신학적으로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 자신의 역사였다고 할 것이다. 성령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그 큰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흔히 ‘평양대부흥운동’하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 그리고 회개운동, 통성기도, 복음전도, 그래서 교회의 수적인 부흥으로 연결시켜 이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회개운동을 하고 통성기도를 하면, 그리고 전도를 하면 성령이 충만해 지고, 교회가 부흥되며 수적으로 크게 성장한다는 논리를 많이 듣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와 통성기도와 전도운동이 과연 평양대부흥운동을 초래하게 된 원인인지? 질문이 생긴다. 생각하면 회개운동, 통성기도, 전도는 성령의 깨닫게 하시며, 감동케 하시는 역사로 나타난 현상이거나 결과이지, 결코 그것들이 전제조건이거나, 방법론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역시 그것들이 성령역사의 전제조건도 아니었으며, 평양대부흥운동의 전제조건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평양대부흥운동은 성령역사의 현상이며, 결과이지, 부흥운동 그 자체가 한국교회의 수적성장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필자가 여기서 던지고 싶은 주요한 질문은 성령께서 역사하도록 유발한 동인과 수단으로서, 그리고 평양대부흥운동이란 역사적 사건을 가능케 했던, 또한 회개운동과 통성기도와 복음전도 운동으로 연결되게 했던 실천(신학)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인 도구가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경회(査經會)였다. 그리고 필자는 그 사경회가 모든 결과를 초래한 중요한 실천적 도구였다고 본다. 또한 그 사경회가 그 당시 조선사회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민족적인 위기의 정황과 맞물릴 때,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그 효력과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역사에서 소개된 대부분의 부흥운동은 그 배경이 언제나 그 시대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위기의 요인들과 맞물려 있었던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성령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한 민족과 그 사회의 시대적인 위기상황과 그 위기극복과 전환의 대답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필자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실천신학적인 도구로써 사경회의 중요성을 인지하며, 그러한 맥락에서 잠시 평양대부흥운동의 의의를 되새겨 보려고 한다.

 

 

Ⅰ. 평양대부흥운동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이루어진 일인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그 당시 조선사회는 정치적으로 큰 혼란과 위기에 처하여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먼저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우리정부의 힘의 한계와 일본의 조선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조선을 삼키려는 열강은 일본과 러시아와 청나라의 대립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1895년에 민비가 살해되었고, 1894-95년에 청일전쟁과 1904-05년에 러일전쟁은 모두 조선 땅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1905년 5월에 그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제 국제적인 권력을 장악한 일본은 조선을 정치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1905년 11월 17일에 이른바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종황제는 일제의 불의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두 차례나 밀사를 파송하였지만 국제적인 도움은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일로 인하여 고종황제는 1907년 7월 20일 일본의 정치적인 압력으로 왕위에서 밀려나게 되었으며, 1910에 이르러 마침내 일본의 강요에 의하여 조선제국은 한일합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평양대부흥운동은 조선의 국권이 상실되는 이러한 정치적인 위기상황에서 시작되었고,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된 장대현교회의 사경회는 필연적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국가의 존립운명과 직결된 상황에서 시도된 신앙운동의 전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한 시대에 한 민족의 국가적 위기를 이러한 복음전파의 행사를 통하여 극복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복음전도의 기회로 만들었다고 본다. 이와 같이 평양대부흥운동은 역시 이러한 조선의 시대적 상황의 위기와 맞물려 모든 희망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찾으려고 했던 이 민족의 구원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이러한 조선국가위기의 상황과 얼마나 깊게 관련되었는지는 선교사 샤프의 ‘한국인들이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들’이란 제하의 글에서 밝혀 주었다.

“부흥운동이 교회 밖에서도 폭넓게 감지되고 있다. 교회 밖에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널리 확산되었다. 황해도에서 세 가지 국면을 명백하게 식별할 수 있다. 기독교로 돌아서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주된 동기는 보호(保護)와 힘에 대한 갈망이다. 기대의 불확실함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돕기 위해 서로 뭉쳤다. 사회단체가 거의 회원 없이 발흥되었는데, 그들의 목적은 모두 정치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가 출교된 그 마을의 한 명사에게 찾아가서 말했다. ‘좋은 단체들이 많이 조직되었고, 일진회도 있고, 이 회, 저회도 있는데, 우리는 그들 가운데 한 회에 가담하는 것이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식인이고, 우리보다 이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어떤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지, 조언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이 얻은 답은 어떤 것을 능가하는 유일한 한 회가 있는데, 그것이 교회라는 것이다.”

