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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박윤선의 개혁주의적 종말론에 대한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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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열 교수의 “박윤선의 개혁주의적 종말론” 논평

 

박응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I. 논문의 의미

 

한국 개혁신학회의 2008년 가을 세미나의 주제, “정암 박윤선의 개혁신앙”에 관한 여러 논문들과 함께 이신열 교수의 논문은 그동안 연구되었던 정암의 종말사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옥고가 아닐 수 없다. 정암의 종말사상이야말로 그의 성경주석과 설교, 그리고 강의 등에 반영되어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전달되었으며, 그러한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한국 신학계의 연구대상이 되기에 족하다.

 

이신열 교수는 종전에 진행되어 왔던 성경주석에 역점을 둔 정암의 종말사상을 ?개혁주의 교의학?이라는 유고작을 중심으로 고찰함으로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특히 천년왕국설을 중심으로 종말사상을 고찰하던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나, 정암의 개혁주의적 교리의 틀에서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는 면에서 공헌한 바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이 교수는 정암의 종말사상은 성경주석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하지만, 개혁주의 교의학에 지대한 관심과 연구를 진행했던 결과인 정암의 교리학적 진술을 통해서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면에서 정암의 종말사상을 성경주석을 중심으로 삼지만, 교의학적 차원을 놓치지 않고 고찰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이 교수는 정암의 종말론의 구조와 개혁주의적 특징을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의 개인적 종말론과 일반적 종말론의 구조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을 강조함으로 드러내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전제 하에 이 교수는 정암의 종말론을 “박윤선 종말론의 구조와 개혁주의적 특징,” “죽음과 사후의 문제,”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고 “천년왕국”으로 구분하여 논하고 있다.

 

정암은 개인적 종말론을 언급하는 가운데, 헨드리쿠스 벌코프(Hendrikus Berkhof)의 “별세한 영혼에 대한 난제해설”과 “하늘과 이 세상”이란 주장에 대하여 성경에 의해 지지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한 견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에는 영혼불멸에 대한 다양한 합리론적 논증들은 “타락의 인식론적 영향”(the noetic effect of the Fall)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고, 내세에 대한 이해는 신비에 속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성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그의 소신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죽음의 성격,” “사후의 문제,” 그리고 “중간상태” 등을 논하는 데에도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 정암은 죽음에 대한 헤르만 바빙크와 벌코프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죽음의 성경적 의미를 부정하는 실존주의적 해석에 대하여 비판한다. 즉 바르트가 주장한 “죽음은 인간의 본연이며 창조질서에 속하도록 하나님이 규정하신 것인 만큼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존재는 끝나도록 되어있고 죽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창세기 2:17에 기록된 죽음이 인간의 죄의 결과라는 가르침을 “아주 위반하는 말”이라고 비판하면서, 주로 현대 신학자들의 견해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암의 주장 속에서 철저한 성경해석을 통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현대 신학자들의 그릇된 종말론적 견해에 대해 비판하고 성경적 종말사상을 변증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배후에는 정암이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미국에 유학하는 시기인 1930년대의 신학적 기상도와 자신의 비판적 인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II. 논문에 대한 제안

 

이신열 교수는 정암의 종말론의 구조와 개혁주의적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했는데, 어떤 특징들이 개혁주의적인지를 부각시키면서, 교의학적 차원에서 기존의 성경주석을 중심으로 연구된 천년왕국설을 중심으로 한 견해들과의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일반적 종말론을 논하면서 주로 바르트와 틸리히의 견해를 비판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는데, 재림의 확실성, 재림 전에 있을 사건들, 그리고 재림의 형태 등에 대한 성경적 근거들을 제시하며 진술한 내용이 어떠한 면에서 개혁주의적인지를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정암의 ?개혁주의 교리학?의 내용이 그의 성경주석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상호연관성을 밝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정암은 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부터 “개혁교리의 쟁투의 자취”를 정확히 알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정암의 천년왕국사상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주로 그의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에 대한 비판을 주로 다루면서 “박윤선의 입장이 그의 시대에는 개혁주의 전통 밖에 있었다”는 입장을 소개하였다. 이 교수는 정암이 그의 스승들의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을 비판했기에 개혁주의적 입장을 부인했다고 하는 입장에 수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유에 대한 고찰과 연구가 아직 미흡한 가운데, 이 교수는 서영일 교수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정암이 왜 비판했는지에 대한 교의학적 설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적 전천년설을 신봉해도 칼빈주의 신학체계와 양립할 수 있음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죽산 박형룡이 조지 엘든 라드(George E. Ladd)와의 서신교환과 연구를 거쳐 자신뿐만 아니라, 한국장로교회의 종말론적 견해를 역사적 전천년설로 규정했고, 정암도 이러한 입장을 수용하였다. 물론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주로 무천년설을 신봉했고, 정암에게 개혁신학을 전수했던 메이첸이나 구 프린스톤과 웨스트민스터 교수진들은 대부분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을 선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암은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자신의 종말론적 견해를 역사적 전천년설로 확립한 것은 한국 장로교회에 지대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극복하면서 개혁주의적 특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종말론적으로 대안을 형성함으로 그 기반을 조성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구미 개혁주의 안에서도 종말론적 견해에는 자유(eschatological liberty)를 부여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고, 특정 종말사상에 대한 신학적인 정죄나 비판은 삼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특정 천년왕국사상으로 신학적 입장, 특히 종말사상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지 않은 문제가 야기된다고 할 수 있다.

