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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평양 대부흥운동과 아주사대부흥운동의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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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부흥운동과 아주사대부흥운동(Azusa Street Revival)의 구원론: 길선주와 윌리엄 시모어(William Seymour)를 중심으로

 

 

이신열 교수(백석대학교)

 

 

I. 들어가는 말

 

평양대부흥운동과 아주사대부흥운동은 각각 1907년과 1906년에 한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부흥운동에 해당된다. 이 두 부흥운동은 모두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과 비교되어진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한국의 오순절’ 또는 ‘평양의 오순절’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성령의 역사가 “마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120문도에게 임했던 것처럼” 사경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였던 것이 그 특징에 해당된다. 1904년의 웨일스 부흥운동을 모델로 삼아 전 회중의 통성기도가 도입되었으며 그 결과 놀라운 회개 기도를 동반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당시 한국에서 사역하였던 한 여자 선교사는 평양의 회개기도 소리가 “마치 지옥의 지붕을 열어 젖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는 성령의 충만을 갈구하는 영적 각성운동이었으며 20세기 초에 세계 각처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놀라운 임재와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하는 부흥운동이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을 주도하였던 인물로는 방위량 (William Baird), 이길함 (Graham Lee), 그리고 길선주 (1869-1935)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길선주의 역할은 마치 웨일스 부흥운동에 있어서 에반 로버츠 (Evan Roberts)의 역할에 견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으며 선교사 알렌에게 그는 이 부흥운동의 기폭제로 여겨졌으며 그를 통하여 부흥운동의 저변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길선주를 논하지 않고는 평양대부흥운동을 논할 수 없다는 표현은 이 운동에 있어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가를 잘 시사하고 있다.

아주사대부흥운동은 미국 오순절 운동의 시작을 알린 부흥운동이었다. 윌리엄 시모어 (William J. Seymour, 1870-1922)라는 흑인에 의하여 주도된 이 운동은 1906년 4월에 시작되어 약 3년 반 동안 지속되었으며 ‘사도적 신앙복음선교회’ (Apostolic Faith Gospel Mission) 라는 단체를 결성시켰다. 이 부흥운동은 시모어가 찰스 파함 (Charles Parham)에게서 전수받은 성령세례 (baptism in the Holy Spirit)를 가르치고 그 증거인 방언을 통하여 이를 실제로 경험함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 전역을 포함하여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오순절 운동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성령세례’라는 새롭고 독창적인 교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가운데 성령받는다는 사실을 복음전파와 사역을 위한 능력을 제공받는 점과 동일시하였다.

이 두 부흥운동은 20세기 초반에 강력하게 임재하였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한국과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성령의 역사를 증거하였던 운동으로서 성령론적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부흥운동이 비교고찰의 대상으로서 다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교 연구에 대한 학문적 결여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두 부흥운동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부흥'(revival)의 근간이 되는 '구원론'(soteriology)을 살펴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구원없는 부흥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부흥은 곧 수많은 영혼 구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두 부흥운동을 통하여 어떻게 구원이 이해되어졌는가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각 운동의 대표적 주창자인 길선주와 윌리엄 시모어를 중심으로 그 구원론의 성격과 특징들을 분석 검토하고 이를 비교하여 이 두 부흥운동에 드러난 구원론의 성격과 특징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II. 부흥운동을 통하여 살펴본 시모어의 신학에 대한 이해와 특징

 

시모어의 구원론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그의 신학 전반에 걸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앞서 언급되어진 ‘사도적 신앙복음 선교회’에서 발간하였던 『사도적 신앙 (The Apostolic Faith)』지는 시모어가 지녔던 신학적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잡지이었다. 이 잡지에 드러난 시모어의 신학에 대한 태도는 전반적으로 신학에 대한 불신으로 정리되어질 수 있다. 성령의 영감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진 그대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근본주의적 태도는 상대적으로 인간의 말로 이루어진 신학이 위험하고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신학적 태도를 자아내었다. 부흥운동을 통하여 나타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오순절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며 인간의 언변과 학문적 토론이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신학에 대한 이러한 경시적 태도가 곧 신학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모어는 수많은 거짓된 (counterfeit) 가르침을 통하여 불순한 교리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순수한 교리' (sound doctrine)의 중요성과 영적 순결을 주장하였다.

