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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사 동네의 귀신 들린 사람처럼

막5:1-20

 

신약 성서 복음서들에는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적이라고 할 때는 병을 고치는 치유 기적과, 일반 자연현상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키는 자연 기적이 그것들입니다. 이 밖에도 처녀 탄생, 산 위에서의 변모, 부활 같은 기적은 예수 생애의 기적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뒤의 생애 기적들은 기적현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죠.

 

그러면 이런 기적들이 사실이냐? 예수님 당시에는 신화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이 과학적으로 사실이냐?’하고 묻는 것은 과거의 일을 현대의 시각으로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들, 자연기적, 치유기적과 더불어, 풍랑을 잠재운다든지, 오천명을 먹였다든지 하는 것들은 사실 여부를 묻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 행위들이 예수 운동의 어떤 성격을 보여 주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 운동이 인간 삶의 어떠한 변화를 추구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거라사 동네의 귀신들린 사람과 20년 가까이 하혈을 하는 여자를 고쳤던 이야기를 두 주에 걸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가복음에 실려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들은 원래 각기 흩어져 있던 예수님의 말들이나 기적 신화들을 마가가 수집해서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마가의 틀에 따르면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서쪽 기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가르치고(4:1-34), 제자들과 호수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잠재우고(4:35-41), 일행이 다시 호수를 건너 거라사라는 동네에 갔을 때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쳤다(5:1-20)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출발하던 곳으로 돌아와 야이로의 딸과 하혈하는 여인의 병을 고칩니다(5:21-43). 이처럼 마가복음 4~5장은 연달아 기적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달아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겠죠.

 

마가는 병을 고치는 이야기 뿐 아니라 4:1-34에는 비유로 가르치는 장면을 연달아 서술합니다. 예수님이 비유로만 집중해서 가르쳤다는 게 아니라 마가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비유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 둔 것입니다.

 

거라사라는 동네는 갈릴리 호수에서 동남쪽으로 약 55킬로 떨어진, 데가볼리 지방의 중심 도시입니다. 데가볼리는 7개의 도시라는 뜻이고, 주민들은 대부분 그리스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에게 이곳은 이방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거라사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 근처까지 와서 살지는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이야기가 거라사가 아니라 [가다라]라는 동네로 되어 있습니다(마8:28-34). 가다라는 호수에서 10킬로 떨어져 있으니 이야기 구성상 맞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악한 귀신이 들려 있습니다. 일종의 정신병자입니다. 정신병을 ‘귀신들렸다’ 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정신 의학이 발달 한 이후로는 이런 병도 없어졌지요. 그러나 정신병은 복잡한 사회관계에서 오는 개인이 감내하지 못할 시련이나, 갈등, 억압 등의 결과에서 온다는 데는 과거나 현재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의 비참한 삶의 모습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잠깐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이런 치유 기적이야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귀신병을 고침 받는 병자의 심각한 상태 기술, 치유 행위, 청중의 반응은 당시 치유 기적을 기술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에서 병자에 대한 묘사는 지나치게 깁니다. 그것은 극렬하게 파괴된 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려는데 목적이 있는 거죠. 당시 대부분의 민중들이 이런 처지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아마도 로마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이 이야기 속에 그려넣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귀신의 이름은 군대 귀신입니다. ‘레기온’이라는 말은 로마 최대의 군대 단위인데 군단급 입니다. 약 6천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였고, 그만큼의 보조병력이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세력이 엄청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귀신이 제 입으로 ‘이름은 레기온이고, 그 수가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사람에게 들어간 귀신의 수, 정신의학적으로는 그를 압박하는 요건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것이죠. 군인들이 있는 곳은 전쟁, 살기, 살육, 광기의 이미지가 겹치는 자연스러운 곳입니다. 그리고 11절 이하에서는 그에게서 나온 귀신들이 수천마리의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됩니다. 이 장면의 관점은 돼지 떼에게 어떻게 귀신이 들어갈까, 이스라엘에 무슨 돼지 농장, 그런 것에 관한 시선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의 형편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귀신들린 거라사 사람은 유대인으로 로마군과 그리스 지배계급에 의해 이중적으로 억압을 받는 상태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돼지 떼 이야기는 로마권력의 반감을 갖고 있는 유대 민중의 감정 상태인 것입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이 멀리서 보고 달려와 소리칩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이 사람이 이렇게 소리친 것은 이미 예수님이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을 하신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예수의 이름을 먼저 부릅니다. 민간 신앙에서 이름을 부름으로 상대를 제압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악한 귀신은 예수님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입 닥치라고 합니다. 왜 마가가 이러는가하면, 마가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이전에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아는 걸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 시점에서 예수를 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귀신 들린 사람은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환영받아야 하고, 누구든지 환영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거라사 동네의 사람들은 환영은커녕 예수더러 빨리 이 동네를 떠나 달라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는 엄청난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돼지를 사육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이 사라지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그 동네를 떠납니다. 그러자 귀신들렸던 그가 예수를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간청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동네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파했습니다. 여기서 ‘전파’라는 언어는 제자들에게만 사용된 언어이고 보면 그가 예수를 따라 가지는 않았지만 예수 제자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은 그 후 예수를 따라 다니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서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성서 안에서 예수님이 하신 그 어떤 일들도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거라사 동네의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는 예수의 어떤 부분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로마의 경제적인 수탈과 군사적인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찢겨 정신 줄을 놓아 버린 밑바닥 백성들을 예수님이 치유하셨고, 치유 받은 사람은 육체의 질병을 고침 받은 것을 넘어서서, 새로워진 인간 존재로 예수님이 이루려는 큰 일, ‘새로운 나라’를 전파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양상으로던지 예수를 만나고 있습니다. 거라사 동네의 이 귀신들린 사람만큼의 스펙터클한 상황으로만 예수를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 한 마디에, 누군가 완전히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예수 믿는 사람을 통해서, 찬송을 부르는 중에, 성경을 읽는 중에라든지...여러 방법으로 예수를 만납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 이전과는 다른 삶의 가치관과 방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욕망의 작은 일에 목숨을 걸고 살지 말고 큰일에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만나고 그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복음]이라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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