 

정암의 종말사상이나 한국교회의 천년왕국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세대주의에 대한 견해에 대한 평가를 생략한 것은 “한국장로교회도 일제시대에는 (현재에도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 는 없음) 많은 세대주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정암의 주장을 간과한 것이라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적절한 교의학적 고찰과 평가를 통해 한국 장로교회의 종말론적인 면에서 개혁주의적 특성을 강화할 수 있으며, 그동안 선행된 연구와의 연계성을 지니면서 새로운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종말사상을 형성하는 데에는 각자의 성경해석학(hermeneutics)과 함께 시대정신(zeitgeist)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정암도 그가 살았던 당시 상황 속에서, 초기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의 신학적 영향을 받으며 나름대로의 종말사상을 구축해 나갔다. 그런 가운데 평양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고, 그 후 미국과 화란에서의 유학을 통해 현대신학의 도전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여 그의 신학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그런 면에서, 이 교수가 정암의 종말론은 개혁주의 신학에 전반적으로 충실한 신학이며 현대 신학자들의 종말론적 주장들을 성경적으로 비판함으로써 한국 개혁신학의 발전에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는 적절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이신열 교수의 ‘박윤선의 개혁주의적 종말론’ 논평

 

권문상(웨신대)

 

 

먼저 이신열 교수께서 박윤선의 종말론 입장을 잘 분석하여 소개하여주심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저자는 박윤선의 교의학적 종말론 이해의 한계를 잘 평가해 주셨다. 성경주석적 방법론이 갖는 한계가 그것인데, 아마도 이 교수는 박윤선이 성경신학자로서 강조되는 것을 선호하였던 것 같다. 그의 종말론이 교의학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창조적인 틀 안에서 발전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박윤선의 종말론이 개혁 신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평가하였다. 특히 박윤선이 루이스 벌코프의 신학을 기본적으로 수용하였다고 판단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종말론이 개혁신학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논의를 전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였다. 특히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박윤선의 신학이 개혁신학적 틀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매우 상세하게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교수는 박윤선의 종말론 견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박윤선은 인간의 죽음과 사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바르트의 ‘죽음 이해’ 그리고 ‘인간이 사후에 계속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비판하면서 개혁주의 신학적 견해를 피력하였고, 중간상태에 대해서는 천주교와 폴틸리히의 논리에 대해 바빙크와 루이스 벌코프에 의존하여 비판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면서는 바르트의 재림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박윤선이 바르트를 비판하려했던 시도를 평가하였다. 이상의 주제에 대해서는 박윤선의 종말론이 여러 현대신학자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개혁 신학의 전통에 따른 논리를 전개하였다고 평하였다. 다만 좀 더 교의학적 논의를 깊이 다루면서 현대신학을 비판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하였다.

 

그러나 ‘천년왕국’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박윤선이 개혁신학적 전통에서 벗어난 견해를 피력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그 실상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였다. 박윤선이 역사적 전천년설을 고집하면서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을 논리적 뒷받침이 부족한 상태에서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이신열 교수는 다소 강하게 회의적으로 평가하였다. 예를 들어, 후천년설을 비판한 박윤선의 논리를 보충하기 위해 루이스 벌코프의 견해를 소개하는 등 박윤선의 취약한 논의 전개를 비판하였고, 무천년설에 대한 박윤선의 비판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하게 그 논리의 빈약함을 논박하고 있다.