시모어가 이렇게 순수한 교리의 중요성을 내세운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근본주의적 경향을 들 수 있다. 그가 1906년 2월에 휴스턴 (Houston)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와 처음 행했던 설교는 사도행전 2장 4절에 근거한 설교로서 모든 신자들이 성령을 받아야 하며 그 성경적 증거로서 방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근본주의적 주장에 대하여 성화운동에 속한 교회의 담임목사인 줄리아 허친슨 (Julia Hutchinson)은 시모어의 주장이 성화운동의 교리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말았다. 둘째,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마땅한 도덕적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종말론적 모티브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의 설교 가운데서 ‘신랑이 오는도다' (Behold the Bridegroom Cometh), ‘리브가: 그리스도의 신부의 전형' (Rebecca: Type of the Bride of Christ), ‘성령과 신부' (The Holy Ghost and the Bride) 등의 설교는 그의 신학에 있어서 종말론적 강조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말론적 차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이는 그의 스승인 파함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파함은 자신의 신학을 전체적으로 종말론적인 구도 하에 전개하고 있으며 자신의 성령세례 교리의 정당성을 세계 선교라는 명제를 통하여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파함의 신학적 강조점이 성령세례 교리와 함께 시모어에게 전수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신학에 있어서 종말론적 차원은 종말론 자체에 대한 집중보다는 오히려 종말론을 전제로 한 성령론적이며 구원론적인 강조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글라스 제이콥슨 (Douglas Jacobsen)은 시모어의 신학의 전반적 성격이 목회적 (pastoral)이라고 규정짓는다. 제이콥슨이 시모어의 신학을 목회적이라고 규명한 것은 아주사대부흥운동이 지니고 있던 부흥적 차원에 대한 강조보다는 그가 지녔던 신학에 대한 경시적 태도에 더 무게를 두고 이를 ‘목회적’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의 설교와 그 이후에 작성되어진 『사도적 신앙복음 선교회의 신앙과 치리 (Doctrines and Disciplines of the Azusa Street Apostolic Faith Mission of Los Angeles, California)』라는 문서를 살펴 볼 때 시모어의 신학은 철저히 구원론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령세례의 교리가 지닌 성령론의 방향성이 동시에 구원론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신학의 전반적 성격이 목회적이라기 보다는 구원론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III. 시모어의 구원론

 

1. 2단계 구원론

 

시모어의 구원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다루어져야 할 부분은 감리교의 구원론으로 불리워지는 2단계 구원론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요한 웨슬리 (John Wesley)의 가르침을 교리화한 존 윌리엄 플레처 (John William Fletcher)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구원은 칭의 (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의 두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2단계 이론의 기본적인 구도에 해당된다. 먼저 첫 번째 단계로서의 칭의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죄 용서에 해당된다. 칭의를 통하여 모든 자범죄(actual sin)에 대한 사죄함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진다. 죄는 현실 속에서 실제로 각 개인이 실제로 범하게 되는 자범죄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유전적으로 전해져 내려와 본성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원죄 (original sin)로 분류되어질 수 있다. 감리교에서 말하는 칭의는 사실상 자범죄와 원죄를 이분화하고 하나님의 죄 용서가 자범죄에만 적용된다고 말한다. 이는 칭의가 인간의 모든 죄를 전부 사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여기에서 감리교의 칭의가 사실상 회개 (repentance)를 포함하는 회심 (conversion)과 동일시되는 이유가 발견되어진다. 즉 죄 용서라는 칭의의 부정적 측면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된다는 긍정적 측면이 간과될 위험성이 2단계 교리의 칭의론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두 번째 단계에 해당되는 성화 이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감리교 성화교리의 특징은 완전성화 (entire sanctification)에 놓여 있다. 완전성화는 현실적으로 범하는 자범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원죄 또는 이를 통하여 드러나는 죄성 (sinful nature) 또는 죄로 기우는 경향 (sinful inclination)에 관한 것이다. 완전성화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하고 이는 한 순간에 얻어지는 성화, 즉 즉각적 성화 (immediate sanctification)의 교리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웨슬리가 자신의 성화교리를 통하여 의도한 바가 죄로부터의 완전한 성결이라고 한다면 이는 사실상 인간의 죄성에서부터 벗어나 얻게되는 자유로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칭의는 회개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체험되어지는 반면에 성화는 죄의 세력을 이기는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플레쳐의 경우 이러한 능력이 성령세례를 통하여 부여된다고 주장하였다.