역시 국권의 상실로 인한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조선인들은 소망을 교회를 통하여 찾으려는 움직임이 특히 1907년 고종이 일본의 압력에 의하여 왕위에서 강제적으로 퇴위당한 후에 급격히 일어나게 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1907년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은 이러한 조선의 정치적 운명과 맥을 같이 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일본이 강제적으로 추진한 한일합방조약체결사건 이후, 그해 10월 8일 선교사들에 의하여 ‘장로교와 감리회의 연합공회’가 결성되었고, 한국인 100만인 구령운동을 결의하고 전개한 일도 조선사회의 정치적인 운명과 맥을 같이한 사건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선교사들이 주도한 평양대부흥운동의 목적이 무엇이었던지는 분명해 진다. 그것은 세상의 권력이나,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게 하는 방법을 우리 국민들에게 제시하였던 것이다. 선교사들은 원래 그들 복음 선교의 목적대로 조선국운의 위기를 복음 선교의 기회로 삼아 우리 국민들의 희망을 그리스도에게 걸도록 했으며, 국운의 모든 시련을 이기는 길,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찾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된 평양 장대현교회의 사경회는 조선인들을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도하는 첩경이 되었으며, 침체되어 있던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며, 놀라운 성령의 역사로 한국교회의 영성을 회복하며 새롭게 발전하는 부흥의 기회가 되게 했던 것은 분명한 일이라 할 것이다.

 

Ⅱ. 평양대부흥운동은 어떻게 시작된 일인가?

 

평양대부흥운동의 발단은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두 주간 계속된 남성들을 중심한 사경회(査經會)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집회는 그 당시 여러 번 선교사들에 의하여 시도되었던 사경회를 중심한 전도성격의 교회집회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사경회(査經會)는 그 당시 공식적으로는 ‘평안남도사경회’(都査經會)로 평안남도 일대에 있는 여러 성도들이 연합으로 이 집회에 참석하였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던 아주 비중 있는 모임이었다고 한다. 이때 그 사경회를 인도했던 주 강사는 장대현교회의 담임목사인 이길함 선교사였다. 그리고 사경회는 관례에 따라 성경을 공부하는 일이 중심이었고, 또한 기도가 병행되었다. 오전의 사경회가 끝난 후에는 점심을 먹고, 오후시간에는 평양시내 각지로 흩어져 복음전도를 힘썼고, 매일 저녁시간은 특별 전도집회(오늘날 설교중심의 부흥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낮 시간 사경회는 이길함 선교사가 인도하였으나, 1월 6일부터 시작된 저녁집회에서는 선교사들과 한국목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설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방위량 선교사, 헌트선교사, 그리고 길선주장로(목사)등이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경회는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된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가운데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집회의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여 경험했던 이길함 선교사는 그 사경회의 정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러져 자기가 죄인이라는 완전한 고통 속에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나의 요리사는 회개를 하려고 애쓰면서 그 가운데 거꾸러져 방 건너 쪽에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목사님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 지요,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울고 또 울며, 거의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때대로 회개의 고백 후에 모인 회중이 통성기도를 했다. 수백 명이 통성기도를 한 효과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회개의 고백 후에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드렸고, 우리 모두 함께 울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모임은 기도와 고백과 눈물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위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장대현 교회에서 개최된 사경회는 한마디로 참여한 회중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영적으로 소생함을 입는 성령강림의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직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과 성령의 감동된 은혜를 경험하게 한 구체적인 행위(수단)는 무엇인가? 필자는 그것을 바로 사경회라고 생각한다. ‘査經會’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해석하여 가르치고,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설교와 성경공부방식이 어우러진 진리증거의 신앙교육적인 행사였다. 그리고 사경회에서 복음의 말씀을 풀어줄 때, 청중들로 하여금 감동과 감화를 경험하게 하신 이는 역시 전파되는 그 말씀에 함께 하시어 일하시는 성령의 임재였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리스도의 복음인 성경을 전파하고, 가르칠 때, 그 말씀을 듣는 청중의 귀에 함께 역사하여, 그 마음에 깨달음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그 마음에 믿음을 불 같이 일으키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현상도 마찬가지로 사경회의 현상이요, 사경회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에서 주된 역할을 하게 된 분은 역시 길선주목사였다. 물론 장대현교회의 담임목사는 선교사 이길함 목사였으나, 그분 곁에서 목회사역을 도왔던 주된 역할 자는 길선주장로였다. 그는 이 사경회당시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수학을 하고 있으면서 장대현 교회에 조사(祖師)로 시무하였고, 평양신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이며, 이 사경회가 개최하도록 힘썼던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1907년 그해 9월에 목사로 안수 받아 장대현 교회에 최초로 한국인 담임목사로 시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에서도 저녁집회에 부흥설교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이 사경회에서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후에 그는 전국곳곳에 사경회강사로 초대되었고, 평양대부흥회에서의 경험을 전국적으로 확대발전시키는 일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Ⅲ.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사용된 유일한 방편(도구)은 무엇이었는가?

