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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재조명 - 성찬 해석을 중심으로 에 대한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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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재조명 - ‘성찬’ 해석을 중심으로 -”에 대한 논평

정연락 (안양대학교 신학과 신약신학 교수)

 

 

잠시나마 고 박윤선 박사의 강의를 (합신으로 분립하여 나가기 전) 총신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제자로서 박윤선 박사의 개혁신학을 재조명하는 자리에 동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의 강의와 설교에 배어 나온 그의 신앙 인품은 다른 스승에게서 쉽게 만나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윤선 박사는 한국교회의 귀한 스승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제자요 그를 한국교회의 귀한 스승이라 하여 그를 우상시한다든지 추종한다는 마음은 전혀 없다. 개혁신학은 성경 이외의 어떤 특정 신학자를 표준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박윤선이나 칼빈이나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고, 성경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가 살고 있는 (혹은 살던) 환경이나 역사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며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쓴다. 여기에는 박윤선이나 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해 재조명한 류호성 교수나 본 필자나 다 해당이 된다. 그렇기에 박윤선을 재조명하고 평가할 때 그가 활동하였던 시대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평가하는 학자는 결국 자기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논평자도 자기가 처한 주관적 입장에서 논평하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류호성 박사는 (이하 류호성) 박윤선의 방대한 저술 가운데서 특별히 그가 관심을 갖고 보고 싶은 성찬에 관한 부분들을 검토한다. 박윤선의 신약주석 중 해당 본문 주석들과 그의 설교들 가운데 관련 설교들, 그리고 교리서 등으로 구분하여 박윤선의 이해와 주장을 정리한다. 항목별로 요약 정리하면서 박윤선의 글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이해의 근거를 적절히 잘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 필자도 박윤선의 저작을 직접 대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류호성은 그렇게 항목별로 정리하면서, 몇 몇 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학문적 이의를 제기하고 논증을 시도함은 학자적인 평가에 있어서 필요한 작업이라 사료된다. 특히 두 곳에서 그렇다. 첫째는 박윤선의 누가복음 22:18의 주석에서 헬라 원어 ‘엘데(e;lqh|)’에 근거한 천국 해석에 대하여 검토한 것은 좋은 시도로 여겨진다.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 22:20의 주석에서 ‘새 언약’에 상응하는 ‘옛 언약’을 아담과 맺었던 언약으로 이해한 박윤선에 이의를 제기한다. 류호성은 성만찬이 유월절 예식의 대체물이라는 점과 예레미야 31:31-33의 “새 언약”이 출애굽하여 맺은 ‘시내산 계약’을 대체할 것이라는 이해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에 상응하는 그 옛 언약은 ‘시내산 언약’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아담에게 주어진 것은 ‘계약/언약’이라고 불리어 지지도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 이외에는 성만찬의 시행 횟수와 관련한 것 외에 특별한 논의가 없이 박윤선의 해석이나 견해를 항목별로 정리/소개하는 데 그친다.

 

류호성의 논문에서 가장 중심되는 관심사는 “한국 교회의 현장에서 성찬이 자주 실행되지 않은 원인”을 / 책임을 박윤선에게서 찾는 일이다. 이것이 서론에서 제시된 논문의 목적이며, 특히 본론의 “3. 교리서”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내용이다. 따라서 “평가 및 결론” 부분에서 류호성은 칼빈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박윤선은 칼빈과는 달리 “한국 교회에서 ‘성찬’을 자주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의 강조점이 여기에 있는 만큼, 본 논평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있게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먼저 신약신학적인 입장에서 박윤선의 신학 업적을 재조명함에 있어서 주된 논점을 신약신학적인 문제를 신약신학적인 관점에서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류호성의 논문 제목은 “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재조명”인데, 정작 관심사는 신약성서 해석 문제라기보다 실천적인 문제였다. 그것도 박윤선의 주석이나 주경신학 저술에서가 아니라 교리서라는 분류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주석: 정치?예배 모범이라는 다분히 실천적인 책에서 문제점을 찾았다는 것이 아쉽다. 이론과 현실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 이점에 있어서는 칼빈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문제점은 달리 찾았다 하더라도 신약신학자에게서 신약신학적인 해석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박윤선이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는 것에 주의를 환기시킨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전에 먼저 그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박윤선이 성찬식 시행의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아마도 그의 주석 특히 고린도전서 11:23-26 전후의 문맥에 대한 주석에서 상당한 논의가 있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러나 류호성은 박윤선의 이 부분 주석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박윤선의 주석 검토 부분에 그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더욱이, 교리서에 인용한 부분에서 평가하더라도, 류호성은 박윤선의 한 단어 “너무”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박윤선은 성찬식이 교회에서 자주 실행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 박윤선은 (류호성이 인용한 바에 의하면) “성찬식은 언제나 많은 준비 기도가 있은 후에 경건되이 실행되어야 하므로 너무 자주 실행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한다. (강조가 첨가되었음) 또한 그의 인용에는 없는 것을 강조하여 “성찬을 자주 실시하는 것을 금하는 것과 ...”로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왜곡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류호성이 사용한 박윤선의 저서는 신학적인 이론서이라기보다 실제적인 문제를 다룬 실천신학적인 책이다. 현실적인 사정을 감안하여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류호성은 박윤선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소중히 다룬다고 하면서 실제 성만찬을 실행하는 문제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첨가하여 “성찬을 한국 현실에 토착화”하였다(류호성 논문, 3.A.1)고 비판한다. 물론 여기서 토착화를 부정적으로 이해한다기보다 일관성을 결여하였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서도 오히려 일관성을 결여한 것은 류호성이다. 박윤선은 그의 책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주석: 정치?예배 모범(강조 첨가)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없는 것을 첨가한 것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주석을 한 것이다. 주석과 본문은 구별되어야 한다. 역시 그의 논문 3.A.3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경우에서도 그 요리문답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일은 자주 있는 것이 합당함으로 주의 성찬은 자주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 그러므로 주의 성찬은 유월절 양의 경우와 같이 자주 반복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Z. 우르시누스/원광연 역,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해설, p. 615)고 함으로써 “자주 시행”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용된 부분은 요리문답 75문과 그 답에 대한 해설이지 요리문답 자체는 아니다.