2단계 이론을 개혁주의적 구원론과 가장 분명하게 구별시키는 요소는 칭의와 성화와의 관계설정에 놓여있다. 칼빈은 칭의와 성화의 교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양자가 하나님의 은혜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생각하여 '이중적 은혜' (duplex gratia)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칭의와 성화의 관계는 시간적 순서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서 칭의의 목적이 성화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칭의함을 받은 모든 사람은 성화의 은혜를 누리게 되며 성화에 이른 사람은 모두 칭의함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칭의와 성화의 순서는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 순서에 해당된다. 이에 반하여 감리교적 가르침은 칭의가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난 후에 이에 근거하여 성화가 일어난다는 단계적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칭의 이후에 성화가 일어나므로 칭의는 성화를 위한 선행조건에 해당된다. 칭의와 성화는 별개의 은혜이므로 칭의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는 엄격하게 구별되며 사실상 서로 다른 은혜임을 뜻한다. 칭의의 은혜를 받은 신자들 가운데 성화의 은혜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칭의의 상태에 머무르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신자들을 칭의함을 받은 자들과 아직 성화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칭의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자들로 이분화하는(bifurcate)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 2단계 구원론의 핵심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칭의의 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인간의 경험을 강조하는 신학적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결과 칭의와 회심이 서로 혼돈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또한 성화를 단순히 죄로 기우는 경향과 그 세력의 제거라는 부정적 입장에서 고려함으로서 이를 완전 성화 또는 즉각적 성화의 관점에서만 이해함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는 긍정적 차원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신학적 성향이 등장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2. 3단계 구원론

 

3단계 구원론이란 2단계 구원론의 모든 요소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에 성령세례라는 3번째 요소를 첨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완전성화가 ‘불타는 사랑의 세례 (baptism of burning love)', 즉 성령세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플레쳐의 가르침 속에 이미 성령세례를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내재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세례가 여러 차례 다르게 주어질 수 있다는 세례의 복수성을 논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Checks to Antinomianism 이라는 저서에서는 이미 성화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성령의 완전한 세대에 들어가기 위하여 ...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고 밝히면서 또한 “불로 세례를 받은 자들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부여받았다.”주장하였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성결운동 (the Holiness Movement) 내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95년에 The Fire-Baptized Holiness Church를 설립하였던 벤쟈민 하워드 어윈 (Benjamin Howard Irwin)은 플레쳐의 성령세례에 관한 가르침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를 성화 이후에 주어지는 세 번째 경험 (the third experience)로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화운동의 범주 내에서 발생하였던 세 번째 경험으로서의 성령세례 또는 불세례에 대한 가르침이 구원의 3단계 이론으로 구체화되어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니었다. 시모어의 스승인 파함의 경우 앞서 언급되어진 어윈의 영향 아래 불세례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내세웠던 방언이라는 초기 증거(initial evidence)를 동반하는 성령세례를 어윈의 불세례와 접목시킬 수는 없었다. 이는 교리적으로 파함이 자신의 성령세례의 가르침을 감리교의 2단계 이론과 연결시키지 못하였음을 뜻하며 결국 시모어에 이르러 방언으로 체험되는 성령세례가 2단계 이론과 연결되어 칭의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제 3의 요소로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신자들의 속에 있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은혜가 아니라 능력의 선물로서 그들의 복음 전파 사역을 도와주는 능력이었다. 칭의, 성화 그리고 성령세례는 구원에 있어서 모든 신자들이 경험하여야 할 일종의 단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3단계 이론을 아주사대부흥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시모어가 자신의 3단계 이론을 아무런 혼동 없이 교리적으로 분명하게 가르쳤다고 볼 수는 없다. 먼저 그가 1906년 9월에 행한 ‘귀중한 구속' (The Precious Atonement)이라는 설교에서 그는 성화된 삶 위에 성령과 불의 세례가 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 달에 행한 ’가장 거룩함에 이르는 길' (The Way into the Holiest)이라는 설교에서도 3단계 이론이 확실하게 정착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1906년 11월에 행한 '생수의 강' (River of Living Water)이라는 설교에서 살펴보면 마치 성령세례가 칭의 또는 죄용서 이후에 주어지는 것처럼 기술함으로서 이런 혼돈과 불분명함이 나타난다.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허락된 구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시모어는 죄용서, 성화 그리고 성화된 삶 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동일한 설교에서 구체적으로 성령세례가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능력이라는 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할 때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907년 2월에 행한 사도행전 2장 4절에 근거한 ‘성령세례'(The Baptism with the Holy Spirit)라는 제목의 설교에는 더 이상 이러한 혼동과 불분명함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제 시모어에게 성령세례를 포함한 3단계 이론이 완전히 정착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세 가지 사실로 정리되어질 수 있다. 첫째, 칭의와 죄용서 후에 성화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 둘째,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하신바 성령의 충만이란 성화 이후에 주어진다는 사실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셋째, 성령세례는 방언이라는 구체적인 성경적 증거를 동반한다.