 

앞에서 잠시 언급한대로 그 대답은 단연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증거 했던 사경회(査經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경회(査經會)는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온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사용한 방법론이었다. 그리고 평양대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감리교 선교사들이 곳곳에서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하였다. 원래 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남 감리교 선교사인 하디(R. Hardie, 1865-1949)는 1903년 원산지역에서 사경회를 인도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참여한 온 회중이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는 일이 거기서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특별히 하디 선교사는 성경강해와 함께 자신이 회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을 통하여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효시(曉示)가 되어 사경회형태의 기도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이루어졌으며, 1904년과 1905년에도 하디 선교사가 주강사가 되어 사경회를 인도하는 역할과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사경회는 언제나 성령강림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며, 회개의 기도와 심령을 새롭게 하는 은혜를 체험하는 부흥운동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1906년에는 하디선교사가 평양선교사들의 사경회에 강사로 초빙되어 그 사경회를 인도하였으며, 동일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역사가 거기서 일어나게 되었고, 참여한 온 회중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게 되었으며, 그들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전도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디 선교사에 의하여 주도 되었던 원산부흥운동이나, 이길함 선교사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평양대부흥운동의 핵심적인 요인(수단)과 방법은 역시 사경회(査經會)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원산과 평양을 중심한 대부흥운동은 사경회를 인도하는 중에 일어난 영적인 대 각성운동 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선교사 서명원은 그의 연구서에서 “1903년의 원산부흥과 1907년의 대부흥운동은 사경회를 하는 가운데 일어난 대영적각성운동이라”고 평가하였다. 역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대로, 평양대부흥운동은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간 평양장대현 교회에서 겨울 남자사경회를 개최함으로 그 행사에서 이루어졌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대 부흥의 주인이신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사경회를 통하여 일어났으며, 사경회 후에도 중단하지 아니하고, 지속되었던 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사경회와 부흥운동은 직결된 것이며, 부흥운동은 사경회에서 시작되었으며, 사경회가 초래하게 된 결과요, 열매라고 할 것이다. 흔히들 평양대부흥운동의 동인은 회개운동이라고 말하고 통성기도라고 주장되는 소리를 들어본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사경회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점에 대해서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사경회(査經會)’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한국교회는 사경회의 바탕위에서 성장한 교회라고 할 것이다. 곽안련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성장에 사경회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혀 주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경위에, 간단히 성경본문위에 건립되었다. 놀라운 사경회제도가, 나중에 이 제도의 발전에 대해서 설명하겠지만, 한국교회를 세계 극소수의 정예교회 가운데 하나로 훈련시켜 놓았다. 주의 말씀이 주에게로 헛되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약속이 여기 한국에서 실제로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곽안련 선교사의 말에서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위에 견고하게 세워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사경회의 활용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역시 한국교회야 말로 성경말씀의 토대위에 굳건히 세워진 교회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경회라는 새로운 성경공부방식으로 한국교회에 적용되었음을 입증해 준다.

생각하면, 사경회는 원래 종교개혁의 정신(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만)에 걸맞게, 가장 성경적인 프로테스탄트교회의 목회와 선교의 실천방법의 근본원리였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개혁신학에 근거한 목회원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선교와 전도와 목회사역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적용된 사경회는 한국교회를 성경의 토대위에 세우는 방법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얼마나 성경의 토대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경회(査經會)는 과연 어떤 것인가? 사경회(査經會)는 일반평신도들의 성경읽기와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뜻하는 것이며, 한국교회에서는 서당(書堂)에서 경전(經典)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한 글자씩 읽어가며 설명하며, 그 뜻을 밝혀 주는 해석을 동반한 성경공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의 강해설교나 성경공부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적용된 사경회의 정황을 생각하면, 그 집회에는 성경공부만이 아니라, 기도운동과 복음전도운동, 저녁에는 성경말씀을 감동적으로 강해하는 설교중심의 말씀공부 등, 성경말씀을 중심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행위들이 연결된 것으로 이해된다.

 

2. 사경회의 역사적 발전

 

사경회는 어디서 생겨난 것이며,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적용되어 왔던가?

