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일반 정암 박윤선의 성령신학

첨부 1


정암 박윤선의 성령신학

최윤배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I. 서론

 

정암(正岩) 박윤선(朴允善: Rev. Yune Sun Park, D.D., 1905.12.11~1988.6.30)은 1905년 12월 11일 평북 철산군 백령면의 해변 마을 장평동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박근수(朴根秀)와 어머니 김진신(金眞信) 사이에 출생한 2남 3녀 중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에게 형 박윤석, 위로 누나 두 사람, 아래로 여 동생 한 사람이 있었다. 1979년 10월에 “그는 『에스라?느헤미아?에스더 주석』의 집필을 끝냄으로써 신구약 66권의 주석을 20권의 책에 수록하여 완간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1949년 『요한계시록 주석』을 처음으로 출판한 이후 30년간의 각고 끝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88년 봄 학기 강의가 끝난 얼마 후 6월 12일에 그는 복부에 심한 통증으로 영동 세브란스에 입원하였다. 오랜 지병이 된 위궤양과 담석증이 악화되어 암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마침내 “1988년 6월 30일 그는 영면했다.”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을 일반적으로 다룬 훌륭한 작품들이 이미 많이 나왔고,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일반적 기술이 없어도, 본고의 주제에 대한 논의를 가능케 하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적으로 주어진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기로 한다. 이미 황창기가 “박윤선의 성령론”에 대하여 훌륭하게 논의한 바가 있지만, 그는 여기서 주로 오순절 성령의 강림 이해를 중심으로 논하면서 그의 성령론에 대한 보완점을 많이 지적하였고, 실제적으로 박윤선의 성령론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지금까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박윤선의 성령론을 오늘날의 토론의 장으로 끌어오기 위하여, 특정한 관점에서 살펴보지 않고, 그의 성령론 전반을 골고루 살펴보고자 한다.

박윤선의 성령신학에 대하여 논의할 때, 우리는 그의 작품의 연대를 고려하지 않고 사용할 것이며, 주로 그의 『개혁주의 교리학』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논문의 구성은 조직신학에서 일반적으로 기술하는 방법과 순서대로 두 가지, 즉 성령은 누구이시며, 성령은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Ⅱ. 성령의 위격

A. 성령과 삼위일체 하나님

박윤선은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낱말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 교리의 성립은 성경 전체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 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1인칭 복수인 ‘우리’의 입장에서 말씀하시고(창1:26; 11:7), 하나님의 행동이 복수 동사로 묘사된 곳도 있고(창35:7), 신약성경에도(마28:19; 고후13:13; 마3:16-17; 고전12:4-6; 벧전1:2) 삼위가 함께 언급된 곳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박윤선은 삼위일체 교리는 오묘하고, 신비하여, 피조물로서의 우리는 그것을 알기 어렵지만, 성경의 말씀 그대로 믿는다고 말한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이 삼위께서는 한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신데 그 인격은 세 분이고, 그 세 분께서는 권능과 영광에 있어서 동일하시다는 것이다. 명심할 것은 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서 우리 피조물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성(神性)은 동일체이시면서 격위(格位)는 서로 다를 수 있을까? 우리는 제한된 피조물로서 이 오묘에 대하여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의 말씀 그대로 믿는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는 유대교의 일신론(monotheism)과 이방인 출신 기독교 개종자들의 다신론(polytheism)의 종합에서 비롯되었다는 종교사학파적인 주장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박윤선은 성경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각각 인격성을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실체도 셋이라는 “삼위삼체설(三位三體說)”이나, 한 분 하나님의 활동 또는 계시 방법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는 “사벨리안 설(Sabellianism)” 또는 “일위삼양설(一位三樣說)”이나, 오리게네스(Origenes)와 아리우스(Arius) 등에 의해서 주장되었던 종속설(從屬說), 즉 성자께서 성부에 의해서 창조되어, 성자의 실체가 성부의 실체와 다르다는 주장의 반(反)삼위일론적 이단설들에 반대하여 니케아회의와 곤스탄티노플회의가 성경과 일치하게 말하였다. 이 회의들은 “① 사벨리안의 학설을 반대하고 삼위의 엄격한 인격적 구분을 내세웠고, ② 아리우스파에서 주장한 바 성부와 성자는 실체 있어서 서로 다르다(즉 ‘비슷하다’는 것, ?μοιο?σια)고 한 학설을 반대하고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μοο?σια)을 내세웠다.”