3단계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신학적 이유는 1915년에 작성되어진 『사도적 신앙복음 선교회의 신앙과 치리』라는 문서에 나타난다. 이 문서는 칭의(justification)를 죄용서와 하나님의 호의로 받아들여지는 상태로서 정의하면서 이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모어가 정의한 칭의 개념에 내포된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확신은 곧 그의 사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확신은 그 이후에 일어나는 내적 거룩함과 외적 거룩함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칭의는 그 뒤에 주어지는 성화와 성령세례의 기초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칭의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호의, 즉 사죄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칭의는 하나님의 사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동반하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칭의의 상태에 들어감을 의식하게 된다. 칭의의 결과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며 그 사랑에 대한 의식이라면 이는 곧 칭의함을 받은 자들로 성화 (sanctification)를 추구하도록 이끈다. 성화란 두 번째 은혜의 행위로서 성령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목적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말하는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시모어는 세 번째 요소인 성령세례에 대하여 설명함에 있어서 자신의 이전 설교에서 드러났던 성령세례가 은혜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강조점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관점을 도입하여 칭의와 성화의 연속선상에서 이를 이해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었다.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넘치도록 채워지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3단계 이론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칭의를 통하여 확인되어지고 성화를 통하여 신자의 마음속에 완전히 뿌리내린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넘쳐흘러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따라서 시모어의 3단계 이론은 신자들을 더욱 깊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시간적으로 서로 구분 가능한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된 것이었다.

3. 신앙과 회개

 

『사도적 신앙복음 선교회의 신앙과 치리』에 가장 자세하게 설명된 교리는 구원론에 관한 것이며 특히 시모어는 칭의와 관련된 신앙에 대하여 상세히 언급하였다. ‘신앙에 관한 요리문답 (Catechism on Faith)’에서는 신앙을 사실상 ‘칭의를 불러일으키는 신앙 (justifying faith)’로 정의하면서 이를 칭의와 연결하면서 구원론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이 신앙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롬 8:15; 고후 13:5; 엡 4:32; 히 8:10; 요일 4:10, 19)으로 정의하면서 칭의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칭의함을 받았음을 의식하고 알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시모어가 칭의를 불러일으키는 신앙을 일종의 확신 또는 의식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이유는 원래 일반적 의미의 신앙이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감각에 의하여 발견되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신적이고 초자연적 증거와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인간의 의식을 중요시하는 부흥을 이끌어내려는 태도 (revivalistic attitude)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는 회개의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모어는 신자들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뉘우치는 회개의 행위가 믿음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부흥회에서 일반적으로 강조되는 회개를 중요한 행위로 받아들인다. 또한 이러한 회개의 행위를 전제조건으로 삼는 칭의를 불러일으키는 신앙의 직접적 결과로서 평화, 기쁨, 사랑, 그리고 모든 외적 죄를 제어하고 내적 죄를 억누를 수 있는 능력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시모어가 신앙의 지속을 위하여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감리교적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칭의함을 받은 자는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과 죄악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부여받았으므로 그가 이 능력을 사용하여 스스로 죄악을 극복하여야 하는 것은 마땅히 그가 행하여야 할 바라는 도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의를 불러일으키는 신앙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내적 그리고 외적 죄를 제어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신앙이 칭의를 위한 조건이며 또한 회개가 신앙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칭의의 결과로 주어지는 능력이란 사실상 회개의 행위 이전에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내재된 개념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시모어는 회개를 인간이 원래 부여 받은 능력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칭의의 결과로 주어지는 죄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때 이는 실제로 회개를 가능케 하는 인간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모어의 신앙과 회개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부여받은 능력을 중시하고 이를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에 협력한다는 알미니안적 이해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신의 신학이 칼빈주의와 반율법주의 양쪽 모두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는 시모어의 진술은 사실상 자신의 신앙과 회개에 대한 이해가 알미니안적 이해와 일치하고 있음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IV. 부흥운동을 통해 살펴본 길선주 신학 이해

 