사경회는 원래 1891년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제시된 선교방식중의 하나였던 것을 발견한다. 네비우스는 그가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하여 제시한 네비우스 선교방법, 제 5항과 6항에서 먼저 선교사들은 “사경회를 열어 영수들을 교육시키라”고 명시하였는데, 그것은 그 당시 선교초기에 평신도 중에 가장 신앙이 특출한 지도자를 뽑아 교회 내의 평신도직분으로 ‘영수’라는 직을 세워 그로 하여금 지 교회에서 초 신자들의 성경반(Bible Class)을 만들어 성경을 가르치도록 했던 데서 출발한 것이다. 네비우스는 5항 2번에서도 모든 교회들은 복음의 설교보다도 가르침에 더 역점을 두라고 강조하였고, 3번 항목에서 세례 후보자들은 6개월에서 2년간 ‘요리문답교육’(Catechism)을 실시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또한 모든 교회의 가르침에는 성경본문자체에 더 역점을 두고 가르치라고 하였으며, 모든 가르침에서 교사는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거기에 의존하라고 명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 6항에서는 5개 항목에 걸쳐 구체적으로 사경회가 성경연구모임들에서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네비우스가 제시한 선교정책의 원칙에 따라 한국교회에서는 사경회가 실천되고 따르는 과정을 걷게 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시도된 성경공부 형식의 사경회는 이보다 훨씬 먼저 1888년 1월 이화학당에서 처음으로 스크랜톤 부인에 의하여 어린 소녀 12명과 부인 3명이 모여 성경을 공부한데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장로교회의 언드우드 선교사 역시 1890년에 자신의 집에서 평신도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친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892년에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라 사경회가 각 지역의 교회에서 선교사들에 의하여 진행되었고, 지도자 훈련반과 평신도훈련 반으로 구분하여 운영하였고, 공부기간도 1개월 동안 진행하던 것에서 1-2주정도로 줄여서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러한 사경회는 운영방식에 있어서 여러 행태로 발전하기도 하였는데, 첫째는 각 지방의 지도자들을 서울지역의 교회로 불러, 성경을 가르치는 일종의 신학반과 같은 수준 있는 사경회가 있었다. 둘째, 선교사에게 직접 배우는 사경회 모임으로 장소는 사랑방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때에 성경을 배우려는 자들은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무리를 지어 선교사를 찾아오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녀를 구분하여 사경회로 모이다가, 후에 함께 하는 사경회로 발전하였다. 셋째, 각 지역교회가 교인들을 반별로 구분하여 운영하는 사경회였다. 그리고 한 지역 내에 여러 교회가 있을 경우에 각 교회가 연합하여 사경회를 지역에서 개최하였다. 이것은 시, 읍, 면 단위의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모이는 사경회로 발전하였고, 후에는 선교사들이 선교구역을 나누게 되었고, 그 구역에서 이루어지는 사경회보다 더 규모가 큰 ‘도사경회’(都査經會)도 있었던 것이다. 도사경회는 한 노회가 여러 교회와 합쳐서 사경회를 개최하였으며, 교회 내에서도, 제직사경회, 주일학교교사를 위한 사경회, 전도부인을 위한 사경회, 목회자부인을 위한 사경회가 있었고, 조사, 혹은 신학생을 위한 사경회 등이 운영되었다. 특별히 가족별 사경회, 집안사경회, 형제자매사경회, 자녀사경회 등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 벌써 영국에서 로버트 레이크스(R.Raikes)에 의하여 시작된 주일학교제도가 한국교회에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주일에 교회에서 성경공과를 가르치는 일종의 성장세대를 위한 사경회가 발전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설립된 최초의 공식 주일학교는 1890년 서울 소년학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가 점차 발전하면서 또한 주일학교도 급속하게 발전해 갔는데, 1897년에 평양시에는 5개 주일학교가 설립. 운영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05년에 한국개신교 주일학교공의회가 설립되었으며, 공과편찬위원회가 선출되었고, 1907년에는 한국개신교공의회가 세계주일학교연합회와 연결되었고, 그 연합회의 지원으로 1910년에는 세계통일공과를 도입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11년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연합회운영위원회가 13명의 위원으로 결성되기에 이른다.

그 외에도 한국교회는 사경회의 새로운 형태로 구역예배운동이 활성화 되었고, 지 교회의 각 구역모임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형태가 발전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제도는 1966년 감리교회에서 먼저 시행하였고, 1969년에 장로교회가 구역공과를 만들어 적용하면서 활성화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경회는 다양한 형태의 그룹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3. 사경회의 실제적인 교육과정과 그 변화

 

사경회는 언제나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과목들이 ‘사경회’란 이름으로 가르쳐지기도 하였다. 그 당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반과목 및 성경 외에 애국정신을 불어넣는 여러 과목도 취급되었다. 지도자들을 위한 사경회에서는 교회운영법, 역사, 성경해석방법, 예배 인도법, 성경읽기 지도법, 주일학교 육성법 등이 가르쳐졌다. 물론 찬송가 보급과 가르침도 병행되었다. 그리고 사경회에서 신앙의 교리에 대한 것으로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등을 중심한 요리문답서가 가르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1910년대에 이르러서는 성경각권을 공부하는 형태의 사경회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경회는 해를 거듭하면서 성경공부를 통하여 영적각성과 교회부흥을 목표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경회의 교육과정은 성경 외에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성경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의 신앙정도와 수준에 따라 신앙생활에 필요한 과목과 교양이 가르쳐졌던 것이다(신앙 강좌와 교양강좌). 그 때문에 사경회는 신앙의 대상을 발견하게 하며, 신앙의 토대를 놓아주며, 더욱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목회사역의 방편이었으며, 복음전도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경회는 성경말씀으로 깨우치기 위하여 펼치는 교회의 신앙교육행위요, 교육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복음전도의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종합해 볼 때, 사경회는 네비우스 정책에서 제안된 한국교회 유급 사역자들과 지교회의 지도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제도에서 시작되었으나, 선교사들은 이 방법을 적절하게 복음전도방식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은 조선의 일본침략으로 인한 국권상실의 위기와 맞물려 좌절하며 절망하고, 그 어디에서도 위로와 희망을 갖지 못한 조선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도록 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적용된 것이 이 사경회이며, 그것은 복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회개와 더불어 다시금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운동의 방식으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네비우스가 선교정책으로 제시한 사경회는 1892년 이후 교회의 평신도를 위한 사경회로 그 성격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현대로 오면서 사경회(査經會)는 부흥회(復興會)의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고 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변모가 얼마나 정당한지는 또다시 연구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Ⅳ. 평양대부흥운동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미친 영향(결과)은 무엇인가?