 

넷째, 류호성은 박윤선을 칼빈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칼빈과는 다르다는 점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분명 칼빈은 류호성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성만찬을 자주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 역시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네바 시에서 칼빈의 주장과는 달리 이전 쯔빙글리의 영향 하에서 1년에 4회 시행하던 관습을 고치지는 못했다. 이것이 개혁주의 교회가 성찬식을 1년에 4회 가량 시행하게 된 연유라고 한다. (김영재, 교회와 예배, 134) 결과적으로는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 칼빈과 박윤선이 같을지라도, 그 두 사람의 견해가 같다는 것은 아니다. 칼빈은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를 이기지 못했고, 박윤선도 성만찬의 남용 혹은 부주의한 시행을 염려한 탓에 서구에서 시작된 개혁주의 교회의 관습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듯하다. 칼빈도 그 시대의 아들이었고, 박윤선 역시 그런 교육을 받은 선교사들과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다섯째, 박윤선이 성찬식을 자주 권하지 않은 것이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는 류호성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구한말 한국인으로서 유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유교에 의해서 설명이 된다고 다 유교의 영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찬을 1년에 4회만 시행한 종교개혁 시대 전통이나 1년에 한 차례만 시행한 중세 천주교회의 관습도 유교의 영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설명이 될 수는 있기 때문에 이미 서구에서 그렇게 시행되던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는 있었으리라고 짐작은 된다. 그렇다고 반드시 유교의 영향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韓國敎會史家 김영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 교회는 일년에 두 번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이것이 관례가 된 것은, 아직 한인 목사가 없던 시절에, 선교사들이 지방교회를 일년에 두어 차례씩 순방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다. 미국의 교회들도 개척 시대에는 성찬을 일년에 한 두 번만 행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예전의 회복 운동도 있으며, 성찬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져서, 매달 한번씩 행하는 경향이다.” (김영재, 교회와 예배, 69)

 