길선주는 특히 성경을 사랑하고 이를 철저히 연구한 성경연구가이었다. 요한계시록을 만독(萬讀)하고 로마서의 중요한 부분들을 거의 다 암송하였으며 성경을 매일 한 시간씩 읽고 외우려고 힘썼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러한 성경에 대한 열애 이면에는 근본주의적 (fundamentalistic) 경향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말세론에 대한 연구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축자적 경향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그의 근본주의적 경향은 성경무오설로 나타났으며 이는 그가 평생토록 견지한 보수주의적 신학 색채를 뒷받침하는 지지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근본주의적 신학 이해는 성령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1906년 3월 8일 <그리스도신문>에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 6가지를 제안한 사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박용규는 길선주의 성령 충만에 대한 강조가 사도행전 1,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체험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근본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906년 10월에 평양 장대현 교회 집회에 강사로 초청된 하워드 존스톤 (Howard M. Johnstone)목사가 웨일스의 부흥운동의 열기를 전해주고 조선에서 이러한 누가 이러한 성령세례를 받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그가 유일하게 대답한다는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령 충만을 향한 길선주의 열의는 평양대부흥운동에서도 여실히 증거되었으며 이는 웨일스 부흥운동의 기도방식으로 알려진 통성기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하여 성령 충만의 역사는 대부흥 둘째 날인 1907년 1월 15일 집회에서 먼저 길선주가 스스로의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모든 회중들에게 죄를 자백하도록 요청했고 모든 사람들은 마치 회오리바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회개기도에 임하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나타난 강력하고도 충만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의 결과는 회개라는 구원론적 요소에 대한 강조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회개를 통하여 모여든 회중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불신자들이 회심했으며 이미 신자이었던 자들은 더욱 충실한 신자가 되어 교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부흥운동을 통하여 개인이 변화하여 신앙생활에 정진하고 그 결과 교회가 놀랍게 성장하게 된 것이 길선주의 신학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남긴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숭훙은 그의 신학을 ‘신앙론 중심의 신학’, ‘성령신앙의 신학’이라고 간주하면서 구원받은 신앙에 기초한 죄의 자백을 그 핵심적 내용으로 파악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신학 이해와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재래 신앙의 가르침을 매개로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던 부흥사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어떻게 그의 구원론이 형성되었는가를 성령론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길선주를 평가하는 많은 학자들이 그의 신학의 핵심을 종말론에 두는 것은 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와 근거를 지니고 있다. 길선주 그의 신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말세론과 그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그의 신학에 있어서 부흥운동의 관점에서 구원론의 역할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그의 전반적 신학을 새롭게 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그의 구원론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V. 길선주의 구원론

 

1. 만인구원론?

 

길선주의 구원론을 고찰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언급되어져야 할 사실은 그의 설교에 드러난 만인구원론적 경향이다. 전 인류를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하셨다는 논지를 일관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사망의 총체와 죄악의 총량을 짊어지시고 ... 전 인류의 죄악을 대신하여 외치는 라마 사박다니 소리에 우주가 흔들림이여!” 이와 같은 만인구원설적 경향은 구주의 탄식이 ‘천하를 구원하는 것’, ‘인류구원의 대도를 완성한 것’ 과 같은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대사령으로 묘사하면서 그 범위가 ‘온 천하 사람이 함께 누릴 은전’이라는 표현에도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길선주의 만인구원론적 경향이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제한속죄 (limited atonement) 와 상충되는 주장으로서 구원에 있어서 그가 지닌 알미니안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인가? 길선주는 방금 언급되어진 대사령에 설교에서 대사령의 범위가 온 천하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또 동시에 ‘대사의 은전에 목욕할 자’로서 모든 사람이 아닌 ‘예수를 믿는 자’, ‘예수 안에 있는 자’ 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인류구원의 대도를 완성한 것’이라는 구절이 발견되는 설교의 본문에도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구원의 확실한 효력을 얻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외에도 예수의 속죄함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를 믿는 자에게 임한다는 주장에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이러한 구절들은 만인구원론적 경향을 부인하는 단서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은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가? 그 해답은 길선주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적 경향에 놓여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함을 얻는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가르침은 구원의 도가 ‘어떤 사람이나 구별 없이 믿을 수 있는 도’ 라는 사실을 기독론 및 속죄론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도 남을 만한 효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도한 것이지 결코 그 자체로서 만인구원론을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이유에서 길선주의 구원론이 만인구원론적 경향을 지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회개론

 

부흥운동과 관련하여 길선주의 구원론에서 제일 먼저 다루어져야 할 교리가 바로 회개론이다. 길선주는 인간의 마음은 광대하며 무소불능하며 마음에 쌓은 대로 그 결과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마음이 이렇게 중요하지만 마음이 타락하게 되면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마음의 화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회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위의 근원인 마음을 회개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참된 회개를 외쳤다.

