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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마음을 지켜라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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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지켜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우리의 삶의 주변에는 각 영역마다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들이 있습니다. 날씨는 일기예보를 통해 예측할 수 있고, 경제 동향은 주가 지수나 물가 지수를 통해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 삶의 미래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연구를 해도 인간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우리 삶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기준이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읽으면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떨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마음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기 때문에, 현재의 마음상태를 보면 우리 삶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마음이 우울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소에 우울한 것에 마음을 쏟기 때문에 우울한 앞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면, 기쁘고 긍정적인 사람은 늘 좋은 것을 생각하여 즐겁고 행복한 삶의 결과 삶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성경에 보여주신 은혜의 말씀으로 채울 때, 우리의 내일이 밝고 희망찬 꿈과 소망이 가득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1. 삶의 불안과 두려움


삶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세상에 사는 이상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한 가정의 남편 마음에도, 아내의 마음에도, 서로 다 틀어 보일 수는 없지만은 불안과 공포의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적은 걱정과 불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걱정과 불안은 우리 몸을 병들게 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던 알렉시스 카렐은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불안과 걱정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불안과 신앙과의 관계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고 결론을 말해주었습니다.


잠언 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떨어져서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의 원초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마음에 항구적인 평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평안의 근본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연약한 인간, 강하신 하나님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십니다. 연약한 인간을 불란서의 유명한 화가인 고흐가 재미있게 표현을 해주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그림 그리는 화가인 고흐가 젊었을 때 광산에서 노동자들 도와주는 전도사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한 사람이 광산에 물건을 담은 포대를 가지고 집에 가서 셔츠를 만들었습니다. 그래 셔츠를 만든 그것을 입고서 나왔는데, 그 물건 담고 올 때 쓰는 글을 그대로 써 넣은 그대로 만들어 입었어요. “이 물건은 부서지기 쉬우니 조심하십시오.” 그 다음에 고흐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부서지기 쉽다는 표현으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마음에 큰 변화를 고흐가 얻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이구나”하는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고흐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강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태산을 움직일만한 힘을 지닐 수도 있고, 마음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낙망하고 불안하면 인생이 비참하게 되고 맙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음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중심이 하나님께서 점령하고 계셔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인간은 강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중심이 허무하고 질서가 없고 방황하면 말할 수 없이 허약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에서 32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기도원에서 설교를 하면서 한참 중심을 잡고 말씀을 뽑아내는데, 바람이 불어가지고서 내 원고가 날아가 버렸어요. 아주 낭패 났어요. 그런데 권사님 권사 회장님이 뛰어가서 원고를 주워가지고서 그것을 어설펐지만 맞춰가지고서 내 책상에 가져왔습니다. 내가 그래서 ‘이때 살아온 동안 어려움을 당할 때 어머니와 같은 권사님이 제일 나를 많이 도와주는데, 이제 늙어가지고서 설교할 때 이럴 때도 역시 어머니와 같이 돌보아주시는구나’라는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마음중심을 붙잡을 사람들만 있으면 사람들은 튼튼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있으면, 성령이 이끌어가는 삶을 튼튼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자체는 가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보배가 들어 있습니다. 엄청나게 값나가는 보배가 들어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질그릇에 보배가 들어 있으니 그 질그릇 자체도 잘못 손댔다간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보잘 것 없는데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버티고 있으면, 얕잡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받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상항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8절~10절)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예수님을 감당할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몸 안에 모시고 있으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절대로 우리가 패배자가 되지 않습니다. 우겨싸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할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므로, 죽음도 꿈쩍하지 못 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그 생명의 역사가 예수님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위해서 못 박혀 죽었으니 그 보혈이 우리들의 죄악을 영원히 용서해 버렸어요. 죄가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그가 나무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매에 맞아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를 치료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있으니 우리를 쉽게 질병으로 멸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요사이 저는 재미있는 편지를 많이 받습니다. 또 우리 교회 나오는 집사님의 남편인데, 별로 예수님을 열심히 안 믿었다가 암이 걸리고 암이 온 몸에 다 퍼져나가고 있어서 살아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남자를 열심히 꾀어가지고서 교회에 데리고 나왔어요. 그런데 수술을 할 날짜를 정해놓고 열심히 교회 나와서 저에게 데리고 와서 제가 기도를 해주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그날 제 앞에 나왔는데 내 느낌이 ‘나는 힘이 없고 무력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사 나의 손을 통해서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그래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 난 다음에 수술을 받을 날짜를 정해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려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암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하는 말이 “이런 법은 없다. 기계가 고장이 났나 보다.”고. 그래서 기계를 다시 손보고 난 다음 사진을 찍어도 거의 암이 사라질 뻔 되었으니깐 “수술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겠다. 저번엔 너무 퍼져있기 때문에 수술할 재간도 없었거니와 살아날 기력도 없었는데, 이제는 당신 마음대로 해라. 수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해도 좋고 안 해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너무 좋아가지고서 또 편지를 했어요. “안수를 한 번 더 받아야 되겠다.”고. 그런 것은 큰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질그릇 속에 들어있으니 암이 들어와서 그를 죽이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보혈을 다 흘리고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거룩하게 해주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병을 고쳐주시고, 저주가 되어서 나무에 매달렸음으로 가난과 저주를 철폐해주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삶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니 이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님이 질그릇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질그릇에 누가 있는지 그분을 알아내서 그분과 함께 일어서면 질그릇이 황금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을 들여다보고 “주님 보혈을 흘렸으니 나는 주님 때문에 용서와 의를 얻어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오냐, 두려워하지 말라” 또 질그릇 속에 “주님,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다고 하니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병을 대신 짊어졌다.”, “주님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이 어려운 환난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래 내가 갈릴리 풍파도 잠잠하게 한 사람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같이 가자”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어떠한 형편으로 와 계신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면 그 효과가 발생되어 여러분에게 생명의 은총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두려움을 이기고 살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십니다. 독일의 문학가 장 파울이 두려움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마음이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서 벌벌 떱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다 지나고 난 다음에 ‘아 그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구나’ 그렇게 말합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하며,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우왕좌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려 떱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에 사태를 깨닫고 위험했던 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택하여 부르시고,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2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에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장 1절)