박윤선은 성경주석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성과 삼위성을 위격 간의 동등성과 구별성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성(시6:4; 요17:3; 고전8:3; 고전8:4하; 약2:19; 딤전2:5; 슥14:9)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동등한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요1:1; 20:28; 롬9:5; 골2:9; 요일5:20; 사9:6; 요14:9-11), 아버지와 구분되는 다른 인격이심(요17:3; 요11:41-42; 17:1-26; 마26:39, 42, 44; 눅23:46)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성령도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하나님이신(행5:3-4; 딤후3:16; 벧후1:21) 동시에 성부와 성자와 다른 인격으로 구분된다고(요14:16; 15:26) 주장한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을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는데, 처음 두 항목들이 ‘내재적(본성적) 삼위일체’에 관한 기술이라며, 마지막 셋째 항목은 ‘내재적?경륜적 삼위일체’에 관한 기술로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들은 삼위일체 교리의 골자이다. 첫째, 삼위 하나님의 본체가 하나라는 것은 질적(신의 본질)으로 동일하실 뿐만 아니라 수적(數的)으로도 하나라는 의미이다(빌2:6). 둘째, 하나님의 위가 셋이라는 것은 인격에 있어서도 셋이라는 의미니, 이것은 인간의 지식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오묘이다. 셋째, 삼위 안에서 성자는 성부에게, 성령은 성자에게 구원 사역상 종속적 관계(subordination in God’s redemption economy)를 가진다. 즉 성자께서는 성부의 보내심을 받으셨으므로 성부에게(요6:38; 13:20; 14:28; 17:7; 고전3:23),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나오시지만(요15:26), 성자의 보내심을 받으셨으므로(요15:26) 성자에게도 종속 관계를 가지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신앙고백과 의식 없이 삼위일체론을 취급하다 보면, 우리는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가 있다. 그러나 박윤선은 성경주석과 함께 구원론의 관점에서 경륜적 삼위일체론을 취급함으로써 일종의 사변을 피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가 없고(요3:16),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없고(요14:6),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거룩해질 수 없다.”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사역을 하시면서도 위격의 고유성으로 인하여 각 위격에게 고유하게 주어지는 사역을 박윤선은 잘 파악하고 있다.

 

“우선 천지 창조시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성부 하나님은 그 계획자이시고,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은 그 방편이시며, 성령께서 그 내부적 성취 사역에 임하셨다. 다시 설명하면 창1:1-5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주재(主宰)이시며, 말씀은 ‘하나님이 가라사대’로 나타나셔서, 없던 것이 있도록 하시는 존재의 원리가 되시고, 성령께서는 그 원리 속에서 역사하셨다. 이것은 구속 사업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다. 즉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침을 세우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중보자로서 인류 구원의 중보적 경륜을 이루셨으며, 성령께서는 그 구원을 인류에게 실시하시되 내면적인 역사로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하신다. … 그렇다면 이 구절은(요일4:4. 필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성부?성자?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 기독신자와 친밀히 계시며 그의 구원을 이루시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교리를 바로 깨달을 때 신앙생활에 큰 담력을 얻게 된다.”

 

이상의 박윤선의 삼위일체 하나님 이해로부터 우리는 성령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② 성령은 제3위의 하나님이시다. ③ 성령은 내재적?경륜적으로 성부로부터 나오시고, 성자에 의해서 보냄을 받으시며, 구원에서 성화의 사역을 하신다. 결국, 박윤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성의 관점에서 성령을 하나님 자신으로 간주하여, 성령의 ‘신성(神性)’을 주장하고, 성령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성의 관점에서 제3의 “격위(格位, Person)”로 인정하고, 성령의 독립적 ‘인격성(人格性)’을 주장하며, 성령의 고유성(固有性, proprietas)관 관련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성령의 주된 경륜적 사역을, “내부적 성취” 또는 구원의 “실시” 또는 “내면적 역사” 또는 ‘성화(聖化)’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박윤선은 내재적?경륜적 삼위일체론적 성령론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B.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

비록 박윤선은 A.D. 1054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필리오케’(filioque) 문제와 이 용어에 대한 교리적 언급을 시도하지 않을지라도, 그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상호 불가분리의 관계성을 매우 강조한다.

 

“참된 신비주의는 말씀(그리스도)과 영(wood en geest를 Woord en Geest로 고칠 것, 필자)의 관계를 바로 가지되, 거짓 신비주의는 말씀과 영의 관계를 잘못 취급한다. 다시 말하면 거짓된 신비주의는 성령을 말씀에서 독립시켜 취급한다. 스킬더가 여기서 의미한대로 말씀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거짓된 신비주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것보다 성령을 중심한다. 실상 성령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하여 사역하시는 분인 만큼, 그의 모든 사역이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한다(요15:26).”

 

첫째, 우리가 이미 논의한 삼위일체론 속에서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고, 성자에 의해서 보냄을 받음으로써 성령과 성자는 밀접한 상호 관계 속에 있었다.