길선주는 죄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그는 죄를 원죄(原罪), 전죄(前罪), 금죄(今罪), 내죄(來罪)의 4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죄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계속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숨겨진 죄에 대한 강조이며 이 죄는 성령의 깊은 수술을 통하여 용서함 받을 수 있다고 이해하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용서받을 때 까지, 즉 완전 사유를 받을 때 까지 기도하라는 자신의 결론과 성령의 수술을 통한 죄 용서는 마치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유의 은혜를 위하여 간구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은 회개가 지닌 본래적 의미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해결될 수 없는 숨겨진 죄는 성령의 역사로 사유함을 받아야 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길선주는 인간의 의지 작용으로서의 회개의 결과로 주어지는 사유와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사유를 구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부흥운동의 관점에서 고찰해 볼 때 일반적인 죄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발로인 기도를 통하여 사유함을 받을 수 있지만 숨겨진 죄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사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이중적 도식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난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 다른 사람이 발견할 수 없는 숨겨진 죄악들을 공개적으로 자백하는 통회를 성령의 역사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이 여기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길선주가 구원론의 한 요소로서의 회개를 성령의 역사로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은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사유함을 숨겨진 죄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상당부분 인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신앙론

 

길선주의 신앙론에 드러난 특징은 그가 신앙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즉 이신칭의의 관점에서 논함과 동시에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먼저 신앙은 ‘구원 얻는 영혼의 손’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엡 2:8을 들고 있다. 이는 마틴 루터가 내세웠던 신앙의 수동적 차원을 연상시키는 대목임과 동시에 그가 신앙이 지닌 신적 측면을 인정하였음을 가리킨다. 신앙은 인간적 노력이나 공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주어지는 선물임을 뜻한다.

그러나 그는 신앙에 포함된 인간적 측면을 잊지 않았다. 즉 마귀가 보배로운 믿음 있는 사람들을 공격할 때 영생의 복을 잃어버리게 될 위험에 처할 수 있으므로 이를 지키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길선주는 신앙을 지키는 방법으로 깨어 있을 것과 잘 살필 것을 언급하였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의 믿음을 돌아보고 자신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돌아보아야 함을 뜻한다.

그는 신앙의 인간적인 측면을 논함에 있어서 영생을 위하여 이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 능력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신앙을 ‘세상을 이기는 장수' (요일 5:4-5)와 ‘적을 이기는 방패' (엡 6:16) 로 언급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막 9:23)을 덧입게 된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능력은 믿음의 결과로 주어지는 성령충만을 통하여 임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4. 은혜와 능력

 

길선주는 은혜의 정의, 수단, 결과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첫째, 은혜는 행함 없이 (롬 4:4-6; 11:6) 그리고 공로 없이 (롬 3:24) 얻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 (엡 2:8)이라고 하였다. 이는 그의 은혜에 관한 견해가 성경적이며 또한 어거스틴(Augustine)의 견해를 따르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인간은 받은바 은혜를 제일 잊어버리기 쉽다고 주장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중요성을 구원론적으로 파악하여 은혜가 신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사죄함으로 나타나며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주어지게 된다고 보았다. 길선주의 은혜론은 이렇게 구원론과 직결되어 있는데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인간들에게 주심 자체가 은혜라는 그의 구속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유명한 설교 “은혜로 주신 그리스도”에서 자신의 아들을 기꺼이 희생시킴으로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였던 철교(鐵橋)를 여닫는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바로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둘째, 은혜 받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을 논하기 전에 먼저 길선주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 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그리고 은혜의 스승이신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주어진다고 설명함으로서 은혜의 근원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길선주는 이렇게 삼위 하나님을 그 출발점으로 하여 말씀과 복음을 매개체로 하여 실제로 인간들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은혜의 수단으로서 말씀에 대한 강조보다는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자비하신 하나님이므로 은혜를 받기 위하여 기도와 간구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스라엘이 삼년 반 동안의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로 비가 내렸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통하여 은혜의 비가 내리게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도는 어떤 이유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시게 되는가? 이러한 기도가 죄를 회개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간구이기 때문이며 허물없는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은혜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참된 회개와 간구로 나아가야 함을 뜻한다. 길선주가 성령충만의 결과로서 회개를 강조하였던 근본적인 이유도 곧 은혜를 받기 위함이라는 대명제로 집약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은혜 받은 후의 결과는 무엇인가? 길선주는 은혜의 결과로 사죄와 구원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함, 지혜를 얻게 됨, 그리고 이적 기사를 행하게 된다는 인간이 받게 되는 능력을 언급하였다. 이는 “은혜가 아니면, 어떤 일도 능치 못할 것이다.” 라는 그의 능력에 관한 견해가 전제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성령의 권능이 사람의 마음, 말, 몸의 3가지 차원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그가 주장하는 몸의 권능에 이적을 행하는 권능도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은혜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증인되기 위한 능력을 부여받는다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길선주는 능력에 관하여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었는가? 먼저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된다는 주 안에서의 만능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약함을 전제로 하는 개념으로서 주 안에 있는 자가 누리게 되는 능력은 마치 전차가 전선과 궤도 안에 있을 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하나님만이 만능이심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불능을 주장하면서 단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길선주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그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능력을 부여받는 사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남을 구원하고 세상을 대적하며 마귀에게 항복을 받으며 천국을 얻도록 하는 증인의 사역에 필요한 능력을 받기 위해 은혜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5. 구원과 내세