 

대체로 역사연구가들에 의하면 각각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다양한 모습의 평가들이 제시되었다. 이 부분은 오늘 우리의 학술심포지엄에서 논쟁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1) 기존 신자들의 영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은 처음부터 기존신자들의 침체된 영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기획된 선교사들의 선교의도가 반영되었던 것이다. 사경회의 낮 시간은 성경공부였으며, 저녁집회는 설교중심의 부흥회였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들음을 통하여 믿음에 굳게 서게 된 자들은 자신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과 태도를 부끄러운 죄로 인정하고, 그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공중예배에서의 통성기도의 발달). 그러한 고백적인 신앙적 태도가 이웃과의 화해로 이어졌고, 이웃사랑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뒤따르게 되었던 것으로 전한다.

 

2) 진리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특별히 한글을 모르는 자들에게 글을 깨우치고, 성경말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자극하였다. 그리고 점차 믿는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기존 신자인 부모들에게서 고조되었고, 선교사들은 이미 전국각지에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때에 평양 각지에는 많은 기독교학교들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녀 차별이 극심했던 그 당시 조선의 사회적 환경에서 남녀가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선교사들이 제공하였던 것이다.

 

3) 사경회는 성경학습을 통하여 신앙을 일깨우고, 그 신앙이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확고히 서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경말씀의 배움을 통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동실천적인 신앙인들이 되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교회는 항상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의지하며, 성경을 공부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4) 신앙생활에 윤리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선교사들은 선교초기부터 한국교인들에게 주일성수와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도록 권고하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름과 마작도 금지하였으며, 그 당시 만연되었던 노예도 소유하지 않도록 금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연과 금주운동이 함께 일어나게 되었던 것으로 본다.

 

5) 여권신장의 확대에 기여하였다. 그 당시 조선사회는 남녀의 성차별이 심각하였다. 여성은 남성의 부속불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여 아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하게 인정하며,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선교사들은 우리사회에 모범을 보인 인물들이다. 그 이후로 남녀의 자녀들은 공히 기독교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하였으며, 교회의 예배에서도 남녀가 앉는 자리를 구별하다가 차츰 함께 앉는 자리로 변경하였다. 교회와 가정에서 남녀가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6) 놀라운 교회성장이 이루어졌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 그들이 체험한 복음을 증거하며,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 다. 그리고 장로교회의 경우 1906년에 교인수가 54987명에서 1907년에는 73844명으로 증가하여 34%의 증가를 보였다. 그리고 감리교회의 경우에 1906년에 18107명에서 1907년에 39613명으로 증가하여 약 118%이상의 성장을 보였다.

 

7) 교회연합정신이 강하게 발휘되었다. 원래 평양대부흥운동이 있기 전에 선교사들은 서로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하여 행사들을 주도하였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있기 1년 전에 감리교의 하디선교사는 이미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평양에서 개최된 장로교 선교사들의 모임에서 하디 선교사를 강사로 보여 선교사 사경회가 연합으로 개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7가지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평가 외에도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평양대부흥운동이 그 당시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찬탈한 행위와 관련하여 국권의 회복운동에 대한 민족적인 문제를 기독인들에게 계몽하거나 의식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교회가 지나치게 비정치화 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원래 선교사들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아시아 지역의 식민정책을 알고 있었던 선교사들이 의도적으로 한국교회의 관심을 교회 안의 일에만 가두어두려고 노력했었다는 것이 지적된다.

서광선교수는 바로 이러한 선교사들의 의도가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하여 실천되었고, 그런 점에서 평양대부흥운동는 한국교회의 탈정치화의 작업을 시도한 결과물로 평가하였다. 그는 한국의 선교는 처음부터 민족적인 비운에 처하였고(1895년의 민비살해사건), 그 속에서 발전하여 왔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놀랄만한 교세확장을 이루어낸 것은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 외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족적 비극과 정치적인 자극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탈정치화작업은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평양대부흥운동의 결과는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실제는 한국교회의 탈정치화였으며, 선교의 파행을 위한 ‘정화작업’이었던 것으로 해석하였고, 또한 “이것은 참으로 한국교회의 ‘비민족화의 단행’임이 틀림없었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서광선교수의 이러한 평가는 오늘 우리의 평양대부흥운동의 평가에 관한 대화에서 심도 있게 다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생각하면 그 당시 선교사들이 일본제국의 정치적 야욕을 직시하면서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기독인들을 계몽하거나 인식시키는 그 어떤 행동과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기도하다. 그렇지만 영적각성운동의 성격을 전제한 평양대부흥운동은 여전히 국가적이며 민족적인 위기 문제의 극복대답을 항일운동이나, 독립운동에서 직접적으로 찾게 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죄를 뉘우치고, 도리어 원수까지도 사랑하지 못한 죄를 고백하는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였으며, 그 결과가 전적으로 성령만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신앙태도는 국가적이며,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며,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인식은 외면한 채, 오직 하나님 말씀에 의존하여 내세지향적인 영혼구원을 기대하게 하였으며, 영적부흥이란 전제하에 개인의 죄에 대한 회심을 강조하는 대각성운동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역시 죄와 실수를 고백하는 일에 있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며 경건윤리적인 차원에만 한정하였고, 이웃과 사회에 대한 정치적이며, 사회구조적인 악의 실체를 인식하도록 하는 일에는 거의 침묵하며, 그리스도 복음의 넓은 신앙적인 통찰은 심어주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사들의 탈정치적인 신앙지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지성인 기독인들의 실천적이며 행동지향적인 신앙모습은 국가의 위기상황과 관련하여 독립운동의 참여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1910년 이후, 1911년 105인사건, 1919년 3.1 독립운동에서 민족대표 33인의 활동 중에 감리교 대표가 9명, 장로교 대표 7명이 참여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교회의 실제는 시국의 어려움과 국가운명의 위기와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전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기를 바라고, 성령의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바라면서도, 과연 그 시대적인 국가와 민족과 사회에 대한 인간의 문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평양대부흥운동(하나님의 역사)의 재현에 대한 희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역시 질문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교회가 오늘의 이 민족의 국가와 정치와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자기 성찰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와 숙제라고 생각한다.