네 것, 내 것 따지는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내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이사야 43장 2절)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으로 환경에 그 무엇으로도 두려워 말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너를 도와주고 하나님의 의로운 손으로 붙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응해 주십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하나님이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장 4절)’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결론


마음에 평안이 없고 염려와 두려움이 가득하면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내주하시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엄청난 각오로써 사단의 무리들인 귀신을 대결하여 우리를 점령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하께 살면 그것이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자나 깨나 마음에 불안, 공포, 좌절, 절망, 고통이 다가올 때 사탄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사탄에게 잘 대접을 해주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그것을 강하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귀신들로써 우리에게 도둑처럼 늘 따라옵니다. 늘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예수님의 보혈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저는 종종 자다가 밤에 일어나서 한 10분, 20분 마귀를 쫓아내고 잘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꿈자리가 시끄럽고 가슴이 답답하면 쫓아내고 자야지 그거 내버려놓고 자면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독을 먹을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된다.”고. 마귀를 늘 쫓아내고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91편 14절부터 1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 같이 여러분과 우리를 품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암탉이 얼마나 병아리를 다정하게 돌보는가를 잘 압니다.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고 천둥이 나도, 새끼들을 모두 불러서 자기 날개 아래 품고 보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평생 품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6장 3절로 4을 보면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안고 업고 품어주시니 우리가 하나님 바라보고 살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4절로 6절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이사야 41장 10절)고 말씀함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다른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 같은 인생에 무슨 관심을 가지겠는가?’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이런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아무도 두려워할 이가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고백은 우리 신앙에 권위가 있습니다. 믿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는데, 믿고 난 다음 이것이 자꾸 사라지고 의심이 들어오는데, 이를 막고 강하게 붙드는 것은 입술의 고백입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마음에 많이 간직했다가 입술로 고백하면 그 말씀이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늘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이 얼마나 다정한 말입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하고 같이 계시니깐,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형통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하고 같이 계시면, 여러분이 점점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형통의 기운이 여러분에게 같이 있으니깐 무엇을 해도 형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와 같은 번영과 형통의 기운이 같이 있으므로 아주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다윗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점점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와 역사의 주권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아무리 약한 국가라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니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면에 같이 하시면 김정은이가 아무리 원자탄을 가지고서 큰 소리를 해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두려워할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우리들을 강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원수 마귀가 끊임없이 공격해 오더라도 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굳게 주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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