 

길선주의 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가르침은 당연 말세론이었다. 그의 말세에 대한 강조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구원론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의 재림을 강조하는 종말론은 ‘그리스도인의 긴장된 종말적 신앙 자세와 생활지침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신앙과 신학을 태동시켰다. 그는 회개와 부흥을 통한 구령사업에 열중하는 개인 구원을 지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최상의 구원이 내세에 있으며 사후세계에 인간의 참된 영생이 있다고 보았다. 천국의 실재를 믿으며 이를 아버지의 집으로 표현하면서 우리의 주택이 곧 아버지의 집에 그리스도에 의하여 예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십자가에 주님의 오른편에 달렸던 강도가 주님으로부터 낙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앙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 그가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며 이 구원은 그에게 낙원이라는 내세적 소망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받아 누리게 된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구원을 뜻하는 것이었다. 즉 ‘무궁 안식 세계’에 들어가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말하는 말세적 차원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길선주는 구원의 이러한 종말론적 차원을 내세움과 동시에 구원의 현세적 의미를 아울러 강조하고자 하였다. 즉 구원을 통하여 이 땅에서도 마음에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소천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길선주가 주장하는 개인구원은 현세적 차원과 종말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구원론과 종말론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구원의 실질적 결과를 논함에 있어서 내세에 임하는 천국을 ‘무궁 안식 세계’로, 현세에 마음속에 평안으로 나타나게 되는 ‘소천당’으로 묘사되어져 있다.

 

 

VI. 비교 및 평가

 

지금까지 살펴 본 시모어와 길선주의 구원론을 중심으로 아주사대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의 구원론을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비교하는 가운데 평가해 보고자한다.