 

 

Ⅴ.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의의에 따른 한국교회의 방향은?

 

그것은 세 가지 과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경회의 회복과 그 활성화에 대한 것이며, 둘째, 한국교회가 자체를 돌아보는 죄에 대한 회개운동이며, 셋째는 복음전도운동에 대한 것이다.

 

1. 사경회를 새롭게 회복하고 활성화하는 일이다.

 

사경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존신자들의 영적각성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그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며,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 기도하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인을 증가시키는 한국교회의 수적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즉 사경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회(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에 근거라는 것과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방법론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불신세계인 이웃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전도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사경회는 평신도들의 신앙훈련과 교회지도자 육성(신학교육으로의 발전)과 교회의 운영과 전도부서의 활성화, 교회연합운동, 주일학교교육, 교회성장 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교회를 말씀위에 든든히 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목회방법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바로 이 사경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미래의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방법도 바로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사경회가 새롭게 적용되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부흥회와 성경공부방식에 대한 깊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 한국교회의 부흥운동과 성경공부에 대한 숙고

오늘날 ‘사경회’(査經會)란 말은 한국교회에서는 사라진 상태이다. 사경회는 한국교회에서 6.25당시까지 사용되다가 그 이후에 확인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는 더 연구와 해명을 요하는 일이지만, 필자의 견해는 6.25 이후에 전란으로 고난당한 우리 백성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에 더 많은 사고력이 요구되는 방식의 사경회(査經會)보다는 복음의 진리를 마음에 호소하여 직접감동을 받게 하는, 그리하여 재빠른 회심과 전도의 결과를 얻게 하는 용어로 사경회 보다는 부흥회란 언어가 더 선호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평신도를 중심하여 봄과 가을에 행하는 ‘심령부흥회(心靈復興會)’로 발전하였다고 본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상고(相考)하고, 배우며, 그 의미를 삶에 철저하게 순종하도록 감동 있게 가르치던 성경강해형식의 사경회는 외면되고, 청중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뜨겁게 하는 감정호소형태의 부흥집회가 생겨난 것이다. 또 달리 부흥회는 성경말씀을 깊이 있게 상고하는 형태를 떠나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체험하려는 각종 은사운동의 집회형식과도 연결되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변형된 형태의 부흥회는 지난 30(1960-1990)년 동안 한국사회의 변화(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농촌에서 급격한 도시로의 이주현상의 사회변화)와 함께 한국교회가 주로 큰 도시를 중심하여 급성장하는 일에 기여하게 되는데, 한국교회의 신앙양태는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축복과 연관된 지극히 기복적인 모습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복음의 은혜를 이웃과 사회에 되돌리는 사랑의 실천운동은 그렇게 강력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를 안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도 한국교회의 건강한 신앙양태의 유지에 도움을 준 성경공부는 여러 선교단체들의 성경공부교재들(CCC, Navigator 등)에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교단체들이 제시한 성경공부교재들은 그 단체들이 의도하는 ‘복음전도’의 단순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90년대로 오면서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진리를 알기를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미국교회들이 개발한 ‘벨엘성서공부’나, ‘크로스웨이’ 등의 새로운 성경공부교재들이 ‘성경공부’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에 새로움을 더해 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교회의 성경공부로 정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제자훈련 방식의 성경공부나, 셀 교회의 성경공부교재들이 부분적으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도전이 되고 있지만, 그 목적한 바의 교육의 획일성과 단순성 때문에 여전히 한국교회의 적용에는 문제들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교회내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성경공과를 통한 성경공부형태가 줄기차게 병행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주일학교와 청소년, 청년부, 장년, 노년부) 이것 역시 한국사회의 변화(산업사회의 삶의 윤리적 요구)를 담아 낸 성경공부교재로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더욱이 성경공부교재들의 내용의 언어적 표현들이나, 공부 방식 또한 현대 신앙인들의 세대적 기호와 성향에 충족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경회가 탈바꿈되어 한국교회에 지속되었던 부흥회형태의 집회는 오늘날에 이르러 한국교회의 수적인 성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토록 많은 수의 부흥회를 각 지역의 교회들에서 행하고 있지만, 지난 해 5월 26일 통계청의 종교인 수 발표에서 확인하는 대로, 지난 10년간 통계를 근거로 비교할 때, 오히려 개신교의 교인수가 후퇴하고(-1.6%), 가톨릭교회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76%)는 소식은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행한 부흥운동방식과 성경공부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생각하면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부흥회는 진리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충족한 행사였는지? 그리고 그 부흥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기보다는 증거자의 이데올로기가 더 많이 주장되는 집회들은 아니었는지? 현재 진행되는 부흥회들 가운데는 많은 헌금 수집을 목표한 부흥회가 만연되어 있다는 소식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구원의 복음의 권위를 추락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로 지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회의 약자와 이웃을 향한 섬김의 정신을 깨우치기 보다는 보편적인 인간들이 추구하는 세속적인 물질적 복을 빌어주는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부흥회가 난무하는 일들은 한국교회가 더 이상 수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이해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되는 부흥회를 되돌아보고, 평양대부흥운동을 초래한 사경회가 다시 회복되고 활성화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2) 복음의 진리를 삶과 관련하여 깨우치는 새로운 성경공부의 사경회가 개발되어야 한다.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민족의 문제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하여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더 진지하게 진리의 통찰력을 제공해 주어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올바른 행동과 태도가 무엇이어야 할 것인지를 깨우쳐야 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렇게 하려면 전통적인 부흥회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역시 평양대부흥운동을 추억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 이유는 오늘날 평신도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수준과 능력이 이전과 다르며, 더 수준 있는 진리의 말씀을 알기를 원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미래의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을 추구하려면 반드시 사경회를 회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사경회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물론 평양 대 부흥운동 때 행하던 사경회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 시대의 관심과 수준에 걸 맞는 새로운 성경공부방식의 사경회를 생각한다. 그 행사의 언어적 표현이 굳이 ‘사경회’라고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성경공부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곡된 부흥회를 바로잡고, 모든 교회의 집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고, 바르게 배우게 하여, 그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하는 ‘사경회’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설사 부흥회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사경회가 전제되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진리만을 증거 하는 ‘부흥-사경회’ 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국제경쟁력이 요구되는 현대산업후기시대를 살면서 지치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절망하는 한국국민들에게 한국교회는 복음의 빛을 힘 있게 비추어, 새로운 삶의 희망을 거기서 발견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신속히 새로운 사경회를 개발하여 적용해야 할 것이다.