 

이 교수는 박윤선의 종말론을 분석하면서 매우 다양한 유관 자료들, 특히 박윤선이 등장시켜 비판한 학자들의 원문을 충실히 참고하였다. 매우 성실하게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려 하였음을 잘 보여주었다. 이 점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러한 학자적 노력을 통해 박윤선의 종말론을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주었다. 특별히 천년왕국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다룰 때에 왜 박윤선이 개혁신학적 전통을 벗어났는지 잘 밝혀주었다. 바빙크, 카이퍼와 워필드의 견해를 심도 있게 다시 분석하면서 박윤선의 논리가 갖는 약점을 부각시킨 것이 그것이다. 박윤선이 카이퍼의 천년왕국 견해를 전천년설로 생각한 것이 잘못 판단한 것이고, 나아가 카이퍼의 견해가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생각하려 했던 것이 틀렸음을 보여 준 것, 등이 그 실례이다. 그러면 왜 박윤선이 무천년설에 대해 공정하지 않게 평가하였는지, 누구든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이 교수는 성의 있게 답변하려고 노력하였다. 서영일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비교적 설득력 있게 답을 하였다. 박윤선이 천년왕국을 연대기적으로 접근하게 된 것은 그의 스승인 선교사들 대부분이 전천년설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의 혼란한 시국을 겪으면서 천년을 상징적으로 보기보다는 전천년설적 종말론을 견지할 때 진리에 대한 그의 갈급함이 해갈될 수 있어서였을 것이라 평하였다. 아마도 이는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당대의 거의 모든 학자들을 해석할 때 거의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교수는 박윤선의 종말론을 상세하게 분석하여 그의 교의학적 성취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그 공과를 정확하게 평가하였다 이 점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만 이 논문을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발견되어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읽어 내려갈수록 기쁜 마음으로 끝까지 논문을 가까이하였지만, 논문 처음 부분에서 다소 실망하였다. II절 ‘박윤선 종말론의 구조와 개혁주의적 특징’에서 종말론 구조에 대해서 너무 간단하게 언급하였던 것이 매우 아쉽다. 루이스 벌코프의 구조를 기본적으로 따른다고만 말하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았으며, 특히 ‘개혁주의적 특징’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박윤선의 종말론이 개혁주의적인지 다룬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별세하여 육체와 분리된 영혼 존재 형태’와 ‘별세한 영혼은 이 세상을 다시 돌아오거나 활동할 수 없다는 가르침에 관한 것’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전자를 논의하면서는 헨드리쿠스 벌코프를 비판하고 후자를 논의하면서는 바빙크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정도에만 그치고 있다. 종말론 전반에 걸쳐 어떤 개념들이 개혁주의적 특징을 갖는지를 자세하게 다룰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하나, 만일 그의 종말론이 개혁주의적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박윤선의 천년왕국론이 개혁주의 전통을 벗어났다고 논문 후반부에서 비판한 것과는 상호 모순되지 않는가? 이 점을 유념하여 II절을 신중하게 선택했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이 글의 많은 부분에서 모호한 문장이 발견된다.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워 글을 읽는 중 흐름이 끊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였다. 아마도 시간에 쫓기어 교정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한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여 수정하면 좋은 글이 되리라 생각한다.

p.2. 첫 번째 단락 마지막 문장. ‘이러한.... 사실이다’에서 ‘이러한 그의 주석적 관심 때문에 박윤선은 그의....’로 바꾸면 좋을 듯하다.

p.3 세 번째 단락. ‘루이스 벌코프는 ... 동의하면서.... 논하면서....’ 를, ~~ 논하였다. 로 바꾸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면 어떨지.

p.3. 네 번째 단락, ‘구조의’는 오자인 듯.

같은 단락에서, ‘주시지 않으신 이유도’를 ‘주지 않으신’ 로 바꾸면 좋을듯.

p.7. 두 번째 단락에서 ‘왜 순교자와... 교리적 이유를 박윤선이 제시하지 않는다는....’에서 ‘제시하지 않는다’는 말보다는 ‘논박하지 않는다’로 해야 의미가 전달될 듯.

p.8. 첫 번째 단락 마지막 문장이 모호함.

p.12. 끝 단락. ‘워필드의 전천년주의적..... ’ 모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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