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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나는 왜 그쳤을까?

  • 이익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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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5월 6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2 만나는 왜 그쳤을까?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냥 편안하게 살았다면 출애굽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애굽에서 그들은 고된 노동으로 괴로웠다. 그들은 탄식하며 부르짖었고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출애굽이란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장 극심한 고통속에서 출애굽이란 변화가 잉태된 것이다.


변화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변화는 늘 낯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밤에 어린 양을 잡아 발에 신을 신은 채, 손에 지팡이를 잡은 채, 급히 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밤 서둘러 애굽을 떠나야 했다. 변화는 그렇게 정신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듯 요단강을 건넜다. 또 다른 변화의 시기로 돌입한 것이다. 광야시대가 끝나고 가나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여리고 평지에서 38년만에 유월절을 지킨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 날 그 땅의 소산물을 먹는다. 그런데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만나는 왜 그쳤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큰 변화 중의 하나다. 애굽의 음식을 알던 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그리고 지금 여리고 평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해본 적도 없고 사냥을 해본 적도 없는 세대이다.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만나였다. 그들은 매일 매일 이 양식이 공급된다는 것을 눈으로 보며 자랐다. 다음 끼니에 대한 걱정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것이었다. 양식을 비축해 둘 필요도 없었다. 다음 날 까지 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못먹게 되었다. 만나는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이었다. 물론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던 부모세대들은 이 만나에 대해 불평했다. 그러나 광야에서 자란 신세대는 만나 외에 다른 다양한 음식을 알지 못했다. 비록 단조롭긴하지만 그들에겐 유일한 식량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만나가 그친 것이다.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날 아침에 그들은 매일의 일상처럼 밥통을 들고 만나를 거두러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만나를 만날 수 없었다. 만나가 그친 것이다.


만나가 그쳤다는 당장의 사실은 300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기였다. 그러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의 소산을 먹었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새로운 양식을 준비하신 것이다. 이전에 익숙했던 것이 끊어질 때 우리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변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하나님의 초대인 것이다. 만나는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 것이다.


가나안 땅의 소산물이 무엇일까? 성경은 가나안 땅의 7대 소산물을 소개한다. 신 8:7-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우리가 이스라엘 땅에서 철마다 먹는 것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잘 따라가면 됐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방향만 잘 따라가면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들은 언제 심고 언제 거두어야 할지 그 시즌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땀흘려 경작을 해야 소산물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시즌을 아는 것, 땀 흘려 경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이 애굽과는 성격이 다른 땅이라고 말씀하셨다. 신 11:10-12,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기 때문에 비가 좀 안와도 농사하는데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빗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하기 때문에 우기에 일정량의 비가 반드시 내려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를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전에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할 것을 원하셨다. 신11:13-17,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우리는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한다.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밤낮없이 일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누리는 것에 마음 배앗기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따라오는 것이다. 풍성한 소산은 보장되는 것이다.


광야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고달팠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착해서 사는 가나안 시대에 그들은 새로운 싸움에 직면한다. 그것은 가나안의 풍요로움에 마음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공급자이신 하나님 한 분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세대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신8:12-14,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하나님을 잊지 않는 백성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전 시대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유일한 관심사이어야 한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다. 유대인 랍비였던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갈 3:26-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가 되었다. 즉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이다. 그것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다. 유월절 어린양처럼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 말씀 때문에 우리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와 그의 자손이 열방의 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역시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갈 권리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텔아비브 욥바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10주년을 맞이했다. 처음 세워질 때 주셨던 비전처럼 욥바교회는 이 땅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이 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연초에 그동안 우리 교회를 먹여 왔던 만나가 그친 것같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만나가 그친 것은 이전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급하시겠다는 초대이자 약속이다. 이러한 변화가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는 오직 새로운 챕터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할 뿐이다.


지금 이 시대는 풍요와 번영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시대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그것에 마음 빼앗기기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풍성함을 전하는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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