 

3) 새로운 사경회, 또는 성경공부 방법의 개발을 위한 제안

필자는 이제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부흥을 초래할 수 있는 새로운 사경회개발 방안을 제안해 보려고 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교회들이 지금까지 실천해 온 성경공부방식을 되돌아보고, 개선차원에서 새로이 적용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형식화되고 타성에 젖어 있는 성경공부방법과 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가. 새 신자의 신앙토대를 놓는 성경공부가 실천되어야 한다.

유아세례 소년들의 입교를 위한 준비교육, 성인 새 신자들의 신앙교육과정을 철저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학습인 교육과 세례준비교육이 매우 형식화되어 있는 것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교육목회 과제중 하나이다. 그리고 새로운 현대적인 요리문답학습방식을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새 신자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많은 물음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물음에 올바른 대답을 제공하고, 신앙의 토대(기초)를 확고하게 쌓아 가도록, 그들의 이해에 적합한 신앙교육과정을 설치 운영해야 한다.

나. 기존신자들의 신앙을 새롭게 일깨우는 성경연구가 실천되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평신도사경회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즉 새로운 성경공부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동안 진행되어 온 장년부공과공부도 매우 형식화되어 있는 모습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평신도를 깨운다’는 제자훈련방식의 성경공부운동이 새롭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평신도훈련(깨움이)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쪽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이제는 교회뿐 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인물들로 나타나도록 하는 사회적 삶의 방향에 초점을 둔 신앙교육과정이 새롭게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삶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조화를 가지는 신앙의 새로운 일깨움이 필요한 것이다.

 

다. 주일학교, 청소년, 청년부를 맡은 지도자, 교사들의 성경공부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주일학교와 교회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교사들에게 성경해석의 방법을 눈뜨게 해 주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공과의 본문 내용을 책임 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성경공부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사들이 영적인 능력과 실력을 가진 자들로 양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에게서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라. 교회의 직분 자들의 섬김을 위한 자질을 키우는 성경공부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들에게 항상 성경말씀을 공부하게 하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분의 의의와 중요성(섬김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꾼들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 방법이 역시 성경공부이다.

 

