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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요한 웨슬레의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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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의 회심


요한 웨슬레는 몸무게가 50Kg 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분이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였다. 
그는 아버지 위로 5대가 목사였고 어머니 위로도 5대가 목사인 신앙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그는 영국 최고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강의도 했다. 

1732년, 그는 인디언 선교사로 자원해 미국 조지아 주의 인디안 원주민들을 찾았다. 
그때 그에게는 광대한 신대륙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웅대한 비전이 있었고, 당당한 실력이 있었다. 
또한 불타는 사명감과 인디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처럼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큰 꿈과 이상과 사명과 열정까지 가진 사람이 실패하였다.

사람의 힘이나 능력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결국 선교사역에 실패하고, 폐결핵까지 걸린 웨슬레는 패잔병처럼 영국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귀향하던 배가 풍랑을 만났다. 
배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몸부림으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웨슬레도 두려움에 젖어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끌려 선창으로 가니 모라비안이라 불리는 경건파 성도 몇 명이 손잡고 찬송하고 있었다.

그때 웨슬레가 물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습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예수를 믿어보세요.” 

그 말은 목사였던 웨슬리의 신앙양심을 무섭게 때렸다. 
“내가 이러고도 선교사를 자처했나?” 

귀향 후, 런던에서 투병하다가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우연히 모라비안 성도들의 작은 밤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한 청년이 성경을 낭독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평소에 잘 알던 말씀이었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그날따라 그의 가슴을 치며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 화재로 타죽기 일보 직전에 살아났다. 
그래서 그는 ‘타다 남은 숯’이란 별명을 지녔다. 그 숯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그는 투병하면서 자기 묘비에 새길 기도문을 적었다. 
“하나님! 이 무익한 종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타다 남은 웨슬레가 여기 누웠습니다.” 

그 마지막 기도문을 써 놓고 35세를 일기로 죽음을 기다리다가 그때 은혜를 체험했다. 
그리고 몸도 치유되었다. 

그 뒤 그는 88세까지 장수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가 말을 타고 지구를 열 두 바퀴 돌며 복음을 전했고, 
일생 4만 2천 4백 번의 설교를 했고, 200권이 넘는 신앙서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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