첫째,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범위에 관해서이다. 시모어와 길선주 모두 부흥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중요시하였다. 시모어는 ‘성령세례’를 내세운 반면에 길선주는 ‘성령충만’을 통한 부흥을 외쳤다. 여기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비록 사용되어진 용어는 다르지만 두 주창자가 모두 성령의 사역을 복음 증거를 위하여 능력을 부여받음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시모어가 내세운 성령세례의 초기증거 (initial evidence)로서의 방언에 대한 개념이다. 즉 방언이라는 초기 증거 없이는 다른 은사들을 받을 수 없다고 내세운 것이 그 특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방언을 받기 위하여 ‘성령을 기다리는’ (tarrying for the Spirit) 행위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여겨졌으며 모든 사람들이 이 방언의 은사 다른 은사들에 앞서 선행적으로 받아야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길선주 또한 성령충만을 통하여 능력을 부여 받아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여겼지만 다양한 능력들을 위한 선행조건으로서 은사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오순절 운동의 경우 방언이 성령세례의 초기 증거임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가 하나님의 성회 (the Assemblies of God)내에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하여 오순절 운동은 사실상 성령의 능력을 논함에 있어서 이를 방언이라는 특정한 은사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길선주는 성령 충만의 결과를 죄 사함의 차원에서 이해하여 회개를 강조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었으므로 성령의 사역을 시모어처럼 특정한 은사에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둘째, 인간의 능력에 관한 문제이다. 시모어는 인간이 칭의함에 이르는 신앙을 지니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가 주장하는 회개는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시모어가 주장하는 회개론은 인간의 능력에 근거한 회개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그의 회개론은 알미니안적이며 감리교적 차원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의지 작용을 강하게 신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칭의에 이르는 신앙은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신앙이며 회개도 이런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인간의 의지작용에 근거한 회개만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길선주도 인간이 죄를 회개하는 것이 우선 인간 스스로의 의지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회개가 성령 충만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회개를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서 논한다. 즉 우리가 의식할 수 있으며 또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일반적인 죄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행사함으로서 끝까지 회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죄는 성령의 역사로 사유함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회개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의 작용을 어느 정도 인정한 알미니안적 요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주창자가 부흥운동에 있어서 회개의 중요성을 모두 절실하게 인식하였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시모어는 이를 성령의 역사와 연결시키지 않고 전적으로 인간의 능력에 근거하여 일어난 사실임을 강조하는 가운데 알미니안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었다. 이는 사실상 성화를 통하여 죄성 혹은 원죄가 제거된다고 믿는 제 2의 축복 개념과 깊이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반하여 길선주는 회개의 사역을 논함에 있어서 인간이 스스로 죄를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알미니안적 요소를 드러냄과 동시에 숨겨진 죄는 반드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서 죄를 이분화하는 이중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셋째, 은혜에 관한 견해이다. 시모어는 은혜를 칭의에 이르는 은혜와 성화에 이르는 은혜의 두 가지로 나누는 감리교적 전통에 충실하면서 여기에 세 번째 차원으로서 성령세례를 첨가하였다. 따라서 방언이라는 구체적 능력으로 나타난 성령세례의 초기증거를 사실상 제 3의 은혜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드러내었다. 즉 ‘성령세례 = 은혜’라는 도식이 성립되어짐을 뜻한다. 이에 반하여 길선주는 은혜를 삼위일체론적으로 정의하고 어거스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였으며 이를 죄사함과 구원에 관한 총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시모어의 두 가지 은혜 개념과 구별된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통하여 복음증거를 위한 능력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함에 있어서 길선주도 시모어와 동일하게 은혜를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여 이를 통하여 남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길선주에게 ‘성령충만 = 은혜’라는 도식이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흥운동의 결과가 복음전파로 연결되며 이를 위한 능력의 부여라는 관점에서 은혜를 새롭게 구체적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두 주창자가 동일한 견해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은혜에 관한 기본적 정의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지녔음이 분명하지만 이를 복음전파를 위한 능력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동일한 견해로 나타났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평양대부흥운동과 아주사대부흥운동에서 길선주가 지녔던 장로교적 은혜론과 시모어가 지녔던 감리교적 은혜론이 만나게 되며 그 결과 능력이라는 관점에 의하여 공통분모를 지니게 된 새로운 은혜론의 등장을 논할 수 있게 된다.

 

 

VII.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시모어와 길선주의 구원론에 대하여 회개, 칭의, 성화, 신앙, 은혜, 능력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부흥운동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두 주창자에게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비록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이라는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부흥운동 전체를 성령의 사역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아주사대부흥운동과는 많은 점에 있어서 서로 다른 부흥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오순절 운동이라고 불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모어의 구원론은 3단계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그의 성령세례론이 감리교적이며 알미니안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음이 그의 회개와 신앙에 관한 견해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도 살펴보았다.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능력을 중요시하는 회개와 신앙에 관한 견해가 그의 부흥운동을 지지하는 한 축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내세운 성령세례의 초기증거로서의 방언은 제 3의 은혜로서 이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부여가 곧 복음전파를 위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능력과 동일시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아주사 대부흥운동에서 발발한 초기 오순절 운동의 방언에 대한 절대적 강조와 이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오순절 운동의 특징적 요소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길선주의 구원론을 논함에 있어서 먼저 만인구원론적 경향이 부인될 수 있는 근거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즉 그의 구원론이 반드시 만인구원론을 지지한다고 내세울 수 있는 단적인 근거가 없음을 언급하였다. 회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길선주는 죄를 이분화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 성령의 사역을 모두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그의 은혜론은 삼위일체론적이며 어거스틴적인 출발점을 지니고 있지만 복음증거를 위한 능력으로서의 은혜를 논함으로서 사실상 시모어의 은혜론과 일치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길선주는 부흥운동을 주창함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성령의 은사를 다른 은사들보다 더 절대적으로 내세우고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라고 내세우는 경향을 지니지 않았으며 이 점에 있어서 그가 주도하였던 평양대부흥운동이 아주사대부흥운동으로부터 차별화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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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mour, William J., The Doctrines and Disciplines of the Azusa Street Apostolic Faith Mission of Los Angeles, California, Joplin, MO: Christian Life Books, 2000.

Synan, Vinson, The Holiness-Pentecostal Tradition: Charismatic Movements in the Twentieth Century, Grand Rapids: Eerdman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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