둘째, ‘그리스도’라는 명칭의 의미와 기능 속에서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는 상호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 박윤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의미를 언어학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고찰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예호수아’(구원)와 같고,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구약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라는 헬라어 역이고, ‘그리스도’는 예수의 공적(official) 명칭이며, 히브리어의 메시아, 즉 ‘기름부음 받은 자’에 해당되며, 구약의 배경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성령을 특수한 의미에서 부음 받음을 나타낸다.(사61:1; 슥4:1-6)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은 필수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선지자의 경우에는 단 한 번 기름부음을 받은 기록밖에 없다.(왕하19:16) 확실히 이 이름은 어떤 인물을 성별하여 특별한 임무를 맡기는 것을(하나님 앞에서 대표하여 백성을 다스림) 표지(標識)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실 때 이미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공적(公的)으로는 그가 세례를 받으실 때이다.(마3:16-17)

셋째,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의 삶에 항상 함께 하셨다. 이때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월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우선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하심[成肉身]에서 그렇게 되어 있고(마1:18-20; 눅1:26-35), 세례 받으심(마3:16-17),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마27:50-51; 막15:37-38)과 부활하심[구원성취](마28장; 막16장; 눅24장; 요20장), 오순절 성령 강림(행2:1-12) 등 지상 성역 전반에 걸쳐 삼위께서 함께 하셨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들어 말하자면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시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은 하늘로부터 들려 왔다.” 여기서 지상에서의 역사적(歷史的)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담지자(擔持者)’이심을 알 수 있다.

넷째, 부활?승천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을 그의 백성에게 보내신다.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에 약속하신 것과 같이 저가 승천하셔서 保惠師 성령을 보내셨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셔서 사역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메시아이시라는 증표요, 우리에게 주실 영적 축복과 은사의 근원이다. 박윤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여섯 가지 의미 중에 하나가 “땅위에 성령님을 보내시려는 전제다(요14:26; 16:7-15).”라고 주장한다. 즉 구속사적으로 지상에서 사역하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이루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과 성령의 강림하심은, 구원 경륜의 성질상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역사에 뒤이어 성령이 오실 것은, 구약에도 가르친 하나님의 경륜이다. … 그러므로 그의 부활 승천에 뒤이어 성령님이 오시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부활?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는 성령의 파송자의 역할을 하신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언자직, 제사장직, 왕직의 모형이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munus triplex) 속에서 성취된 것이다. 메시아로서 삼중직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 제사장, 왕으로서 성령론적 관점에서, 즉 성령을 통하여 그 직분을 수행하신다. “이 삼중직의 참 회복은 실패로 점철되어 온 지상의 혈통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나의 신’, 스가랴 4장)과 장차 오실 메시아(스가랴 6장)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신약시대)로 그 정점적인 성취를 본다는 것이다.

위에서 논의한 셋째와 넷째 관점은 성령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는 구속사에서 이중적(二重的)이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즉, 부활?승천하시기 이전의 역사적(歷史的)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신다. 여기서는 성령이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월하신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부활?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분이시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혜사 성령보다 우월하신 것처럼 보인다. 전자의 관점은 주로 공관복음에서 두드러지고, 후자의 관점은 주로 요한복음과 바울서신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러한 두 관점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상호 보완적이다. … 예수는 그가 처음 성령을 받은 자이며, 성령을 지닌 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성령을 보내신 자가 될 수 있다.” “성령이 내려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박윤선의 경우,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는 내재적 삼위일체 속에서와 구속사 속에서 상호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나타난 박윤선의 성령론은 부처(M. Bucer)와 칼뱅, 바르트와 베르꼬프(H. Berkhof) 등 대부분의 개혁전통에서 발견되는 성령론의 전형적인 특징들 중에 하나에 해당되는 “그리스도 중심적?인식론적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적용(응용)적 성령론”이다. 그러나 그는 성경주석에 특별히 관심한 성서신학자(주경신학자)이기 때문에 교리사에서 지금도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필리오케’(filioque)에 대한 분명한 논의는 발견되지 않는다.

 

Ⅲ. 성령의 사역(事役)

박윤선은 구약과 신약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성령의 활동을 “성령의 삼중 사역(三重使役)”으로 분류하는데, 즉 우주의 “창조자” 및 “우주 만물의 지지자(支持者)”와 “통치자”로서의 사역, “천국운동의 집행자”와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자”로서의 사역, 그리고 “우주나 신국(神國)”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 대한 “심령을 개조(改造)”하는 사역이다. 또한 박윤선은 “창조질서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아담을 생령이 되게 하시고, … 구원질서에 있어서도 역시 그가 사람에게 생명의 성령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박윤선의 분류 방법을 참고하고, 논의상의 편리함을 위하여 성령의 “일반 사역(事役)”과 “특별 사역”으로 나누어서 기술하기로 한다.

박윤선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창조주 및 섭리주이신 동시에 구속주로 이해하고 있다. “구원의 작업은 창조와 마찬 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성령 하나님은 창조주 및 섭리주이신 동시에 구속주가 되신다. 창조주로서의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사역을 ‘일반 사역’으로, 구속주로서의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역을 ‘특별 사역’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동시에 구속주로서 창조와 구속 사역을 함께 하심이 언급된 박윤선의 말을 앞에서 이미 인용하였다.

성경 주석에 근거한 박윤선의 다음의 말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창조 사역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의 동시 개입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