여섯째, (첫번째로 언급한 바와 같이) 성찬식의 횟수와 관련하여, 신약신학적인 관점에서 검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복음 본문이나 고린도전서 본문 어디에도 실제로 자주 행하라는 말은 없다. 다만 주께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tou/to poiei/te eivj th.n evmh.n avna,mnhsin)”(눅 22:19; 고전 11:24), 혹은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tou/to poiei/te( o`sa,kij eva.n pi,nhte( eivj th.n evmh.n avna,mnhsin)”(고전 11:25)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바울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o`sa,kij ga.r eva.n evsqi,hte to.n a;rton tou/ton kai. to. poth,rion pi,nhte( to.n qa,naton tou/ kuri,ou katagge,llete a;cri ou- e;lqh|)”(고전 11:26)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단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하나는 avna,mnhsij이며, 다른 하나는 o`sa,kij이다. 전자는 해당 헬라어 단어 자체는 칠십인역에 몇 번 사용되지 않지만, 의미론적으로나 문맥적으로 구약의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과 관련된다(출 12:14; 13:3, 8 등). (H. Patsch, EDNT 1.85) 그렇다면, 유월절은 1년에 한 차례 기념하는 것이 아닌가? (이 논평에서 길게 논의할 수가 없지만,)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검토할 만하다. 후자의 경우 뒤 따라오는 단어와 더불어 “as often as”로 번역하는데, 이 표현이 얼마나 자주 행하라는 말은 아니다. 이 단어의 접미사 -kij 는 횟수를 가리키는 부사를 만든다: 즉, “... 번의 횟수대로” 혹은 “... 번의 횟수만큼”. 그러니 성찬식을 거행하는 횟수만큼, 즉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라는 것이지, 매주 마다 거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상의 간단한 검토에서, 본 필자는 성찬식을 자주 거행하지 말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매주 거행함으로써 의미를 새롭게 하고,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학자로서 검토해야 할 것은 그렇게 매주 (혹은 얼마나 자주) 시행해야 할 신약성서적인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이다. 물론 박윤선에게서 그 해답을 찾으라는 것은 아니다. 박윤선, 그 시대의 인물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했으면, 우리는 그 해답을 신약성서에서 찾아야 하는 과제를 발견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박윤선이 해당 책을 출판한 것은 1983년이었다. 적어도 류호성이 밝힌 바 안에서는, 박윤선의 주석이나 다른 저서에서는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의 글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1983년에 와서 시행상의 주의를 위해서 그렇게 제시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책이 한국 교회에서 성찬이 자주 실행되지 않은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는가? 즉, 한국 개신교 선교역사가 1984년으로 100년을 맞게 되었는데, 지난 100년 동안의 한국교회의 관습도 박윤선의 책임이고, 박윤선을 환영하지 않던 다른 교단들의 경우도 다 박윤선의 영향으로 그렇게 자주 실행하지 않은 것인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시대착오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박윤선 그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학문적으로 미숙하였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교리적인 안목에서 성서신학을 시도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선교사들이나 당시 시대적인 제약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우리는 부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를 존경은 하지만, 그를 우리의 표준으로 삼거나 맹종하지는 않는다. 그가 부족한 것은 부족하다 해야 하며,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가 그의 시대의 한국 교회를 세우는 데 기여한 공로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모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박윤선이나 류호성이나 정연락이나 각자 자기의 관점이나 주관에 갖혀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쓰고 싶은 것을 썼다는 점에서는 다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류호성 박사의 논문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누구의 책임이든, 원인이 어디에 있든, 한국 교회에서 성찬이 더 자주 시행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문제를 제기한 류호성 교수의 수고에 감사한다. 더욱이, 위에 거론한 사항들은 류호성 박사의 전문분야와는 다른 실천(신학)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는 류 박사의 전문분야인 신약해석 문제에의 탁월한 기여를 기대해본다.

 

 

 

 

 

 

 

 

 

 

 

 

 

 

 

 

 

 

“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재조명-‘성찬’ 해석을 중심으로-”에 대하여

 

정 훈 택(총신대)

 

 

1. 시작하며

 

제목만 읽었을 때, ‘성서 해석학’이나 ‘성찬’에 대해 조직적인 글을 쓴 적이 없는 박윤선에게서 이런 과제를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며 큰 관심과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제목이 과장되었다고 판단했다. 이 논문은 박윤선의 성서해석학도 성찬론도 체계적으로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성찬에 대한 박윤선의 설명을 모아 가끔 평가하고 요약하면서 해석학적 문제점을 몇 곳 첨가한 정도이다.

이 논문의 실제 강조점은 한국 교회에서 일 년에 “고작” 몇 번 시행하고 있는 성찬식의 원인을 박윤선에게 돌리며 한국교회가 성찬식을 칼빈주의 전통을 따라 “더 자주” 시행해야 할 것을 제안하는 데 있다(21쪽).

 

2. 박윤선의 책임인가?

 

한국교회에서 성찬식이 일 년에 몇 번 시행되는 “이런 결과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박윤선 박사의 저서에서 찾아보자”(1쪽)는 발표자의 제안은 박윤선을 이미 그 책임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성찬이 자주 실행되지 않은 원인”(1쪽)도 박윤선에게서 찾으려는 것이다. 성찬과 관련된 많은 인용구들을 설명한 다음 발표자는 “한국 개신교의 예배에서 성찬식이 자주 거행되지 못했던 그 원인을 우리는 그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15쪽)고 하며 박윤선의 “너무 자주 실행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글을 인용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생각이 한국교회에서 ‘성찬’을 자주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20)라고 평가했다.

이것을 과연 박윤선의 책임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 발표자가 제시한 자료를 따르면 한국 개신교가 시행한 최초의 성찬식은 1885년 10월 11일(선교사들), 또는 1887년 성탄절(한국인 포함)에 있었다. 그런데 박윤선은 1953년에 주석 작업을 시작했고 발표자가 인용한 글이 수록된 책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 박윤선 이전에는 어떠했을까? 이러한 추적도 없이 박윤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박윤선은 한국교회에 이미 전통이 되어 있던 것을 정리한 것이 아닐까?