마. 목회자들도 성경을 연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더 이상 신학공부가 필요 없다고 한다면, 큰 착오일 것이다. 목사는 항상 배우는 자로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연구는 목사들이 목회사역에서 가장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경의 새로운 해석과 이해를 위한 많은 정보들에 민감해야 하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평신도들에게 역시 성경공부를 지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지식전달이 아니라, 의미전달이 되어야 하며, 평신도들의 진리의 깨달아 스스로 섬김의 일군들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목사가 먼저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들의 성경공부와 목회정보를 얻고 훈련받는 목회훈련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 과정에는 목사들 뿐 아니라, 강도사들을 훈련하는 교육과정이 설립되어 목회 실천적으로 요구되는 목회정보교환을 비롯하여 성경해석훈련과 설교연습 및 평신도와 청년, 청소년과 새신자성경공부와 입교자성경공부, 주일학교 교사성경공부를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바. 성경교수방법이 전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성경의 지식전달과 지식 암기에서 벗어나, 말씀의 순종과 실천이 연결되도록 일깨우고 훈련하는 일이 필요하며, 더 많은 성경말씀에 대한 이해가 삶을 동반하며, 지혜로 삼도록 영향을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성장세대와 평신도의 성경공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개선이 절대적으로 뒤 따라야 한다. 소그룹의 활용은 일방적인 대화양식(교사중심)이 아니라, 쌍방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인격적인 방법임이 틀림없다. 물론 새로운 성경공부 방식에는 뉴미디어의 활용도 포함된다. 뉴미디어 개발센터를 세워 운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2. 한국교회는 새로운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 행하였던 일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였다. 회개의 기도운동은 우리 기독인들이 언제나 힘써야 할 일이다. 여전히 성령의 은혜는 죄가 고백되고, 진실로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 경험되는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특별히 기도주간을 정하여 개인의 죄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남북통일문제, 자녀문제, 청소년 문제, 청년과 노년의 문제, 실직자 문제, 우리사회에 소외당하는 자 등의 삶 전반의 문제들을 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3. 복음전도 운동을 새롭게 전개해야 한다.

 

1) 지나친 개 교회 전도운동은 지양하고 한국교회전체를 위한 새로운 전도운동이 요구된다. 지역교회들이 연대하여 교회를 알리는 전도지의 개발도 시급하게 요구된다.

 

2) 섬김(Diakonia)를 동반한 복음전도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웃과 사회의 가난한 자와 소외당한 자들을 돌보는 영혼 돌봄의 봉사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 일을 전제하여 복음을 전하는 전도운동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불신 받고 있는 한국교회가 우리 국민 전체로부터 다시 주목받고, 신뢰받는 그리고 기대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결론

 

필자는 사경회가 초래한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았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사경회였다. 부흥회, 그 자체가 교회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바로 사경회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사경회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할 때, 성령은 듣는 자의 귀를 열게 하며 마음을 열게 하며, 진리의 깨달음과 함께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헤아리며, 또한 복음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운 죄들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복음의 새로운 은혜 안에서 능력을 힙 입고 새로운 믿음과 용기와 희망으로 주님이 요구하시는 일들에 헌신할 수 있는 신앙적인 태도와 결단을 갖게 되었으며, 그러한 감동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는 신앙의 올바른 삶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불신자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교회의 모임으로 오게 된 것이 그 당시 조선교회의 부흥과 성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오늘 우리가 평양대부흥운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때에 이러한 사경회의 가치를 새롭게 인지하고, 사경회를 더욱 개발 사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사경회는 글자 그대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도록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진리를 밝히는 작업이었다. 그 당시 조선백성들의 앞길을 밝히며, 절망 가운데서도 삶의 위로와 소망과 꿈을 갖게 해 주었던 복음전도였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의 인도 그것이었다. 평양대부흥회를 주도한 역사적 사경회는 모여온 청중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한답시고, 재미있는 말로 청중을 웃기며, 만담하는, 그리고 추첨행사 등으로 선물을 나누는 그러한 인간적인 놀이마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선제국의 국운의 상실과 소멸 앞에서, 그 모든 책임이 자신의 실수와 허물과 죄 때문임을 인정하고, 생명의 주인 앞에서 회개하며, 특별히 이웃사랑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통회 자복하던 회개운동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죄 용서의 은혜를 깨닫고 성령이 주시는 위로와 확신 가운데서 새로운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일어섰던 영적인 몸부림이었으며, 하나님이 크게 감동하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신 일이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사경회와 함께 새롭게 나아가야 할 것이며, 사경회의 시각으로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이 시대와 내일의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꿈꾸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먼저 네비우스 선교정책에서 제시된 것처럼, ‘한국교회는 설교보다는 성경 가르치기를 더 많이 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더욱이 목사자신들이 성경을 시대적인 모든 하나님을 향한 물음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성실하고 감동적인 대답을 줄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성경이해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기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가르치기만 한다고 다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방법을 동원해야 하며, 말씀대로 실천하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사경회를 개발하여 적용할 때, 그리고 복음의 은혜 가운데서 우리 민족(남북)을 섬기기 위하여 한국교회가 새롭게 거듭날 때, 그동안 우리 국민으로부터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신뢰는 거기서 다시 회복될 것이며, 한국교회는 지역사회와 이 민족에게 새로운 관심과 신뢰와 소망의 대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그 핵심적 요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이며, 또한 그것을 깨우치는 방법으로 새롭게 개발된 사경회(성경공부)이며, 동시에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성도들의 섬김의 변화된 삶의 태도의 실천이라 할 것이다.

누가 이 시대에도 한국교회를 새롭게 부흥시키고, 성장하게 하려고 꿈꾸며 기대하는가?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성경의 진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며, 이 시대를 해석하여 유리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복음의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능력자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한국교회성장은 교회에 속한 모든 평신도와 직분 자들을 목회자가 어떻게 성경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오직 성경가르치기를 잘 할 때만, 성령은 거기서 그의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과 성장을 선물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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