발표자를 따르면 칼빈은 성찬을 “자주,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실행할 것을 권고하며 예배에 포함된 것으로 보았지만 박윤선은 “성찬식을 일반 예배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17쪽) 성찬식을 자주 실행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일까? 성찬 시행 횟수를 근거로 박윤선이 성찬을 예배의 요소로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명확한 근거제시가 되지 못한다. 매주 예배 때마다 성찬을 거행하는 개신교 교회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직후 매주 실행하던 성찬이 차츰 횟수가 줄어 오늘에 이른 역사적 과정을 살피는 것이 더 필요한 연구라 생각된다.

 

 

3. 박윤선은 성찬을 제사로 이해했는가?

“성찬식은 ... 너무 자주 실행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문장과 성찬에 참여할 준비를 다룬 박윤선의 글은 발표자를 따르면 “박윤선이 성찬을 한국 현실에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16쪽)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토착화란 “조상의 제의를 지내는 한국인들의 심성을 반영한 것”, “성찬식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는 제사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을 말한다. 유교문화에서 기일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박윤선은 성찬식을 자주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유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박윤선이 유교적 경향을 여전히 가지고 있고 유교적 이론과 실행이 그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추측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성과 추정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증명과 증거제시의 문제이다. 가능성이란 순 역행적 결과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한 문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추론한 것으로 보인다.

 

 

4. 박윤선은 예수의 죽음이 재림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는가?

발표자는 공관복음에 나타난 박윤선의 성찬 이해를 요약하며 “예수의 죽음에는 이미 재림이 포함되어 있다”(7쪽)고 주장한다. 박윤선이 예수의 사역과 말씀의 핵심 주제인 천국을 “예수의 십자가로 약속의 성취를 이루었으며,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광과 축복이 완전해졌고 충만해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3쪽). 박윤선이 마치 다드(Dodd)의 실현된 종말론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논평자의 생각에는 박윤선은 직선적 시간관과 전통적 종말론을 믿었다. 예수의 재림 때 하나님의 나라가 그 완성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18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대한 박윤선의 주석(2쪽)은 같은 생각을 알려준다. 즉 박윤선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를 가리키는 말씀이요”, 그 시점에서 보면 “천국이 그 계시와 성취와 영광과 축복에 있어서 완전해졌고 충만해진 뜻을 가진다”는 뜻이다. 발표자는 이런 관점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5. 빠트려 놓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발표자는 성찬에 대한 박윤선의 설명을 수집, 소개, 요약하며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중요한 요소를 빠트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 박윤선은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받는 일에 참여한다”(3쪽), “그리스도에게 더욱 밀접히 연합하여 ... 은혜를 받을 수 있다”(3쪽),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을 의미한다”(7쪽) 등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발표자는 이 개념을 8쪽에 요한복음의 주석에 대한 요약에서 한 번 살짝 말할 뿐 성찬론의 핵심으로 본 것 같지는 않다. 논평자가 보기에는 이것은 비유적 표현, 기념설과 함께 박윤선 성찬론의 핵심에 속한다.

 

6. 표현상의 문제

발표자는 성찬을 줄곧 기독교의 “제의(祭儀)”라고 표현한다. 제의란 “제사의식(祭祀儀式)”의 줄인 말로서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는 의식이다. 박윤선이 성찬을 제사 개념으로 이해했다는 주장과 일괄성이 있는 표현으로 보이지만 보편화된 개신교적 용어는 성례(聖禮)이다.

발표자는 여러 차례(5쪽, 15쪽 등) “동떨어지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서로 떨어져 있다”, “아무 관련성이 없다”는 뜻으로 문맥에는 맞지 않는다. 박윤선이 한 곳에서 “새 언약”을 “옛 언약”, 즉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맺으신 언약“과 대조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아담에게 주신 “행위언약”과 대조한 것은 “옳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롬 5:12-19에서 박윤선은 죄의 기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의 원리를 염두에 두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표자가 박윤선의 책에서 인용한 문장은 “너무 자주 실행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이지만 발표자는 이를 “박윤선은 성찬식이 교회에서 자주 실행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설명한다(15쪽). 두 문장은 부정문과 긍정문을 뒤바꾼 것으로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윤선이 “성찬을 자주 실시하는 것을 금했다”(16쪽)고 부연하는 것은 곡해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7. 나가며

 

이 논문은 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재조명을 담고 있지 않다. 성찬에 대한 체계적 연구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성찬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회의 본질이 잊혀져가고 교회의 부수적 요소들이 이를 대체하는 실정에서 “성찬을 더 자주 실행하여 그 깊고 깊은 의미를 만끽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가치 있는 공헌이다. 박윤선은 “만끽”보다는 다른 용어를 선택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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